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제물이 여신을 길들이다

3화

다현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어둠이 제단 주변을 감싸는 동안,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 흐느끼며 바닥에 이마를 짓누르듯 엎드렸는데, 그 광경이 서아에게는 마치 재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공기 중에는 타다 만 향의 냄새와, 그보다 진한 무언가의 냄새—피 냄새인지 흙냄새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 냄새가 뒤섞여 있었고, 서아는 그 냄새를 맡을 때마다 목구멍 안쪽이 조여드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밧줄로 묶인 손목이 이미 붉게 부풀어 오른 상태였는데도, 지금 이 순간 그런 통증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그동안 받은 것에 대한 대가를 이렇게 치르겠다는 뜻인가." 다현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지만, 그 차분함이 오히려 더 무서웠는데, 감정이 격해서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논리적인 판단으로 파괴를 결정하는 존재라는 걸 서아는 그 어조에서 읽어냈다. 마치 계산기를 두드리듯, 아니면 대본을 읊는 배우처럼 감정의 흔들림 하나 없이 죽음을 선고하는 목소리였다. 제단 근처의 작은 나무 한 그루가 다현의 시선이 스치는 순간 서서히 검게 물들며 잎이 바스러져 떨어지기 시작했고, 그 잎들이 바람도 없는 공중에서 재처럼 부서지며 흩어지는 모습을, 서아는 숨죽인 채 바라보았다. 나무 한 그루가 죽는 데 걸린 시간은 채 십 초도 되지 않았다. 저게 사람한테 향하면 얼마나 걸릴까.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소름 끼치도록 이성적이라는 사실에 서아는 스스로 놀랐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노인이 절규하듯 소리를 질렀다. "여신님, 부디… 마을에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노인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고, 이마가 흙바닥에 짓눌려 있는 채로도 두 손만은 기도하듯 맞잡혀 떨리고 있었다. 그 손등에는 세월의 흔적인 검버섯과 상처가 겹겹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모습이 서아의 눈에는 마치 오래된 세트장의 소품처럼, 지나치게 사실적이어서 오히려 가짜처럼 보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서아의 시야 한구석으로, 제단 뒤쪽 계단에 숨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작은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열두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였는데,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서아 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시선에는 이상하게도 서아를 향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섞여 있는 듯했다. 아이의 옷자락은 낡아서 여기저기 실밥이 풀려 있었고, 작은 어깨는 추위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계속해서 잘게 떨리고 있었다. '저 애가… 원래 제물이었던 건가.' 서아는 정확한 사정은 알 수 없었지만, 아이의 표정과 마을 사람들의 태도를 종합해보면 대략적인 그림이 그려졌고, 그 순간 이상하게도 화가 나기보다 안타까움이 먼저 밀려왔다. 저 아이 대신 자신이 여기 묶여 있는 거라면, 그건 딱히 억울한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그런데 왜 저 아이는 저렇게까지 죄책감 어린 얼굴을 하고 있는 걸까. 마을 사람들의 흐느낌 사이로, 서아는 자신이 아까부터 계속 숨을 얕게 쉬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폐 안 가득 공기를 채워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몸이 자꾸만 그 크기를 줄이고 있었다. 두려움이란 게 이렇게 물리적으로 몸을 오그라들게 만드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갔다. 다현은 여전히 무심한 얼굴로 나무를 완전히 검게 물들인 뒤, 이번에는 그 시선을 제단 근처의 오두막 지붕으로 옮겼는데, 그 지붕 아래에는 방금 그 소녀가 숨어 있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낡은 짚더미가 뭉개져 있었고, 그 위에는 작은 발자국 몇 개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다현의 눈빛이 그 발자국을 훑는 순간, 공기의 온도가 한 뼘쯤 더 떨어진 것 같았다. 서아는 그 미묘한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살갗에 닿는 공기가 갑자기 더 차가워졌고, 그건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었다. '설마 저 애를 노리는 건가.' 서아의 등줄기가 다시 얼어붙는 것과 동시에, 다현의 손끝에서 뻗어 나온 어둠이 오두막을 향해 천천히 뻗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 어둠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지면을 타고 흐르며, 닿는 곳마다 풀과 흙을 순식간에 색을 잃게 만들었다. 서아의 머릿속에서는 온갖 계산이 동시에 돌아가고 있었다. 저 아이가 죽으면 안 된다는 것, 그런데 자신은 지금 밧줄에 묶여 옴짝달싹 못 한다는 것, 그리고 저 존재가—다현이—순수하게 논리로만 움직이는 존재라면 감정에 호소하는 건 아무 소용이 없을 거라는 것. 그럼에도 서아는 몸이 먼저 반응했다. 머리가 결론을 내리기도 전에, 이미 목소리가 튀어나가고 있었다. 서아는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스스로도 명확히 설명할 수 없었지만, 몸이 먼저 움직였다. 밧줄에 묶인 손목을 억지로 비틀어 빼내려 애쓰며, 손목의 살가죽이 밧줄에 긁혀 쓰라린 감각이 스치는 것도 무시한 채, 목청을 최대한 크게 끌어올려 외쳤다. "잠깐만요!" 그 짧은 외침이 제단 주변의 정적을 깨뜨렸고, 엎드려 있던 마을 사람들 몇몇이 놀란 듯 고개를 들어 서아를 쳐다보았다. 그들의 눈빛에는 경악과 의아함이 뒤섞여 있었는데, 감히 여신 앞에서 저런 소리를 지르는 제물이라니, 하는 표정들이었다. 다현의 시선이 오두막에서 다시 서아 쪽으로 천천히 돌아왔는데, 그 눈빛에는 놀라움보다는 오히려 흥미에 가까운 무언가가 스치는 듯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서아는 그 시선이 자신의 얼굴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훑는 걸 느꼈고, 그 시선의 무게가 마치 손으로 턱을 들어 올리는 것처럼 묵직하게 느껴졌다. "제물이 감히 내게 말을 거는군." 다현이 내뱉은 그 한마디에는 조롱보다는 순수한 의아함이 담겨 있었는데, 서아는 그 반응이 자신이 예상했던 즉각적인 분노와는 다르다는 걸 느끼며 아주 잠깐 희망 비슷한 감정을 품었다. 적어도 당장 목이 잘리진 않겠구나, 하는 그 얕은 안도감이 스치는 동시에, 서아는 이 상황 자체가 얼마나 우스운지도 함께 자각했다. 죽기 직전의 인간이 상대의 반응 하나에 안도하다니. 하지만 다현의 손끝은 여전히 오두막을 향해 뻗어 있었고, 어둠은 조금씩 그 방향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그 어둠의 속도는 느긋했지만, 결국 닿을 거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서아는 그 어둠이 지붕에 닿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짐작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서아는 밧줄에 묶인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며,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머릿속에서 빠르게 정리하려 애썼다. 논리로는 이 존재를 설득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감정에도 호소가 안 될 것 같았다. 그럼 뭐가 남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때, 서아는 그냥 아무 말이나 해버리기로 했다. '죽기 전에 최애한테 말이라도 걸어보고 죽는 거지, 뭐.' 그런 자조적인 생각이 스치는 동시에, 서아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입을 열었다. 목덜미에 식은땀이 스며드는 게 느껴졌고, 다현의 눈동자가 정확히 자신을 향해 고정되어 있다는 사실이 온몸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서아는 입을 다물지 않았다.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