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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다음 날 학교에서도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존재감 없는 하루를 보냈다. 1교시부터 6교시까지 칠판과 스마트폰 화면을 번갈아 쳐다보며 시간을 죽였고, 쉬는 시간마다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올까 봐 괜히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딴청을 부렸는데, 다행히도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급식실에서는 혼자 먹는 게 익숙해진 지 오래라 별생각 없이 식판을 들고 구석 자리로 향했고, 밥을 씹으면서도 머릿속에서는 계속 어젯밤 그 창이 떠나지 않았다. '진짜 있었던 일이겠지.' 집에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도 나는 손바닥을 몇 번이나 들여다보며 혹시 손끝에서 뭔가 빛이라도 나는 건 아닌지, 아니면 이상한 문양이라도 새겨진 건 아닌지 확인했는데, 당연히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밋밋한 손바닥만 보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손끝을 문지르면 어제 느꼈던 저릿한 감각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서, 나는 버스가 덜컹거릴 때마다 손을 접었다 펴며 그 느낌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집에 도착하자 마침 이모가 와 있었다. "어, 도윤이 왔네!" 이모는 언제나 그렇듯 밝은 목소리로 나를 반겼는데, 서른여덟이라는 나이에도 살롱을 운영하며 매일 손님들을 상대하는 일이 힘들어 보이지 않을 만큼 활력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오빠, 진짜야? 도윤이가 마사지를 그렇게 잘한다는 게?" 아버지가 신나서 이모에게 전날 일을 자랑한 모양이었다. 나는 신발을 벗다 말고 그대로 굳어버렸는데, 아버지가 저렇게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닐 줄은 몰랐던 탓이었다. 나는 그저 어색하게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는데, 이모는 이미 소파에 앉아서 등을 내밀고 있었다. "자, 이모 좀 해줘봐. 요즘 손님들 상대하느라 어깨가 아주 돌덩이야." "저, 저는 그냥 어제 우연히······." "우연이든 뭐든 일단 해봐. 손해 볼 거 없잖아?" 거절할 틈도 없이 나는 소파 뒤로 가서 이모의 등에 손을 얹었고, 그 순간 다시 손끝이 저릿하게 울렸다. [스킬 각성 상태 유지 중.] [시술 대상 인식: 박미경, 38세.] 창이 다시 떴다는 사실에 나는 손이 살짝 떨렸지만, 겉으로는 태연하게 계속 주물렀다. 이모의 어깨는 정말 딱딱하게 뭉쳐 있었는데, 손끝으로 살짝 눌러보기만 해도 근육이 돌덩이처럼 뻣뻣하다는 게 느껴졌다. 살롱을 운영하면서 본인은 정작 관리를 못 받았을 게 뻔했다. 나는 손끝의 감각을 따라 근육의 결을 하나씩 풀어나갔는데, 마치 뒤엉킨 실타래를 하나씩 골라내는 것처럼 어디를 눌러야 할지가 저절로 느껴졌다. 이모는 처음엔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더니 곧 신음을 흘리며 몸을 맡겼다. "아, 아아아······ 여기, 여기 진짜 시원하다. 야, 야, 거기 조금만 더." 십 분 정도가 지나자 이모는 눈을 번쩍 뜨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팔을 크게 휘저었다. 어깨를 이리저리 돌려보고 목을 좌우로 꺾어보던 이모의 표정이 점점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미쳤다, 진짜. 나 십 년 만에 이렇게 개운한 거 처음이야. 이거 뭐야, 너 학원 다녀? 어디서 배웠어?" "그냥, 손 가는 대로 한 건데······." 이모는 살롱을 십 년 넘게 운영해오면서 온갖 마사지사들의 손을 겪어봤을 텐데, 그런 이모가 이렇게 놀라는 걸 보니 나도 뭔가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게 그냥 우연은 아닌 것 같다는 확신. 어제 아버지 어깨를 풀어줬을 때는 그저 운이 좋았던 건가 싶었는데, 오늘 다시 확인하니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도윤아, 이모 살롱에서 알바 해볼래?" 갑작스러운 제안에 나는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 저는 그런 거 못해요. 사람들 앞에서·····." "에이, 뭐가 걱정이야. 그냥 손만 쓰면 되는데. 너 이 정도 손재주면 손님들이 줄 서서 기다릴 걸?" "저 진짜 사람 많은 데 가면 말도 못 하고 얼어붙는데······." "말 안 해도 돼. 손만 쓰라니까, 손만." 나는 계속 거절했지만 이모는 이미 마음을 굳힌 눈치였다. 결국 이모는 주말에 딱 두 시간만, 손님 한 명만 받아보고 아니면 그만두라는 식으로 조건을 걸어왔는데,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계속 거절하는 것도 이상하게 느껴져서 나는 결국 이모의 살롱에서 주말 알바를 해보겠다는 약속을 하고 말았다. 사실 속으로는 겁이 났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나 같은 극도의 아싸에게는 시험보다 더 무서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밤 방에 누워서 나는 다시 그 창을 떠올려봤는데, 이번엔 조금 더 자세한 정보가 보였다. [누적 시술 횟수: 2회] [목표: 10,000회] [현재 진행률: 0.02%] '만 명? 만 명을 어떻게 다 해.' 숫자를 보는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학교 친구도 거의 없는 내가 만 명이라는 숫자를 채운다는 게 가능할까 싶었다. 하루에 열 명씩 해도 천 일, 삼 년 가까이 걸릴 계산이었는데, 그것도 매일 빠짐없이 손님이 있어야 가능한 숫자였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창을 보고 있으니 뭔가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이상한 자신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내가 뭘 믿고 이런 생각을 하는 건지 나조차도 알 수 없었지만, 그냥 그 숫자가 아주 먼 이야기만은 아닐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예감이 들었다. 다음 날 이모의 살롱에 들어서면서 나는 심장이 쿵쿵 뛰는 걸 느꼈는데, 낯선 향과 조명, 그리고 카운터에 서 있던 사촌누나 지은이를 발견했을 때 그 두근거림은 더 커졌다. 은은한 아로마 향이 코를 찔렀고, 조명은 눈이 부시지 않을 정도로만 낮게 깔려 있었는데, 그런 분위기 자체가 나에게는 낯설어서 그냥 서 있는 것만으로도 진땀이 났다. "도윤아! 왔어?" 지은 누나는 언제나처럼 활짝 웃으며 나를 맞아주었다. 밝고 명랑한 성격에 사람 사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누나를 볼 때마다, 나는 나와 너무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누나는 카운터에서 폴짝 튀어나오듯 다가와 내 팔을 툭 치며 웃었다. "너 소문 들었어. 손끝에 뭐 있다며? 엄마가 완전 흥분해서 전화했잖아." 누나의 말에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애매하게 웃기만 했다. 이모가 벌써 이렇게 소문을 낸 건가 싶어서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런데 그 순간, 살롱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손님이 들어왔고, 이모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도윤아, 이리 와서 첫 손님 좀 봐드려." 낯선 손님 앞에 서게 된 순간, 나는 손끝이 다시 저릿해지는 걸 느끼면서도 발이 바닥에 붙어버린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이모의 재촉하는 눈빛과 지은 누나의 기대에 찬 시선이 동시에 나에게 꽂혔는데, 그 시선들 사이에서 나는 처음으로 이 능력이 나만의 비밀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보여야 하는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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