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타는 냄새가 났다.
매캐한 연기가 코를 찔렀다. 목구멍이 타는 것 같았다.
나무가 우는 소리, 그다음 무너지는 소리.
쾅.
천장 한쪽이 내려앉았다. 파편이 어깨를 스쳤다. 뜨거웠다.
"도윤아!"
재현이 내 이름을 불렀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숨이 막혔다. 폐가 쪼그라드는 느낌이었다.
연기가 눈을 찔렀다. 눈물이 났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손을 뻗었다.
닿지 않았다.
다시 뻗었다.
손끝에 뜨거운 것이 스쳤다. 살이 익는 냄새였는지, 나무가 타는 냄새였는지 구분이 안 됐다.
그리고 무너졌다.
[정신을 잃기까지 4초]
3초.
시야가 흔들렸다. 검은 재가 눈앞을 가득 채웠다.
2초.
"먼저 나가."
재현이 나를 밀었다. 손바닥에 힘이 실려 있었다. 세게.
나는 문 쪽으로 굴렀다. 바닥이 뜨거웠다. 무릎이 까졌다. 아프지 않았다. 그럴 정신이 없었다.
1초.
뒤를 돌아봤다.
검은 연기 속에서 재현의 실루엣이 흔들렸다. 팔을 뻗고 있었다. 나를 향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향해서인지 알 수 없었다.
"기다려!"
소리쳤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입만 벌어졌다.
다시 무너지는 소리.
텅.
그게 끝이었다.
병원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 재현은 없었다.
천장이 하얬다. 소독약 냄새가 났다. 팔에 링거 줄이 꽂혀 있었다.
대신 목소리가 있었다.
"네가 나갔어."
귓가에 바로 붙어 속삭이는 것 같았다. 숨결까지 느껴졌다.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네가 날 두고 나갔어, 도윤아."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손이 떨렸다. 링거 줄이 흔들렸다.
나는 그 목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사흘을 앓았다. 잠을 자면 목소리가 더 커졌다. 눈을 뜨면 조금 작아졌다.
의사는 환청이라고 했다. 정신적 충격이라고,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했다.
나는 알았다.
환청이 아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두 번 다시 편하게 잔 적이 없다.
5년 후, 서울.
"영안당(靈眼堂)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나는 대나무 발 너머로 손님의 실루엣을 보며 목소리를 깔았다. 목소리는 낮게, 발음은 또박또박. 신비로워 보이게. 그게 요령이었다.
중년 여자가 무릎을 꿇었다. 손수건을 꼭 쥐고 있었다.
"저희 남편이 자꾸 밤마다 이상한 소리를 해요. 잠꼬대인데, 꼭 누구랑 대화하는 것 같아요."
"전생의 업이군요."
나는 눈을 감고 손가락을 까딱였다. 이건 순전히 분위기용이었다.
사실 아무것도 안 보였다.
그냥 습관이었다.
"남편께서 전생에 빚을 지신 게 있습니다. 아마 도박이나 여자 문제로."
"어머, 정말요? 우리 남편이 젊었을 때 노름을 좀 했었는데."
여자의 눈이 커졌다. 완전히 낚였다.
"업보라는 게 그렇게 이어지는 겁니다. 다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방법이 있어요?"
"삼십만 원 정도로 풀립니다."
여자가 지갑을 열었다. 지폐를 세는 손이 급했다.
나는 발 너머로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웃었다.
"사기죄에요, 이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손님이 나가자마자였다. 정확히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기도 전에.
나는 한숨을 쉬었다. 이 타이밍은 매번 신기했다.
"또 왔냐, 서린아."
유서린이 문틀에 기대 서 있었다. 팔짱을 낀 채로, 눈은 반쯤 감고.
교복을 입은 열다섯 살짜리가, 나이에 안 맞게 팔짱을 낀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교복 치마 밑으로 삐죽 나온 부적 주머니가 보였다.
"형법 제347조.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은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참 훌륭한 지식이다. 학교에서 그런 것도 가르쳐?"
"인터넷에서 찾아봤어요. 강도윤씨 잡으려고."
"그거 훔친 거 아니지."
나는 사탕 봉지를 뜯었다. 바스락, 소리가 났다.
"내 돈으로 산 거야, 애기 당주."
"애기라고 부르지 말라고 몇 번 말해요."
서린이 발을 굴렀다.
탁.
마루가 울렸다. 나무 바닥이 삐걱거렸다.
서린은 선묘가의 차기 당주였다.
구마 명가라는 게 뭔지 나는 정확히 몰랐지만, 확실한 건 이 꼬맹이가 나보다 강했다.
적어도 부적 다루는 솜씨는. 저번에 내가 장난으로 놀렸다가 이마에 부적이 딱 붙어서 사흘 동안 눈이 못생기게 부어 있었던 걸 생각하면.
"오늘도 결혼 얘기 하러 온 거면 돌아가."
"이거나 받아요."
서린이 편지 한 장을 내 앞에 던졌다.
분홍색 편지지였다. 모서리가 살짝 접혀 있었다.
나는 열지 않았다.
"열어보라니까요."
"안 열어도 알아. 저번 것하고 똑같겠지."
"이번엔 혼인 날짜까지 정했어요. 우리 할머니가."
"장하다."
나는 편지를 서랍에 밀어 넣었다.
서랍 안에는 이미 편지가 열두 장쯤 쌓여 있었다. 열두 번의 혼인 제안, 열두 번의 거절. 이 집안은 포기를 모르는 것 같았다.
"강도윤씨, 진짜 궁금한 게 있는데."
서린이 다리를 접고 앉았다. 방바닥에 무릎을 대고, 턱을 괴고서.
"전생에 무슨 도사였다는 거, 그거 진짜예요?"
나는 사탕을 깨물었다.
딱.
단맛이 입안에 퍼졌다.
"믿고 싶으면 믿어."
"안 믿어요. 당신 몸에서 나는 기운, 전생 도사 기운이 아니에요."
서린의 눈이 가늘어졌다. 코를 킁킁거리는 것 같았다. 정말로 기운을 냄새로 맡는 건가 싶었다.
"뭔가 이상해요. 사람인데 사람 같지가 않아."
"칭찬으로 들을게."
사실 나는 전생 도사가 아니었다.
전생 기억 같은 것도 없었다.
그냥 5년 전 화재 사고 이후로, 영혼이 나를 자기들과 같은 부류로 여기게 됐을 뿐이다.
왜인지는 모른다.
다만 그 이후로 영혼은 나를 공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끔은 나를 피해 다니는 것 같았다.
그게 전부였다.
"전생 도사 코스프레는 그럼 왜 하는데요."
"진짜라고 하면 안 믿을 거고, 사기라고 하면 손님이 안 와."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전생자라고 하면 다들 신비롭다면서 지갑을 열어. 사람들이 원하는 건 진실이 아니라 그럴듯한 이야기야."
"진짜 사기꾼이네."
서린이 혀를 찼다.
하지만 웃고 있었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걸 나는 봤다.
"그나저나 오늘 부적 재료 사러 나가야 하는데, 돈 좀 빌려줘요."
"싫어."
"방금 삼십만 원 벌었잖아요."
"그건 내 노동의 대가야."
"사기의 대가겠죠."
우리는 그렇게 몇 마디를 더 주고받았다. 별거 아닌 말들이었다. 서린이 슬쩍 내 사탕 봉지에 손을 뻗었다가 내가 손등을 때려서 빼앗기고, 다시 뻗다가 또 맞고.
딸랑.
문에 달린 종이 울렸다.
손님이 또 들어온 모양이었다.
"오늘 예약 없는데."
나는 발 너머를 살폈다. 실루엣이 이상했다. 걸음걸이가 삐뚤빼뚤했다.
젊은 남자였다.
얼굴이 창백했다.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입술까지 하얬다.
걸음이 이상했다.
한쪽 다리를 끄는 것처럼. 관절이 제대로 안 붙은 인형처럼 걸었다.
서린이 옆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남자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이중으로 들렸다.
하나는 남자 본인의 것. 떨리고, 겁에 질린 목소리.
다른 하나는, 훨씬 낮고, 훨씬 오래된 것. 마치 땅속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것 같은.
서린이 벌떡 일어나며 부적을 꺼냈다. 손이 빠르고 정확했다.
"이거, 붙은 거예요."
나는 손을 들어 서린을 막았다.
남자의 등 뒤로 검은 형체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그림자가 아니었다. 그림자보다 진하고, 더 끈적한 무언가였다.
그 형체는, 눈이 없었다.
두 개의 구멍만 있었다. 그 구멍이 정확히 나를 향해 있었다.
방 안의 온도가 갑자기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