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생후 4개월 3일.
이유식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젖을 떼는 시기라고 조련사가 말했다.
사료에 물을 섞어 부드럽게 만든 죽 같은 것을, 여물통 한쪽에 조금씩 넣어주기 시작했다.
낯선 냄새였다.
곡물 냄새와 약간의 발효 냄새가 섞인, 어미의 젖과는 전혀 다른 냄새.
하지만 나는 이미 이유식이 뭘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어미와의 마지막 물리적 연결이 끊어지는 시기였다.
말의 세계에서는 그랬다.
새끼가 어미젖을 완전히 끊고, 스스로 씹어 삼키는 존재가 되는 순간.
그게 이유식이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어미와 이미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었다.
제주도에 있는 설화와, 청림목장에 있는 나 사이의 거리는 두 시간 비행기와 몇 시간 배로도 좁혀지지 않는 거리였다.
이유식이 끊어낼 연결 같은 건, 이미 몇 달 전에 끊겨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유식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오히려 이상한 위화감을 느꼈다.
끊을 것도 없는데, 뭘 끊는다는 거지.
오전 10시.
안재현이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고 있었다.
마방까지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무실과 마방 사이 거리는 20미터쯤 됐지만, 안재현의 목소리는 유독 크고 또렷했다.
"박무영 씨, 설화가 재임신했다고요?"
재임신.
그 단어가 마방 벽을 뚫고 들어와 내 몸에 박혔다.
귀가 저절로 그 방향으로 돌아갔다.
말의 귀는 360도 가까이 회전한다.
그 사실을 그때 처음으로 체감했다.
"확실합니까?"
안재현이 물었다.
"수의사가 확인했어요."
박무영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희미하게 들렸다.
"올해 초 씨수말과 붙였는데, 이번에 확실히 됐다고 하네요."
씨수말.
올해 초.
그 두 단어를 조합해 계산했다.
올해 초라면, 설화가 나를 낳고 나서 몇 달 되지도 않아 다시 교배를 붙였다는 뜻이었다.
말의 세계에서는 그게 당연한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번식 암말은 새끼를 낳자마자 다시 배란기가 돌아오고, 목장은 그 시기를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알고 있었는데, 알고 있는 것과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나는 그 순간 몸이 굳었다.
다리에 힘이 빠졌다.
무릎이 살짝 꺾이는 걸 겨우 버텼다.
서 있는 것조차 갑자기 어려운 일이 됐다.
재임신.
이건 어미가 다른 새끼를 갖는다는 뜻이었다.
다른 새끼가 태어난다는 건, 어미의 관심과 젖과 보살핌이 그 새끼에게 넘어간다는 뜻이었다.
설화의 몸속에서 자라고 있을, 아직 형태도 없을 그 존재를 상상했다.
심장이 없는데도 심장이 뛰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상한 감각이었다.
나와 어미의 이별은 이제 물리적 거리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미의 삶에서 나는 이제 완전히 지나간 시기의 존재였다.
지나간 분기 실적 같은 거였다.
한번 발표되고 나면 다시는 시장이 주목하지 않는, 흘러간 숫자.
"잘됐네요."
안재현이 말했다.
"목장 입장에서는 좋은 소식이죠."
박무영이 대답했다.
"그렇죠. 좋은 소식이죠."
좋은 소식.
두 사람이 그 말을 주고받는 걸 들으며, 나는 그것이 정말 좋은 소식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목장에는 좋은 소식일 수 있었다.
번식 암말이 매해 새끼를 낳는다는 건 목장 매출과 직결되는 일이었다.
경주마 한 마리가 벌어들이는 상금과, 씨수말·번식암말이 낳는 새끼의 가치는 전혀 다른 계산법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니었다.
나에게는 이 소식이 어떤 계산법으로도 좋은 쪽에 놓이지 않았다.
전화가 끊겼다.
안재현이 마방으로 걸어왔다.
그의 걸음이 평소보다 가벼웠다.
그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기색이 있었다.
"별아."
그가 나를 불렀다.
처음으로 이름 없이 그냥 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등록명으로 부른 순간이었다.
그 이름은 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때 목장에서 붙여준 등록명이었다.
지금까지는 그냥 "야", "얘"로 불리는 게 더 많았는데, 오늘은 이름으로 불렀다.
"네 어미가 새 새끼를 가졌대."
그가 말했다.
마치 좋은 소식을 전해주려는 듯한 말투였다.
그의 목소리에는 어떤 악의도 없었다.
그게 오히려 더 이상했다.
나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반응할 방법이 없었다.
울 수도 없었고,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고, 그가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항의할 방법도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그냥 서 있는 것뿐이었다.
안재현은 내 반응이 없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말이 사람 말을 이해하고 반응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 게 당연했다.
그는 내 목덜미를 한 번 톡톡 두드리고는 등을 돌렸다.
그가 마방을 떠난 뒤, 나는 혼자 남았다.
마방 안의 정적이 유독 크게 느껴졌다.
바람이 지붕을 스치는 소리, 저 멀리서 다른 말이 콧김을 내뿜는 소리, 그런 것들이 하나하나 선명하게 귀에 들어왔다.
오후 1시.
나는 여물통 앞에 서 있었다.
먹어야 하는데 먹히지 않았다.
이유식 죽의 냄새가 코끝에 닿았지만, 입을 벌릴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배는 분명히 비어 있었다.
아침에 먹은 게 다 소화됐을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식욕이라는 게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인간이었을 때 나는 부모와 그렇게 가깝지 않았다.
연락도 뜸했고, 명절에나 겨우 얼굴을 보는 정도였다.
전화를 걸어도 3분을 못 넘기고 끊었다.
"밥은 먹었어?"
"응, 먹었어."
"무리하지 마라."
"알겠어."
그런 대화가 전부였다.
그때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가족이란 그런 거리감을 두고 지내는 존재라고,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거라고.
그런데 지금, 어미와 완전히 갈라졌다는 사실이 이렇게 무겁게 다가올 줄은 몰랐다.
인간이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무게였다.
아니면 느꼈는데 무시했던 무게였을지도.
어느 쪽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느껴야 할 감정이 있었다.
슬픔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무언가였다.
그런데 그 자리가 비어 있었다.
슬픔이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 공백이 오히려 더 무서웠다.
느껴져야 하는데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슬픔 그 자체보다 더 낯설었다.
울고 싶은데 눈물이 나지 않는 것과 비슷한 감각이었다.
아니, 그것보다 더 이상했다.
울고 싶다는 충동조차 없었다.
그냥, 어딘가 커다란 것이 빠져나간 자리에 텅 빈 구멍만 남아 있는 느낌이었다.
오후 3시.
설풍이 내 마방 앞을 지나갔다.
그의 발굽 소리가 자갈길 위에서 또각또각 울렸다.
"왜 그러고 있어?"
그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여물통 가장자리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있었다.
"밥 안 먹으면 조련사한테 혼나."
설풍이 무심하게 말하고 지나갔다.
그에게는 별일 아닌 하루였다.
그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세계에서는 오늘도 여느 날과 같은 하루였다.
훈련 시간표, 사료 시간, 낮잠 시간.
그 반복 속에 별다른 균열이 없었다.
그게 부러웠다.
부럽다는 감정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낯설었다.
설풍은 나보다 먼저 이곳에 왔고, 나보다 어른스러운 태도로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었다.
그의 무심함이 오늘만큼은 위로가 아니라 거리감으로 다가왔다.
오후 5시.
조련사가 여물통을 확인했다.
죽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표면에 얇은 막이 생길 정도로 시간이 지나 있었다.
"이거 왜 안 먹었어?"
그가 물었다.
대답할 방법이 없는 질문이었다.
그가 안재현에게 보고했다.
"오늘 식욕이 없어 보여요."
그 말이 마방 밖에서 들려왔다.
안재현이 걸어왔다.
그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걸 들으며, 나는 이상하게도 그 소리에 조금 안심했다.
내 옆에 앉았다.
"무슨 일 있어?"
그가 물었다.
진심으로 걱정하는 목소리였다.
그의 손이 내 목덜미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말할 수 있다면 무슨 말을 할까 생각했다.
어미가 재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그게 완전한 이별이라는 뜻이라는 걸 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당신이 전화로 그 소식을 전할 때, 내가 그걸 다 알아들었다고.
그 말을 목구멍 어디쯤에 쌓아두고 있는데, 밖으로 꺼낼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눈을 마주쳤다.
말의 눈은 인간의 눈과 다르게 생겼다.
동공이 가로로 길쭉하고, 시야가 거의 350도에 가깝다.
그 눈으로 그를 정면으로 바라본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는 알까.
안재현이 내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이유식 시기라 힘든가 보다."
그가 중얼거렸다.
반은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가 아는 이유식의 무게와 내가 아는 이유식의 무게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는 사료 죽 하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고, 나는 어미의 삶에서 완전히 밀려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같은 단어를 쓰면서도 서로 완전히 다른 것을 말하고 있었다.
그 어긋남이 서글펐다.
서글프다는 감정을 이름 붙일 수 있다는 게 오히려 낯설었다.
오후 6시.
나는 마방 벽에 몸을 기댔다.
제주도 방향이 어느 쪽인지도 몰랐다.
그런데도 그 방향을 찾으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동쪽인지, 남쪽인지, 목장의 위치도 정확히 모르는 채로 그냥 감각으로 찾으려 했다.
찾을 수 없었다.
당연했다.
마방에서 볼 수 있는 건 옆 마방의 벽과, 그 위로 겨우 보이는 나뭇가지뿐이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 한 조각이 보였다.
구름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 구름이 제주도를 지나왔을까, 아니면 지나갈까.
근거 없는 상상이었지만, 그 상상에 매달리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밤이 깊어졌다.
마방 안의 불빛이 하나씩 꺼졌다.
관리동 쪽 창문에서 흘러나오던 빛도 어느 순간 사라졌다.
나는 눈을 감았다.
어미의 숨결이 그리웠다.
마지막으로 맞닿았던 등의 체온이 떠올랐다.
그 온기가 얼마나 따뜻했는지, 지금도 정확히 재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미의 옆구리에 몸을 기대고 잠들었던 그 며칠, 그 감촉만큼은 몸이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기억이 선명한데, 그 기억에 대한 감정은 흐릿했다.
선명한 기억과 흐릿한 감정.
그 불일치가 낯설었다.
왜 기억은 이렇게 또렷한데, 그걸 떠올릴 때 따라와야 할 감정은 흐릿한 안개처럼 뭉개져 있는 걸까.
슬픔이라는 단어를 붙이려 해도, 그 단어가 딱 맞아 들어가지 않았다.
뭔가 더 크고, 뭔가 더 무거운 것 같은데, 정확한 이름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화하는 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화함이라는 게 무엇을 대가로 하는지, 그때 나는 아직 정확히 알지 못했다.
말로서의 삶에 조금씩 적응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말의 감각에, 말의 리듬에, 말의 시간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 적응이 진행될수록, 인간이었던 나의 어떤 부분이 조금씩 지워지고 있는 것 같았다.
지워지는 감각, 무뎌지는 반응, 흐려지는 감정.
그게 화함이라면, 그 화함은 결코 공짜가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무언가를 잃었다는 걸, 그것도 완전히 잃었다는 걸 느꼈다.
어미와의 연결, 그것은 이제 물리적으로도, 관계적으로도, 완전히 끊어졌다.
설화의 몸속에서 자라고 있을 새로운 생명이, 조만간 이 세상에 나와 그녀의 젖을 물 것이다.
나는 그 장면을 본 적도 없으면서 선명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
어미의 옆구리에 기대어 잠드는 작은 몸, 그 자리에 나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 알지 못하는 게 하나 더 있었다.
그 새끼가 태어나는 순간, 내가 정확히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지.
지금 이 공백이, 그날이 오면 무엇으로 채워질지.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었다.
다만 그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것만,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