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옥사의 밤은 길었다.
돌벽에서 스며 나오는 냉기가 밤새 발끝을 타고 올라왔다. 유이슬은 무릎을 세우고 앉아 그 냉기를 견뎠다. 잠은 오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왕비의 마지막 얼굴이 떠올랐고, 눈을 뜨면 창살 너머의 어둠이 그 얼굴을 대신했다.
밤새 몇 번이나 발소리가 지나갔다. 순찰을 도는 병사들의 발소리였다. 무겁고 규칙적인 발소리. 갑주가 부딪히는 소리가 앞서 걸어왔고, 그 소리가 사라지면 다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 정적 속에서 유이슬은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세었다.
며칠이 지났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옥사에는 해가 들지 않았다. 다만 식사가 들어오는 간격으로 낮과 밤을 어림잡을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밥그릇이 들어온 게 언제였는지 떠올리려 했지만, 기억은 흐릿하게 흩어졌다.
다음 날 아침, 옥사에 낮은 발소리가 다시 울렸다.
이번엔 병사가 아니었다. 발소리에 무게가 없었다. 조심스러운, 살금살금 다가오는 발소리였다.
유이슬은 몸을 일으켜 창살 쪽을 바라보았다.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몸이 먼저 알아챈 것이었다.
한 여인이 서 있었다. 궁녀의 복색을 하고 있었지만, 얼굴은 눈에 익은 얼굴이 아니었다. 나이는 이십 대 후반쯤 되어 보였고, 눈매가 날카로웠다. 그녀 뒤로, 지팡이를 짚은 늙은 남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흰 수염과 굽은 등, 손에 든 약낭. 늙은 의관이었다.
두 사람의 옷자락에서 옥사의 냄새와는 다른 냄새가 났다.
향낭 냄새. 그리고 그 밑에 깔린, 오래된 약재 냄새.
"누구십니까."
유이슬이 조심스레 물었다.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며칠간 제대로 말을 하지 않은 탓이었다.
여인이 낮게 대답했다.
"왕비 마마를 모셨던 시녀입니다. 저는 소하라 합니다."
늙은 의관도 가까이 다가와 목소리를 낮췄다.
"나는 궁의 의관 박노인이오. 마마의 병을 오래 살폈던 사람이지."
유이슬은 두 사람의 눈빛을 살폈다. 두려움과 결의가 동시에 담긴 눈빛이었다.
소하의 손은 소매 속에서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을 감추려는 듯, 그녀는 손을 계속 옷자락 아래로 밀어 넣었다. 박노인의 지팡이를 쥔 손등에는 핏줄이 도드라져 있었다. 오랫동안 힘을 준 손이었다.
"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위험한 일 아닙니까."
소하가 주위를 살피며 목소리를 더욱 낮췄다. 그녀의 시선이 옥사 통로 끝을 향했다가, 다시 유이슬에게로 돌아왔다.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이곳에 온 것이 발각되면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요. 그래도 와야 했습니다."
"왔어야 했습니다." 박노인이 그 말을 되풀이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오래 눌러온 무게가 있었다.
박노인이 약낭에서 작은 천 조각을 꺼냈다. 천 조각에는 검붉은 얼룩이 배어 있었다. 얼룩의 가장자리는 갈색으로 말라 있었고, 중심부는 아직도 짙은 색을 띠고 있었다.
"이것은 마마의 침전에서 나온 것이오. 마마가 마지막으로 드셨던 탕약 그릇을 닦았던 천이지."
유이슬은 그 천 조각을 바라보았다.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런데요."
"이 얼룩. 예사롭지 않소."
박노인이 천 조각을 코앞으로 가져가 냄새를 맡는 시늉을 했다.
"나는 삼십 년 넘게 의관 노릇을 했소. 이런 색과 냄새는 한 가지 독초에서만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소."
유이슬의 숨이 멎었다.
"독초라니요."
"금란초라 부르는 것이오."
박노인이 천 조각을 다시 약낭 안으로 넣으려다, 잠시 멈추고 유이슬 쪽으로 조금 더 내밀었다.
"귀한 만큼 구하기 어렵고, 아는 사람만 다룰 수 있는 약재요. 소량이면 약이 되지만, 과하면 심장을 멈추게 하지. 마마가 돌아가시기 전날 밤, 마마의 탕약에 이 금란초가 섞여 있었소."
"확실합니까."
"삼십 년이오." 박노인의 목소리가 낮게, 그러나 단호하게 울렸다. "이 색과 이 냄새를 잘못 볼 수는 없소."
소하가 이어 말했다.
"그런데 그 탕약은 성녀님이 다녀가신 뒤에 새로 올려진 것이었습니다. 성녀님이 손을 대신 탕약이 아닙니다."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제가 직접 그 탕약을 침전 앞까지 가져갔습니다. 성녀님이 다녀가신 것을 확인하고서요. 그러니 저는 압니다.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렇다면 누가—"
유이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노인이 손을 들어 저지했다.
"함부로 이름을 입에 담지 마시오. 여기서 우리가 하는 말이 새어나가면, 성녀님뿐 아니라 우리도 목숨을 잃소."
옥사 안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딘가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똑, 똑. 규칙적인 소리였다.
"그 천 조각을 제게 주십시오. 제가 직접 지키겠습니다"
"문초에서 반드시 이 증거를 꺼내 진실을 밝히겠습니다."
유이슬의 목소리에 옅은 기대가 섞였다. 스스로도 그 기대가 얼마나 무모한지 알고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붙잡고 싶었다.
소하가 고개를 저었다.
"증거를 가져가도 받아줄 곳이 없습니다. 이미 조정의 대신들 사이에서는 성녀님을 죄인으로 몰기로 뜻이 모인 듯합니다. 저희가 가진 이 천 조각 하나로는, 대신들의 뜻을 뒤집기 어렵습니다."
"이미 뜻이 모였다니요. 재판도 열리지 않았는데."
"재판은 형식일 뿐입니다." 소하의 목소리가 씁쓸했다.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는 듯합니다. 저희가 궁 안에서 오가는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성녀님의 죄를 확정 짓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일인 모양입니다."
"누군가에게 필요하다니, 그게 무슨—"
"그럼 왜 저에게 이걸 알려주시는 겁니까."
유이슬이 다시 물었다.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었다.
박노인이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늙고 흐릿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또렷했다.
"진실을 아는 사람이 하나라도 더 있어야, 나중에라도 그것이 밝혀질 여지가 남소.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유이슬이 그 말을 되뇌었다.
"세상일이란 게 그렇소." 박노인이 지팡이를 고쳐 짚었다. "당장 뒤집을 수 없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균열이 생기지. 그 균열을 만드는 것은 결국 진실을 아는 사람들이오."
박노인이 낮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마지막 탕약을 올린 이는, 왕태자 전하의 측근 시종이었소."
유이슬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손끝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누구입니까."
소하가 입을 열려는 순간, 옥사 저편에서 요란한 발소리와 함께 고함이 울렸다.
"누구냐! 거기 누구 있느냐!"
박노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들킨 모양이오."
소하의 손이 급하게 움직였다. 그녀는 유이슬의 손을 창살 사이로 끌어와, 그 천 조각을 손바닥 위에 얹었다.
"이것만은 가지고 계십시오. 언젠가 쓰일 날이 있을 겁니다."
"소하 님, 그 이름은—"
"다음에!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소하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끊겼다. 그녀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박노인의 팔을 붙잡아 끌었다.
두 사람은 급히 몸을 돌려 옥사 반대편 통로로 사라졌다. 지팡이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다급하게 멀어져갔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병사들의 갑주가 부딪히는 소리, 창을 든 발걸음 소리가 옥사 전체를 채웠다.
유이슬은 급히 천 조각을 옷 안쪽 깊숙이 숨겼다. 손끝이 그 천의 감촉을 기억하려는 듯 잠시 머뭇거렸다. 마른 얼룩의 거친 질감이 손끝에 남았다.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숨을 고르려 했지만, 숨은 자꾸 얕아졌다. 옷깃을 여미는 손이 떨렸다.
병사들이 감방 앞에 멈춰 섰다. 서너 명이었다. 창끝이 등불에 번쩍였다. 그중 하나가 창살을 두드렸다.
쾅.
그 소리에 유이슬의 몸이 움찔했다.
"방금 이 안에 누가 들어왔었나."
유이슬은 고개를 저었다. 표정을 다잡으려 애썼다. 두려움을 감추는 법을 그녀는 몰랐다. 다만 침착해 보이려 노력할 뿐이었다.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병사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훑어보았다. 등불이 그의 얼굴 아래쪽을 붉게 물들였다. 눈빛만은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시선이 그녀의 옷깃 근처에서 멈췄다.
숨이 멎을 듯한 순간이었다.
시간이 늘어지는 것 같았다. 병사의 눈이 그녀의 옷깃에서 목덜미로, 다시 옷깃으로 오갔다.
병사가 손을 뻗어 창살 사이로 그녀의 옷깃을 잡아당기려 했다.
유이슬은 몸을 뒤로 물렸다. 그러나 물러날 공간은 좁았다. 등이 차가운 벽에 닿았다.
그 순간, 옥사 저편에서 다른 병사의 외침이 들렸다.
"여기다! 침입자를 찾았다!"
감방 앞의 병사가 손을 멈췄다. 잠시 그녀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아직 의심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곧 몸을 돌려 그쪽으로 달려갔다.
갑주 소리가 멀어졌다. 창을 끄는 소리, 발걸음 소리가 뒤엉켜 통로를 채웠다가, 점점 옥사 안쪽으로 사라졌다.
유이슬은 그 자리에 굳은 채 서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옷 속에 숨긴 천 조각을 꼭 움켜쥐었다.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소하와 박노인이 무사히 도망쳤는지, 아니면 붙잡혔는지 알 수 없었다.
멀리서 다시 고함과 뒤엉킨 발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의 비명 같은 소리도 섞여 있었다. 여자의 목소리였는지, 남자의 목소리였는지 구분할 수 없었다. 소리는 짧게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졌다.
유이슬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숨을 죽이고, 벽에 몸을 붙인 채로.
만약 소하가 붙잡혔다면. 만약 박노인이 붙잡혔다면.
그 생각이 들자 손끝이 더 차가워졌다. 자신의 죄를 벗기 위해 온 사람들이, 오히려 자신 때문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 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유이슬은 숨죽인 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등불의 그림자가 조금씩 길어졌다가 짧아졌다.
이윽고 옥사 전체가 다시 조용해졌다. 발소리도, 고함도 더는 들리지 않았다.
유이슬은 천천히 옷 속에서 손을 뺐다. 손바닥을 펴 그 천 조각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검붉은 얼룩. 마른 가장자리와, 아직 짙은 색을 간직한 중심부.
이것 하나가, 왕비의 죽음이 사고가 아니었음을 말해주는 유일한 물증이었다.
그리고 이것을 가져온 두 사람은, 지금 이 순간에도 목숨을 걸고 도망치고 있을지 몰랐다.
손안의 천 조각 하나가, 이제 그녀에게 남은 유일한 진실의 조각이었다.
유이슬은 그것을 옷 안쪽에 다시 조심스레 밀어 넣었다. 심장 가까운 곳에.
누군가 그것을 찾아내기 전까지는, 이 천 조각이 그녀를 살릴 유일한 끈이었다.
하지만 그 조각을 세상에 내보일 방법은, 아직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소하가 말하려던 그 이름. 왕비의 마지막 탕약을 올린 이의 이름. 그 이름을 듣지 못한 채, 두 사람은 사라졌다.
유이슬은 어둠 속에서 그 이름의 자리를 계속 곱씹었다. 누구일까. 누가 그토록 대담하게, 그토록 은밀하게 왕비의 탕약에 손을 댈 수 있었을까.
그 답을 찾기도 전에, 옥사 저편에서 또 다른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무거운 발소리였다. 여러 사람의 발소리였다. 갑주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낮게 주고받는 말소리가 섞여 있었다.
유이슬의 몸이 다시 굳었다.
그 발소리는 점점 그녀의 감방 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