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일주일이 지나자 나는 겨우 부엌까지 걸어갈 수 있게 되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문지방을 넘는 데만 사흘이 걸렸다. 처음에는 벽을 짚고, 다음에는 지팡이 대신 나뭇가지를 짚고, 그리고 마침내는 아무것도 짚지 않고 걸었다. 그 사흘 동안 비취는 옆에서 팔짝팔짝 뛰며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거기서 넘어지면 진짜 다시 못 일어나. 알아?"
"안 넘어져요."
"장담하지 마. 인간들은 다 그렇게 말하고 넘어지더라."
그리고 나는 넘어지지 않았다. 그게 조금 자랑스러웠다.
부엌은 작았지만 필요한 것들은 다 있었다. 선반 위에는 밀가루 비슷한 곡물 가루가 자루째 쌓여 있었고, 그 옆에는 짚으로 엮은 바구니 안에 달걀 몇 개가 놓여 있었다. 구석 항아리에는 산양의 젖으로 만든 것 같은 하얀 유제품이 담겨 있었는데, 냄새를 맡아보니 신선했다.
나는 그것들을 눈으로 훑었다.
'가루와 달걀, 그리고 이 정도 묽기의 젖.'
손끝이 저절로 움직였다.
'이 비율로 섞으면, 얇게 부칠 수 있을 것이다.'
어디서 배운 지식인지 나는 몰랐다. 이 세계에 떨어진 뒤로 종종 이런 순간이 있었다. 몸이 기억하는 것과 머리가 기억하는 것 사이에 이상한 간극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간극을 파고들 여유가 없었다. 배가 고팠고, 손은 이미 그릇을 찾고 있었다.
나는 가루와 달걀과 젖을 그릇에 넣고 나무 숟가락으로 섞기 시작했다. 처음엔 뭉치고 덩어리졌지만, 물을 조금 더 넣고 계속 저으니 점점 부드러워졌다.
"뭐 하는 거야."
비취가 창턱에서 포르르 날아와 그릇 가장자리에 앉았다. 자그마한 얼굴을 그릇 안으로 바짝 들이밀고는 반죽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이상한 반죽이네. 색깔도 이상하고."
"조금만 기다려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사실 나도 확신은 없었다. 그냥 손이 시키는 대로 하고 있을 뿐이었다.
화덕에 불을 살리는 것도 이제는 익숙했다. 넓은 철판을 올리고, 손끝에 기름을 살짝 묻혀 표면에 문질렀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기름이 자잘하게 튀었다. 나는 반죽을 국자로 떠서 철판 위에 붓고, 재빨리 얇게 펴 발랐다.
노릇한 냄새가 부엌 안에 퍼지기 시작했다.
비취가 코를 벌리고 킁킁거리며 냄새를 따라 몸을 움직였다. 작은 날개가 흥분한 듯 파르르 떨렸다.
"이거 냄새 좋은데. 이거 먹는 거지? 먹는 거 맞지?"
"조금만 더요."
가장자리가 살짝 갈색으로 변하는 순간, 나는 나무 뒤집개로 반죽을 뒤집었다. 반대쪽 면도 노릇해질 때까지 기다린 뒤, 접시에 옮겼다. 얇고 동그란 전 한 장이 완성되었다.
그 위에 숲에서 채집해온 산딸기를 얹었다. 손가락으로 살짝 으깨어 붉은 즙이 배어 나오게 만들고, 남은 알맹이는 그대로 흩뿌렸다.
"이게 뭐야."
비취가 다가와 코를 킁킁거렸다.
"먹어봐요."
비취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한 번, 접시를 한 번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아주 조그맣게, 정말 손톱만큼 한 조각을 뜯어 물었다.
그리고 잠시 멈췄다.
"…맛있잖아!"
비취가 소리쳤다. 어찌나 큰 소리였는지 창밖의 새들이 놀라 날아갈 정도였다.
"뭐야 이거, 이런 걸 어디서 배웠어? 인간, 너 요리사였어?"
"그냥, 어쩌다 떠올랐어요."
나는 애매하게 대답했다. 사실이었다. 나도 내가 왜 이걸 아는지 몰랐으니까.
비취는 남은 조각까지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이번엔 접시를 통째로 핥으려는 기세로 다가왔다. 나는 얼른 접시를 뒤로 뺐다.
"하나 더 먹으면 배 아파요."
"내가 요정인데 배가 왜 아파!"
"그럼 마음대로 해요."
비취는 삐죽거렸지만 결국 손을 뻗지 않았다.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이헌이었다.
그는 문턱에 서서 부엌 안의 낯선 냄새에 잠시 멈춰 섰다. 붉은 눈이 좁혀지며 실내를 훑었다.
"뭐지."
목소리에는 경계심이 섞여 있었다. 마치 이 냄새가 무슨 함정인지 확인하려는 듯했다.
"먹어보세요."
나는 새로 부친 전 한 장을 접시에 담아 내밀었다.
이헌은 잠시 의심스러운 눈으로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손끝으로 조각을 집어 들 때조차 신중한 태도였다. 그러다 입에 넣었다.
그 무표정한 얼굴이 아주 미세하게, 정말 미세하게 풀리는 걸 나는 놓치지 않았다. 눈썹 사이의 힘이 살짝 빠지고, 씹는 속도가 처음보다 느려졌다.
"괜찮네."
그가 짧게 말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별 감정 없는 말로 들렸겠지만, 나는 이제 그의 짧은 말들 사이에 숨은 온도차를 조금씩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비취가 옆에서 팔짝 뛰었다.
"괜찮은 게 아니라 최고야! 인간, 이거 또 만들 수 있어? 매일 만들어줘!"
"재료만 있으면요."
"좋아, 그럼 인정할게. 넌 최소한 요리는 할 줄 아는 인간이야."
비취가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처음 만났을 때와는 확실히 다른, 훨씬 부드러운 온도가 섞여 있었다.
처음 이 집에 들어왔을 때, 비취는 나를 향해 곧바로 날아와 부리로 쪼려 들었다. 이헌은 아예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
나는 그 순간, 아주 조금이지만 이 작은 집 안에서 내가 있을 자리가 생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얹혀사는 처지에서, 무언가 쓸모 있는 존재로.
이헌이 남은 조각을 마저 먹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문득 멈췄다.
나는 그 정지를 놓치지 않았다. 방금까지 씹고 있던 턱이 그대로 멈췄고, 접시를 든 손끝이 굳었다.
"…이헌?"
비취가 그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목소리에서 방금까지의 장난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헌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접시를 내려놓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숲의 어느 한 지점을 응시하고 있었다.
동작 하나하나가 지나치게 조용했다. 마치 소리를 내면 뭔가가 알아챌 것처럼.
"왜 그래요?"
내가 물었다. 목이 살짝 마르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것도."
그가 말했다. 하지만 목소리에는 방금까지와 다른, 낮게 가라앉은 긴장이 섞여 있었다. 그 짧은 대답이 오히려 더 불안하게 들렸다.
창밖 숲 저편에서,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아주 희미하게 들려온 것 같았다.
나는 숨을 죽였다. 비취도 더는 팔짝거리지 않았다. 부엌 안의 노릇한 냄새와는 어울리지 않는, 서늘한 침묵이 우리 셋 사이에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