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72년 무예, 곰으로 환생

2화

굴 안은 어두웠다. 습한 흙냄새와 젖은 털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강철심은 그 냄새를 하나씩 구분해 보려 애썼다. 인간의 코로는 못 하던 짓이지. 곰의 감각은 확실히 남달랐다. 습기, 흙, 어미의 체취, 그리고 옆에서 부스럭거리는 다른 형체. 형제였다. 산이라고 불리는 듯했다. 어미가 그 이름으로 몇 번 낮게 울었다. 산이는 몸집이 강철심보다 조금 컸다. 먼저 태어난 듯했다. 둥글둥글한 얼굴에 아직 눈도 제대로 못 뜬 채였다. 뭐야, 얘도 나만큼 약한데. 강철심은 몸을 뒤척이며 자신의 앞다리를 살폈다. 짧고 가늘었다. 발톱은 아직 물러서 흙조차 제대로 긁지 못했다. 근육이랄 것도 없었다. 그냥 살가죽에 뼈가 겨우 붙어 있는 수준이었다. 이 몸으로 뭘 하겠다는 거냐, 지금. 기가 찼다. 전생에는 검을 들면 산도 벨 수 있다고 자부했던 몸이었다. 지금은 제 몸도 못 가누는 새끼 곰이었다. 그래도 시작은 해야 했다. 무예를 닦던 인간의 습관이 남아 있었다. 몸이 약하면 약한 대로, 지금 할 수 있는 걸 찾는다. 그게 강철심이 평생 지켜온 원칙이었다. 강철심은 앞다리를 조심스럽게 굽혔다. 펴고, 다시 굽혔다. 버둥. 반동으로 몸이 옆으로 넘어갔다. 와, 진짜 아무것도 안 되네. 코가 흙바닥에 처박혔다. 흙 알갱이가 콧구멍으로 들어왔다. 재채기가 나왔다. 에취. 산이가 그 소리에 잠깐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다. 신경도 안 쓴다는 태도였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다시 다리를 굽혔다. 다시 넘어졌다. 또 굽혔다. 또 넘어졌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넘어질 때마다 몸의 어느 부분이 먼저 바닥에 닿는지 확인했다. 어깨, 옆구리, 다시 어깨.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스무 번쯤 반복했을 때, 옆에서 낮은 숨소리가 들렸다. 어미였다. 어미 곰이 강철심의 움직임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뭘 보시나. 새끼 곰이 다리를 버둥거리는 건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건 좀 달랐다. 무작위로 버둥거리는 게 아니라, 같은 동작을 정확히 반복하고 있었다. 멈추는 지점도 같았고, 넘어지는 방향도 비슷했다. 어미의 코끝이 다시 떨렸다. 강철심은 그 반응을 눈치챘다. 너무 티 냈나. 동작을 조금 흐트러뜨려 볼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멈출 생각은 없었다. 이 정도로 의심받는다고 훈련을 그만둘 거였으면, 애초에 인간이었을 때도 그만뒀을 것이다. 의심받는 거랑 죽는 거, 둘 중 하나 고르라면 당연히 전자지. 다음 날, 굴 밖에서 빛이 스며들었다. 가느다란 햇살 한 줄기가 굴 입구부터 안쪽까지 길게 뻗어 있었다. 어미가 자리를 비운 사이, 강철심은 다시 다리를 움직였다. 이번엔 좀 더 체계적으로. 무릎 굽힘, 앞다리 뻗기, 몸통 비틀기. 인간이었을 때 배운 기초 체형 훈련을 최대한 곰의 몸에 맞춰 변형했다. 관절 가동 범위가 다르다. 중심이 낮다. 무게 분배가 완전히 다르다. 네발짐승의 몸이라는 게 이렇게 다르구나. 하나씩 몸으로 확인하며 넘어갔다. 앞다리와 뒷다리의 힘 배분 비율. 목을 돌릴 때 딸려오는 등의 각도. 발바닥 전체를 바닥에 붙였을 때와 발끝만 디뎠을 때의 균형 차이. 전부 다시 배워야 했다. 옆에서 산이가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형제 곰의 작은 눈이 강철심을 향해 있었다. 아직 초점도 제대로 안 맞는 눈이었지만, 뭔가 흥미로운 걸 발견한 눈치였다. 뭐야, 너도 궁금하냐. 산이가 다가와 코를 킁킁거렸다. 숨소리가 씩씩거렸다. 그러고는 앞발로 강철심의 몸을 툭 밀었다. 장난이었다. 강철심은 순간 균형을 잃었다. 몸이 옆으로 굴렀다. 이 자식이. 굴러가다 굴 벽에 부딪혔다 멈췄다. 등짝이 얼얼했다. 하지만 곧 다시 몸을 일으켰다. 산이가 다시 밀었다. 또 굴렀다. 산이 이 자식, 재밌나 보네. 놀이인 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강철심에게는 다른 의미였다. 균형 훈련이다, 이거. 밀리고, 버티고, 다시 밀리고. 계속 반복하면서 몸의 무게중심을 감으로 익혔다. 몇 번쯤 밀리다 보니 미리 다리를 벌려 버티는 법을 터득했다. 산이는 강철심이 넘어가지 않으니 재미가 없어졌는지, 밀치는 힘을 점점 키웠다. 훈련 상대로는 나쁘지 않네. 며칠이 지났다. 어미가 굴 밖에서 먹이를 물고 돌아왔다. 새끼들에게 하나씩 나눠주는 시간이었다. 비린 냄새가 굴 안에 퍼졌다. 강철심은 먹이를 받으며 어미의 눈을 살폈다. 여전히 그 시선에는 미묘한 경계가 섞여 있었다. 다른 새끼는 그냥 어미를 보고 좋아라 낑낑거렸다. 산이는 몸을 뒤채며 어미 품으로 파고들었다. 강철심은 그러지 않았다. 먹이를 받는 순간에도 자세를 확인하고, 각도를 재고 있었다. 씹는 힘, 턱의 움직임, 목을 넘길 때의 근육 사용까지 하나하나 몸으로 새겼다. 이게 새끼다운 게 아니라는 걸, 어미도 슬슬 느끼는 모양이었다. 어느 날 밤, 어미가 강철심의 몸을 코로 오래 훑었다. 마치 뭔가 다른 냄새가 나는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콧김이 뜨겁게 몸에 닿았다. 강철심은 가만히 있었다. 피할 이유가 없었다. 뭘 찾아도 못 찾을 텐데. 인간의 냄새 같은 게 남아 있을 리 없었다. 몸은 완전히 곰이었으니까. 어미가 느끼는 건 냄새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였다. 그날 이후로 어미는 강철심을 조금 더 조심스럽게 대했다. 다른 새끼들보다 한 발짝 떨어져서 지켜보는 시간이 늘었다. 먹이를 줄 때도 산이한테는 먼저 다가가면서, 강철심 앞에서는 잠깐 멈추는 버릇이 생겼다. 이거 뭐, 이질감이 너무 티 나나. 강철심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 중요한 건 몸을 만드는 일이었다. 어미의 눈치를 살피느라 훈련을 게을리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어미 곰은 야생의 감각으로 새끼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감각은, 결코 무시할 만한 게 아니었다. 인간이 만든 어떤 도구나 학문보다도 예리한, 수백만 년 동안 다져진 짐승의 직감이었다. 밤이 깊어지고, 굴 안이 조용해졌다. 바람 소리마저 잦아든 시간이었다. 강철심은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어미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전날과는 조금 달랐다. 경계보다는, 뭔가를 결심한 듯한 눈이었다. 뭘 결심했는데. 불길했다. 짐승의 결심이라는 건 대개 둘 중 하나였다. 지키거나, 버리거나. 어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는 짐승이었으니까. 그저 조용히 몸을 돌려 다시 잠들었다. 강철심은 그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았다. 뭔가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이 굴 안에서,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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