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환갑 부장님, 몬스터로 부활

5화

왕궁 감사관이라는 남자는 옥상 계단 위로 올라오며 나를 흘낏 보고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훈련된 눈빛이었다. 처음 보는 몬스터 앞에서도 놀라지 않는다는 건, 이미 예상하고 왔다는 뜻이었다. 키는 크지도 작지도 않았고, 관복 위에 걸친 망토엔 왕국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걸음걸이마저 절도 있었다. 저런 사람은 대체로 규칙을 어기는 걸 못 견디는 부류다. 살면서 그런 인간을 몇 번 봤었는지, 오우거 몸이 된 지금도 그 감각만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현자님." "연락도 없이 왜 온 거야." 은채의 목소리가 눌러 담은 짜증으로 가득했다. 평소라면 웬만한 상대에게도 저렇게 날을 세우지 않는 사람인데. 나는 그 옆얼굴을 슬쩍 봤다. 턱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격리 개체를 규정 외 구역에 노출시켰다는 보고요." "조수로 등록했어. 문제없어." "조수 등록 서류는 아직 왕궁에 접수되지 않았습니다." 그 말에 은채가 잠깐 멈췄다. 서류가 아직 인정받지 못한 상태에서, 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온 게 문제가 됐다는 뜻이었다. 아, 그러니까 나는 지금 무허가 반출품이라는 거구나. 오우거 몸으로 태어난 것도 억울한데 이제는 서류 미비 사유로까지 걸리는 건가. 감사관은 나를 다시 한 번 훑어보았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서 위로. 마치 물건의 하자를 확인하는 손길 같았다. "오우거 육체입니다." "알아." "왕국법 12조에 따르면, 오우거 종은 즉결 처분 대상입니다." 그 단어가 다시 나왔다. 즉결 처분. 이번엔 좀 더 구체적으로, 좀 더 가까이서 들렸다. 바람이 옥상을 훑고 지나갔다. 밤공기가 갑자기 차갑게 느껴졌다. 오크 내장 덕에 추위를 잘 안 탄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그 말도 못 믿을 지경이었다. "이 개체는 예외야. 소환 실패로 발생한 인간 기반 개체고, 지성이 있어." "지성이 있다는 판단은 현자님 개인 의견일 뿐입니다." "내가 왕국 최고 현자야." "그렇다고 법이 바뀌는 건 아닙니다." 감사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명확했다. 왕국 상층부는 나를 그냥 두고 볼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다. 은채는 잠깐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뭔가를 삼키는 듣한 얼굴이었다. 평소 같으면 여기서 한마디 더 쏘아붙였을 텐데, 이번엔 참는 듯했다. 상대가 만만치 않다는 걸 아는 얼굴이었다. "처분 여부는 심의회에서 결정될 겁니다. 열흘 안에 소집될 겁니다." "열흘?" "현자님도 참석하셔야 합니다. 소환자로서 책임 소재를 밝히셔야 하니까요." 감사관은 그렇게 말하고는, 더 이상 볼일 없다는 듯 몸을 돌려 계단을 내려갔다. 발소리가 딱딱, 규칙적으로 계단을 두드리며 멀어졌다. 그 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은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가 아니라, 지금 입을 열면 나온 말이 전부 비명처럼 들릴 것 같아서였다. 나는 그녀의 옆얼굴을 봤다. 표정이 하얗게 굳어 있었다. 달빛 아래서 보니 더 그랬다. 방금까지 나란히 서서 밤하늘을 보던 사람이랑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현자님." "……괜찮아." 괜찮다는 말이 전혀 괜찮게 들리지 않았다. 목소리 끝이 미세하게 떨렸으니까. "심의회가 뭔데요?" "왕국 최고 재판 기구야. 거기서 결정되면, 되돌릴 방법이 없어." "그럼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녀는 잠깐 대답을 미뤘다. 계단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시선을 다시 내게 옮겼다가, 다시 계단 쪽으로. 그리고 낮게, 아주 낮게 말했다. "최악의 경우, 처형이야." 하늘에 뜬 달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췄다. 방금까지 나란히 서서 밤하늘을 보던 평온함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처형. 그 단어가 머릿속에서 몇 번이나 튕겨 다녔다. 죽었다가 되살아난 지 며칠 됐다고, 이번엔 아예 국가 차원에서 죽이려 든다니. 이건 뭐, 두 번째 죽음의 형식만 좀 더 격식 있는 것뿐이잖아. "열흘 안에,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계단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감사관이 사라진 방향이었다. "이 왕국에서 오우거를 살려둔 전례가 있는지부터 찾아봐야겠어." "있어요?" "없어." 짧고 단호한 대답이었다. 너무 짧아서, 오히려 그게 진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여지가 있었다면 저렇게 딱 자르듯 말하지 않았을 테니까. 나는 옥상 난간을 붙잡았다. 손바닥에 닿는 돌의 냉기가 그제야 실감으로 다가왔다. 오크 내장 덕에 심장이 튼튼하다는 건 알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심장이 튼튼하다고 목이 안 잘리는 건 아니니까. 죽었다가 되살아난 지 며칠 됐다고, 또 죽을 위기라니. 살아있다는 감각을 채 익히기도 전에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통보를 받는 기분이란, 말로 설명하기가 참 애매했다. 억울하다고 해야 할지, 어이없다고 해야 할지. '즉결 처분이라니. 서류에 도장 하나 찍히면 나 같은 건 그냥 없어지는 거구나.'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예전에 누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넌 이 나라에서 태어난 게 아니니까, 법 같은 건 신경 쓰지 마. 사람으로만 살면 돼."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말이 얼마나 허황된 말이었는지는, 지금 이 순간 확실히 알겠다. 은채는 나를 돌아보며 처음으로, 뭔가 결심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턱에 힘이 들어가고, 눈빛이 조금 전과는 다르게 단단해졌다. 짜증도 두려움도 아니고, 뭔가를 결심할 때 나오는 그 표정이었다. "나 혼자 왕국 상대로 싸워야 할 수도 있어." 그 말이, 왜인지 무겁게 들렸다. 혼자서 왕국을 상대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나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 섞인 그 낮은 결의만큼은 분명히 느껴졌다. 그리고 그 무게가, 앞으로 열흘 동안 이 탑을 완전히 뒤흔들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멀리서, 감사관이 사라진 계단 쪽에서 낮게 종소리가 울렸다. 밤을 알리는 종인지, 뭔가 다른 신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소리가 유난히 오래도록 귓가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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