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학교가 끝난 뒤, 서준은 곧바로 뉴스에서 본 균열 관측 지점으로 향했다.
가방도 집에 던져놓지 않았다. 교복 차림 그대로였다.
도심 외곽, 오래된 공사장 부지였다.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노란 테이프가 둘러져 있었다. 테이프 옆에는 경고문도 하나 붙어 있었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붙여놓기만 하고 아무도 지키는 사람은 없었다.
이런 데는 항상 관리가 허술하지.
전생에서도 그랬다. 국가에서 게이트를 관리하겠다고 나선 건 항상 뒷북이었다. 초기 균열 따위엔 인력을 붙일 여유가 없었다.
서준은 테이프 아래로 몸을 숙였다. 도현에게는 학원 간다고 말해두고 나온 참이었다. 이번엔 굳이 데려올 이유가 없었다.
이건 나 혼자 확인해야 해.
만약 몬스터가 튀어나오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없었다. 초기 균열의 생태는 몸으로 외우고 있었다. 대신 다른 걱정이 있었다.
도현이 알면 또 따라오겠다고 난리 치겠지.
그 얼굴을 상상하니 피식 웃음이 났다.
공사장 안쪽, 방치된 철골 구조물 사이로 걸어갔다. 발밑에서 자갈 밟히는 소리가 났다.
사각, 사각.
바람에 날린 시멘트 가루가 코끝을 스쳤다. 감정의 눈이 자연스럽게 작동했다. 사람의 감정만 읽던 그 능력이, 언제부턴가 마소의 흔적까지 감지하기 시작했다.
저기다.
녹슨 컨테이너 뒤편, 공중에 손바닥만 한 균열이 떠 있었다. 검은 유리처럼 표면이 일그러진 형태였다. 어제 하늘에서 본 것과 결이 같았다.
작지만 진짜네.
서준은 천천히 다가섰다. 균열 주변 공기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마치 뜨거운 아스팔트 위 열기처럼.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전생의 기억에 따르면 이런 초기 균열은 아직 몬스터를 뱉어내지 못한다. 균열이 성장하기 전 단계, 세상은 이걸 '미분화 게이트'라고 불렀다. 대신 짧은 시간 동안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했다.
지금 들어가면 남들보다 최소 며칠은 앞서는 거야.
며칠이 아니라 어쩌면 몇 주일 수도 있었다. 이런 초기 균열의 존재를 알아채는 사람 자체가 드물었다.
서준은 잠시 망설였다. 몸이 약했다. 조금만 무리해도 숨이 가빠오는 몸이었다.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숨이 가빠지면 그냥 죽는 거 아냐?
전생의 몸이 아니었다. 여기서 죽으면 다시 살아날 방법은 없었다.
그래도.
지금 아니면 늦어.
서준은 균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끝이 균열 표면에 닿자마자 서늘한 감각이 팔을 타고 올라왔다. 마치 얼음물에 손을 담근 것 같았다.
촤악.
주변 공기가 순간 일그러졌다.
[미확인 공간에 진입합니다.]
눈앞이 하얗게 번졌다. 서준은 눈을 질끈 감았다.
바람 소리도 없었다. 발밑이 사라지는 느낌만 잠시 이어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발밑은 공사장 바닥이 아니었다. 회백색의 안개가 낀 평원이었다. 하늘도 없고 바닥도 뿌옜다. 발밑에서 이상한 진동이 느껴졌다.
콩, 콩, 콩.
일정한 박자로 울리는 진동이었다. 심장 소리 같기도 했다.
여기가 진짜로 있었네.
서준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전생에서 수백 번은 봤던 풍경이었다. 초기 게이트 내부 특유의 미분화 공간.
몸이 이렇게 약해도 여긴 그대로 들어와지네.
새삼스러운 확인이었다. 이 몸은 약해도, 세계의 법칙은 전생과 똑같이 작동하고 있었다.
[탐사자 인증 완료.]
[최초 진입 보너스가 부여됩니다.]
알림음이 낮게 울렸다.
최초 진입 보너스라니.
서준의 눈이 반짝였다. 전생의 기억으로도 이런 시스템은 처음 보는 형태였다. 전생에서는 최초 진입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다. 게이트는 그냥 게이트였고, 보너스 따위는 붙지 않았다.
뭔가 이 세계는, 전생과 완전히 같지는 않다는 뜻이었다.
다르다는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는데.
일단 나쁠 것은 없어 보였다. 보너스라는 말 자체가 나쁠 리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서준의 눈에 낮은 제단 같은 구조물이 들어왔다. 안개 속에서도 유독 또렷하게 보이는 형태였다. 그 위에 반투명한 상자 하나가 떠 있었다.
뭐야, 이거.
가까이 다가가자 상자 표면에 문양 같은 것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서준은 그 앞에 섰다.
상자에 손을 대자 즉시 문구가 떠올랐다.
[직업 각성 상자: 개봉 시 무작위 직업이 부여됩니다.]
서준의 손이 순간 멈췄다.
무작위라고.
전생에서는 연금술사였다. 대연금술사, 세계 최고의 지위였다. 만드는 것마다 등급이 붙고, 붙는 등급마다 값이 매겨지던 그 시절.
그 지식과 경험이 몸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문제는 지금 이 몸에 그 지식을 써먹을 직업이 붙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연금술사가 나오면 제일 편하겠지만.
전생과 이 세계가 완전히 같지 않다는 걸 방금 확인했다. 직업 체계도 다를 수 있었다.
무작위 뽑기라니, 이렇게 중요한 걸.
서준은 입술을 깨물었다. 여기서 망설이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다른 누군가가 먼저 이 공간을 발견하기 전에 끝내야 했다.
시간 끌어봐야 좋을 거 없어.
어차피 지식은 몸 안에 있으니까.
직업이 뭐가 나오든, 지식을 못 쓰게 만들 수는 없을 거라는 계산이 있었다. 연금술사가 아니어도, 그 지식을 활용할 방법은 어떻게든 찾아낼 자신이 있었다.
전생 최고의 연금술사였던 머리가 그 정도 못 할까.
서준은 손을 뻗어 상자를 열었다.
번쩍.
순간 강렬한 빛이 시야를 뒤덮었다.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였다. 서준은 팔로 얼굴을 가렸다.
빛 속에서 무언가 형체를 갖추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몸 안쪽 어딘가에 뭔가 새겨지는 감각이었다.
[직업이 결정되었습니다.]
빛이 사그라들자 문구 하나가 눈앞에 떠올랐다.
서준의 시선이 그 문구에 고정되었다.
서준의 얼굴이 그대로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