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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손끝이 이상하다는 걸 처음 느낀 건, 아버지가 소파에 널브러져서 끄응, 앓는 소리를 내던 어느 평범한 화요일 밤이었다. 그날도 나는 평소처럼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었는데, 책상 위에는 펼치다 만 문제집이 그대로 널브러져 있었고, 형광등 불빛 아래서 핸드폰만 만지던 나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굽은 등 때문에 실제 키보다 훨씬 작아 보인다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나로서는, 거실에 나가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학교에서도 존재감이 없어서 담임이 출석부를 부르다가 내 이름에서 한 번씩 멈칫하는 걸 볼 때마다, 나는 이 세상에 원래부터 그림자처럼 존재했던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런데도 그날은 유독 아버지의 앓는 소리가 신경 쓰였는데, 마흔다섯이라는 나이에 매일 지하철에서 시달리고 사무실에서 시달리다 퇴근한 아버지의 얼굴에 깊게 새겨진 기미를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몸이 먼저 움직였다. 문틀에 어깨를 부딪히며 거실로 나가는 동안에도 머릿속으로는 별생각이 없었다. 그냥 저러다 병원 가면 병원비가 더 들지 않을까, 그런 생계형 걱정이나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아빠, 어깨 아파요?" "어, 어깨가 아니라 목이 아파. 오늘 부장이 서류를 세 번이나 다시 만들라고 해서." 아버지는 대답하면서도 내가 뭘 하려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한 표정이었고, 나 역시 딱히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냥 손이 먼저 아버지의 목덜미로 향했고, 어색하게 주무르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손바닥에 닿는 목덜미가 딱딱하게 뭉쳐 있는 게 느껴졌는데, 이런 걸 만져본 적도 없는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라서 그냥 힘을 줬다 뺐다 하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손끝에서부터 시작된 미세한 저림이, 마치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손바닥 전체로 퍼져나갔고, 그 감각을 따라가듯 내 손가락은 아버지의 근육 결을 정확하게 읽어냈다. 어디를 누르면 뭉친 곳이 풀리는지, 어느 방향으로 밀어야 시원한지,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손이 알아서 움직였다. 엄지손가락이 저 스스로 목덜미 아래쪽의 어떤 지점을 찾아가더니 지그시 눌렀고, 나는 그저 손이 하는 대로 몸을 맡기고 있을 뿐이었다. '뭐야 이거, 나 손에 뭐 씌었나.' "으어어어······." 아버지가 낮게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뒤로 젖혔는데, 그 소리가 아파서 나는 게 아니라는 걸 나는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오히려 시원해서 나오는 신음이었는데, 회사에서 이십 년 가까이 시달린 사람의 몸에서 나올 법한, 그런 절실한 소리였다. "거기, 거기 조금만 더." 나는 시키는 대로 손끝에 힘을 조금 더 실었고, 그 순간 눈앞에 뭔가가 떠올랐다. [숨겨진 스킬을 발견했습니다.] [스킬 각성: 만능 마사지(Lv.1)] ······뭐지? 나는 눈을 몇 번 깜빡였지만 그 글자는 사라지지 않고 시야 한쪽에 고정된 채 떠 있었다. 마치 게임 창 같은 반투명한 창이었는데, 손을 뻗어 만지려 해도 만져지지 않았고, 눈을 감았다 떠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심지어 고개를 좌우로 돌려도 창은 시야 한쪽 구석에 딱 붙은 채로 나를 따라왔다. '이거 뭐야, 나 미친 건가.' 속으로 되물어봤지만 대답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시원함에 몸을 맡기고 있었고, 나는 그 신비한 창을 보면서도 손은 멈추지 않은 채 계속 주무르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창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노려봤지만, 그런다고 뭐가 더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레벨 1이라는 숫자만 조용히 떠 있을 뿐이었다. '레벨이 오르면 뭐가 달라지는 거지. 설명서 같은 건 없나.' 창 근처에 뭔가 더 있을까 싶어서 시선을 위아래로 움직여봤지만, 딱히 다른 문구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렇게 불친절한 시스템이 다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십 분쯤 지났을까,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서 목을 좌우로 돌려보더니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뚝, 뚝 하는 소리가 목에서 나는가 싶더니 아버지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야, 도윤아. 너 이거 어디서 배웠어? 아빠가 마사지숍도 가봤는데 이 정도는 아니었어." "어, 그냥······ 유튜브?" 딱히 할 말이 없어서 대충 둘러댔지만, 아버지는 목이 이렇게 개운한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며 감탄을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소파에서 일어나 팔을 위로 뻗어보고, 허리도 몇 번 돌려보더니 몸이 십 년은 젊어진 것 같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나는 그 반응에 어색하게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 창은 대체 뭐고, 만능 마사지는 또 뭔데.' 방으로 돌아온 나는 침대에 누워서 다시 그 창을 떠올려보려 했지만, 이번엔 아무리 애를 써도 나타나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시야는 그냥 평범한 천장만 비추고 있었다. 눈을 감았다 뜨고, 다시 감았다 뜨고를 몇 번 반복해봐도 결과는 똑같았다. '혹시 만지고 있어야만 뜨는 건가.' 나는 벌떡 일어나서 내 어깨를 스스로 주물러봤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저림도, 창도, 아무것도. 이번엔 팔을 뻗어서 반대쪽 어깨까지 만져봤지만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그냥 평범한 내 손, 평범한 내 어깨였다. '그럼 남을 만져야만 되는 거야? 아니면 아빠한테만 되는 거고?' 별의별 가설을 다 세워봤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설마 학교 가서 아무나 붙잡고 어깨를 만져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그런 짓을 했다간 이상한 놈으로 소문나는 건 시간문제였다. 허무하게 다시 누운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원래도 존재감이 없어서 반에서 이름 부르는 사람이 하루에 한 명도 없는 나였는데, 이런 걸 누구한테 말해봤자 미친놈 소리나 들을 게 뻔했다.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애가 딱히 없다는 것도 이럴 때 보면 오히려 다행인 걸까, 하는 자조적인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내일 학교 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피곤했다. 그런데 그날 밤, 나는 꿈도 안 꾸고 푹 잤다. 원래 잠도 잘 못 자는 편이었는데, 오늘따라 이상하게도 몸이 가벼운 느낌이었다. 마치 내 손끝에서 시작된 그 이상한 저림이, 온몸의 피로까지 대신 가져간 것처럼. 이상한 일은 그렇게, 아주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나는 그 창이 다시는 뜨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학교로 향했다. 하지만 그날,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 창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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