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다음 날 방과 후, 검도부 부실은 평소보다 부산스러웠다.
학교 대회를 앞둔 시범 대결 때문이었다.
3학년 주장 박준혁과 2학년 대표 강도현의 매치.
부원들이 벌써부터 반원으로 둘러서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어차피 형식적인 거지."
도현이 죽도를 손에 쥐며 중얼거렸다.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서준은 부실 한쪽 벽에 등을 대고 앉아 그 모습을 지켜봤다.
어제 겪은 일 때문에 온몸이 여전히 뻐근했다.
허리를 조금만 틀어도 근육 어딘가에서 뻐근한 신호가 올라왔다.
겉으로는 아무 표시도 내지 않았다.
죽도 부딪는 소리, 발 구르는 소리, 부원들의 잡담.
부실 안의 공기가 익숙하고도 낯설게 느껴졌다.
약사라는 직업, 뒤에서 뭔가 도움이 될지 시험해봐야 하는데.
서준의 머릿속엔 어제 상자에서 본 문구가 계속 맴돌고 있었다.
전생의 지식과 결합하면 등급이 오른다는 그 조건.
문구는 짧았지만 의미는 무거웠다.
전생의 지식.
등급.
두 단어가 계속 머릿속에서 부딪혔다.
일단 눈으로 도현부터 보자.
서준의 감정의 눈이 도현의 얼굴을 향했다.
평소와 다를 게 없는 결이었다.
무료함과 긴장이 반쯤 섞인 흔한 표정.
특별할 게 없었다.
아직 아무것도 안 일어났네.
서준은 다리를 고쳐 앉으며 시선을 준혁 쪽으로 옮겼다.
준혁의 표정은 오히려 평온했다. 이미 이긴 싸움이라는 확신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당연했다.
지역 최강자라는 타이틀은 아무나 얻는 게 아니었다.
죽도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부실을 채웠다.
딱, 딱, 딱.
준혁의 움직임은 정확했다.
발끝의 각도, 손목의 회전, 모든 게 교과서적이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부원들 사이에서 낮은 감탄이 새어 나왔다.
반면 도현의 움직임은 어설퍼 보였다.
발이 삐뚤빼뚤했고 자세도 흐트러져 있었다.
죽도를 쥔 손도 미묘하게 떨렸다.
저러다 지겠는데.
서준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준혁이 앞으로 한 발 나섰다.
도현이 뒤로 반 발 물러섰다.
거리가 좁혀지고 있었다.
부원들의 시선이 두 사람의 발끝에 집중됐다.
순간 준혁의 죽도가 도현의 어깨를 향해 날카롭게 떨어졌다.
피할 틈이 없어 보였다.
부실 안의 모두가 숨을 멈췄다.
그런데 그 순간, 도현의 몸이 이상하게 움직였다.
반응 속도가 눈으로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마치 몸이 먼저 알고 반응한 것처럼.
서준의 눈이 커졌다.
뭐야, 방금 그건.
도현의 죽도가 준혁의 손목을 정확히 쳐냈다.
준혁의 죽도가 허공으로 튕겨 나갔다.
탕.
죽도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부실 안이 순간 조용해졌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부원들의 시선이 바닥에 떨어진 죽도와 도현을 번갈아 오갔다.
"뭐, 뭐야."
준혁이 자기 손목을 내려다보며 얼굴을 굳혔다.
붉은 자국이 손목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어."
도현도 놀란 얼굴이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스스로도 모르는 표정.
"너 지금 그거 뭐 한 거야."
준혁이 낮게 물었다. 목소리에 짜증과 놀람이 반쯤 섞여 있었다.
"저도 모르겠는데요."
도현이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정말로 몰라 보였다.
손을 들어 자기 눈앞에서 흔들어보기까지 했다.
서준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심장이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발끝부터 손끝까지 전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이거다.
방금 도현의 움직임에는, 배운 검도의 형태가 전혀 없었다.
완전히 다른 무언가였다.
서준의 눈에 익숙한 결이었다.
전생에서 몇 번이고 봤던, 검제라 불리던 그 검격의 그림자였다.
틀릴 수가 없었다.
같은 결, 같은 무게, 같은 속도.
지금 나온 거야, 벌써.
서준의 감정의 눈이 도현의 얼굴을 다시 훑었다.
결이 달라져 있었다.
아까까지 흔한 무료함이었던 표정 위에, 옅고 낯선 파문이 일고 있었다.
마치 잠에서 반쯤 깨어난 것 같은 결이었다.
각성이 시작됐다.
서준의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계산이 아니라 순수한 기대였다.
생각보다 빠르네, 도현아.
부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도현에게 쏠렸다.
몇몇은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못했다.
준혁은 자기 손목을 만지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도현을 바라봤다.
"너 언제 이렇게 실력이 늘었어."
준혁이 낮게 물었다.
목소리에 자존심이 상한 기색이 그대로 묻어났다.
"저도 진짜 모르겠어요."
도현이 손에 든 죽도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방금 뭐가 좀 이상했어."
도현이 자신의 손을 폈다 쥐었다 반복했다.
마치 처음 보는 손인 것처럼 낯설어하는 표정.
부원 중 하나가 다가와 도현의 어깨를 툭 쳤다.
"야, 너 방금 완전 다른 사람 같았어."
도현은 대답 없이 그냥 웃었다. 어색하고 얼떨떨한 웃음이었다.
서준은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다음 계획이 빠르게 짜여지고 있었다.
이제 서서히 시작이야.
부실을 나서면서도 서준의 시선은 계속 도현의 뒷모습에 머물러 있었다.
걸음걸이가 조금 달라진 것 같았다.
착각인지 아닌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날 밤, 도현은 서준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좀 이상한 꿈 꿨어. 검을 든 채로 뭔가 거대한 걸 상대하는 꿈. 근데 그게 꼭 진짜 있었던 일처럼 생생했어.
서준은 휴대폰 화면을 한참 바라봤다.
방 안이 조용했다.
시계 소리만 규칙적으로 울렸다.
드디어.
어떤 꿈이었는데.
서준이 짧게 답장을 보냈다.
손끝이 화면 위에서 잠시 머뭇거렸다가 전송 버튼을 눌렀다.
답장은 곧바로 오지 않았다.
일 분, 이 분, 오 분.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서준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가 다시 집어 들었다.
한참 뒤에 도착한 문자에는, 도현이 평소와 다르게 진지한 문장이 담겨 있었다.
근데 그 꿈에, 네가 있었어.
서준의 손끝이 순간 멈췄다.
화면 위에서 커서가 깜박이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순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방금까지 확신에 차 있던 계산이 순간 흐트러졌다.
내가?
서준은 화면을 다시 읽었다.
같은 문장인데 볼수록 등에서 서늘한 기운이 올라왔다.
우연일까.
우연이 아니라면.
방 안의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