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직원의 눈이 화면과 내 얼굴을 번갈아 오갔다.
'뭐지, 왜 저래.'
손끝이 차가워졌다.
등록 절차 중에 뭔가 걸리는 게 있다는 건 좋은 신호일 리 없었다.
직원은 태블릿 화면을 손가락으로 몇 번이나 쓸어 넘기며 무언가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 손가락의 움직임 하나에까지 시선이 붙어버려서, 나는 숨을 죽인 채 그 화면만 노려보고 있었다.
"음···"
직원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 짧은 소리 하나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신체능력 등급이 하위권으로 나왔는데···"
직원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스킬 판정이 좀 특이해서요."
'특이하다니, 그게 좋은 거야 나쁜 거야.'
입안이 마르기 시작했다.
등에서 식은땀이 배어 나오는 게 느껴졌다.
직원은 태블릿을 다시 두드리더니, 이내 표정을 풀며 말했다.
"아, 별건 아니고요. 신체능력이 낮은데 공격 계열 스킬이 나오는 경우가 드물어서 시스템이 재확인하는 거예요."
안도가 몰려왔다.
어깨에 들어갔던 힘이 스르륵 빠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동시에 궁금증도 따라붙었다.
"그러면··· 좋은 건가요?"
직원은 살짝 웃었다.
"나쁠 건 없죠. 근데 그거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게 있어요."
뭔가 불길한 접속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그런데.
"학생은 미성년자라서요."
'역시.'
예상했던 말이 나왔다.
마음속으로 한숨이 나왔다.
직원은 준비된 안내문을 태블릿 화면에 띄우며 설명을 시작했다.
"미성년자는 정식 등록이 아니라 가등록으로 처리돼요. 법정 보호자의 동의서가 필요하고요, 등급은 자동으로 F등급으로 고정되고, 던전 진입은 10층까지만 허용돼요."
한 문장 한 문장이 못처럼 박혔다.
'가등록. F등급. 10층 제한.'
스킬을 받았다는 기대감이 조금씩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저기, 그럼 F등급이라는 게··· 원래 등급이랑 다른 거예요?"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네, 완전히 별개예요. 성인 등급 심사랑은 무관하게 그냥 미성년자용 최저 등급이 붙는 거라서, 실제 스킬 판정이랑은 상관없어요. 시스템상 안전장치 같은 거죠."
"그러면 스킬은 그대로 남는 거고요?"
"그렇죠. 스킬은 그대로 유지돼요. 다만 던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될 뿐이에요."
그 말에 그나마 조금 위안이 됐다.
적어도 스킬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뜻이었으니까.
"그···"
말이 안 나왔다.
"성인이 되면 재등록해서 정식 등급 심사를 다시 받을 수 있어요. 지금은 일단 튜토리얼 강의부터 들으셔야 하고요."
직원의 목소리는 사무적이었지만, 그 안내 자체가 나에게는 벽처럼 느껴졌다.
'뭐야, 결국 이것도 어린애 취급이잖아.'
허망했다.
직원은 내 표정을 살피더니 조금 안심시키려는 듯 덧붙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10층까지도 충분히 경험 쌓을 수 있는 구간이에요. 튜토리얼 끝나고 나면 감이 좀 잡힐 거예요."
그 말이 위로가 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가서 동의서 이야기를 꺼내려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동의서에 서명해줄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다.
박정호 아저씨.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로 내 법적 보호자가 된 변호사이자 세무사, 그리고 원래 우리 옆 동네 이웃이었던 아저씨.
부모님 친구였고, 지금은 위층에 살면서 내 생활을 이래저래 챙겨주는 사람이었다.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저 던전 등록했어요' 라고 담백하게 말할지, 아니면 좀 더 부드럽게 돌려서 말할지.
결국 뭘 어떻게 말해도 반응은 비슷할 거라는 결론에 도달했을 때쯤, 이미 집 앞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위층으로 올라가 초인종을 눌렀다.
"어, 도훈이. 웬일이야 이 시간에."
문을 연 아저씨는 늘 그렇듯 넥타이를 풀어헤친 채 편한 옷차림이었다.
손에는 방금까지 보고 있었던 것 같은 서류 뭉치가 들려 있었다.
"드릴 게 있어서요."
동의서를 내밀자 아저씨의 눈썹이 슬쩍 올라갔다.
"이게 뭐야?"
"모험자 길드 가등록 동의서요."
순간 아저씨 얼굴에 걸린 표정이 재밌었다.
놀란 것도 아니고, 화난 것도 아니고, 뭔가 곤란한 웃음이었다.
"···너 던전 등록했어?"
"네."
"진짜로?"
"네."
같은 대답을 두 번 하게 만드는 걸 보니 아저씨도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었다.
아저씨는 서류를 훑어보더니 소파에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서류를 넘기는 손이 평소보다 조금 느렸다.
아마 머릿속으로 이것저것 따져보고 있었을 거다.
"위험한 거 아는 거지?"
"뉴스에서 봤어요. 그래도 저는 10층까지밖에 못 들어가니까요."
"그렇긴 한데···"
아저씨는 잠시 말을 고르는 눈치였다.
소파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뭔가 생각을 정리하는 것 같았다.
"부모님이 남긴 돈으로 편하게 살 수 있잖아. 굳이 왜 이런 걸 해."
그 질문에는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냥, 심심해서요' 라고 말하기엔 너무 가벼운 이유 같았고, 그렇다고 다른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냥 뭐라도 해보고 싶어서요."
짧게 대답했다.
아저씨는 한참 나를 보다가 결국 펜을 들었다.
"조건이 있어. 이상하면 바로 그만두는 거야."
"네."
"그리고 뭔가 위험한 낌새가 보이면 나한테 바로 연락하고. 학교 마치고 갔다 왔다는 식으로 대충 넘기지 말고."
"네, 알겠어요."
아저씨는 서명란에 이름을 적어 넣으면서도 미심쩍은 눈으로 한 번 더 나를 힐끔 쳐다봤다.
마치 이 서명이 정말 옳은 선택인지 스스로 확신이 안 서는 사람처럼.
서명이 끝나자 마음이 조금 놓였다.
동시에 새로운 걱정이 생겼다.
'그 강의라는 게 도대체 뭘 하는 거지.'
동의서를 챙겨 들고 아저씨 집을 나서는데, 등 뒤에서 한마디가 더 따라붙었다.
"진짜 이상하면 그만둔다, 약속한 거다."
"네네."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계단을 내려오는 발걸음이 이상하게 가벼웠다.
*
다음 날 오후, 나는 다시 길드 지부로 향했다.
튜토리얼 강의 대상자들이 모이는 시간이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어제와는 다른 층으로 안내받았다.
안내판을 몇 번이나 확인하고서야 겨우 대기실을 찾을 수 있었다.
대기실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이미 여럿 앉아 있었다.
대부분 낯선 얼굴이었는데, 그중 세 명이 눈에 익었다.
같은 교양 강의를 듣는 대학생들이었다.
정확히는, 강의실 뒤편에 앉아서 존재감 없이 수업만 듣던 나를, 그들도 딱히 기억하진 못할 것 같았지만.
"어? 너 그 교양 수업 듣는 애 아니야?"
한 남자가 먼저 알아보고 말을 걸었다.
장현우였다.
같은 강의 조에 있던 걸로 어렴풋이 기억했다.
"아, 네···"
목소리가 저절로 작아졌다.
"여기서 만나네. 신기하다."
옆에 있던 다른 남자, 윤성민도 고개를 들었다.
그는 나를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더니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학생이야?"
"고등학생이요."
순간 세 사람의 표정이 살짝 묘해졌다.
특히 여자 쪽, 한소율이라는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그녀는 흥미롭다는 듯 나를 훑어봤다.
"고등학생이 여긴 왜 왔어?"
말투에 특별한 악의는 없었지만, 질문 자체가 나를 작아지게 만들었다.
"그냥··· 궁금해서요."
대답이 너무 궁색했다.
한소율이 재밌다는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용감하네. 나 같으면 무서워서 못 왔을 것 같은데."
"저도··· 사실 좀 무서워요."
솔직하게 대답하니 세 사람이 동시에 픽 웃었다.
그 웃음에 악의가 없다는 걸 느끼자 조금 긴장이 풀렸다.
장현우가 픽 웃었다.
"우리도 그냥 궁금해서 왔어. 신경 쓰지 마."
그 말이 조금 고마웠다.
적어도 대놓고 무시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으니까.
윤성민이 옆에서 한마디 덧붙였다.
"어차피 튜토리얼은 다 같이 도는 거니까, 급하면 우리 뒤에 붙어. 뭐 별거 없을 거야."
"감사합니다."
세 사람 사이에서 나는 어색하게 자리를 지켰다.
대기실 안의 공기는 묘하게 들떠 있으면서도 긴장돼 있었다.
누군가는 다리를 떨고 있었고, 누군가는 계속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나 역시 무릎 위에 올려둔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계속 옷자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대기실 앞쪽 스크린에 안내문이 떴다.
[튜토리얼 대상자는 지금 즉시 3번 출입구로 이동해주세요.]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장현우 무리도 자연스럽게 움직였고, 나는 얼떨결에 그들 뒤를 따라 걷게 됐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낯선 사람들 사이에 섞여 걷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복도는 생각보다 길었고, 벽에 붙은 형광등 하나가 미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그 불빛을 눈으로 좇으며 걷는 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다들 각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얼굴만 봐서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출입구 앞에는 이미 십여 명이 줄을 서 있었다.
그 줄 끝에서, 검은 균열 같은 문이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문 표면에서 뭔가 미세하게 일렁이는 게 보였다.
마치 물속에 잠긴 유리 같은, 그런 이상한 질감이었다.
안내 방송이 울렸다.
삐이이이이이—-!
"자, 다음 조 이동합니다!"
큰 목소리가 복도를 뒤흔들었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줄이 조금씩 앞으로 당겨졌다.
한소율이 내 옆으로 슬쩍 다가와 작게 물었다.
"괜찮아? 얼굴이 하얗다."
"괜찮아요, 그냥 좀··· 떨려서요."
"나도 떨려. 다 그럴걸."
그 말이 별로 위안이 되진 않았지만, 적어도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 하나는 확실했다.
튜토리얼 던전의 입구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