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환갑 부장님, 몬스터로 부활

1화

빗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던 밤이었다. 야근을 마치고 편의점 앞을 지날 때였다. 편의점 불빛이 노랗게 번져서, 그 안에서 삼각김밥이라도 하나 사 먹고 들어갈까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때 뒤에서 헤드라이트 불빛이 확 밀려들었다. 브레이크 소리도 없었다. 클랙슨도 없었다. 그냥, 그걸로 끝이었다. 와, 이렇게 가는구나. 육십 평생 회사에 몸 바쳤는데 마지막이 이거라니. 정년까지 삼 년 남았었는데. 퇴직금 정산도 안 끝났는데.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눈앞이 하얗게 지워졌다. 다음으로 눈을 떴을 때, 나는 살아 있었다. 정확히는, 살아 있는 것 같은 무언가가 되어 있었다. 천장은 돌로 된 아치형이었고, 벽에는 알 수 없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방 안 공기는 축축하고 차가웠다. 곰팡이 냄새 같은 것도 살짝 섞여 있었다. 병원이 아니었다. 그건 확실했다. 응급실이었으면 적어도 형광등 냄새는 났을 텐데. 손을 들어보려다가, 나는 그대로 굳었다. 내 손이 아니었다. 두껍고, 시퍼렜고, 손가락 마디마다 뿔 같은 게 튀어나와 있었다. 손톱은 짐승의 발톱처럼 휘어 있었다. 손 크기가 얼추 내 얼굴만 했다. 아니, 예전 얼굴 기준으로 그랬다는 거다. 잠깐, 이게 뭐지. 손가락을 하나씩 움직여 봤다. 움직이긴 움직인다. 그런데 이게 내 손이라는 게 실감이 안 났다. 마치 남의 장갑을 억지로 낀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장갑이 살이고, 뼈고, 진짜 나였다. 일어나 앉으려다가 머리가 천장에 부딪혔다. 아팠다기보다는, 돌이 부서지는 소리가 나서 더 놀랐다. 벽돌 조각이 후두둑 떨어졌다. 이거 수리비 청구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치는 것도 웃겼다. 회사 다닐 때 버릇이 죽어서도 안 죽는구나. "……깼네."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작은 체구의 여자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키는 내 허리춤에도 못 미쳤는데, 눈빛은 조금도 작지 않았다. 오히려 방 전체를 눌러 깔고 있는 느낌이었다. 턱 아래로 붉은 수염이 곱게 정돈되어 있었다. 아니, 수염이라니. 여자 얼굴에 수염이라니.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방금까지 벽돌 걱정을 하다가, 이제는 수염 난 여자를 마주하고 있다니. 상황 파악이 순서대로 되는 게 아니라 그냥 한꺼번에 쏟아졌다. "너, 이름이 뭐였지." 존댓말도 아니고 반말도 아닌, 딱 그 사이의 어중간한 명령형이었다. 나는 대답하려다가, 내 목소리가 어떤 소리로 나올지 몰라 잠깐 멈췄다. 이 몸으로 말하면 짐승 울음소리가 나올 것 같은 불안감이 있었다. "……이정호." 다행히 사람 목소리였다. 굵고 낮았지만, 사람 목소리였다. 안도감이 잠깐 스쳤다가, 곧 다시 불안해졌다. 목소리는 사람인데 몸은 사람이 아니라니, 이건 또 무슨 조합인가. "이정호. 좋아. 기억은 하는군."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팔짱을 풀지 않은 채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마치 물건을 검수하는 눈빛이었다. 중고 거래로 넘어온 냉장고 상태 확인하듯이. 흠집 있나, 작동은 되나, 딱 그 정도의 시선. "몸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겠지." 이상하다는 말로 부족했다. 나는 내 몸을 내려다보았다. 거대한 체구, 회청색 피부, 근육이 도드라진 팔뚝. 배 쪽에는 흉터처럼 꿰맨 자국이 세로로 길게 나 있었다. 딱 봐도 인간이 아니었다. 딱 봐도, 어디 봉합수술 잘못된 프랑켄슈타인 같았다. "오우거 육체에, 오크의 내장을 붙였다." 담담한 목소리였다. 마치 요리 재료를 설명하는 것 같았다. 무슨 국밥에 곱창 넣었다는 소리인가 싶을 정도로 태연했다. "소환진이 틀어졌어. 원래는 그냥 사람 하나 데려오려던 거였는데, 죽은 몸에 뭘 붙여야 되살릴 수 있으니까. 마침 오우거 사체가 신선했고, 내장 쪽은 오크 걸로 대체했지. 그쪽이 접합률이 높거든." 접합률이 높다니. 그 말이 어쩐지 더 소름 끼쳤다. 이 여자, 이걸 몇 번 해본 말투다. "……저기요." "뭐." "그게 지금 사과하는 겁니까?" 여자는 잠깐 멈췄다가, 시선을 피했다. 그 짧은 순간의 동작이 뭔가 뒤가 캥긴다는 걸 그대로 보여줬다. "필요한 절차였어." 필요한 절차라니. 사람 하나 죽여서 몬스터로 만든 걸 그렇게 부르다니,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그 헛웃음조차 낯선 목소리로 울려서 더 어이가 없었다. 마치 저음의 스피커에서 잡음이 새는 것 같았다. 일단 상황을 정리해야 했다. 나는 죽었다. 그리고 이 여자가 되살렸다. 근데 몸이 완전히 딴 몸이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회사는 어떻게 됐지, 이런 생각까지 드는 걸 보면 사람은 참 어이없는 순간에도 현실적인 걱정을 하는구나 싶었다. "여기가 어딥니까." "격리탑." 짧은 대답이었다. 격리탑이라니, 이름부터 벌써 마음에 안 들었다. 이름 짓는 감각이 딱 관공서 스타일이었다. 어디 세관 창고 이름 같기도 하고. "왕국 소속 시설이야. 소환 실패로 발생한 개체는 통제된 공간에 두는 게 규정이거든." "저 사람인데요." "지금 그 몸으로는 아니야." 단호했다. 반박할 틈도 주지 않는 어조였다. 마치 서류에 도장 찍듯이, 이미 결론이 나 있는 말투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리에 힘을 주는 순간 방 전체가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몸무게가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무거워진 탓인 것 같았다. 방을 나가서 상황을 직접 확인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몸이 이상해도 어쨌든 밖에 나가면 뭐가 있는지, 사람이 사는 곳인지, 도움을 청할 데가 있는지 알아야 했다. 이 좁은 돌방 안에서 수염 난 여자하고 대화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어디 가려는 거야." "밖에요." "안 돼." "왜요." 여자는 잠깐 나를 올려다보았다.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뭔가 말하기 곤란한 얘기라는 걸 그 표정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방금까지 냉장고 검수하듯 담담했던 눈이, 이제는 슬쩍 계산하는 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네 몸을 본 사람들은, 도망치지 않아. 신고를 하지." "그게 뭔 소립니까." "오우거는 왕국법상 즉결 처분 대상이야." 방 안이 순간 조용해졌다. 빗소리만 벽 너머로 아득하게 들렸다. 즉결 처분. 그 단어가 머릿속에서 몇 번이나 굴러다녔다. 죽었다가 살았는데, 그 살아난 몸 때문에 다시 죽는다는 소리인가. 이건 도무지 앞뒤가 안 맞는 억울함이었다. 원래 죽은 것도 억울한데, 되살아나서 또 처형당한다니. "그럼 저는 뭡니까. 그냥 여기 갇혀서 평생 지내라는 겁니까?" 여자는 대답 대신 문 쪽으로 눈짓을 했다. 그 눈짓만으로도 대답은 충분했다. 나는 그제야, 이 방을 나가는 순간 진짜로 끝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살아난 지 채 몇 분도 안 됐는데, 벌써 두 번째로 죽을 위기에 놓인 셈이었다. 인생, 아니 이제는 인생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이 두 번째 삶이, 시작부터 이렇게 꼬여도 되는 건가 싶었다. 여자는 여전히 문 앞을 가로막듯 서 있었다. 작은 체구인데도, 그 자리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일단 앉아. 얘기가 길어." 명령이었다. 그런데 그 말투 안에, 뭔가 나한테 숨기고 있는 게 더 있다는 낌새가 짙게 묻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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