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손끝의 떨림은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등록소에서 느꼈던 그 뜨거운 감각이, 지금 다시 손바닥 안쪽에서 퍼지고 있었다.
'이거···'
주변의 웃음소리도, 박태산의 지친 표정도, 순간 아무것도 안 들리는 것 같았다.
귀가 먹먹해졌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관자놀이에서 맥박이 느껴졌다.
손바닥에 힘줄이 살짝 도드라졌다.
땀이 배어 나오는 게 아니라, 뭔가 안에서부터 열기가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수치스러웠던 게 억울했던 건가.'
스스로도 정확히 알 수 없는 감정이 안에서 뭔가를 밀어 올렸다.
창피함, 억울함, 그리고 그 밑에 깔려 있던 작은 화.
체육 시간마다 항상 뒤에서 세 번째였던 것.
친구가 없어서 늘 혼자였던 것.
부모님이 갑자기 사라진 뒤로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야 했던 것.
그 모든 게 한꺼번에 뜨겁게 뒤섞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평소라면 이런 감정을 느껴도 그냥 삼키고 넘어갔을 텐데, 지금은 그게 몸 밖으로 새어 나가려고 발버둥 치는 것 같았다.
"···한 번만 더 해볼게요."
목소리가 스스로도 놀랄 만큼 낮고 단단하게 나왔다.
박태산이 흠,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마지막이다."
그의 눈빛에는 별 기대가 없어 보였다.
어차피 안 될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의 눈빛이었다.
손을 다시 허수아비를 향해 뻗었다.
이번에는 억지로 힘을 주지 않았다.
그냥, 안에서 밀려 올라오는 그 뜨거운 감정을 그대로 흘려보냈다.
손바닥 안쪽에서 뭔가 응축되는 감각이 느껴졌다.
작은 실이 팽팽하게 당겨지듯, 압력이 쌓였다.
'제발.'
그 순간, 시야 한쪽 구석에 익숙한 반투명 창이 떠올랐다.
[스킬 발동 조건 충족]
[공격 - 발동 준비 중···]
'된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주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갑자기 뚝 끊겼다.
박태산의 눈이 살짝 커지는 게 보였다.
손끝에서 뭔가 뻗어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실이 아니라 화살처럼, 응축돼 있던 압력이 한 방향으로 쏟아졌다.
그 다음은,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졌다.
퍽-!
소리라기엔 너무 짧고 둔중했다.
허수아비가 그대로 무대 뒤쪽 방벽까지 날아가 부딪혔다.
콰앙-!
방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공터 전체를 울렸다.
허수아비가 방벽에 반쯤 박힌 채, 그대로 축 늘어졌다.
순간, 공터가 완전히 침묵에 잠겼다.
'···어라.'
방금 벌어진 일이 스스로도 믿기지 않았다.
손을 내려다봤다.
아무 상처도, 아무 변화도 없었다.
그저 손바닥이 살짝 후끈거리는 정도였다.
손가락을 몇 번 접어봤다.
평소와 다른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방금 저 허수아비를 날려버린 게 이 손이라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박태산이 태블릿을 내려다봤다.
화면에는 뭔가 숫자가 떠 있는 것 같았는데, 그 표정이 점점 이상해졌다.
"···이거 진짜야?"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그가, 다시 태블릿을 확인하고 나를 봤다.
그의 눈이 태블릿과 나를 번갈아 오갔다.
마치 화면에 나온 숫자를 믿을 수가 없어서, 실물을 다시 확인하려는 사람처럼.
"방금 그거, 다시 한번만 보여줄 수 있어요?"
주변 웅성거림이 다시 시작됐는데, 아까와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웅성거림이었다.
"뭐야, 방금 뭐였어?"
"쟤 하위 등급이라고 하지 않았어?"
"아니 근데 저 허수아비 원래 저렇게 튼튼한 거 아니었어?"
누군가 뒤에서 그렇게 물었고, 다른 누군가가 "아니 저거 못 하나로 고정된 거 아니었나" 하며 맞장구를 쳤다.
장현우가 눈을 크게 뜨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윤성민도 입을 반쯤 벌린 채였다.
한소율은 팔짱을 풀고 상체를 살짝 앞으로 기울인 채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황말순마저 놀란 표정으로 이정숙과 눈을 마주쳤다.
"방금 저거···"
이정숙이 뭐라 말을 시작했다가, 황말순이 고개를 젓는 걸 보고 말을 삼켰다.
김창수 노인만 조용히 팔짱을 낀 채, 뭔가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입가에 아주 옅은 웃음이 걸려 있었는데, 그게 비웃음인지 감탄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뭐지, 이 분위기.'
방금까지 조롱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들 뭔가 다른 걸 보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낄낄대며 손가락질하던 시선들이, 지금은 조심스럽게 이쪽을 살피는 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차이가 너무 갑작스러워서 오히려 어색했다.
박태산이 태블릿 화면을 다시 확인하며 낮게 중얼거렸다.
"신체능력 하위권에, 스킬 위력이 이 정도라고?"
그가 정유나를 돌아봤다.
정유나 역시 자신의 단말기를 확인하며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측정값이 이상 없는데요."
"이상이 없는데 이 위력이라니."
박태산이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뭔가 계산이 안 맞는다는 듯, 태블릿 화면을 손가락으로 몇 번 두들겼다.
두 사람이 뭔가를 주고받는 눈빛을 교환했다.
손바닥이 다시 축축해졌다.
이번엔 다른 이유였다.
'왜 다들 저렇게 놀란 거지.'
스스로 뭘 한 건지도 잘 모르겠는데, 주변 반응만 보면 뭔가 대단한 일을 벌인 것 같았다.
방금 전까지 창피해서 얼굴이 뜨거웠는데, 지금은 다른 이유로 얼굴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박태산이 헛기침을 하고 다시 큰 목소리를 냈다.
"자, 다들 봤지! 이런 게 바로 튜토리얼의 재미야! 신체능력이 낮아도 스킬 하나로 이렇게 뒤집을 수 있는 거지!"
방금 전까지와는 톤이 완전히 달라진 격려였다.
박수 소리가 몇 군데서 터져 나왔는데, 아까 낄낄대던 사람들 중 일부가 이제는 손을 마주치고 있었다.
그 손바닥 소리가 어색하게 공터에 울렸다.
"김도훈 씨, 잠깐 이쪽으로 와봐요."
박태산이 손짓하며 나를 불렀다.
뭔가 더 확인할 게 있는 눈치였다.
걸음을 옮기려는데, 뒤에서 한소율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방금 그거 스킬 이름이 뭐라고 했지?"
장현우가 대답했다.
"공격이라고 했잖아."
"그게 저 정도 위력이면··· 저거 진짜 저평가된 거 아니야?"
"등록소에서도 그 스킬 보고 다들 하위 등급이라고 했었잖아."
"근데 방금 그 위력을 보면 그게 말이 안 되는 거 아니야?"
두 사람의 대화가 등 뒤에서 계속 이어졌다.
박태산 앞으로 다가서자, 그가 태블릿 화면을 내 쪽으로 돌려 보여줬다.
화면에는 숫자와 그래프가 복잡하게 떠 있었는데, 그중 한 줄이 빨갛게 표시돼 있었다.
"이 위력 측정값, 이거 오늘 참가자 중에서 제일 높아요."
낮은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네?"
제대로 이해가 안 됐다.
숫자와 그래프가 눈에 들어오긴 했는데, 그게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김창수 씨보다도 높다는 얘기예요."
순간 등 뒤에서 김창수 노인이 헛기침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박태산이 팔짱을 끼며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마치 눈으로 뭔가를 다시 확인하려는 듯한 시선이었다.
"신체능력이 이렇게 낮은데 이런 위력이 나온 거면···"
말을 끝맺지 않은 채, 그가 정유나 쪽을 슬쩍 돌아봤다.
두 사람의 눈빛이 뭔가 심각하게 오갔다.
정유나가 뭔가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신경 쓰였다.
공터 저편, 관리 부스 쪽에서 누군가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게 보였다.
정장을 갖춰 입은 낯선 사람이었다.
걸음걸이가 여유로우면서도 어딘가 위압적이었다.
주변에 있던 관리 직원 몇 명이 그 사람을 보고는 슬쩍 자세를 고쳐 세우는 게 보였다.
박태산도 그를 발견하고는, 표정이 살짝 굳었다.
"저 사람은···"
그가 뭔가를 말하려다 멈췄다.
낯선 사람의 걸음이 점점 이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