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그로부터 며칠 후, 나는 결심했다. 생활마법이 쓸모없다는 그 낙서가 옳은지 틀린지는, 누가 대신 증명해줄 리 없었으니까 결국 내가 직접 증명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좀 우스운 일이었다. 남이 게시판에 휘갈겨 쓴 한 줄짜리 조롱 때문에 밤잠을 설쳐가며 이론을 곱씹고 있다니. 그런데 그게 웃기면서도 동시에 화가 나는 게, 그 낙서를 쓴 사람은 아마 지금 이 시간에 편히 자고 있을 텐데 나만 혼자 여기서 이 짓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문제는 방법이었다. 생활마법이라는 건 세탁마법, 정화마법, 온도조절마법처럼 일상의 편의를 위한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그것을 전투에 쓴다는 발상 자체가 학계에서도 진지하게 다뤄진 적이 없었으니까. 도서관에서 며칠간 관련 문헌을 뒤져봤지만 나온 결과는 허탈했다. '생활마법의 전투 응용에 대한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이 딱 한 편 있었는데, 그 결론이 "실효성 없음, 후속 연구 불필요"였다. 그 논문을 쓴 사람도 나처럼 한 번쯤 미쳐서 실험을 해봤다가 포기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 논문을 덮으며 생각했다. 남이 안 해봤다는 게, 안 될 거라는 뜻은 아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학원 뒤뜰의 빈 공터로 나가서 혼자 실험을 시작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이라 공터에는 나 말고 아무도 없었고, 바람에 낙엽 몇 장이 굴러다니는 소리만 들렸다. 누가 보면 뭐라고 할까 싶어서 괜히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다음에야 마법을 준비했다. 사실 이런 짓을 남한테 보이는 것도 부끄러웠다. 다 큰 마법사가 뒤뜰에서 세탁마법으로 나뭇가지를 상대로 씨름하는 모습이라니, 상상만 해도 낯이 뜨거웠다.
우선 가장 익숙한 세탁마법으로 시작했다. 이 마법의 본질은 대상에 붙은 이물질을 물리적 접촉 없이 분리해내는 것이었다. 흙이 묻은 옷에 이 마법을 걸면 흙이 저절로 떨어져 나가는 원리였는데, 나는 그 '분리'라는 속성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바닥에 굴러다니던 작은 돌멩이 하나를 향해 마법을 걸었다.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돌멩이는 원래 표면에 붙은 게 딱히 없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다음으로 낙엽 한 장을 시험해봤는데, 이번엔 잎맥을 따라 표면의 얇은 막 같은 게 살짝 일어나는 정도였다. 애매했다. 좀 더 확실한 대상이 필요했다.
[생활마법 '분리세탁'을 시전합니다.]
나는 근처에 있던 나뭇가지를 향해 마법을 걸었다. 결과는 예상과 완전히 달랐다.
부우욱
나뭇가지의 껍질이 그 소리를 내며 통째로 벗겨져 나갔던 것이다. 마치 누가 손으로 쭉 잡아 뜯은 것처럼, 결이 고운 속살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게, 되네...?
나는 그 순간 뭔가가 머릿속에서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세탁마법은 결국 '표면에 붙은 것과 본체를 분리한다'는 규칙으로 작동하는데, 그 대상이 흙먼지든 나무껍질이든 규칙상으로는 차이가 없다는 뜻이었다. 간단한 계산이었다. 흙과 옷의 관계나, 껍질과 나무의 관계나, 마법의 눈으로 보면 둘 다 '표면-본체'의 관계로 치환될 뿐이었다. 그렇다면 이걸 사람의 피부나 몬스터의 외피에 걸면 어떻게 될까. 그 생각이 스치자 등골이 서늘해졌는데, 동시에 흥분도 같이 밀려왔다. 나는 나뭇가지를 몇 개 더 주워서 반복 실험을 해봤다. 굵은 가지일수록 벗겨지는 데 시간이 조금 더 걸렸지만, 결국 다 벗겨졌다. 위력을 조절할 수 있다는 뜻이었고, 그건 곧 이걸 무기로 쓸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다음으로 시험한 건 정화마법이었다. 원래는 물이나 공기 중의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용도였는데, 나는 이걸 상처의 세균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응용해봤다. 팔에 일부러 작은 상처를 낸 뒤 정화마법을 걸어보니, 상처가 확연히 빨리 아무는 게 눈에 보였다. 상처를 내는 것부터가 은근히 아팠는데, 손톱으로 살짝 긁었을 뿐인데도 따끔한 감각이 팔뚝을 타고 올라왔다. 그러고 나서 마법을 걸자, 상처 주변이 미세하게 간지러운 느낌이 들면서 붉은 기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이건 치료마법 계열이 아니라 정화마법이었는데도 이런 효과가 나온다는 게 신기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상처를 하나 더 내서, 이번엔 정화마법을 걸지 않고 그냥 놔둔 것과 비교해봤다. 확실히 차이가 났다. 마법을 건 쪽은 벌써 딱지가 지려는 참이었고, 안 건 쪽은 여전히 붉게 부어있었다.
"...더럽게 쓸모없네, 라고 누가 그랬더라"
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헛웃음을 지었다. 게시판 낙서를 쓴 누군가에게 이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반, 그리고 이걸 함부로 떠벌리면 안 되겠다는 계산이 반이었다. 왜냐하면 이런 응용법이 알려지면 사람들이 나를 이용하려 들 게 뻔했으니까. 세탁마법사한테 몬스터 가죽 벗기는 일을 시키거나, 정화마법사한테 응급처치반을 맨발로 뛰게 만드는 그림이 벌써 눈앞에 그려졌다. 생각만 해도 피곤했다.
마지막으로 시험한 건 온도조절마법이었다. 이건 방 안의 온도를 쾌적하게 유지하는 데 쓰는 마법인데, 나는 이걸 극단적으로 밀어붙여봤다.
[생활마법 '온도조절'의 출력을 최대치로 조정합니다.]
치이이익...!
내 손끝에서 뻗어나간 냉기가 근처 웅덩이를 순식간에 얼려버렸는데, 그 얼음이 유리처럼 투명하고 단단해서 나는 나뭇가지로 몇 번을 두드려도 깨지지 않는 걸 확인했다. 발로 밟아봐도 끄떡없었다. 원래 이 마법으로 얼릴 수 있는 건 방 안의 실내 습도 정도가 최선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웅덩이 하나를 통째로 얼려버릴 정도의 출력이 나온다는 건 예상 밖이었다.
반대로 온도를 올리는 쪽으로 조정하자, 마른 풀더미에서 자그마한 불씨가 피어올랐다. 처음엔 그냥 열기가 느껴지는 정도였는데, 출력을 조금 더 높이자 정말로 작은 불꽃이 톡, 하고 튀었다. 나는 순간 당황해서 황급히 그 위에 흙을 뿌려 불을 껐다. 여기서 불이라도 났으면 학원 관리부에 불려가서 변명을 늘어놓아야 했을 텐데,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다행히 불씨는 흙 몇 줌에 금세 사그라들었지만, 손이 살짝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런 걸 함부로 실험하다가 정말 큰일 나겠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게 무기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점점 굳어지고 있었다.
요컨대 생활마법이라는 건, 그 원래 용도가 온화하고 소소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그 극단적 활용을 상상조차 안 해본 분야였다는 것이 내 결론이었다. 세탁마법은 절삭무기로, 정화마법은 응급처치로, 온도조절마법은 냉기무기와 화염무기로 변형될 수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게 실전에서 몬스터를 상대로 얼마나 통할지는 미지수였지만, 적어도 가능성 자체는 확인한 셈이었다. 나뭇가지 껍질을 벗기는 것과 몬스터의 두꺼운 외피를 벗기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었고, 웅덩이를 얼리는 위력이 실제 전투에서 얼마나 유효할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쓸모없다'는 그 낙서가 완전히 틀렸다는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잡무실로 돌아와 낡은 공책을 펼쳐 오늘 확인한 것들을 하나씩 적어 내려갔다. 펜을 쥔 손끝에 아직 냉기의 잔감각이 남아있는 것 같아서 몇 번 손을 폈다 오므렸다.
'분리세탁 - 절삭 응용 가능, 위력 미검증, 대상의 재질에 따라 소요 시간 차이 있음.'
'정화 - 지혈 및 상처회복 보조, 지속시간 짧음, 세균성 상처에 특히 효과적일 것으로 추정.'
'온도조절 - 냉기/화염 전환 가능, 출력 조정에 따라 위력 변동, 화염 쪽은 주의 필요 - 자칫하면 사고.'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제법 그럴듯한 무기 목록처럼 보였다. 나는 그 아래에 조그맣게 한 줄을 더 적었다. '실전 검증 필요.' 쓰고 보니 당연한 말이었지만, 이론과 실전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클지, 그건 직접 부딪혀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몬스터 앞에서 이 마법들을 걸었을 때 정말로 나뭇가지 껍질 벗기듯 쉽게 될지, 아니면 그저 웅덩이 하나 얼리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한 저항을 만나게 될지, 지금은 그저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공책을 덮으며 나는 창밖을 내다봤다. 학원 마당 너머로 저 멀리 거목던전의 거대한 실루엣이 어둠 속에서도 뚜렷하게 보였다. 낮에는 그저 커다란 나무들이 뒤엉킨 숲처럼 보이던 그곳이, 밤이 되니 마치 하나의 거대한 짐승이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던전을 바라보며 언젠가 저곳에 들어갈 날이 올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오늘 확인한 이 우스꽝스러운 무기들을 실제로 써볼 무대가, 결국은 저 던전이 될 거라는 어렴풋한 확신이었다.
물론 그 예감이 이렇게 빨리 현실이 될 줄은, 그날 밤의 나는 전혀 몰랐다. 창문을 닫고 이불을 뒤집어쓰며 나는 그저 며칠, 혹은 몇 주쯤 뒤에나 벌어질 일이라고 태평하게 생각했을 뿐이었다. 다음 날 아침, 잡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그렇게 다급할 줄은, 그때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