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눈을 떴을 때 천장의 나뭇결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익숙한 무늬였다.
옹이 자리에 생긴 작은 구멍, 그 옆으로 뻗어나간 결의 방향까지 전부 눈에 익었다.
(여기는… 내 방이구나.)
몸을 일으키자 어깨 아래로 이불이 스르륵 흘러내렸다.
방 안은 조용했다.
창문 틈으로 새어드는 빛이 바닥에 길게 그림자를 그리고 있었다.
손끝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붉은빛은 더 이상 새어 나오지 않았다.
가슴 아래 뜨거운 실 같은 감각도 지금은 조용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손바닥을 펴서 빛에 비춰보았다.
핏줄이 파랗게 도드라진 것 외에는 아무런 이상도 보이지 않았다.
(꿈이었나… 아니, 분명히 느꼈는데.)
그 뜨거움을, 그 낯선 파문 같은 감각을 잊을 수 없었다.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서연이었다.
쟁반을 든 손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죽이 담긴 그릇 위로 하얀 김이 흔들리듯 피어올랐다.
"도련님… 깨셨어요."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밤새 울었는지 눈두덩이 약간 부어 있었다.
나는 천천히 웃어 보였다.
평소처럼, 백치처럼.
"음... 배고파요."
서연의 눈가가 붉어졌다.
쟁반을 내려놓다가 손이 살짝 미끄러졌다.
달칵.
숟가락이 그릇에 부딪혔다.
그 작은 소리에 서연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마치 자신이 무언가를 또 망친 것처럼.
"도련님... 죄송해요."
서연이 고개를 숙였다.
목소리가 방바닥으로 꺼져 들어가는 것 같았다.
(사과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나여야 하는데.)
금화를 훔친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것을 묻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서연의 손끝이 떨리는 걸 보면, 이미 충분히 무너져 있었다.
더 캐물었다간 그 무너진 자리가 완전히 부서질 것 같았다.
"괜찮아요..."
나는 짧게 말하고 죽을 떠먹었다.
따뜻한 온기가 목을 타고 넘어갔다.
서연은 아무 말 없이 방을 정리하며 흘끗흘끗 나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 속에 죄책감과 안도가 뒤섞여 있었다.
이불을 정돈하는 손짓이 평소보다 느렸다.
몇 번이나 같은 자리를 다시 만지고 있었다.
(나를 위해 폭로했다고 생각하는 걸까.)
사실은 그 반대였다.
하지만 그 진실을 말할 생각은 없었다.
죽 그릇이 바닥을 보일 때까지, 방 안에는 그릇 긁는 소리만 낮게 울렸다.
그날 오후, 박기수가 서고로 나를 불렀다.
복도를 지나는 동안 하인들이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평소보다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듯한 기색이 느껴졌다.
서고 문을 열자 오래된 책 냄새가 코를 찔렀다.
먼지와 종이가 섞인, 시간이 쌓인 냄새였다.
그는 낡은 가죽 표지의 책을 펼치며 낮게 말했다.
"도련님, 혈맥에 대해 조금 더 알아두셔야 할 것 같습니다."
"...혈맥이요?"
나는 백치처럼 눈을 깜빡였다.
박기수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뭔가 알고 있는 눈치다.)
책장을 넘기는 그의 손끝이 미묘하게 굳어 있었다.
"이 저택의 오랜 전승에는, 혈족 중 이따금 이상한 징후가 나타나는 아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책장을 넘겼다.
종이가 스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먼지가 그 진동에 흩날려 오후 햇살 속으로 떠올랐다.
"몸속에 뜨거운 기운이 흐르고, 밤마다 이상한 것을 본다고 하지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건... 지금 내 얘기잖아.)
책 속 삽화에는 붉은 실선으로 그려진 사람의 형상이 있었다.
가슴 아래를 지나는 그 선이, 어젯밤 내 몸에서 새어 나온 빛과 똑같은 자리였다.
"그런 아이들은 대부분... 비참한 말년을 맞았습니다."
박기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다정했지만, 그 아래 무거운 것이 깔려 있었다.
"어떤 이는 미쳐 죽었고, 어떤 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후작님께서는 그것을 걱정하고 계십니다."
정적이 흘렀다.
서고의 먼지 냄새와 오후의 햇살이 뒤섞여 이상하게 무거운 공기를 만들었다.
창밖에서 새 우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가 곧 사그라들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 그 아이라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박기수의 시선이 조심스럽게 내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눈빛이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쾅.
강태오였다.
형의 눈빛은 처음부터 나를 향해 있었다.
"여기 있었네."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서고 안을 울렸다.
"박기수, 아버지가 부르셔."
박기수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서고를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둘만 남은 공간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태오는 팔짱을 낀 채 나를 내려다보았다.
키가 나보다 한 뼘은 더 큰 그의 그림자가 서가 사이로 길게 늘어졌다.
"금화 사건, 재밌었어."
입꼬리가 비틀려 있었다.
"백치가 시종을 감싸다니."
목소리에 비웃음이 섞여 있었지만, 그 아래 무언가 다른 감정도 함께 섞여 있는 게 느껴졌다.
나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형도 놀랐어요?"
일부러 순진한 어투로 물었다.
태오의 눈이 가늘어졌다.
"놀란 게 아니라, 이상해서 그래."
그가 한 걸음 다가왔다.
가죽 신발이 나무 바닥을 밟는 소리가 또각, 하고 울렸다.
"넌 대체 뭐야."
짧은 순간, 형의 눈동자 속에서 오래된 열등감이 스쳤다.
(형은 내가 두려운 걸까, 아니면 부러운 걸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스스로도 정확히 알지 못했으니까.
태오는 한참을 나를 노려보다가 등을 돌렸다.
어깨가 살짝 굳어 있는 게 보였다.
"...두고 봐."
그 말만 남기고 서고를 나섰다.
발소리가 복도 저편으로 사라졌다.
점점 작아지는 그 소리를 나는 끝까지 듣고 있었다.
나는 다시 홀로 남았다.
창밖으로 오후의 햇빛이 비스듬히 스며들었다.
먼지 알갱이가 그 빛 속에서 느릿하게 떠다녔다.
서가에 꽂힌 수많은 책등이 햇빛을 받아 희미하게 빛났다.
(나는 인간인가, 아니면 이식된 프로그램의 잔여인가.)
이 질문은 몸이 새 것이 된 순간부터 계속 나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이라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되묻게 되었다.
양자뇌는 논리적이고 냉철했다.
계산과 추론은 언제나 명확한 답을 내놓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가슴 한쪽이 서늘하게 저려오는 이 감각은 논리로 설명되지 않았다.
서연의 떨리는 손, 태오의 뒤틀린 표정, 박기수의 무거운 목소리.
이 모든 것이 나를 어딘가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실이 사방에서 나를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그날 저녁, 창밖으로 붉은 노을이 저택 지붕을 물들였다.
기와 위로 번지는 붉은빛이 어젯밤 손끝에서 새어 나온 빛과 닮아 있었다.
나는 방 안에 홀로 앉아 손끝을 바라보았다.
(다시 붉은빛이 새어 나오면 어떻게 하지.)
그 생각을 하는 순간, 복도 저편에서 낮은 발소리가 들려왔다.
일정한 박자로 다가오는 그 소리에 나는 저절로 고개를 들었다.
박기수였다.
문 앞에 선 그의 얼굴에는 낮의 그 무거운 표정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도련님, 후작님께서 부르십니다."
짧은 말이었지만, 어딘가 평소와 다른 무게가 실려 있었다.
목소리 끝이 살짝 떨리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심장이 아까와는 다른 이유로 뛰기 시작했다.
문밖으로 이어진 복도가 노을빛에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 끝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지금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