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백치인 척했더니 신이라니

2화

다음 날 아침에도 가슴속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더 선명해진 것 같았다. 나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그 감각의 패턴을 다시 분석했다. (주기는 대략 여섯 시간. 강도는 점차 증가하는 추세.) 어제보다 데이터가 하나 더 쌓였다. 새벽에 한 번, 정오 무렵에 한 번, 그리고 지금. 세 번의 파동을 겹쳐보니 강도의 증가폭이 균일하지 않았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사이의 간격보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사이의 간격이 미세하게 짧아져 있었다. (주기가 줄어들고 있어. 이건... 가속이다.) 단순한 신체 반응이라면 이렇게 규칙적일 리 없었다.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손끝으로 가슴 위를 가만히 눌렀다. 뜨거운 실 같은 그 감각은 손끝의 압력에도 반응하지 않고 제 흐름을 유지했다. (외부 자극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즉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발생하는 현상.) 데이터가 쌓일수록 확신이 짙어졌다. 이건 단순한 착각이 아니었다. 서연이 아침 식사를 가져왔을 때, 나는 그녀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알아챘다. 쟁반을 내려놓는 손목의 각도가 평소보다 아주 조금 더 굽어 있었다. (뭔가 있군.) 서연은 평소처럼 밝게 웃으며 죽을 내려놓았지만, 눈빛에 옅은 그늘이 스쳤다. 그 그늘은 아주 짧게, 마치 창문에 비친 새의 그림자처럼 스치듯 지나갔다. "오늘은 날씨가 흐려요. 밖에 나가시면 우산 챙기세요." 서연의 목소리는 여전히 다정했다. 하지만 문장을 끝맺는 순간, 그녀의 시선이 아주 잠깐 창밖으로 향했다가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연이 방을 나가자,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창가로 걸어갔다. 하늘엔 옅은 회색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고, 정원의 나무들은 어제와 다름없이 서 있었다. 바람이 불자 나뭇잎들이 일제히 한쪽으로 몸을 눕혔다. 그러나 그 나무들 사이, 담벼락 너머의 그림자가 조금 길어져 있었다. (어제보다 짙어졌어.) 그림자의 경계선을 눈으로 따라가 봤지만, 그 끝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알 수 없었다. 마치 그림자 자체가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미세하게 흔들리다가 다시 고정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나는 오랫동안 그 자리를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오후, 박기수가 다시 나를 찾았다. 이번엔 산책이 아니라 서고로 안내했다. "후작님께서 도련님께 책을 좀 읽어드리라 하셨습니다." 복도를 걷는 동안 박기수의 발걸음 소리가 낮고 규칙적으로 울렸다. 서고는 저택 서쪽 끝에 있었고, 문을 열자 오래된 책 냄새가 방 안 가득 배어 있었다. 먼지 냄새와 종이 냄새가 섞인, 시간이 오래 고여 있는 냄새였다. 책장은 천장까지 닿을 듯 높았고, 그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이 가늘게 줄무늬를 그리고 있었다. 박기수는 익숙한 손짓으로 낡은 책 한 권을 뽑아 펼쳤다. "천월경의 신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도련님이 좋아하실 것 같아서요." 나는 멍한 표정을 유지하며 귀를 기울였다. 박기수의 낮고 다정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태초에 이 세계에는 규칙에서 자연발생한 신령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중 가장 강력한 존재가 혈왕과 월신 영야왕이었지요." 나는 속으로 그 이름들을 되새겼다. (혈왕... 혈신. 그리고 월신 영야왕.) 박기수는 책장을 넘기며 말을 이었다. "혈왕은 대지 아래 흐르는 피의 근원을 다스렸고, 영야왕은 밤하늘의 달빛을 다스렸다고 전해집니다. 두 신은 성정이 정반대였다더군요. 혈왕은 격렬하고 파괴적이었고, 영야왕은 고요하고 관조적이었다고 합니다." 책 속의 삽화는 세월에 색이 바래 붉은빛과 푸른빛이 흐릿하게 섞여 있었다. "두 신은 오랜 옛날 신전을 벌였고, 혈왕이 패배했다고 전해집니다. 그 뒤로 혈왕의 혈맥을 이은 자들은 대부분 비참한 말년을 보냈다고 하지요." 박기수는 책을 덮으며 씁쓸하게 웃었다. "믿기 힘든 옛이야기입니다만, 저택 안에도 그런 이야기를 진지하게 믿는 분들이 계십니다." "...왜 그런 이야기를 믿는 거죠?" 내가 처음으로 반응을 보이자 박기수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글쎄요. 오래된 가문일수록 그런 전승에 무게를 두는 법이지요. 특히 혈족 안에서 이따금 이상한 징후가 나타난다는 말이 돌기도 했습니다." "이상한 징후요?" "예. 몸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흐른다거나, 밤마다 이상한 것이 보인다거나... 뭐 그런 식의 이야기입니다." 박기수는 별생각 없이 던진 말인 듯했지만, 나는 그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었다. 나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속으로는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고 있었다. (혈왕의 혈맥... 설마.) 서고를 나서는 길, 복도 창문 너머로 정원이 보였다. 그 순간, 담벼락 근처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 형체였다. 사람인지 아닌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키가 컸고, 윤곽이 흐릿했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시선이 그 형체에 고정된 채, 발이 바닥에 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박기수가 내 시선을 따라 창밖을 봤다. "도련님, 왜 그러십니까?" 내가 다시 봤을 때, 그 형체는 사라져 있었다. 나뭇잎만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방금 그건... 뭐였지.) 박기수는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못한 듯 나를 다시 데리고 걸었다. 그의 걸음은 여전히 평온했고, 목소리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나는 뒤를 한 번 더 돌아봤다. 담벼락 너머, 그림자가 진 자리에는 여전히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 정적이,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부자연스러웠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그 자리를 비워둔 것처럼. 나는 그 느낌을 떨쳐내지 못한 채 방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나는 방문을 잠그고 홀로 앉아 몸속의 감각에 집중했다. 방 안은 조용했고, 창밖에서는 낮은 풀벌레 소리만이 이어지고 있었다. 가슴 아래의 뜨거운 실이 이번엔 명확하게 형체를 드러냈다. 마치 붉은빛이 스며드는 자리처럼, 피부 안쪽에서 옅은 붉은 기운이 맴돌았다. 나는 손바닥을 가슴에 얹었다. 손바닥 아래에서 미약한 박동이 느껴졌다. 심장의 박동과는 다른, 조금 더 느리고 무거운 파동이었다. (이건... 마나 반응이 아니야. 뭔가 더 근본적인 것.) 그 순간, 창밖에서 낮은 울음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짐승의 울음과도 다르고, 바람 소리와도 달랐다. 그 소리는 마치 아주 먼 곳에서, 혹은 아주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것처럼 낮고 무거웠다. 나는 숨을 죽였다. 스윽. 창문 밖 어둠 속에서 무언가 지나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조심스럽게 창가로 다가갔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룻바닥이 낮게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달빛이 정원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 빛 아래, 담벼락 근처에 다시 그 검은 형체가 서 있었다. 이번엔 확실히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두 팔과 두 다리, 곧게 선 몸통까지 사람의 윤곽 그대로였다. 그러나 얼굴이 없었다. 아니,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 그저 어둠만이 고여 있었다. 그 어둠은 주변의 밤보다도 더 짙어서, 마치 달빛조차 그 자리만은 피해가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숨을 삼켰다. (저건 뭐지.) 그 형체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듯한 동작을 취했다. 목이 있어야 할 자리가 아주 미세하게, 삐걱거리는 듯한 움직임으로 기울어졌다. 마치 나를 발견한 것처럼. 나는 반사적으로 창가에서 물러섰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고, 가슴속의 뜨거운 실이 그 박동에 맞춰 함께 요동쳤다. (움직이지 마. 소리 내지 마.) 나는 벽에 등을 붙이고 숨을 최대한 낮췄다. 몇 초가 몇 분처럼 느리게 흘러갔다. 다시 창밖을 봤을 때, 형체는 사라지고 없었다. 정원은 다시 고요했다.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그 소리는 조금 전과 똑같은 나뭇잎, 똑같은 바람이었을 텐데도 어딘가 낯설게 들렸다. 그러나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분명히,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창문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오래 서 있었다. 가슴속의 뜨거운 실은 여전히 옅은 붉은빛을 머금은 채 잠잠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나는 그 감각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다시는 잠들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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