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라면집 꿈꾸는 기억조작요원

4화

국밥집은 그대로였다. 간판 글씨가 조금 벗겨졌을 뿐, 삼 년 전 그 자리 그대로. 문을 밀고 들어가는 순간, 익숙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소고기 육수 냄새, 깍두기 냄새, 그리고 낡은 나무 테이블 냄새. 삼 년이 지나도 이 냄새는 안 변하는구나. 최반장은 안쪽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다. 흰머리가 늘었고, 얼굴에 주름이 더 깊어졌지만, 눈빛은 그대로였다. 사람을 재는 눈빛. 부서에 있을 때, 저 눈빛을 볼 때마다 나는 늘 뭔가 잘못한 사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잘못한 게 없어도. "앉아." 말이 짧은 것도 그대로였다. 나는 맞은편에 앉았다. 의자가 삐걱거렸다. 이것도 그대로였다. 국밥이 나오기도 전에 최반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라면집 한다더니, 잘 안 돼?" "아직 준비 중이에요." "삼 년 준비하면 그거 라면집이야, 아니면 라면 박물관이야?" 말은 안 하고 넘어가려 했는데, 결국 이 사람 특유의 뒤끝 있는 농담이 나왔다. 예전과 똑같았다. "그런데 벌써 사고 치고 다니는 거야?" 비꼬는 말투였지만, 그 안에 궁금함도 섞여 있었다. "사고 친 건 아니고요. 옆방 사람이 피해자예요." "그래서." "자료 필요해요." 최반장이 팔짱을 꼈다. 그 자세도 예전 그대로였다. 뭔가를 재고 있을 때 늘 저 자세를 취했다. "공짜는 없어." 예상했던 말이었다. 이 사람이 공짜로 뭔가 주는 걸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삼 년 전에도, 그 전에도. "뭘 원하는데요." "네 능력, 다시 좀 써줘." 등이 서늘해졌다. "싫으면?" 내가 되물었다. "싫으면 자료 없어." 협상이랄 것도 없었다, 애초에 내가 유리한 자리가 아니었으니까. 국밥이 나왔다. 뜨거운 김이 올라왔고, 나는 그걸 앞에 두고도 숟가락을 들지 못했다. "어떤 일인데요." "작은 목격자 하나. 우리 쪽 사람 하나가 좀 곤란한 상황이라." 곤란한 상황. 그 표현이 예전에도 자주 나왔던 말이었다. 대부분은 누군가의 죄를 지우는 일이었다. 부서에 있던 시절, 나는 그 '곤란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몇 번이나 불려나갔던가. 목격자의 기억을 지우고, 사건을 없던 일로 만들고. 그때마다 나는 그게 정의라고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거기 있으면서 나 도와줬던 사람이잖아, 진우 너." 최반장이 국밥을 뜨며 말했다. "이번엔 좀, 이해관계가 맞는 거지. 너도 그 계집애 지키고 싶은 거고, 나도 사람 하나 지키고 싶은 거고." "그건 다른 거예요." 내가 낮게 말했다. "뭐가 달라." "저는 피해자를 지키는 거고, 반장님은 가해자를 지키는 거잖아요." 최반장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다가 다시 굳었다. "말이 심하네."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 대답이 없었다. 국밥집 안이 조용했다. 옆 테이블에서 소주 잔 부딪히는 소리만 들렸다. 누군가의 웃음소리, 그리고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앵커의 목소리. 나는 숟가락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놨다. 배가 고팠는데도, 뭔가 넘어갈 것 같지 않았다. "거래 안 하면." 최반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이능튜버, 너 혼자서 잡을 수 있겠어? 그놈 능력, 알아?" "물체 투과요." "그것만 알아? 진짜 능력은 그게 아니야." 숨이 턱 막혔다. "뭔데요." 최반장이 목소리를 낮췄다. 국밥집 안이 시끄러운데도, 그 목소리는 정확하게 내 귀에 들어왔다. "투과 상태를 유지할 때, 그 안에서는 시간이 다르게 간대. 그 새끼 입장에선 몇 초가 우리 입장에선 몇 분이야. 그래서 도망칠 때 그렇게 순식간에 사라지는 거고." 그 말에 어제 밤 상황이 다시 떠올랐다. 손목을 잡은 순간, 남자가 창문 쪽으로 순식간에 사라진 그 장면. 시간 왜곡. 단순한 투과가 아니었다. 머릿속으로 그 장면을 다시 되짚었다. 남자가 사라지기 직전, 그 짧은 틈. 나는 그때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정확히 뭐가 이상한지는 몰랐다. 이제 알았다. "그거 부서 자료에 있어요?" "있지. 삼 년 전에 우리가 그놈 한 번 접촉한 적 있어." "접촉했는데 왜 안 잡았어요." 최반장이 픽 웃었다. 그 웃음에는 자조와 변명이 섞여 있었다. "그때는 위험도가 낮다고 판단했거든. 몰카 정도로." 낮다고 판단. 그 말이 얼마나 가벼운지, 은결의 하얗게 굳은 얼굴을 떠올리며 실감했다. 그날 밤, 문이 부서진 채로 서 있던 은결의 모습. 그 애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몰카 정도로. 그 판단 하나가, 삼 년 동안 몇 명의 피해자를 만들었을까. "자료 주세요." "거래는." "할게요. 대신 조건 있어요." 최반장의 눈썹이 올라갔다. "기억은 지울게요, 최소한만. 그리고 그게 무슨 죄인지, 저는 몰라요. 알려주지 마세요." "뭐야, 갑자기 도덕적이야." "그냥, 제 방식이에요." 사실 도덕적인 것도 아니었다. 그냥, 알고 지우는 것과 모르고 지우는 것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나는 아직도 정리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다만 이번만큼은 그 대상이 뭔지 알고 싶지 않았다. 알면 손이 떨릴 것 같았으니까. 최반장이 잠시 나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자료는 오늘 밤 안에 메일로 보내지." "확실하게요?" "내가 언제 말 안 지킨 거 봤어?" 말은 지켰다. 항상. 대신 그 대가는 늘 누군가의 기억이거나 목숨이었다. 국밥을 몇 숟갈 뜨는 척하다가, 결국 반도 못 먹고 일어났다. 최반장은 그런 나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예전에도 그랬다. 내가 뭘 남기고 가든, 이 사람은 신경 쓰지 않았다. --- 집에 돌아와 메일을 확인했다. 파일 하나가 도착해 있었다. 제목: [비공개] 초능력자 관리대상 D-114 관측기록 열었다. 인적 사항은 흐려져 있었지만, 능력 항목은 상세했다. 부서에서 일하던 시절, 이런 관측기록을 수백 개는 봤다. 그때는 남의 일처럼 읽었는데, 지금은 손끝이 저릴 정도로 집중해서 읽고 있었다. [능력명: 시공 투과] [특성: 물체 및 신체를 비물질화, 유지 중 체내 시간 지연 발생] [한계: 정신적 부하로 연속 유지 3분 이내, 신체 접촉 시 능력 강제 해제 가능성 존재] 신체 접촉 시 능력 강제 해제. 어제 밤, 내가 손목을 잡았을 때 남자가 놀란 표정을 지었던 게 이해가 됐다. 그건 우연이 아니었다. 원리가 있었던 거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능력도 같이 발동했다. '재밌군.' 머릿속 목소리가 말했다. '그놈을 붙잡는 순간, 네 능력이 가장 강하게 작동한다는 뜻이지.' "우연 아니었어요?" '우연이 아니라 조건이지. 접촉, 그리고 절박함. 그 두 가지가 겹칠 때 네 능력이 한계를 넘긴다.' 생각해보니 부서 시절엔 항상 지시받은 상태로, 침착하게 능력을 썼다. 그때는 딱 지시받은 시간만큼 지워졌다. 정확하게, 계산된 만큼만. 어제는 달랐다. 죽을 것 같았고, 은결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결과, 능력이 예상보다 훨씬 크게 작동했다. '축하한다, 강진우. 너는 이제 네 자신의 약점을 전략으로 쓸 수 있게 됐다.' 비아냥 같았지만, 사실이었다. '다만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목소리가 갑자기 진지해졌다. '절박함은 통제할 수 없는 조건이다. 네가 원할 때 마음대로 절박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맞는 말이었다. 절박함을 일부러 만들어낼 수는 없었다. 그건 감정이지, 스위치가 아니었다. "그럼 이번엔 어떻게 해요." '그건 네가 알아서 하마.' "방금 아는 척은 뭐였어요." '……' 대답이 없었다. 이 목소리도 가끔은 이렇게 말문이 막히는구나. 나는 파일을 다시 읽었다. 방송 시간대, 활동 반경, 능력의 한계. 조각들이 맞춰지고 있었다. 다음에 그놈이 나타난다면, 이번엔 준비된 채로 맞을 수 있었다. 머릿속으로 다음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놈이 능력을 쓰기 전, 아니면 능력을 쓰는 순간 접촉해서 강제로 해제시킨다. 3분이라는 한계도 있었다. 그 안에 승부를 봐야 한다. 그런데 그 순간, 창밖에서 낮은 진동음이 울렸다. 스마트폰이었다. 은결이었다. [진우님, 저 지금 학교인데, 누가 제 사진 올렸어요.] 메시지 아래로 스크린샷이 첨부되어 있었다. 나는 화면을 켜자마자 심장이 내려앉는 걸 느꼈다. 실시간 커뮤니티 게시판. 어제 밤 402호 앞에서 찍힌 사진이었다. 문이 부서진 채로, 내가 은결을 부축하고 있는 장면. 댓글이 이미 수백 개였다. '저 남자 누구임?' '투과 피해자 맞지 이거' '구세주 등장 ㄷㄷ' '저 여자 얼굴 좀 가려주지 진짜' '2차 가해 아니냐 이거' 나는 화면을 보며 숨을 삼켰다. 조용히 움직이려던 계획이, 벌써 세상에 알려지고 있었다. 댓글 창을 스크롤하는 손가락이 멈추지 않았다. 게시글 조회수가 실시간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처음엔 몇백이었던 것이, 몇 분 사이에 몇천으로 뛰었다. 이건,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은결의 얼굴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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