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곽태식 선생에게 정식 참여를 청했을 때, 그는 처음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이라는 게 참 볼만했는데, 마치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가 갑자기 말을 걸어온 것 같은, 그런 얼떨떨함이 섞인 무시였다.
"자네가 왜? 자네는 G급 아닌가"
그의 목소리엔 순수한 의문이 담겨 있었다. 비웃음도 아니고 그냥 정말로 이해가 안 된다는 투였는데, 오히려 그게 더 자존심을 긁었다. 나는 애써 태연한 척 대답했다.
"채집 임무 때 슬라임 처리한 거 보셨잖습니까"
"슬라임이랑 저층 관문 몬스터는 차원이 다르다"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슬라임은 말 그대로 물웅덩이가 걸어 다니는 수준의 몬스터였고, 그걸 처리했다고 해서 관문 몬스터를 상대할 자격이 생기는 건 아니었다. 거목던전 저층 관문은 학원생들이 정식으로 실력을 검증받는 자리였고, 그곳을 지키는 관문 몬스터는 '나무늑대'라고 불리는 개체로, 나무의 정령력과 야수의 흉포함이 결합된 중급 몬스터였다. 하급 학생들이 팀을 이뤄야 겨우 잡을 수 있는 상대였고, 개인이 단독으로 상대한다는 건 애초에 논외로 취급되는 수준의 난이도였다.
간단한 계산이었다. G급이라는 등급은 학원 내에서 사실상 존재감이 없는 취급을 받는 자리였고, 그런 내가 관문 임무에 정식으로 낀다는 건 곽태식 선생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뜬금없는 요청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잡무실에서 하루하루 소모되듯 보내는 시간이 지겨웠고,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최근 며칠 사이 내가 익힌 생활마법들의 조합이 생각보다 훨씬 파괴적이라는 걸 스스로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걸 곽태식 선생 앞에서 대놓고 말할 수는 없었다. '분리세탁이랑 온도조절이랑 정화마법을 섞으면 관문 몬스터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는 나를 정신병자로 취급했을 게 뻔했으니까.
결국 곽태식 선생은 조건을 걸었다.
"인솔 보조로만 따라간다. 절대 나서지 마라"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나서지 말라니, 그건 상황을 봐서 결정할 일이지' 하고 생각했다. 애초에 이런 종류의 약속은 지켜지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해석되는 게 정상이라는 게 내 나름의 철학이었고, 곽태식 선생도 어렴풋이 그걸 짐작했을 텐데, 그럼에도 나를 데려가기로 한 건 어쩌면 학생들의 안전을 위한 보험 하나를 더 두고 싶었던 걸지도 몰랐다.
관문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길었다. 거목던전 입구에서부터 저층 관문까지는 걸어서 삼십 분 남짓이었는데, 그 길을 걷는 내내 학생들은 저마다 긴장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누구는 지팡이를 몇 번이고 다시 고쳐 쥐었고, 누구는 마법서를 꺼내 마지막까지 주문을 되짚어 읊었다. 나는 그저 그 뒤에서 인솔 보조라는 이름표를 달고 조용히 따라 걸었을 뿐이었는데, 속으로는 이미 나무늑대의 목질 외피를 어떻게 처리할지 계산을 끝내놓은 상태였다.
관문 앞에 도착했을 때, 나무늑대는 이미 학생들 세 명을 상대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놈의 몸은 짙은 갈색 나무껍질로 뒤덮여 있었고, 움직일 때마다 나뭇가지가 삐걱거리는 듯한 마른 소리를 냈는데, 그 소리가 오히려 위협적으로 들렸다. 학생들의 공격마법은 나무늑대의 두꺼운 목질 외피에 거의 흡수당했고, 화염구가 터져도 놈의 몸에 잠깐 그을음만 남길 뿐 별다른 상처를 입히지 못했다. 오히려 반격을 당해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는데, 나무늑대의 앞발이 한 학생의 방어막을 그대로 뚫고 지나가는 걸 본 순간, 나는 이게 정말로 하급생들이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체감했다.
"물러나!"
곽태식 선생이 외쳤지만, 나무늑대의 속도가 워낙 빨라서 후퇴가 쉽지 않았다. 학생들은 이미 진형이 무너진 상태였고, 뒤로 빠지려는 순간 놈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나는 그 순간 판단을 내렸다. 목질 외피라는 건 결국 나무와 같은 성질이라는 뜻이었고, 그렇다면 내가 며칠 전 나뭇가지에 걸었던 그 마법이 통할지도 모른다는 계산이 섰다. 사실 그 계산이라는 것도 거창한 게 아니라, 그냥 '나무니까 벗겨지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발상에서 시작된 것이었는데, 이럴 때는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즉흥적인 감이 오히려 더 잘 맞아떨어지는 법이었다.
[생활마법 '분리세탁'을 최대 출력으로 시전합니다.]
나는 앞으로 뛰쳐나가며 나무늑대의 옆구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곽태식 선생이 뭐라 외치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지만, 이미 몸이 먼저 움직인 뒤였다.
콰크작!!
나무늑대의 외피가 통째로 벗겨져 나가는 소리가 관문 전체에 울렸다. 마치 두꺼운 나무껍질을 억지로 뜯어내는 것 같은, 섬유질이 끊어지는 특유의 질감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는데, 그 감각이 묘하게 익숙했다. 세탁물에서 얼룩을 뜯어낼 때 느껴지는 그 저항감과 거의 동일했으니까. 외피를 잃은 나무늑대는 그 즉시 균형을 잃고 옆으로 넘어졌다. 노출된 속살은 축축하고 연한 조직이었는데, 겉껍질이 사라지자 놈은 순식간에 몸집이 절반으로 줄어든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시 마법을 걸었는데, 이번엔 온도조절마법을 냉기 쪽으로 최대치까지 끌어올렸다.
치이이익...!
노출된 나무늑대의 속살이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놈이 고통스러운 울음을 토해내며 발버둥 쳤다. 김이 서리듯 뿜어져 나오는 냉기가 놈의 몸 표면을 하얗게 뒤덮었고, 그와 동시에 놈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지는 게 보였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면서 속으로 '어, 이게 되네' 하고 조금 놀랐는데, 사실 냉기가 저 정도로 효과적일 줄은 나도 확신하지 못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정화마법을 걸어 놈의 신경계를 마비시키는 응용을 시도했는데, 이게 정말로 통할지는 나조차 확신이 없었다. 정화마법이라는 게 원래는 오염물질을 분해하는 용도로 쓰이는 생활마법이었고, 그걸 신경계에 적용한다는 건 그야말로 억지스러운 응용이었으니까. 하지만 안 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손을 뻗었다.
[상태이상 '마비'가 적용되었습니다.]
...개사긴데?
그 문구를 본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나무늑대는 완전히 무력화된 채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이따금 몸을 부르르 떨 뿐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학생들은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중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한 채 그저 시선만 나에게, 그리고 널브러진 나무늑대에게 번갈아 던지고 있었다.
[관문 몬스터 '나무늑대'를 격퇴했습니다.]
[거목던전 저층 관문 최속 격퇴 기록이 갱신되었습니다.]
[※ 단독 격퇴, 3분 12초. 학원 설립 이래 최단 기록입니다.]
최단 기록이라는 문구를 보며 나는 잠시 멍해졌다. 이건 학생들과 함께 잡은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내가 단독으로 처리한 셈이었으니까. 심지어 3분 12초라는 시간은, 애초에 학생들이 이 관문에서 시간을 끌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흔하다는 걸 감안하면 말도 안 되게 짧은 시간이었다. 요컨대 나는 방금, 하급생들이 팀을 짜서 십 분 넘게 걸려도 못 잡는 상대를 혼자서 삼 분 만에 처리한 셈이었다.
곽태식 선생은 굳은 얼굴로 다가와 나를 한참 쳐다봤다. 그 시선에는 뭐라 정확히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이 섞여 있었는데, 놀라움과 불쾌함, 그리고 약간의 당혹스러움이 뒤섞인 듯한 표정이었다.
"나서지 말라고 했을 텐데"
"학생들이 위험했습니다"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대답했다. 사실 속으로는 '이럴 땐 결과가 말해주는 거 아닙니까' 하고 덧붙이고 싶었지만, 그 말까지 꺼내면 정말로 선을 넘는 것 같아서 참았다.
그는 뭐라 더 말하려다가,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가를 몇 번 반복했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가 결국 삼켜지는 과정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났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조차도 조금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결국 그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다물었다. 그 침묵 속에 담긴 감정이 무엇인지 나는 정확히 읽어낼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이전처럼 순수한 무시는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전의 시선이 '저게 여기서 뭘 하나' 하는 종류였다면, 지금의 시선은 '저게 대체 뭐지' 하는, 미묘하게 결이 다른 의문이었다.
학원으로 돌아오는 길, 학생들은 저마다 흥분한 목소리로 방금의 전투를 떠들었다. "그거 봤어? 외피가 그냥 통째로 벗겨졌잖아", "냉기 마법도 그런 식으로 쓸 수 있는 거였어?" 같은 감탄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고, 그 대화 속에서 내 이름이 몇 번이나 오르내렸다. 나는 그 뒤에서 묵묵히 걸으며 그 소리를 들었는데, 묘하게 낯설고 어색한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학원 안에서 내 이름이 이런 식으로, 이렇게 긍정적인 맥락으로 불린 적이 있었나 싶었으니까.
그 소문이 학원 전체에 퍼지는 데는 그날 저녁이면 충분했다. 나는 그 소문이 어디까지 퍼질지, 그리고 그게 나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짐작조차 하지 못한 채로, 그저 잡무실 침대에 누워 오늘의 전투를 다시 곱씹었다. 목질 외피를 벗겨내던 그 순간의 감각이 손끝에 여전히 남아있었는데, 그건 마치 오랫동안 눌러왔던 뭔가가 처음으로 제대로 풀려난 느낌이었다.
생각해보면 웃긴 일이었다. 생활마법이라는 건 원래 옷의 얼룩을 빼거나 방 안 온도를 조절하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하찮은 용도로 취급받는 마법 계열이었다. 그런 마법을 조합해서 중급 관문 몬스터를 삼 분 만에 무력화시켰다는 사실이, 나 자신조차도 아직 완전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한 건 있었다. 오늘 이후로 나를 보는 학원의 시선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할 거라는 것. 그리고 그 변화가 나에게 좋은 방향으로만 흘러가지는 않을 거라는 예감도, 어딘가 마음 한구석에서 슬며시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그 예감이 얼마나 정확했는지를 미처 알지 못한 채로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