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나는 이도현. 척후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몬스터의 파도가 잠깐 소강상태에 들어간 사이, 통로 뒤쪽에 남은 몬스터 무리가 없는지 확인하고 오라는 건 내가 자원한 일이었다. 후각이 예민하니까 그런 역할은 늘 내 몫이었다. 각성자마다 특성이 다르다지만, 나는 유독 냄새에 민감했다. 피 냄새, 부패한 살덩이의 악취, 몬스터 특유의 비린 체취까지 구분해낼 수 있었다. 편리한 능력이지만 가끔은 저주 같기도 했다. 굳이 맡고 싶지 않은 것까지 다 맡아버리니까.
'하필 이런 능력이 왜 나한테.'
그런 생각을 하며 좁은 통로를 걸었다. 벽면에는 습기가 배어 있었고, 발밑에서는 자갈 부스러기가 밟히는 소리가 났다. 던전 특유의 냉기가 목덜미를 타고 올라왔다.
다행히 뒤쪽엔 별다른 기척이 없었다. 코끝에 걸리는 냄새도 없었고,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눈동자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안심하며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이제 다음 파도 오기 전에 좀 쉬어야겠는데.'
걸음을 서두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몸도 슬슬 지쳐가고 있었다. 처음 파도를 상대할 때만 해도 긴장 때문에 아드레날린이 솟았지만, 지금은 그 흥분도 가라앉고 순수한 피로만 남아 있었다.
'물 좀 마셔야겠다.'
허리춤에 매달린 물통을 만지작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좁은 통로를 돌아 파티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던 중, 나는 걸음을 멈췄다.
어둑한 벽 그늘 아래, 준서와 하늬가 있었다.
방패는 벽에 세워져 있었고, 두 사람은 서로 밀착한 채였다. 하늬의 손이 준서의 팔뚝을 꽉 붙잡고 있었고, 준서는 하늬의 어깨를 감싸안고 있었다. 청색 빛이 두 사람 사이에서 옅게 흘렀다.
'뭐야, 이거.'
순간 머릿속이 텅 비었다.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저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는 데 몇 초가 걸렸다. 마나 회복. 서아가 아까 말했던 그 스킬. 근데 서아가 아니라, 하늬가.
머릿속에서 정보들이 뒤늦게 정렬됐다. 하늬는 이 파티의 딜러였다. 협회가 이번 던전에 급조해서 붙여준 임시 파티원. 냉정하고 말이 짧은 성격이라 나와도 몇 마디밖에 안 나눴다. 준서는 탱커였고, 방패 하나로 몬스터 무리를 막아내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둘 다 서로 잘 아는 사이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오늘 처음 만난 팀이었으니까.
'근데 저건 뭔데.'
조금 떨어진 곳에 서아가 있었다. 서아는 벽에 등을 기댄 채, 그 광경을 등지고 서 있었다. 일부러 보지 않으려는 자세였다. 팔짱을 낀 채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리고 있었는데, 그 무심함이 오히려 더 부자연스러웠다.
'서아는 알고 있었던 건가.'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목구멍이 텁텁했다.
두 사람 사이의 빛이 서서히 사라졌다. 하늬가 먼저 몸을 떼며 옷매듭을 정리했다. 얼굴이 붉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여기서도 보였다.
"이제……됐어요."
하늬가 짧게 말했다.
"마나는……괜찮아요?"
준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목소리에 걱정이 배어 있었다.
"괜찮아요. 됐다니까요."
하늬의 말투가 다시 평소처럼 딱딱해졌다. 방금까지 붉었던 얼굴이 순식간에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그 전환이 어색할 정도로 빠르게 일어났다.
나는 그 자리에서 조금 더 서 있었다. 발소리를 내면 이 장면을 목격했다는 걸 들킬 게 뻔했다. 하지만 계속 숨어 있을 수도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발소리를 낼까, 말까. 몇 초를 그 자리에서 고민했다. 이건 마치 남의 집 창문 너머로 뭔가를 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보지 말았어야 하는 걸 봐버린 느낌.
결국 나는 일부러 발소리를 크게 내며 통로 안으로 들어섰다. 신발 밑창을 바닥에 세게 끌면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뒤쪽은 깨끗해."
내가 말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한 톤 높게 나온 것 같았지만, 다들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서아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다행이다."
서아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낮았다. 내 쪽을 보는 눈빛에 뭔가가 걸려 있었다. 미안함인지, 당황함인지 구분이 안 갔다.
준서와 하늬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각자 무기를 다시 집어들었다. 준서는 방패를 다시 어깨에 걸쳤고, 하늬는 지팡이를 다시 고쳐 잡았다. 손놀림이 지나치게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그게 더 눈에 밟혔다.
"다음 파도 오기 전에 마나 상태 체크할까요."
하늬가 담담하게 말했다. 아무 일 없었다는 투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금 본 것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못 본 척해야 하나.'
그게 제일 합리적인 선택 같았다. 지금은 전투 중이고, 다들 살아남는 게 우선이었다. 던전 안에서 사적인 문제로 파티를 흔들 수는 없었다. 협회 규정에도 그렇게 나와 있었을 거다. 임시 파티는 클리어까지만 함께하면 그 뒤엔 아무 상관 없는 사이가 된다고.
'그래, 그냥 넘어가자.'
머리로는 그렇게 정리했는데, 마음이 따라주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뭔가 갈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협회가 급조한 임시 파티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몇 시간을 같이 싸운 동료들이었다. 피를 뒤집어쓰고, 서로 등을 맡기고, 죽을 뻔한 순간을 함께 넘긴 사이였다. 그 사이에 이렇게 은밀한 거래가 있었다는 걸, 나는 몰랐다.
'서아는 알고 있었는데 나한테는 말 안 했네.'
그 생각이 들자 가슴 한쪽이 서늘해졌다. 별거 아닌 일일 수도 있었다. 마나가 부족한 딜러에게 회복 스킬을 나눠주는 건, 파티 운영상 흔한 일이니까. 근데 왜 그걸 나만 몰랐을까. 왜 나한테는 말도 안 하고 저렇게 몰래 처리했을까.
'나만 빼고 뭔가 있었던 건가.'
그런 유치한 생각까지 들었다.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도현아."
서아가 조심스럽게 나를 불렀다.
"응."
"괜찮아?"
"뭐가."
나는 짧게 대답했다. 일부러 아무것도 모른다는 투로.
서아는 잠깐 나를 바라보다가, 더 말을 잇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많은 걸 말해주는 것 같았다.
'뭐야, 진짜.'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이렇게 어정쩡하게 넘어가는 게 제일 짜증났다. 물어봐야 하나. 아니면 계속 모르는 척해야 하나. 답이 안 나왔다.
통로 저편에서 다시 낮은 진동이 시작됐다. 다음 파도가 오고 있었다. 벽을 타고 전해지는 진동이 발바닥까지 울렸다.
"다들 준비해요."
준서가 방패를 들며 말했다. 목소리에서 조금 전의 당황함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프로답게, 아니면 익숙하게, 순식간에 전투 모드로 전환한 얼굴이었다.
나는 검을 다시 고쳐 쥐었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 있었다. 몬스터를 상대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까 본 장면이 계속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이게 신뢰라는 건가.'
방금까지만 해도 나는 이 던전을 클리어하는 것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른 생각이 자꾸 끼어들었다. 이 파티에서, 이 사람들과,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함께해야 하는 건가 하는. 서로 다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모르는 게 있다면, 그게 지금뿐일까, 아니면 앞으로도 계속될까.
'그냥 던전 하나 클리어하면 헤어질 사람들인데 뭘 이렇게 신경 쓰는 거야.'
스스로 그렇게 정리하려 했지만, 정리가 잘 안 됐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이성적으로 딱딱 나눠지는 게 아니었으니까.
몬스터의 눈동자가 다시 어둠 속에서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붉고 노란 눈들이 통로 저편에서 점점 늘어났다. 숫자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나는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방금 본 장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서아의 시선이 옆에서 느껴졌다. 뭔가 말하려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순간, 통로 안쪽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훨씬 크고 낮은 울음소리가 울려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