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3만 살 용, 던전을 접수하다

4화

찰박. 지하수가 발밑에서 튀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차가운 물이 신발 속으로 스며들었다. 우리는 좁은 수로를 따라 걷고 있었다. 천장은 낮았고, 벽은 축축했고, 어딘가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똑, 똑, 일정한 박자로 울렸다. 부상은 대부분 나았지만, 대원들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통신은 여전히 불통이었고, 이 층을 벗어날 상승 통로도 아직 찾지 못했다. 앞장선 대원의 손전등 불빛이 좁은 통로 벽을 훑을 때마다, 물기 어린 벽면이 번쩍번쩍 빛을 반사했다. "이봐 곰탱이, 그 표정 좀 풀어. 죽은 사람도 살렸는데 왜 그리 심각해." 나는 옆에서 걷는 한도현을 놀렸다. "...당신이 준 힘, 계속 안정적으로 작동합니까?" 그가 물었다. 목소리에는 여전히 날이 서 있었다. "그럴걸."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 순간 말하지 않은 게 있었다. 김민재 하사의 치유 스킬을, 나는 딱 그 한 번만 얇게 밀어 넣었을 뿐이다. 아주 조심스럽게, 그녀의 몸에 부담이 가지 않을 만큼만. 그런데 지금 그녀의 마력량 자체가 눈에 띄게 늘어나 있었다. 원래 한계보다 세 배쯤. '이건 내가 준 게 아닌데.' 숫자가 맞지 않았다. 내가 밀어 넣은 힘은 그 정도까지 부풀어 오를 성질이 아니었다. 나는 걸으면서 감각을 그녀에게 슬쩍 뻗었다. 확인하고 싶었다. 그녀의 마력 흐름 속에서, 낯선 문양이 하나 걸려 있었다. 실처럼 얇고, 뿌리처럼 깊었다. 내 가호의 흔적이 아니었다. 누군가 다른 손이 덧그린 자국이었다. '누가... 여기에 손을 댔지?'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삼만 년 동안 이 던전 안에서 내가 아닌 다른 힘의 흔적을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곳은 내 영역이었다. 내가 만들고, 내가 지켜온 공간. 그런데 그 안에 낯선 손이 들어와 있었다. "청은룡?" 한도현이 내 표정을 살폈다. 그 짧은 순간에도 그는 내 얼굴에서 뭔가를 읽어낸 모양이었다. "왜 그런 얼굴을 하지." "...아니다." 나는 얼른 표정을 지웠다. '지금은 아니야. 대원들을 흔들 때가 아니다.' "김민재." 내가 불렀다. "네?" 그녀가 앞서 걷던 걸음을 멈추고 돌아봤다. 손전등 불빛 아래로 그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여전히 창백했지만, 눈빛만은 또렷했다. "몸에 이상한 느낌 없어? 마력이 자꾸 넘치거나, 뭔가 낯선 감각이 스치거나." 그녀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아까부터 손끝이 좀 저려요. 그냥 부상 후유증인가 했는데." 그녀가 자기 손가락을 접었다 펴며 말했다. "저리는 게 이상한 방향으로 저려요. 마치... 누가 손끝을 잡아당기는 느낌이랄까." '우연이 아니다.' 나는 확신했다. 이 던전에, 나 말고 다른 무언가가 손을 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손은 지금도 그녀의 몸 안에서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거 나중에 다시 확인하자." 나는 일단 넘겼다. 지금 당장 대원들을 불안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불확실성을 안겨줄 이유는 없었다.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한도현이 낮게 중얼거렸다. 나는 못 들은 척 걸음을 옮겼다. 한동안 침묵 속에 걷던 중, 박서준 상병이라는 통신병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신호! 신호가 잡힙니다!" 그가 든 기기에서 지지직 소리가 났다. 짧은 잡음 사이로 사람의 목소리가 섞여 들렸다. 대원들이 일제히 멈춰 서서 그 작은 기기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탐사대... 응답..." 한도현이 무전기를 낚아챘다.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오지탐사대대, 응답한다! 여기 청조1소대!" 그의 목소리가 좁은 수로 안에서 크게 울렸다. "...치...직... 상승로... 3층 갱도... 확보..." 신호는 다시 끊겼다. 지지직거리던 소음마저 사라지고 정적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 짧은 문장만으로도 대원들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누군가는 낮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또 누군가는 옆 사람의 어깨를 두드렸다. "3층 갱도 쪽에 상승로가 있다는 겁니까?" 김민재가 물었다. 목소리에 처음으로 생기가 돌았다. "그런 것 같다." 한도현이 지도를 꺼내 확인했다. 손전등 불빛 아래 낡은 종이 지도가 펼쳐졌다. "여기서 두 시간 거리다." "곰탱이, 신났나 보네." 나는 픽 웃었다. "...신났다기보다는, 안심이 된다." 한도현이 담담하게 답했다. 하지만 그의 눈가에는 분명 옅은 웃음기가 걸려 있었다. "두 시간이면 금방이네요." 누군가 중얼거렸다. "금방이라니. 여기서 두 시간이 밖에서 두 시간 같냐." 다른 대원이 투덜거렸다. 걷는 중에 대원 하나가 배낭에서 컵라면을 꺼내 흔들었다. "중령님, 물만 있으면 이거 하나 나눠 먹을까요?" "지금 그런 걸 챙길 정신이 있나." 한도현이 눈을 찌푸렸다. "살아야 먹죠." 대원이 뻔뻔하게 웃었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먹습니까. 죽고 나면 못 먹어요." 나는 그 광경을 보며 낮게 웃었다. '인간들이란.' 그 와중에도 웃을 구실을 찾아내는 게 인간이었다. 삼만 년 동안 던전 안에서 마주한 수많은 생명체 중에서, 이런 식으로 위기 속에서도 여유를 찾는 존재는 흔치 않았다. 김민재가 컵라면을 반으로 나눠 나에게도 건넸다. "용님도 드실 수 있어요?" "내가 이 몸으로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인간형 화신의 손을 들어 보였다. "그럼 드셔야죠. 사람 형태잖아요." 그녀는 이미 확신하는 얼굴로 국물이 담긴 뚜껑을 내 손에 쥐여주고 있었다. 거부할 틈도 없었다. 나는 얼떨결에 컵라면을 받아 국물을 조금 마셨다. '맛있군.' 삼만 년 만에 처음 느낀 맛이었다. 짜고 뜨겁고, 어딘가 자극적인 맛이 혀끝을 훑고 지나갔다. 인간의 감각으로 느끼는 맛이란 이런 것이었나. 나는 잠시 그 낯선 감각에 빠져 있었다. "맛있어요?" 김민재가 웃으며 물었다. "...나쁘지 않군." 나는 최대한 무심하게 대답했지만, 다시 국물을 한 번 더 마신 건 사실이었다. "곰탱이도 한 입 줘?" 나는 한도현에게 컵을 내밀었다. "...됐다." 그는 딱 잘라 거절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이 잠깐 컵라면에 머문 걸 나는 놓치지 않았다. 짧은 휴식 뒤,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수로가 점점 넓어지며 큰 동굴로 이어졌다. 발밑의 물살이 잦아들고, 대신 발소리가 텅텅 울리는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동굴 벽면에는 이상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내가 아는 던전 문양이 아니었다. 나는 이 던전의 모든 구조를, 모든 통로를, 모든 문양을 알고 있었다. 삼만 년 동안 이곳을 만들고 다듬어 온 건 나였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문양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이건...' 문양은 뒤엉킨 실 같기도 하고, 뿌리처럼 갈라진 선 같기도 했다. 벽면을 가득 채운 그 문양들이 손전등 불빛을 받아 희미하게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그 문양들은, 아까 김민재의 마력 흐름에서 봤던 낯선 자국과 똑같은 모양이었다.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인간의 몸을 빌린 이후로 이 느낌은 여전히 낯설었다. 뛰는 심장, 서늘해지는 등줄기, 손끝에 스미는 긴장. 한도현이 내 표정을 보고 물었다. "뭔가 잘못됐습니까." 그의 목소리에는 이미 경계가 섞여 있었다. 오랜 훈련으로 다져진 감각이 내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은 것이다. 나는 대답 대신 벽면으로 손을 뻗었다. 손끝이 문양에 닿는 순간, 차가운 감각이 손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마치 벽 전체가 살아 있는 것처럼, 문양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이 느낌.' 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한 떨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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