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백치인 척했더니 신이라니

3화

그날 이후로 며칠 동안, 그 검은 형체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매일 밤 창가를 살폈지만 정원은 늘 고요했다.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벌레 우는 소리만이 밤의 공기를 채웠다. (경계를 늦추지 말자. 언제든 다시 나타날 수 있어.) 하지만 낮 동안의 일상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흘러갔다. 서연이 식사를 가져오고, 박기수가 산책을 안내하고, 나는 여전히 백치를 연기했다. 햇빛이 창문을 통해 방 안으로 길게 스며들었고, 그 빛이 닿는 자리마다 먼지 알갱이들이 반짝이며 떠올랐다.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그러나 그 평화가 언제까지 갈지는 알 수 없었다. 첫째 날은 아무 일도 없었다. 둘째 날도 마찬가지였다. 가슴 아래의 뜨거운 실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고, 나는 그것이 다행이라 여겼다. (이대로 조용히 지나가면 좋겠는데.) 셋째 날 오후, 나는 서연의 표정에서 이상한 기색을 느꼈다. 식사를 내려놓는 손이 평소보다 더 떨렸고, 시선을 자꾸 피했다. 쟁반 위의 죽 그릇이 살짝 흔들리며 국물이 넘칠 듯 위태롭게 일렁였다. 나는 그 미세한 흔들림을 놓치지 않았다. "서연." 내가 이름을 부르자, 서연이 흠칫 놀란 얼굴로 나를 봤다. 어깨가 순간적으로 굳었다가, 이내 다시 힘없이 풀렸다. (어라. 반응하네.) 평소 나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기에, 서연에게는 이름을 불린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을 것이다. "네... 네, 도련님?" 목소리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너무 정상적으로 말하면 의심을 사겠지. 하지만 뭔가 있는 것 같은데.) 결국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손끝으로 죽을 가리켰다. 서연은 안심한 듯 숨을 내쉬며 다시 밝은 얼굴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 미소는 오래가지 못했다. 방을 나서는 뒷모습에서, 나는 어깨가 다시 축 처지는 것을 봤다. 하지만 나는 이미 알아챘다. 서연에게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그 문제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닌 것 같아.) 그날 저녁, 저택 안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금화가 없어졌다!" 집사실 쪽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발소리가 복도를 다급하게 오갔고,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뒤섞여 저택 전체가 웅웅거렸다. 나는 방문을 살짝 열고 복도를 살폈다. 박기수가 심각한 얼굴로 다른 하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의 이마에는 굵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신휘 도련님 방에서 금화 열 개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나는 그 말에 심장이 내려앉았다. (내 방에서? 그럼...)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내 방에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자주 드나드는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복도 끝, 서연이 창백한 얼굴로 벽에 붙어 서 있었다. 두 손을 앞치마 앞에서 꼭 쥐고 있었고, 그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서연이구나.) 가슴 한쪽이 답답하게 조여왔다. 잠시 후, 저택의 경비들이 서연을 둘러쌌다. 발소리가 쿵쿵거리며 복도를 울렸고, 서연은 그 가운데 홀로 갇힌 듯 서 있었다. "네가 훔친 게 맞지 않느냐." 서연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 아니에요! 저는 정말..." 목소리가 갈라졌다.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리며 도움을 청할 곳을 찾는 듯했다. "방에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다. 순순히 말해." 경비 하나가 서연의 어깨를 거칠게 잡았다. 서연의 몸이 휘청거렸다. 서연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나는 그 광경을 문틈으로 지켜보며 손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힘이 들어갔다. (이대로 두면 안 돼.) 머릿속에서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서연은 지난 며칠 동안 내게 정성을 다해 식사를 가져다주던 사람이었다. 말없이 죽 그릇을 내려놓고, 어색한 손짓에도 웃어주던 사람. 그런 서연이 저렇게 몰아세워지는 걸 그냥 지켜볼 수는 없었다. 나는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섰다.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정적이 순간적으로 복도를 덮었다. 박기수가 놀란 얼굴로 다가왔다. "도련님, 방에 계셔야 합니다." 목소리에 다급함이 섞여 있었다. 나는 그를 지나쳐 서연 쪽으로 걸어갔다. 발걸음마다 나무 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경비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도련님?" 나는 서연 앞에 섰다. 서연이 놀란 눈으로 나를 봤다. 눈물이 그대로 멈춘 채, 눈동자만 흔들리고 있었다. "도련님..." 나는 경비를 향해 입을 열었다. 평소의 어눌한 말투가 아니었다. "그 금화, 제가 잃어버린 겁니다."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은 조금 전보다 훨씬 무겁게 복도를 짓눌렀다. 박기수의 눈이 커졌다. 경비들도 서로 눈치를 봤다. "도련님이... 잃어버리셨다구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이지만, 지금은 이게 최선이야.)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지만, 표정만은 최대한 담담하게 유지하려 애썼다. 그러나 경비 대장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미간을 좁혔다. 그 눈빛에는 의심이 짙게 배어 있었다. "도련님은 이런 상황에서 그렇게 말씀하실 정도로 정신이... 온전하지 않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말투에 조롱과 의심이 섞여 있었다.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젠장, 이건 예상 못 했는데.) 순간, 방 안 어딘가에서 낮게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소리의 근원이 내 몸속이라는 걸 즉각 깨달았다. (안 돼. 지금은 아니야.) 가슴 아래의 뜨거운 실이 갑자기 격렬하게 요동쳤다. 마치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갑작스레 깨어난 듯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전신에 힘을 주며 그 요동을 억누르려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손끝에서 붉은빛이 옅게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경비들이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저, 저게 뭐야!" 박기수의 얼굴이 굳었다. "도련님?!" 나는 손을 감추려 했지만, 붉은빛은 점점 더 선명해졌다. 손끝에서 손목으로, 손목에서 팔뚝으로 그 빛이 서서히 번져갔다. (제어가 안 돼. 이건... 예상보다 훨씬 강해.)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땀이 흘러내렸다. 그 순간, 복도 창문 밖에서 다시 그 검은 형체가 어렴풋이 나타났다. 마치 이 소란을 지켜보는 듯이. 창문에 비친 그 형체는 움직임이 없었다. 그저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숨이 막혔다. 몸속의 힘과 바깥의 존재, 두 개의 위협이 동시에 나를 향하고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여기서 쓰러지면 안 돼.) 경비 하나가 검을 뽑아 들었다. 쇠가 검집을 긁으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위험할지 모르니 일단 제압하겠습니다!" 서연이 비명을 질렀다. "안 돼요! 도련님은 잘못이 없어요!" 그 목소리가 복도 전체에 울렸다. 서연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붉은빛이 도는 손을 앞으로 뻗었다. 제대로 된 마법 훈련을 받은 적은 없었지만, 몸이 스스로 반응하고 있었다. 손끝의 감각이 뜨거워지며 무언가가 응축되는 느낌이 들었다. 손끝에서 옅은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경비의 검이 튕겨 나갔다. 쿵. 경비가 뒷걸음질치며 균형을 잃었다. 등이 벽에 부딪히며 둔한 소리가 났다. 모두가 얼어붙은 듯 나를 바라봤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서 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성공했지만... 이 힘, 오래는 못 버텨.) 붉은빛이 손끝에서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마치 안에서 밖으로 뭔가가 계속 새어나오는 듯한 감각이었다. 동시에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감각이 들었다. 이건 승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위태로운 균형이었다. 복도 끝, 그 검은 형체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 걸음마다 창밖의 어둠이 조금씩 더 짙어지는 듯했다. 정적 속에서 그 형체만이 유일하게 움직이는 존재였다. 나는 붉은빛이 도는 손을 내려다보며, 다가오는 그 존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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