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청년의 얕은 숨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우는 동안, 설이연은 서둘러 임시로 조합한 자극제를 준비했는데,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스스로도 억누르지 못한 채로 시험관 속 액체의 농도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목덜미를 타고 올라왔지만, 지금 이 순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켜보는 것이야말로 더 큰 실패라는 것을 알았기에, 설이연은 떨리는 손을 애써 진정시키며 청년의 팔에 조심스럽게 주사를 놓았다.
삐––
맥박을 측정하는 기구에서 낮고 불안정한 신호음이 울렸고, 방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 소리에 집중되었다.
침묵이 방 안을 무겁게 짓눌렀다. 촛불의 심지가 타들어가는 소리마저 유난히 크게 들리는 듯했고, 설이연은 자신의 심장 박동이 그 신호음과 어긋나게 뛰는 것을 느끼며 숨을 삼켰다.
"버텨야 합니다……"
허담이 작게 중얼거리며 청년의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냈고, 설이연은 두 손을 꽉 맞잡은 채로 청년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속으로 간절하게 되뇌었다.
'제발……'
청년의 이름은 준호였다. 마을에서 나고 자라 어려서부터 습지 근방을 오가며 약초를 캐던 그가, 어쩌다 이런 낯선 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게 되었는지, 설이연은 아직 그 원인조차 명확히 짚어내지 못한 채였다. 다만 온몸의 혈색이 서서히 검푸르게 죽어가는 증상만은 낯설지 않았는데, 그것은 이헌의 궁에서, 그리고 이 변경의 진료소에서 이미 몇 차례 목격한 바로 그 증상이었다.
몇 분이 지나도록 청년의 상태는 나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은 채 위태롭게 유지되었고, 그 시간이 마치 몇 시간처럼 느껴지는 동안, 설이연은 자신의 지식이 이 사람 하나를 살리기에 충분한지 끊임없이 자문할 수밖에 없었다.
'왕도에서라면, 태의원의 온갖 처방과 약재가 있었을 텐데……'
그러나 지금 이곳은 변경이었다. 손에 쥔 것은 임시로 조합한 자극제와 얼마 남지 않은 약재뿐이었고, 그 부족함이 설이연의 가슴을 더욱 조여왔다. 그럼에도 물러설 수는 없었다. 이곳에서마저 자신이 무력해진다면, 대체 무엇을 위해 이 먼 곳까지 와서 사람들을 돌보고 있는 것인지, 그 존재의 이유마저 흔들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허담은 청년의 곁을 떠나지 않고 이마의 땀을 닦아주다가, 이따금 맥박 기구의 신호음에 귀를 기울이며 낮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늙은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설이연은 놓치지 않고 보았다. 오랜 세월 수많은 환자를 지켜본 노의원마저도 이 병 앞에서는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의 불안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밤이 깊어지고, 새벽의 푸른 기운이 창문 틈으로 스며들기 시작할 무렵, 마침내 청년의 맥박이 조금씩 안정을 찾기 시작했고, 허담이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며 설이연을 바라보았다.
"고비는 넘겼습니다. 완전히 나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청염초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이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설이연이 지친 목소리로 답하며 의자에 몸을 늘어뜨렸을 때,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듯한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밤새 긴장했던 어깨가 뻐근하게 저려왔고,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았지만, 이대로 잠들 수는 없다는 생각에 그녀는 애써 정신을 붙잡았다.
그때, 방 한쪽 구석에 놓인 청년의 소지품 바구니가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가족이 남기고 간 옷가지와 몇몇 개인 물품들 사이로, 낡은 종이 포장지 하나가 삐죽 튀어나와 있는 것을 발견한 설이연은, 무심코 그것을 집어 들었다가 손을 멈추고 말았다.
포장지 한쪽 귀퉁이에 붉은 인장이 찍혀 있었는데, 그 문양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건……'
왕궁 온실에서 관상용 식물을 유통할 때 사용하는 어용달 상표, 왕실의 인가를 받은 온실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그 특수한 인장이 분명했고, 설이연은 그것을 들여다보던 손끝이 서서히 차갑게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지난날 왕궁에 머물던 시절, 온실지기가 조심스레 다루던 그 인장을 몇 번이나 눈에 담았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것은 아무나 함부로 손댈 수 없는, 왕실의 허가 없이는 결코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물건에 붙는 표식이었다. 그런데 그 표식이 어째서 이런 변경의, 습지 근방 마을에서 사온 향낭 포장지에 찍혀 있단 말인가.
"허담 선생님, 이 포장지는 어디서 나온 겁니까."
설이연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고, 허담이 다가와 그것을 살펴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준호가 마을 저잣거리에서 향낭을 하나 사왔다고 했었는데, 그게 이 포장지 안에 들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만."
"이 인장은…… 왕도의 왕립온실에서만 사용하는 어용달 인장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허담의 얼굴에서도 핏기가 서서히 빠져나갔다.
"그렇다면, 이 습지 근방에서 자생한다고 여겼던 월식수련이……"
"자연적으로 퍼진 것이 아니라, 왕도에서 의도적으로 유통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설이연은 포장지를 손에 쥔 채 자리에서 일어섰고, 다리가 미세하게 후들거리는 것을 느끼면서도 애써 몸을 곧게 세웠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여러 갈래의 생각들이 뒤엉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저잣거리에서 팔리는 흔한 향낭에, 왕실만이 사용하는 인장이 찍힌 포장지가 함께 딸려 왔다는 것은 결코 우연으로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날 밤, 조하린이 꽂았던 그 꽃도…… 우연이 아니었어.'
이헌의 새 약혼녀 조하린이 지었던 그 승리감에 젖은 웃음이 다시금 선명하게 떠올랐다. 화려한 연회장 한복판에서, 머리에 꽂은 낯선 흰 꽃을 만지며 입꼬리를 슬며시 올리던 그 얼굴이. 당시에는 그저 값비싼 관상화를 자랑하려는 허영으로 여기고 넘겼던 그 장면이, 이제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고 있었다.
확신이 서늘하게 가슴을 파고드는 동시에, 만약 이것이 정말로 왕도에서 시작된 유통망의 일부라면, 지금 이 순간에도 왕도 어딘가에서 같은 병이 은밀하게 퍼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뒤따라 밀려왔다. 그것이 단순한 밀수라면 다행이었으나, 만약 누군가의 의도가 담긴 것이라면……. 이 병이 퍼지는 방향과 속도, 그리고 그것이 하필 변경과 왕도를 동시에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연이라 치부하기엔 너무나 정교했다.
그때 진료소 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달칵!
숨을 몰아쉬며 뛰어 들어온 병사 하나가 강하온을 찾으며 급하게 외쳤다. 그의 이마에는 땀이 흥건히 배어 있었고, 갑옷 자락은 급히 말을 달려온 흔적으로 흙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다.
"변경백님! 남쪽으로 보냈던 병력이 습지 근처에서 밀수 흔적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병사가 잠시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숨을 삼키는 그 짧은 정적 사이로, 설이연은 자신의 손에 쥔 포장지를 더욱 힘주어 움켜쥐었다.
"그 근처에서, 왕도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마차 한 대가 목격되었다고 합니다."
강하온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고, 설이연은 손에 쥔 포장지를 더욱 세게 움켜쥐며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결국 시작된 거야…… 왕도에서, 이미."
방 안에는 다시 정적이 내려앉았지만, 그 정적은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이제는 단순히 한 사람의 목숨을 지키는 문제가 아니었다. 왕도에서 시작되어 이 변경까지 뻗어온 그 은밀한 손길이, 대체 어디까지 퍼져 있으며 누구의 것인지, 그 답을 찾지 않으면 더 많은 준호들이 같은 병상에 눕게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