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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왕궁 대연회장의 샹들리에가 수백 개의 촛불을 매달고 흔들릴 때마다, 그 아래 모여 선 귀족들의 옷자락에도 빛이 부서져 내렸고, 은은한 현악 연주 소리와 잔을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낮게 깔린 웃음소리들이 뒤섞여 연회장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처럼 숨 쉬게 만들고 있었다. 설이연은 그 화려한 빛의 홍수 속에서도 유독 한 곳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이 자리에 모인 그 어떤 보석보다도, 그 어떤 화려한 드레스보다도 그녀의 눈을 붙잡아두는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하린의 머리 위에 얹힌 하얀 꽃, 다섯 장의 꽃잎이 마치 초승달이 이지러지는 순서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둥글게 배열되어 있는 그 모양을 보는 순간, 설이연의 손끝이 먼저 차갑게 식어 들어갔다. '월식수련……' 어린 시절부터 수천 번을 도감에서, 표본실에서, 심지어 악몽 속에서까지 마주해온 그 꽃의 이름을 속으로 되뇌는 동안, 설이연은 주변의 웅성거림도 음악도 모두 귀에서 멀어지는 것을 느꼈고, 오직 저 하얗고 아름다운 독의 결정체만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문득 어릴 적, 아버지의 서재에서 몰래 꺼내 읽었던 낡은 식물 도감의 한 페이지가 눈앞에 겹쳐 떠올랐는데, 그 페이지에는 붉은 글씨로 큼지막하게 '취급 금지'라는 도장이 찍혀 있었고, 어린 설이연은 그 무시무시한 경고 문구를 보고도 오히려 그 꽃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몇 번이고 그 페이지를 몰래 넘겨보곤 했었다. 월식수련은 아현 왕국 북부의 습지에서만 극히 드물게 자생하는 식물로, 꽃잎을 문질러 낸 즙을 흡입하면 신경이 서서히 마비되어 깊은 잠에 빠지고, 그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로 숨이 멎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학계에서는 이를 관상용으로도, 장식용으로도 절대 다루어서는 안 될 극약으로 분류해두고 있었다. 게다가 그 향은 처음에는 은은하게 시작되지만 실내처럼 밀폐된 공간에서 열기와 사람들의 숨결이 뒤섞이면 순식간에 농도가 짙어져, 지금처럼 수많은 인파가 밀집한 연회장이라면 그 위험성이 몇 배로 증폭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설이연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꽃이, 다른 누구도 아닌 제2왕자 이헌의 새로운 약혼녀 조하린의 머리를 장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설이연의 심장을 무겁게 내리눌렀다. '설마 저 사람은 저것이 무엇인지 정말 모르는 걸까……' 그럴 리가 없다고, 설이연은 속으로 되뇌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저 순수한 무지에서 나온 실수이기를, 자신이 지금 나서서 조용히 알려주기만 하면 아무 일 없이 지나갈 수 있는 작은 오해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저, 실례합니다." 설이연은 참지 못하고 조하린에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고, 조하린은 화사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가, 이내 그 웃음이 살짝 굳어지는 것을 스스로도 감추지 못했다. "머리에 꽂으신 그 꽃, 지금 당장 빼셔야 합니다." 설이연의 말에 주변에 있던 귀족들 몇이 이쪽으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고, 조하린은 손끝으로 꽃잎을 살짝 만지며 여유롭게 대답했다. "이건 그냥 예쁜 조화예요, 설이연 양. 걱정도 참 별스럽게 하시네요." 조화가 아니라는 것을, 설이연은 그 꽃잎의 결과 잎맥의 방향, 그리고 은은하게 풍기는 비릿한 향까지 모두 살아 있는 진짜 식물의 증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더는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조화라면 이렇게 향이 나지 않습니다. 잎맥 사이로 흐르는 저 미세한 진액도 조화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고요." "설이연 양은 참 별난 것에도 관심이 많으시네요. 그냥 조화라니까요." 조하린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웃음이 걸려 있었지만, 그 눈빛 깊숙한 곳에서 아주 짧게 흔들리는 무언가를, 설이연은 놓치지 않고 포착해냈다. "이건 월식수련입니다. 흡입하면 신경이 마비되고 최악의 경우 죽음에 이르는 독초예요. 지금 당장 벗어야 합니다." 연회장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는 것을, 설이연은 온몸의 피부로 느꼈다. 음악이 뚝 끊기고, 수십 개의 시선이 화살처럼 자신에게 꽂히는 그 순간, 설이연은 잘못한 것이 없다고 스스로를 다잡으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는 것을 직감할 수밖에 없었는데, 왕좌 옆에 앉아 있던 이헌이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헌의 걸음걸이는 평소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음에도, 설이연에게는 마치 재판정의 판사가 판결을 내리기 위해 걸어오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 사실이 스스로 생각해도 우스울 만큼 서글펐다. "지금 무슨 짓입니까, 설이연 양." 이헌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 담긴 경멸은 숨길 수 없을 만큼 짙었고, 설이연은 그가 자신의 편이 되어줄 것이라는 헛된 기대는 처음부터 품지 않았음에도, 막상 그 눈빛을 마주하자 가슴 한쪽이 뻐근하게 저려왔다. "전하, 저것은 독초입니다. 지금 당장 확인해보시면……" "그만하시오." 이헌이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끊었고, 연회장 안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해졌다. "조하린 양이 예쁘게 꾸민 것을 두고 독초라니, 기이한 상상력이시군요. 그러니 다들 그대를 그렇게 부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말에 몇몇이 나직하게 웃음을 흘렸고, 설이연은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두 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니 다들……' 기묘하고 음침한 여자, 식물 도감을 끌어안고 사는 미친 학자, 정상적인 대화를 나눌 줄 모르는 백작가의 흉물, 사교계에서 자신을 부르는 그 모든 별명들이 한꺼번에 귓속에서 되살아나는 듯했고, 지난 몇 년간 파티마다 자신을 향해 쏟아졌던 수많은 뒷담화와 손가락질의 순간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었으나, 설이연은 물러서지 않았다. "전하, 이건 상상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왕궁의 온실 관리자에게 물으시면……" "됐소." 이헌이 그녀의 말을 다시 한 번 잘라내며 조하린의 손을 잡아 자신의 옆으로 당겼고, 그 순간 조하린이 설이연을 향해 아주 짧게, 그러나 분명하게 웃어 보였는데, 그 웃음이 승리감에 젖어 있다는 것을 설이연은 놓치지 않았다. 그 웃음은 마치 오랫동안 준비해온 계획이 마침내 완성되었을 때 짓는 표정과 같았고, 순간 설이연의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소름이 훑고 지나갔다. "이런 무례를 더는 견딜 수가 없군요. 설이연 양, 그대와의 혼약은 오늘로 파기하겠습니다." 연회장 안에서 낮은 탄식이 흘러나왔지만 누구도 그녀를 위해 나서지 않았고, 익숙한 얼굴들, 한때는 서로 인사를 주고받았던 이들조차 시선을 피하며 조용히 고개를 돌리는 것을 보며, 설이연은 그 순간 자신이 완전히 혼자라는 사실을 몸으로 체감하며 다리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헌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마치 결심을 굳힌 듯 차갑게 이어 말했다. "이런 기이한 행실이 계속된다면 왕도 사교계 전체에 해가 될 것이니, 그대는 오늘 밤 안으로 왕도를 떠나시오." "전하……!" 설이연이 놀라 외쳤지만 이헌은 이미 등을 돌린 뒤였고, 조하린은 그의 팔에 매달려 걸어가며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 시선 속에는 명백한 조롱이 담겨 있어서, 설이연은 그 웃음을 마주한 채로 굳어버린 발을 억지로 떼어 연회장 밖으로 걸어 나가야만 했다.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에도 등 뒤에서는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들이 따라붙었는데, "역시 그 집안 딸답게 유별나다니까", "혼약이 파기되어도 할 말 없지 뭐" 하는 말들이 귀에 박히듯 꽂혔지만, 설이연은 그 어느 것에도 반응하지 않고 오직 앞만 보고 걸었다. 밤바람이 얼굴을 세차게 때리는 순간에도, 설이연의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의 의문만이 맴돌고 있었다. '조하린은 왜 그 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꽂았던 걸까……' 그 짧은 웃음, 승리감에 젖은 그 표정이, 단순한 무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차오르고 있었고, 만약 그것이 우연이 아니라면, 누군가 처음부터 이 모든 상황을 설계했다면, 그 목적이 무엇이었을지에 대한 두려운 상상이 뒤를 이었다. '설마 나를…… 저 자리에서 그렇게 만들려고?'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설이연은 걸음을 멈추고 자신이 지나온 연회장의 불빛을 돌아보았는데, 창문 너머로 여전히 환하게 빛나고 있는 그 화려한 공간이, 이제는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처럼 느껴져 가슴 한쪽이 서늘하게 비어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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