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발톱이 내려오는 속도는 느렸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시간이 늘어지는 게 아니라, 내 머릿속이 그 장면을 붙잡고 놓지 않았던 것 같다. 마치 누가 재생 속도를 슬로우모션으로 걸어버린 것처럼, 발톱 끝에 묻은 핏자국까지 하나하나 셀 수 있을 것 같았다.
비린내가 먼저 왔다.
살이 아니라 쇠 냄새, 아니 그것보다 더 원초적인, 뭔가 썩기 시작한 것 같은 냄새였다. 코가 없는데도 그 냄새가 느껴졌다는 게 이상했지만, 지금 이상한 게 그거 하나뿐이겠나 싶었다.
아이가 눈을 감았다.
여섯 살, 아니면 일곱 살쯤 됐을까. 노란 우비를 입고 있었다. 그 순간에도 나는 그런 걸 세고 있었다. 죽어서도 이런 쓸데없는 걸 관찰하는 버릇은 못 버리는구나, 싶어서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어머니가 소리를 질렀다. 목소리가 아니라 거의 짐승 같은 소리였다.
그 소리에 내 안의 뭔가가 같이 찢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몸도 없는데, 심장도 없는데, 그 비명이 몸을 관통하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발톱이 아이의 몸 바로 앞에서 멈췄다.
뭔가 끼어들었다. 순찰차 위에 서 있던 남자였다. 헐렁한 근무복을 입은, 배가 좀 나온 아저씨였다. 손에 소화기를 든 채로, 짐승의 다리를 향해 그걸 던졌다.
퍽―.
소화기가 흑수리의 다리에 맞았다. 짐승이 잠깐 균형을 잃었다. 거대한 몸이 한쪽으로 기우뚱하는 게, 마치 슬로모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그 틈에 어머니가 아이를 끌어냈다.
짧았다. 몇 초. 그 몇 초가 아이를 살렸다.
나는 그걸 보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만 온몸으로 느꼈다.
죽어서 유령이 됐는데, 처음 한 일이 아무것도 못 하고 지켜본 것.
지각만 하던 고등학생이 죽어서도 지각한다는 게, 웃기지도 않았다.
***
분노가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게 가슴 어디쯤에서부터, 손끝이 아니라 몸의 중심에서부터 뻐근하게 차올랐다는 것만 알겠다. 심장이 없는데도 심장이 뛰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뭔가가 안에서 부글부글 끓는데, 그걸 토해낼 방법이 없었다.
"죽여버릴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나는 만질 수도 없는 몸이다. 유리창도 통과하고, 벽도 통과하고, 사람 몸도 그냥 스쳐 지나가는, 있으나 없는 존재였다. 그런 내가 뭘 죽인다는 건가. 스스로 생각해도 코미디였다.
그런데도 그 말이 입에서 나왔다. 진심으로.
목소리가 떨렸다. 화가 나서 떨리는 건지, 무서워서 떨리는 건지 구분이 안 됐다. 아마 둘 다였을 거다.
소화기를 던진 남자가 다음 목표가 됐다. 흑수리가 방향을 돌렸다. 목이 먼저 돌아갔다. 그 검은 눈이, 마치 사냥감을 재는 눈빛으로 남자를 훑었다.
남자는 도망치려다 발이 걸려 넘어졌다.
쿵.
몸이 아스팔트에 부딪혔다. 남자의 입에서 짐승 같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다리가 안 움직이는 건지, 아니면 그냥 겁에 질려서 몸이 굳은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 사이에 뛰어들었다.
몸으로 가로막으려 했다. 당연히 통과됐다. 아무 의미 없었다.
내 형체가 짐승의 발톱 사이를 그냥 흐르듯 지나갔다. 마치 안개 속에 팔을 넣는 것 같았다. 저항이 없었다. 아무것도 붙잡을 게 없었다.
"제발, 제발 좀―"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도 몰랐다. 신한테? 짐승한테? 아니면 나 자신한테?
짐승의 눈이 나를, 아니 나를 지나쳐 남자를 향했다.
그 순간이었다.
***
치직.
시야에 다시 그 사각형 창이 떠올랐다. 이번엔 위치가 달랐다. 화면 정중앙, 크게. 마치 누가 볼륨을 키운 것처럼, 존재감이 확연했다.
[신규 스킬 습득: POSSESSION(빙의)]
빙의.
한자로 읽으면 어떤 뜻인지는 알았다. 그런데 눈앞의 저 검은 짐승 안에 들어간다는 뜻이라면, 그건 미친 소리였다.
게임에서 보던 스킬창이랑 똑같이 생긴 게 눈앞에 뜨는 것도 어이없었는데, 이번엔 아예 실행 버튼을 누른 것처럼 몸이 반응했다. 아니, 정정한다. 몸은 없었다. 그런데 뭔가가, 나라고 부를 수 있는 그 형체 전체가 반응했다.
그런데도 손이 먼저 반응했다. 아니, 손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나라는 형체 전체가, 그 짐승 쪽으로 확 끌려갔다.
마치 진공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는 먼지처럼. 아니, 그것보다는 더 격렬했다. 뭔가 거대한 손이 뒷덜미를 잡아채는 느낌, 그런데 그게 뒷덜미가 아니라 존재 자체를 잡아채는 느낌.
"어어―"
뭔가 잘못 눌린 리모컨 버튼처럼, 아무 준비도 없이 내 시야가 바뀌었다.
순간적으로 짐승의 눈을 통해 광장이 보였다. 낮고, 붉게 물든 세상. 시야각이 인간의 것과 완전히 달랐다. 좌우로 훨씬 넓게 펼쳐졌고, 색이 이상하게 뒤틀려 보였다. 붉은색이 유난히 짙었다. 마치 필터를 낀 것처럼.
그 안에서 뭔가가 느껴졌다. 배고픔. 아니, 배고픔이라기보다는 갈증 같은 것. 뭔가를 부수고 싶다는, 뭔가를 찢고 싶다는 원초적인 충동이 내 것이 아닌데도 내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곧바로 튕겨 나왔다. 마치 접속이 끊긴 것처럼.
퍽―.
뭔가 튀어나가는 감각. 방금 봤던 붉은 세상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다시 원래의 흐릿한 유령 시야로 돌아왔다.
다시 원래 위치. 다시 유령의 몸.
숨이 턱까지 차오른 것 같았다. 실제로 숨을 쉬는 몸도 아닌데.
***
"이게 뭐야, 이게 뭔데."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손, 아니 손이라고 부르는 그 형체가 떨리고 있었다. 방금 뭘 본 건지 정리가 안 됐다. 짐승의 눈으로 세상을 봤다는 것도 이상했고, 그게 몇 초도 안 돼서 끊겼다는 것도 이상했다.
남자는 여전히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흑수리는, 잠깐이었지만 확실히 움직임이 흔들렸다. 마치 뭔가에 얻어맞은 것처럼, 고개를 크게 한 번 흔들었다.
내가 그 안에 들어갔다 나온 그 짧은 순간, 저 짐승도 뭔가를 느꼈던 걸까.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다시 가까워지고 있었다. 경찰 지원 병력이 오는 건지, 다른 순찰차가 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광장은 여전히 아수라장이었다. 비명 소리, 유리 깨지는 소리, 누군가 뛰는 발소리가 뒤섞여서 하나의 소음 덩어리처럼 들렸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이 모든 게 사고가 아니라는 걸 느꼈다.
누군가 이걸 설계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스킬창이 뜨는 타이밍. 위치. 크기. 그게 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정교했다. 마치 누군가 내 반응을 보고, 필요한 순간에 딱 맞춰서 그걸 던져준 것 같았다.
"장난하냐, 지금."
혼잣말이 나왔다. 대답해줄 사람은 당연히 없었다.
흑수리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이번엔 나를 정확히 보는 것 같았다. 아니, 그럴 리 없다. 나는 유령이다. 짐승 눈에 유령이 보일 리가 없다.
그런데 그 검은 눈동자가, 분명히 내 쪽을 향하고 있었다.
목덜미에 서늘한 감각이 스쳤다. 목이 없는데도, 그 감각만은 선명했다.
짐승의 부리가 벌어졌다. 그 안에서 나온 소리는 울음이라기보다는 신음, 아니 그것도 아니고 뭔가 기계음 같은 잡음이 섞인 이상한 소리였다.
그리고 그 소리를 신호로, 짐승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 목표가 어디인지, 나는 아직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