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흑월 미궁의 입구는 생각보다 작았다.
어른 두 명이 나란히 서면 어깨가 부딪힐 정도의 좁은 동굴, 그 안에서 냉기가 스멀스멀 새어 나왔다.
'이런 데서 승급 심사를 본다고?'
나는 코를 슬쩍 찡그렸다.
이도현. 그게 내 이름이다. 한빛마을에서 나고 자랐고, 열다섯 살에 처음 검을 쥐었다. 신체 능력은 어릴 때부터 마을 어른들도 놀랄 정도였는데, 문제는 그게 좀 과하게 자신감으로 이어졌다는 거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지금 승급 심사 파티의 리더로 이 미궁 앞에 서 있었다.
"코, 그거 또 킁킁대는 거야?"
뒤에서 서아가 웃으며 물었다.
윤서아. 나랑 같은 마을에서 자란 소꿉친구고, 지금은 힐러다. 다섯 살 때부터 옆집에 살았으니 벌써 십오 년 지기다. 얘가 웃으면 나는 늘 반박할 타이밍을 놓친다.
"냄새가 이상해서."
"이상하긴, 미궁이니까 이상한 거지."
'그건 또 무슨 논리야.'
나는 그냥 어깨를 으쓱했다.
파티의 나머지 두 명은 이번 심사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다.
탱커 준서. 방패를 든 손이 유난히 큼직했고, 말수가 적고 수줍음이 많았다. 협회 등록증엔 스물둘이라고 적혀 있었다.
마법사 하늬. 지팡이를 팔짱처럼 끼고 서 있는 자세부터 딱 봐도 센 척이 몸에 밴 애였다. 서아랑 동갑이라고 들었다.
"입구부터 축축하네."
하늬가 팔뚝을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축축한 거 못 참는 타입인가 보네요."
서아가 웃으며 받아쳤고, 하늬는 대답 대신 코웃음을 쳤다.
'저 둘 성격 안 맞겠는데.'
나는 속으로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는 내지 않았다. 어차피 이번 심사만 끝나면 다시 안 볼 사이였으니까.
승급 심사는 협회가 정한 등급별 던전을 클리어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번 던전, 흑월 미궁은 3등급에서 4등급으로 올라가려는 파티들이 주로 도는 곳이었다. 통과하면 협회 등급증에 별 하나가 더 새겨지고, 의뢰 수당도 한 단계 오른다. 나쁠 게 없는 자리였다. 문제는 이 파티가, 말했듯이 급조된 조합이라는 거였다.
나와 서아는 이미 몇 번 던전을 같이 돌아본 사이라 손발이 맞았지만, 준서와 하늬는 오늘 처음 합을 맞춰야 하는 임시 파티원이었다. 협회는 종종 이런 식으로 파티를 급조해서 심사를 진행했다. 인원이 안 맞는 모험가들을 어떻게든 채워 넣어야 했으니까. 협회 게시판에 붙은 공고문 한 줄이 이 넷을 여기 세운 거다. '3등급 파티 모집. 탱커, 딜러 각 1인 부족.' 나는 그 공고문을 보자마자 신청서를 냈다. 서아가 옆에서 한숨을 쉬면서도 같이 이름을 적어줬다.
"들어가기 전에 다들 상태 체크할까요."
서아가 손을 내밀었다. 준서가 손을 잡자 옅은 빛이 흘렀다. 서아의 축복 스킬이었다.
"어, 이거 뭔가 몸이 가벼워지는데요?"
준서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기분 탓이에요."
서아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기분 탓은 아닌데.'
나는 속으로 정정했지만 굳이 말하지 않았다. 서아의 축복은 방어력을 살짝 올려주는 정도의 초급 스킬이었지만, 그 살짝이 목숨을 가르는 순간이 있다는 걸 나는 몇 번이나 겪어봤다.
"저도요."
하늬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아까와 다르게 목소리가 한결 낮아져 있었다. 서아가 손을 잡아주자 하늬는 잠깐 눈을 깜빡이더니 아무 말 없이 손을 뺐다.
'그래, 너도 겁나긴 하는구나.'
나는 씩 웃으려다 참았다. 지금 웃으면 맞을 것 같았다.
내 차례가 되자 서아는 익숙하게 내 손을 잡았다. 손끝이 늘 따뜻했다.
"조심해."
그 말이 축복인지 그냥 하는 인사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자주 듣는 말이었다. 그런데도 매번 조금 뜨끔한 건 왜일까. 그런가? 정말 그런가.
'아, 몰라.'
나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준비를 마친 우리는 입구 앞에 다시 나란히 섰다. 준서가 방패를 고쳐 잡았고, 하늬는 지팡이 끝의 마력석을 손끝으로 톡톡 두드렸다. 작은 버릭, 하는 소리가 났다. 마력이 제대로 도는지 확인하는 습관인 듯했다.
"저 먼저 들어갈게요."
내가 앞장서겠다고 하자 준서가 고개를 저었다.
"탱커는 저인데요……"
"내가 코가 좋아서. 뭐 나오면 먼저 알아채."
"아……"
준서는 말을 아끼며 방패를 슬쩍 내 옆으로 붙였다. 어차피 앞으로 나설 생각인 듯했다. 착실한 성격이었다.
입구를 넘어서자마자 나는 걸음을 멈췄다.
"왜 그래?"
서아가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코를 벌렁거렸다. 후각이 예민한 건 내 오래된 특기였다. 짐승 냄새를 남들보다 먼저 맡는다거나, 습기 밴 냄새 속에서 미묘하게 다른 냄새를 골라내는 것 정도는 늘 해왔던 일이다. 어릴 때는 마을 사냥꾼들이 나를 사냥개 취급하며 데리고 다니기도 했다. 그때는 그게 좀 자랑스러웠고, 지금은 이게 밥벌이 스킬이 됐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달랐다.
피 냄새가 났다. 오래된 피가 아니라 신선한 피였다. 아직 굳지 않은, 축축하고 비릿한 냄새. 그리고 그 밑에 깔린, 뭐라 설명하기 힘든 뒤섞인 냄새—여러 종류의 몬스터가 한곳에 몰려 있을 때 나는 특유의 악취였다. 짐승 여러 마리가 한 우리에 갇혀 며칠을 방치된 것 같은, 그런 밀도의 냄새.
'이거 한두 마리 냄새가 아닌데.'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도현아?"
서아가 다시 불렀다. 목소리에 웃음기가 사라져 있었다. 얘도 눈치가 빠른 편이라 내가 이렇게 멈춰 서면 뭔가 있다는 걸 바로 안다.
"……몬스터가 많아. 평소보다."
내 말에 준서와 하늬의 표정이 굳었다. 하늬는 지팡이를 고쳐 잡으며 한 발 뒤로 물러섰고, 준서는 오히려 방패를 앞으로 바짝 당겼다. 둘 다 각자 방식으로 겁을 먹은 거다.
"얼마나요?"
하늬가 물었다. 목소리가 아까보다 한 톤 높아져 있었다.
나는 잠시 침묵했다. 정확한 숫자를 셀 수는 없었지만, 냄새의 층위만으로도 이건 4등급 던전에서 마주칠 만한 규모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종류도 하나가 아니었다. 늑대 계열의 짙은 누린내, 그 밑에 깔린 파충류 특유의 비린 습기, 거기에 뭔가 타는 듯한 매운 냄새까지—원래 흑월 미궁에서 나온다고 협회 자료에 적혀 있던 몬스터 종류보다 훨씬 많았다.
'이게 말이 되나.'
심사 던전이 이럴 수가 없는데.
"모르겠어. 그런데 많아. 확실히, 많아."
서아가 나를 쳐다봤다. 눈이 조금 흔들리고 있었다.
"도현아, 우리 그냥 돌아갈까?"
드물게 진지한 목소리였다. 얘가 이런 얼굴을 하면 진짜로 위험하다는 신호였다. 십오 년을 같이 지내면서 배운 게 있다면, 서아가 장난기를 완전히 지운 얼굴을 할 때는 절대 무시하면 안 된다는 거였다.
"돌아가면 심사는요?"
하늬가 끼어들었다.
"심사가 목숨보다 중요해요?"
서아가 되물었다.
"그, 그게……"
하늬는 말을 흐렸다. 승급이 급한 사정이 있는 듯했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그걸 따질 계제는 아니었다.
나는 다시 코를 킁킁거렸다. 냄새의 방향과 거리를 가늠해봤다. 아직 이쪽으로 다가오는 기척은 아니었다. 그냥, 저 안쪽 어딘가에 뭔가가 잔뜩 몰려 있는 상태였다. 문제는 그 '잔뜩'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잡힌다는 거였다.
'일단 좀 더 들어가서 확인은 해봐야 하나.'
그러다가 아니다 싶으면 그때 빠지면 된다. 나는 그렇게 판단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이게 얼마나 얕은 판단이었는지 새삼 느끼지만, 그 순간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조금만 더 들어가보자. 이상하면 바로 빠지고."
내 말에 서아는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었지만 더 반박하지 않았다. 준서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고, 하늬는 안도하는 기색을 애써 숨기며 지팡이를 다시 고쳐 잡았다.
그 말을 뱉는 순간, 미궁 안쪽 깊은 곳에서 낮게 울리는 소리가 전해져 왔다.
짐승 수백 마리가 동시에 발을 구르는 것 같은, 둔중한 진동이었다.
발밑의 돌바닥이 미세하게 떨렸다. 서아가 내 팔을 붙잡았다. 준서의 방패가 살짝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고, 하늬는 숨을 삼키는 소리를 냈다.
'……이거 진짜 잘못 걸렸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코를 킁킁거릴 필요도 없었다. 이제는 누구든 알 수 있을 만큼, 그 진동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