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백은 궤적단의 아침 회의는 늘 강태윤의 독백으로 시작됐다.
"오늘 촬영 콘셉트는 '고독한 정복자'로 갈 거야. 나 혼자 100층까지 뚫는 그림, 알지? 카메라는 로우 앵글로 잡아서 내가 더 커 보이게, 조명은 좀 더 붉은 톤으로 가고." 그는 카메라 앵글을 손으로 그려 보이며 팀원들에게 지시를 내렸고, 나는 그 옆에 앉아 서류를 정리하며 '저 콘셉트로 벌써 다섯 번째인데' 하고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강태윤은 구독자 삼백만짜리 채널의 얼굴이었고, 그 얼굴값을 위해 팀의 실질적인 위험 관리는 늘 뒷전으로 밀려났다. 회의 테이블 위에는 오늘 촬영 스케줄표와 편집팀에서 보낸 조회수 그래프가 놓여 있었는데, 강태윤은 그 그래프를 손끝으로 툭툭 치며 "이 구간, 여기 하락한 거 봐. 뭔가 자극적인 게 필요해"라고 중얼거렸다.
문제는 100층의 결계였다. 마신 잔영은 평소엔 조용했지만, 결계에 작은 균열이라도 생기면 그 파장이 상층부까지 미쳤고, 그걸 매번 조율해온 게 나였다. 카메라에는 절대 잡히지 않는 뒷일—결계 재조정, 잔영의 기분 관리, 심지어 던전 내 다른 마물들과의 사소한 마찰까지 전부 내가 처리했지만, 팀원들에게는 그저 '유담 씨가 또 뒤에서 뭐 하나 보다' 정도로 취급됐다.
내 태블릿에는 결계 안정도, 잔영의 감정 지수, 심층부 존재들과의 협정 조항들이 실시간으로 정리되어 있었지만, 그걸 화면에 띄운 채 설명이라도 하면 다들 눈을 반쯤 감고 하품을 참는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이해 못 할 거, 라고 나도 어느 순간부터 포기하고 있었다.
"근데 이번엔 진짜 화면에 좀 나오면 안 돼요? 편집팀에서 유담 씨 분량이 아예 없다고 컷 치자던데." 서지혁이 지나가듯 던진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저는 그냥 뒤에서 서류 처리하는 거라서요."
"아니 그래도, 3년 동안 유담 씨 얼굴 한 번도 제대로 안 나온 거 알아요? 사람들이 자막으로만 '팀 매니저'라고 뜨는 거 보고 궁시렁대던데. 실존 인물이냐고 댓글 달리는 거 봤어요 저는." 서지혁이 웃으며 덧붙였지만 나는 그저 웃어넘겼다.
사실 그 서류라는 게, 던전 심층부의 존재들과 맺은 비공식 협정문 같은 것들이었지만, 그걸 자세히 설명해봐야 아무도 관심 없을 걸 알고 있었다. '잔영 님, 이번 주는 3층 마물들이 통행세를 좀 올려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같은 대화를 이 팀원들 앞에서 진지하게 늘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촬영이 시작되자 강태윤은 특유의 과장된 몸짓으로 카메라 앞에 섰고, 두 손을 허리에 얹은 채 렌즈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여러분, 오늘도 백은 궤적단과 함께합니다" 하고 우렁차게 외쳤다. 나는 뒤편에서 결계 상태를 점검하며 조용히 태블릿을 두드렸다.
"결계 안정도 92퍼센트, 잔영 기분 지표는 평소랑 비슷하고······." 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수치를 체크했다. 붉은 조명 아래 결계 표면이 옅게 떨리는 것도 확인했는데, 이 정도면 아직 걱정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 순간 강태윤이 뒤를 돌아보며 짜증스럽게 외쳤다. "거기서 뭐 하는데 자꾸 앵글에 걸려? 뒤로 더 빠져!"
나는 별말 없이 몇 걸음 물러섰다. 이런 순간이 처음은 아니었으니까. 강태윤은 이미 몇 주 전부터 나를 팀에서 잘라낼 궁리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화면에 안 잡히는 놈은 채널 성장에 도움이 안 된다'는 논리였다.
나는 그 소문을 들었을 때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 일을 오래 할 생각도 없었고, 마신 잔영과의 티타임만 지속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이었으니까. 월급이야 통장에 들어오면 그만이고, 채널에 얼굴이 나오든 말든 내 실적표에는 아무 영향이 없었다.
촬영이 끝난 뒤 팀 회의실에서 강태윤이 편집본을 확인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노트북 화면 속 그래프가 지난 화보다 완만하게 떨어지는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이번 화 조회수 예상이 왜 이렇게 낮아? 콘텐츠가 지루한 거 아니야?"
매니저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태윤 님, 요즘 시청자들이 '진짜 위험한 순간'을 더 원하는 것 같아요. 봉인실 안쪽까지 직접 들어가는 그림이 있으면……"
강태윤의 눈이 번뜩였다. "100층 안까지? 그거 재밌겠네. 봉인실 문 앞에서 클로즈업 잡고, 안에 들어가서 잔영이랑 대치하는 그림까지 뽑으면 조회수 백만은 그냥 넘길걸."
나는 그 대화를 서류 정리하며 흘려듣다가, 문득 소름이 오소소 돋는 걸 느꼈다. 손끝이 저절로 태블릿 화면을 두드리던 걸 멈추고, 나는 고개를 들어 강태윤을 바라봤다.
100층 결계 안쪽은 정기 점검자인 나 외에는 누구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고, 그 이유를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잔영은 낯선 존재의 침입에 극도로 예민했다. 지난번 신입 스태프 하나가 실수로 결계 경계선을 몇 센티 넘었다가 하마터면 팔 하나를 잃을 뻔한 사건도, 카메라에는 잡히지 않고 조용히 묻혔던 일이었다.
"저, 태윤 님. 그건 좀 위험할 수도 있는데요." 내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자, 강태윤은 나를 힐끗 쳐다보며 비웃음을 지었다.
"유담 씨는 늘 그런 소리만 하네. 뭐가 그렇게 위험한데? 어차피 결계 관리는 유담 씨가 다 해놨다며. 유담 씨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나는 뭐라 더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하는 말은 강태윤에게 아무런 무게도 갖지 못한다는 걸, 이미 삼 년째 겪어온 참이었다. '내가 이 결계를 얼마나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는지 알면, 저렇게 쉽게 말은 못 할 텐데.'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삼키며, 나는 서류를 다시 정리하는 척 시선을 내렸다.
매니저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몇 마디 덧붙였지만, 강태윤은 이미 머릿속으로 다음 화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는 듯 보였다.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며 "그림 좋다, 그림 좋아" 하고 혼자 중얼거리는 그 모습에, 나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회의가 끝나고 사무실을 나서는 강태윤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이상하게도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걸 느꼈다.
'설마 진짜로 100층 안까지 들어가겠다는 건 아니겠지.'
나는 태블릿을 손에 쥔 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화면 속 결계 안정도 수치는 여전히 92퍼센트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그 숫자가 오늘만큼 불안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그 예감이 얼마나 정확했는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확인하게 될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