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결말을 아는 신입생

1화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오늘은 입학식이니까. 국립탐사자양성학원, 그 이름만 들으면 뭔가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나한테는 그냥 강제소환장이나 다름없었다. 국가추천이라니. 내가 뭘 했다고? 이불 속에서 몸을 뒤척이며 천장을 노려봤다. 형광등이 깜빡거리는 게 꼭 내 마음 같았다. 켜질 듯 말 듯, 확신도 없이 흔들리는 것. 옆에서 뭔가가 부스럭거렸다. "일어났어?" 설아였다. 하얗다. 피부도, 머리카락도, 심지어 속눈썹까지도 눈처럼 하얗다. 아침 햇살이 커튼 사이로 비스듬히 들어오면 그 하얀 것들이 반사돼서 마치 빛이 사람 형태로 굳어진 것처럼 보였다. 처음 봤을 때는 유령인가 싶어서 소리를 지를 뻔했는데, 지금은 그냥 익숙하다. 익숙해지면 안 되는 상황인 것 같긴 한데. "응, 일어났어." "오늘 그거 가는 날 맞지. 학교." "맞아." 설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 시선이 오래 머무는 게 느껴졌다. 마치 내 얼굴에서 뭔가를 읽어내려는 것처럼. 저 눈빛, 뭔가 불안하다. "조심해. 위험한 곳 같아." "학교가 위험하면 그게 학교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는 학교도 위험할 수 있다는 걸. 왜냐면 이 세계엔 게이트가 있으니까.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 그리고 그 문 너머엔 온갖 괴물들이 있으니까. 전생에 내가 그렇게 열심히 굴렸던 크툴루 신화 TRPG, 그게 지금 여기서는 현실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진짜다. 딥원, 미고, 상아탑의 것들,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것들. 다 있다. 진짜로 다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지식을 가진 유일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국가추천을 받아 이 학원에 들어가게 됐다. 영광이라고 해야 하나, 재앙이라고 해야 하나. 둘 다인 것 같기도 하고. 세수를 하면서도 머릿속은 복잡했다. 국가추천이라는 말은 듣기엔 좋지만, 사실상 이거 아니면 저거 하나 선택하라는 협박에 가까웠다. 서류에 도장 찍는 순간부터 내 인생은 국가의 소유물이 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뭐, 그렇다고 안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거울 속의 내 얼굴은 평소보다 조금 더 초췌했다. 잠을 설친 탓이겠지. 아니면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몸이 먼저 알고 반응한 걸지도. "다녀올게." "응. 저녁에 봐." 설아는 손을 흔들었다. 그 손짓이 유난히 애틋해서 나는 잠깐 멈춰 섰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현관문을 닫는 순간까지도 설아의 그 불안한 눈빛이 뒤통수에 박혀 있는 것 같았다. 원래 저런 애가 아닌데. 평소엔 무슨 일이 있어도 담담하게 넘기는 성격인데, 오늘따라 왜 저렇게 걱정을 하는 걸까. 혹시 뭔가 알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 알 수가 없잖아. 설아가 나보다 더 많이 아는 것도 아니고.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발걸음은 이미 학원으로 향하는 버스 정류장을 향하고 있었다. 버스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니 거리는 평소와 다름없었다. 사람들은 출근하고, 학생들은 등교하고, 세상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 게이트가 있고 괴물이 있는 세상인데도 이렇게 태연하게 흘러가는 게 신기했다. 아니, 어쩌면 그게 정상인 걸지도.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니까. 학원 강당은 넓었다. 신입생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고 다들 표정이 제각각이었다. 긴장한 얼굴, 들뜬 얼굴, 무표정한 얼굴. 나는 아마 그 중에서 가장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거다. 왜냐면 나는 이 학원의 진짜 위험성을 알고 있었으니까. 주변을 슬쩍 둘러봤다. 다들 젊었다. 나이대가 비슷해 보이는 애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소곤거리고 있었다. 저 중 몇 명이나 살아서 졸업할까.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좀 이상한가 싶었지만, 크툴루 신화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 정도 불안은 당연한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연단 위에 선 이가 마이크를 잡았다. "국립탐사자양성학원에 입학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박수 소리. 나는 손을 마주치는 시늉만 했다. "우리 학원은 게이트 탐사 인재를 양성하는 국가 유일의 기관입니다. 여러분은 오늘부터..." 말이 끝나기 전이었다. 쿵! 강당 바닥이 흔들렸다. 뭐지?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옆에 앉은 애가 나한테 눈짓으로 뭐냐고 묻는 듯했지만 나도 모르는 걸 어떻게 대답하겠나. 그때 강당 중앙에 검은 균열이 생겼다. 균열은 점점 커졌다. 마치 검은 잉크가 물에 퍼지듯이. "저, 저게 뭐야?" 누군가 소리쳤다. 나는 알고 있었다. 저건 게이트다. 근데 왜 강당 한복판에서 열리는 거지? 예정에 없던 건가? 아니면 예정된 거였나? 머릿속으로 온갖 가능성이 스쳐 지나갔다. 학원 측에서 신입생 테스트용으로 준비한 이벤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진짜로 통제 밖의 사고일 수도 있었다. 연단 위의 강사도 당황한 표정을 짓는 걸 보면 후자에 가까운 것 같았다. 생각할 틈도 없었다. 검은 균열이 순식간에 강당 전체를 집어삼켰다. 빛도 소리도 없이, 그냥 삼켜졌다.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눈을 떴을 때 나는 낯선 곳에 있었다. 붉은 하늘, 검은 흙, 그리고 저 멀리서 들려오는 낮은 울음소리. 으. 여기가 어디지? 주변을 둘러봤다. 같이 있던 신입생들은 보이지 않았다. 혼자다. 완전히 혼자였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이거 뭐야, 진짜 강제소환이잖아. 입학식날 예고도 없이 게이트에 던져 넣는 게 정상적인 학교냐? 아니, 정상적인 학교라면 이런 일이 있으면 안 되는 거잖아. 땅에 무릎을 짚고 일어나려고 했는데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갔다. 흙이라고 하기엔 너무 미끈거리는 감촉이었다. 만지면 안 될 것 같은 촉감. 손바닥에 묻은 그 검은 것을 옷에 문질러 닦아내면서도 속으로는 이미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었다. 이대로 여기서 죽는 건가. 설아한테 저녁에 본다고 약속했는데. 그 생각을 하니 갑자기 눈앞이 아득해졌다. 정신 차려야 한다. 지금은 감상에 빠질 때가 아니다. 주머니를 뒤졌다. 다행히 그건 있었다. 마력총. 국가에서 나한테 지급한 유일한 물건. 무한 마력을 가진 나를 위한 맞춤 무기라는데, 사용법이 좀 이상했다. 위력이 1 아니면 100만. 중간이 없다. 조절이 안 된다. 쏠 때마다 랜덤이다. 미친 물건이지만 지금은 이거밖에 없다. 처음 이 총을 받았을 때 담당 교관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건 자네 마력 그릇에 맞춰서 특수 제작된 물건이야. 다른 사람은 못 써. 근데 조절기가 좀... 말썽이라서." 말썽이라니. 그때는 그냥 웃어넘겼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 웃음이 뭐였는지 모르겠다. 울음소리가 가까워졌다. 촉수 같은 게 흙 속에서 꿈틀거리며 올라왔다. 저거, 저거 딥원의 유생체 아닌가? 크툴루 신화에서 봤던 그 모습이었다. 낮은 등급이라 방심할 순 있지만, 문제는 저게 한 마리가 아니라는 거다. 하나, 둘, 셋. 계속 늘어났다.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총을 쥔 손도 떨렸다. 정말이지, TRPG로 즐길 때는 이런 순간이 재밌기만 했는데. 주사위를 굴리고, 실패해도 다시 캐릭터 시트를 만들면 되니까. 근데 여긴 리롤(reroll)이 없다. 죽으면 그냥 끝이다. 쏴야 하나. 쏘면 1이 나올까, 100만이 나올까. 1이 나오면 그냥 죽는 거고, 100만이 나오면 여기 이 지형 자체가 사라질 텐데, 그것도 나 포함해서. 어느 쪽이든 위험하다. 어느 쪽이든? 그럼 다른 방법은? 도망칠까. 근데 어디로. 이 붉은 하늘 아래 어디가 안전한지도 모르는데. 딥원 유생체는 물이 있는 곳을 좋아한다고 알고 있는데, 여기 물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있다 해도 그쪽으로 도망치는 게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놈들이 달려들었다. 나는 총구를 겨눴다. 손가락이 방아쇠에 걸렸다. 쏴야 한다. 지금 쏘지 않으면 죽는다. 하지만 이 총은...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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