‹ 목록으로 월하검, 던전밥상

4화

다음날 아침, 휴대폰 알림이 백 개도 넘게 쌓여 있었다. 대부분 SOOP 알림이었다. [구독자 500명 달성] [클립이 커뮤니티에 공유되었습니다] [신규 팔로워 87명이 방송을 시청 중입니다] 나는 침대에 누운 채로 화면만 멍하니 보고 있었다. 어제까지 87명이었는데 하루 만에 이렇게 되나. 뭐지, 이 속도는. 혹시 봇 계정이 대량으로 몰려온 건 아닐까 싶어서 팔로워 목록을 훑어봤다. 프로필 사진도 다 제각각이고, 닉네임도 평범했다. '냉채슬라임덕후', '월하검 팬1호', '오늘도출근이필요없는사람'. 아니 이 사람들 진짜 사람이잖아. 검색창에 내 닉네임을 넣어봤다. [던전에서 요리하는 남자 화제] [검술 미쳤다는 스트리머 정체는?] [SOOP 신인 월하검 클립 모음] 클릭 몇 번 만에 내 얼굴이, 아니 내 뒤통수와 손목 각도가 여러 게시글에 걸쳐 도배되어 있었다. 댓글은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목소리도 목소리인데 저 손목 각도 뭐임 무술 유단자인가] [아 이거 나 어제 라이브로 봤는데 진짜 심장 떨어질 뻔] [근데 본인은 왜 저렇게 무표정임 뭐 매일 있는 일처럼] [냉채 만들 때 진지한 거 보고 뿜었다 저게 뭔 표정이야] 매일 있는 일이었다. 나한테는. 댓글 중엔 심지어 내 손질 순서를 초 단위로 분석해놓은 것도 있었다. [0:03 급소 확인, 0:05 절단, 0:07 이미 손질 시작함ㄷㄷ] 이걸 분석할 시간에 그냥 밥을 해 드시는 게 더 나을 텐데. 아무튼 뭔가 설명을 해야 할 것 같았지만, 마이크에 대고 뭐라 말해야 할지 감이 안 왔다. "어... 오늘은 던전 슬라임 좀 잡아서..." 하다가 관뒀다. 설명하려니 더 이상해졌다. 결국 나는 그냥 다음 방송에서도 아무 말 없이 요리만 했다. [또 조용히 요리만 하시네ㅋㅋ] [이 분 반응이 젤 웃김. 사람을 참격으로 썰어놓고 태연하게 냄비 씻음] [말이 없는 게 오히려 신뢰감 있음 ㅋㅋㅋ 무협지 은거고수 컨셉이냐] 무대응이 최고의 대응이었다. 적어도 나한테는. * 채널이 커지면서 이상한 일이 생겼다. 유명 스트리머들이 몰래 내 방송을 구독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구독자 목록엔 이름이 안 보였는데, 방송이 켜지면 이상하게 초반 몇 분 사이 시청자 수가 확 튄다는 게 그 증거로 언급됐다. [아까 방송 켜자마자 시청자 200명 뜀 뭐지] [유명 스트리머들 부계로 몰래 보는거 아니냐] [ㄹㅇ 인기 스트리머 A씨 인스타 스토리에 저 짧은 클립 올라왔던데] [B씨 라이브에서 지나가는 말로 언급함 "요즘 그 던전 요리하는 분 보는데" 라고] 나는 그런 이야기를 봐도 딱히 실감이 안 났다. 연예인 이름 들어봤자 얼굴도 모르는데 뭘 어쩌라는 건지. 뭐, 인기 스트리머든 아니든 요리는 계속 해야 하니까. 방송 끝나고 채팅창을 정리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 협찬 들어오는 거 아닌가. 던전 조미료 협찬 같은 거. 그럼 그렇지, 나한테 그런 게 들어올 리가 없지. 그러던 어느 날, 박덕수 사장님한테 전화가 왔다. "야, 도진아, 너 요새 뭐 하고 지내냐." "방송해요. 던전 재료로 요리해서." "뭐여? 던전서 뭘 캐다가 방송을 한다고?" 사장님 목소리에 놀란 기색이 섞였다. "어, 재밌더라고요." "아니 임마, 인터넷서 니 클립 봤는디, 뭔 애가 사람 아니고 촤악 하고 짐승 목을 따더만. 그거 니여?" 들켰다. "...예, 저예요." "야 이 자슥아, 너 그런 재주 있는 걸 왜 여태 숨기고 살았냐! 우리 가게서 10년 있으면서 젤 힘든 게 육수 재료 손질이었는디, 그때 좀 도와주지!" 사장님 목소리는 화보다는 억울함에 가까웠다. "몰랐어요, 저도." 그건 진심이었다. "몰랐다는 게 말이 되냐, 인마. 니 그 재주로 소갈비 뼈도 순삭이겠구먼." "아마... 될 거 같은데요." "됐어, 됐어. 늦었지 뭐. 근데 야, 그 클립 보니까 니 표정이 그렇게 태연한 게 더 무섭더라. 사람들이 그거 갖고 뭐라 안 하냐?" "뭐라고 하긴 하는데, 그냥 무시하고 있어요." "잘한다, 그게 정답이여. 신경 쓰믄 뭐하냐, 밥 잘 벌면 그만이지." 사장님은 한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금성루 자리 말이여, 재개발 얘기 아직 안 끝나서 건물 그냥 비어있혀. 니 방송 열심히 봐줄 텐디, 힘들면 언제든 연락혀." "네, 사장님." "밥은 챙겨 먹고 다니냐?" "방송하면서 먹어요." "그게 밥이여? 던전 짐승 살점 구워 먹는 게 밥이여?" "맛은 있어요." "...하이고, 말을 말자." 전화를 끊고 나니 이상하게 코끝이 찡해졌다. 근데 이 감정을 오래 붙잡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다음 방송을 준비해야 했으니까. 농담이다, 사실은 그냥 배가 고파서였다. * 채널이 커지면서 요구 사항도 커졌다. [슬라임 냉채는 좀 지겨움 좀 더 세게 가보시죠] [중층 말고 더 깊은 곳 가면 뭐 나오는지 궁금함] [다음엔 오크 등심 스테이크 좀 볼 수 있을까요] [이 정도 실력이면 그냥 깊은 곳 가도 되는거 아님?] 댓글창을 보고 있자니 마치 배달앱 리뷰 같았다. '사장님 다음엔 곱빼기로 부탁드려요' 같은 느낌. 근데 곱빼기 재료가 4급 던전에 있으면 어쩌라는 건지. 나는 앱을 열어 던전 등급을 확인했다. 지금까지 들어간 건 3급 던전 중층까지였다. 더 좋은 재료를 위해선 등급을 올려야 했다. 공단 앱에는 등급별 신청 안내가 자세히 나와 있었다. [던전 등급 안내] [1급~3급: 초심자 접근 가능] [4급~6급: 중급 탐사자 이상] [7급 이상: 국가 지정 전문 탐사자만 가능, 사전 승인 필수] 내 자격증은 여전히 1등급 초심자였다. 서류상으로는 초심자, 실제로는 짐승 목을 촤악 하고 따는 사람. 이 괴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감이 안 왔다. 그런데 신청서 마지막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 등급별 신청 시 실기 재평가 요청 가능. 재평가 합격 시 즉시 등급 상향] 실기 재평가.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그 항목을 눌렀다. 어차피 방송용 재료도 필요했고, 시청자들 요구도 있었고, 무엇보다 나도 궁금했다. 더 깊은 곳엔 뭐가 있을지. [재평가 신청이 접수되었습니다] [담당관 배정 후 3일 이내 연락 예정] 그리고 사흘 뒤,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국가던전관리공단 탐사관리부입니다. 이도진 님이시죠?" "네." "재평가 신청하셨는데, 마침 저희가 신설된 4급 던전 현장 검증도 같이 필요해서요. 혹시 이번 주에 시간 되시면 저희랑 같이..." 담당관 목소리가 이상하게 조심스러웠다. 뭔가 있구나. "어디로 가는데요?" "어, 그게... 서울 근교에 새로 생긴 4급 던전인데, 규모가 좀 큽니다. 몬스터 서식 밀도도 예상보다 높고요." 말투에서 은근한 불안이 느껴졌다. 뭐지, 이 반응은. 서류상 4급이라고 해놓고 실제로는 뭔가 다른 게 있는 건가. 아니면 그냥 담당관이 원래 소심한 성격인가. "등급 재평가는 어떻게 진행되는 거예요?" "현장에서 저희 관측관이 이도진 님 대응 능력을 평가하고, 그 자리에서 즉시 등급을 산정합니다. 보통은 안전한 구간에서 진행하는데, 이번엔 조금..." "조금?" "...아, 아닙니다. 준비 잘 해서 오시면 될 것 같습니다." 말을 흐리는 느낌이 더 신경 쓰였다. 근데 뭐, 이제 와서 안 간다고 할 것도 아니고. "괜찮아요, 가죠." 나는 별 생각 없이 대답했다. 어차피 결정하면 끝까지 가는 게 내 규칙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번 주 목요일 오전 아홉 시, 공단 남부지사로 오시면 저희가 현장까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네." 전화를 끊고 나서야 뒤늦게 담당관의 목소리 톤이 마음에 걸렸다. 너무 긴장한 목소리였다. 마치 뭔가 큰 걸 숨기고 있는 것처럼. 스마트폰 화면을 다시 들여다봤다. [신설된 4급 던전]이라는 문구가 유독 눈에 밟혔다. 신설이면 아직 아무도 제대로 조사 안 한 곳이라는 얘기 아닌가.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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