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실업급여 받는 심연 번역가

3화

다음 날 아침,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평소라면 누군가는 커피를 마시며 어제 올라온 조회수 얘기를 하고, 누군가는 편집 프로그램 앞에서 졸린 눈을 비비고 있어야 할 시간인데, 오늘은 다들 나를 힐끔거리며 시선을 피하는 게 이상했다. '뭐지, 나 얼굴에 뭐 묻었나.' 그런 생각을 하며 자리로 가려는데, 매니저가 다급히 다가와 내 팔을 붙잡았다. "유담 씨, 잠깐 회의실로 좀……" 그 말투에서부터 이미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고, 나는 매니저를 따라 회의실 문을 열었다. 안에는 강태윤이 팔짱을 낀 채 의자에 등을 붙이고 앉아 있었는데, 그 자세만 봐도 오늘 좋은 얘기는 아니겠구나 싶었다. "유담 씨, 앉아요." 그의 말투는 평소와 다르게 딱딱했고, 나는 '이거 뭔가 큰 게 왔구나' 싶어 괜히 목이 마른 느낌이 들었다. 의자에 앉으며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는데, 그 소리가 회의실의 정적 속에서 유난히 크게 들렸다. "오늘부로 유담 씨는 백은 궤적단에서 방출입니다." 강태윤은 서류 한 장을 테이블 위로 밀어냈고, 나는 그 종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해고 통지서라는 제목 아래, '팀 콘텐츠 방향성 불일치'라는 사유가 적혀 있었다.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는데, 놀라서라기보다는 어이가 없어서였다. '콘텐츠 방향성이라니, 나는 콘텐츠에 아예 안 나오는데 뭐가 불일치할 게 있어.' 카메라 앵글에 잡힌 적도, 편집본에 자막이 달린 적도, 심지어 채널 프로필에 이름이 올라간 적도 없는 내가, 콘텐츠 방향성 때문에 잘린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앞뒤가 안 맞았다. 하지만 이런 데서 논리를 따진다고 해서 바뀌는 게 없다는 것도 이미 삼 년 동안 배운 사실이었다. "저기, 이유가 좀……" 내가 입을 열려는 순간 강태윤이 손을 들어 말을 잘랐다. "솔직히 말할게요, 유담 씨. 유담 씨 하는 일, 저 잘 이해가 안 가요. 뒤에서 서류 만지고 결계 점검하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거든요. 우리 팀 이미지에 도움도 안 되고. 그냥 이번 기회에 정리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 말을 들으며 헛웃음이 났지만, 여기서 화를 내봐야 나만 손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애써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100층 결계 관리는 누가 하나요?" 강태윤은 어깨를 으쓱했다. "뭐, 별거 아니었잖아요. 그동안 아무 일도 안 났던 걸 보면. 그리고 이번에 우리가 직접 봉인실 안쪽까지 들어가서 촬영할 거예요. '금기를 깨는 자'라는 콘셉트로."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순간적으로 등골이 서늘해졌다. '저 사람들이 잔영을 직접 만나겠다고?' 삼 년 동안 매주 화요일마다 봉인실 문 앞에 앉아 잔영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그 존재가 얼마나 예민하고 얼마나 쉽게 폭주할 수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였다. 카메라를 든 낯선 사람들이 그 안에 들어간다는 상상만으로도 손끝이 저릿해졌다. "태윤 님, 그건 정말 위험합니다. 잔영은 낯선 존재한테 굉장히 예민하고, 특히······" 강태윤은 내 말을 끊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유담 씨, 이제 우리 팀 소속 아니에요. 그런 조언까지 해줄 필요 없어요. 짐 챙겨서 나가주세요."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목구멍 안쪽에서 뭔가가 계속 올라오려고 했지만, 그걸 삼키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회의실을 나와 자리로 돌아가는 동안, 사무실 안 사람들의 시선이 등 뒤로 따라붙는 게 느껴졌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고, 나도 굳이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책상 서랍을 열어 개인 물품들을 종이가방에 담는데, 삼 년치 텀블러와 손목 보호대와 낡은 다이어리 한 권이 전부였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서글펐다. 사무실을 나서면서도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지만, 아무도 나를 붙잡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도 누군가 뛰어나와 '잠깐만요' 하고 부르는 장면을 은근히 기대했던 것 같은데, 문은 그냥 조용히 닫혔다. '이렇게 삼 년이 끝나는구나.' 건물 밖으로 나와 텅 빈 종이가방을 품에 안고 걷는데, 그제야 실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3년이라는 시간이, 저 종이가방 하나 무게밖에 안 되는 건가 싶어서 발걸음이 자꾸 무거워졌다. 그날 밤, 나는 원룸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장 다음 달 월세부터 걱정이었고, '실업급여는 신청할 수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통장 잔고를 머릿속으로 계산해보다가, '아, 이럴 때 회의실 냉장고에서 몰래 챙겨온 음료수라도 더 챙겼어야 했는데' 하는 쓸데없는 후회까지 밀려들었다. 그런데 문득, 창밖에서 이상한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지나가는 트럭 소리인가 싶었지만, 그 진동은 점점 커지며 창틀을 흔들었고, 벽에 걸어둔 액자가 삐걱거리며 기울어지는 게 보였다. 나는 몸을 일으켜 창밖을 내다보았다. 멀리, 도심 상공에서 검붉은 기운이 스멀스멀 번지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이유 없이 심장이 쿵 내려앉는 걸 느꼈다. 마신 잔영이 항상 조용했던 것은, 매주 화요일마다 내가 찾아가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기 때문이라는 걸, 나는 그때 처음으로 실감하기 시작했다. 봉인실 문 앞에 앉아 별거 아닌 얘기를 늘어놓던 시간들이, 사실은 그 존재를 붙잡아두는 유일한 끈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뒤늦게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오늘은 화요일이었고, 나는 가지 않았다. ······. 창밖의 진동이 점점 더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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