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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김도훈 씨! 어디 있어요!" 박태산의 목소리가 공터를 다시 흔들었다. '대답해야 하는데.'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다리도 못으로 고정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이리저리 오가며 나를 찾는 게 느껴졌다. 누군가는 목을 쭉 빼고 두리번거렸고, 누군가는 벌써 흥미를 잃은 듯 하늘을 보고 있었다. "저, 저기요." 손을 어설프게 들자 그제야 박태산의 시선이 이쪽으로 왔다. "오, 학생이었구나! 나와요!" 걸음이 무거웠다. 한 발 한 발이, 마치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매달아 놓은 것 같았다. 신발 밑창이 흙바닥을 스치는 소리마저 크게 들렸다. 그 소리 하나에도 신경이 곤두섰다. 주위 사람들 시선이 온몸에 꽂혔다. 특히 방금까지 나란히 서 있던 장현우와 윤성민, 한소율의 눈길이 유독 신경 쓰였다. '다들 뭘 기대하는 눈이지.' 아무것도 기대할 게 없는데. 시연대까지 남은 거리는 채 열 걸음도 되지 않았지만, 그 열 걸음이 백 걸음처럼 느껴졌다. 발밑의 흙이 유난히 거칠게 느껴졌다. 운동화 끈이 살짝 풀려 있는 게 눈에 들어왔는데, 그걸 다시 묶을 정신도 없었다. 시연대 위에 올라서자, 허수아비 인형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허름한 마대 자루 같은 몸통에 대충 그려놓은 표정. 방금 김창수 노인이 목을 부러뜨렸던 그 표적이었다. 목이 꺾여 나갔던 자리에는 아직도 마대 자루 조각이 삐죽 나와 있었다. 그 잘린 단면을 보고 있자니 속이 울렁거렸다. 박태산이 팔짱을 끼며 물었다. "자, 등록할 때 받은 스킬이 뭐였죠?" "공, 공격이요." 순간 주변에서 작은 웅성거림이 일었다. "공격? 그것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확인해보진 않았지만, 아마 조롱이었을 것이다. "신체능력 등급은?" 박태산이 태블릿을 확인하며 물었다. "하위권입니다." 정유나가 대신 대답했다. 순간 공터 분위기가 미묘하게 바뀌었다. 뭔가 한심하다는 시선, 흥미가 사라진 시선. '역시 이럴 줄 알았어.' 황말순이 옆에 있는 이정숙에게 작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쟤는 뭐 볼 것도 없겠네." 작은 목소리였지만, 조용해진 공터에서는 그대로 다 들렸다. 이정숙이 맞장구를 쳤다. "저런 걸 왜 데려왔대." 두 사람의 대화가 계속 이어졌지만,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맞는 말이긴 한데···' 인정하면서도 마음 어딘가가 쓰라렸다. 박태산이 손짓하며 시연을 진행시켰다. "자, 한번 써봐요." 손바닥이 축축해졌다. 등록소에서 스킬을 받았을 때 손이 뜨거워졌던 기억이 났다. 그 감각을 다시 떠올려보려 했지만, 손끝에서는 아무 느낌도 오지 않았다. '왜 아무것도 안 되지.' 허수아비를 향해 손을 뻗었다. 숨을 참았다. 집중하려 했다.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관자놀이에서 땀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조용한 정적이 흘렀다. 박태산이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긴장했나 보네. 천천히 해봐요."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쟤 지금 손 떠는 거 보여?" 한 남자 참가자가 낮게 웅얼거렸다. 등이 뜨거워졌다가 순식간에 차갑게 식었다. '수치스럽다.' 감정의 이름이 그제야 붙었다. 다시 손을 뻗었다. 한 번 더. 또 아무 일도 없었다. 세 번째로 손을 뻗었을 때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스스로도 느껴졌다. 그 떨림을 감추려 손을 더 꽉 움켜쥐었지만, 그럴수록 더 눈에 띄었다. "어어, 이거 시간 좀 걸릴 수도 있는데." 박태산이 태블릿을 보며 뒷사람들에게 손짓했다. "다음 순서 준비하고 있어요, 얘는 좀 시간 더 줄게요." '다음 순서. 나는 그냥 넘겨지는 존재구나.' 등 뒤에서 웅성거림이 커졌다. 누군가는 벌써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대놓고 시계를 봤다. 윤성민이 옆에 있던 사람에게 뭐라고 말을 걸었다가, 이내 이쪽을 힐끗 보고는 시선을 피했다. 그 짧은 시선 회피가 오히려 더 크게 다가왔다. 장현우가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냈다. "괜찮아, 천천히 해." 의도는 좋았지만, 그 말이 오히려 더 부담이 됐다. '천천히 하라고 해서 될 게 아닌데.' 속으로 대꾸했지만, 그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한소율은 팔짱을 낀 채 별 표정 없이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 무표정이 뭔가 더 무겁게 느껴졌다. 그녀의 시선은 동정도 조롱도 아니었다. 그냥 관찰이었다. 그 관찰이라는 게 오히려 더 소름 끼쳤다. '이대로 아무것도 못 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스킬 미취득 처리가 되는 건가. 아니면 그냥 이대로 웃음거리가 되고 끝나는 건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등록소에서의 그 순간을 다시 떠올려봤다. 손바닥에서 열이 올랐던 감각, 그리고 [스킬 획득: 공격]이라는 문장이 눈앞에 떠올랐던 순간. 그때는 아무 노력도 안 했는데 저절로 됐었다. '그럼 지금은 왜···' 혹시 그때는 뭔가 특별한 조건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애초에 등록소의 그 상황과 지금 이 시연대가 다른 걸까.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또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순간 뒤에서 누군가 크게 웃었다. "야, 쟤 진짜 아무것도 못 하는 거 아니야?" 또 다른 목소리가 이어졌다. "애초에 왜 등록한 거야, 저런 등급으로." 말들이 화살처럼 날아와 박혔다. 귀가 울렸다. '그만해.' 속으로만 외쳤다. 입 밖으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시야 끝에서 정유나가 뭔가 말하려는 듯 입을 살짝 벌렸다가, 다시 다물었다. 그 침묵이 위로인지 방관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박태산이 슬슬 짜증 섞인 표정으로 팔짱을 풀었다. "자, 이제 진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보고···" 그 목소리에 담긴 피곤함이 그대로 전해졌다. 이제 이 자리에서 나가라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 순간 뒤통수가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조롱하는 웃음소리, 시간을 재는 시선들, 그리고 그 모든 것 속에서 홀로 서 있는 시연대. 숨이 턱 막혔다. 허수아비의 찢어진 마대 자루가 바람에 살짝 흔들렸다. 그 흔들림이 마치 나를 비웃는 것처럼 보였다. 손끝이 저절로 떨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건 긴장 때문이 아니었다. 뭔가, 다른 감각이었다. 손바닥 안쪽에서부터 뭔가가 천천히 차오르는 느낌. 등록소에서 느꼈던 그 열기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더 낮고, 더 무겁고, 더 짙은. '이게 뭐지.' 심장이 갑자기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주변의 웅성거림도, 박태산의 짜증도, 전부 아득하게 멀어졌다. 오직 손끝에서 퍼지는 그 감각만이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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