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전하, 저는 이제 용입니다

2화

새벽이었다. 아직 동이 트기 전, 하늘이 먹빛에서 겨우 남색으로 바뀌어가는 시각이었다. 공작저는 고요했다. 그 고요함이 깨진 것은 문 두드리는 소리 때문이었다. 쾅쾅쾅- 문 두드리는 소리가 유난히 거칠었다. 평소의 시비라면 이런 시각에 이렇게 문을 두드릴 리 없었다. "공녀님! 큰일 났습니다!" 시비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목소리 끝이 갈라져 있었다. 울음을 참는 듯한 소리였다. 서린은 잠에서 채 깨지 못한 채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무거웠다. 어젯밤 늦도록 상단의 장부를 확인하다 겨우 눈을 감은 참이었다. '무슨 일이지.' 아직 정신이 온전히 돌아오지 않은 채로, 서린은 이불을 젖히고 몸을 일으켰다. 문이 열리기도 전에, 밖에서 여러 명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절도 있고, 무겁고, 한 명이 아닌 소리였다. 그 발소리를 들은 순간 서린의 몸이 먼저 반응했다. 등줄기를 따라 소름이 훑고 지나갔다. '이건 시비의 발소리가 아니다.' 오래 무예를 익힌 자의 감각이 먼저 위험을 알렸다. 쾅- 방문이 거칠게 열렸다. 경첩이 부서질 듯한 소리를 냈다. 금위군 복장을 한 자들이 방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열 명은 되어 보였다. 좁은 침소를 순식간에 채웠다. 선두에 선 자의 갑주에는 금빛 술이 달려 있었다. 왕실 근위대의 표식이었다. 서린도 익히 아는 문양이었다. 왕태자를 가장 가까이서 호위하는 자들만이 달 수 있는 술이었다. "이서린!" 선두의 무사가 소리쳤다. 목소리에 조금의 예의도 담겨 있지 않았다. "왕태자 암살 미수의 혐의로 그대를 포박한다!" 서린의 몸이 그대로 멈췄다.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은 듯했다. '지금... 뭐라고 했지.' 머릿속이 하얗게 비었다. 방금 들은 말이 도무지 이어지지 않았다. 왕태자, 암살, 미수. 그 세 단어가 자신의 이름과 나란히 놓일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겨우 짜낸 목소리가 떨렸다. 스스로도 목소리가 이렇게 갈라지는 것이 낯설었다. "모른다고 잡아뗄 생각은 하지 마라." 무사가 손을 들자 뒤따르던 병졸들이 서린의 양팔을 붙잡았다. 손아귀의 힘이 억셌다. 잠옷 소매 위로도 손톱이 파고드는 느낌이 났다. "놓으십시오!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서린이 몸을 뒤틀며 저항했지만, 병졸의 힘은 완강했다. 발을 딛고 버텨보려 했으나, 맨발이 마룻바닥 위에서 헛되이 밀려났다. '이렇게 끌려 나갈 수는 없다.' 하지만 두 명이 붙잡은 팔은 그녀의 반항을 가볍게 짓눌렀다. "이것을 아는가." 무사가 품에서 작은 병을 꺼내 들었다. 검은 유리병이었다. 뚜껑에는 은으로 된 매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등불 빛을 받은 유리 표면이 검게 번들거렸다. 서린의 눈이 그 병에 못 박혔다. '저건...' 낯이 익었다. 매화 문양은 왕실 상단에서 종종 쓰는 표식이었다. 하지만 소지한 적은 없었다. 확신할 수 있었다. "모르는 물건입니다." 서린이 단호히 말했다.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모른다? 이것이 그대의 처소에서 발견됐다는데도?" 무사가 비웃음을 흘렸다. 입꼬리가 비틀렸다. "태자 전하의 야참에 들어갈 뻔한 독이 여기 담겨 있었다. 다행히 시식하는 자가 먼저 알아챘지." 서린의 다리에서 힘이 빠졌다. '처소에서 발견됐다니. 그럴 리가 없다.' 그녀는 자신의 침소를 떠올렸다. 아무도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곳이었다. 시비들조차 정해진 시간에만 출입했다. 문에는 늘 자물쇠가 걸려 있었고, 열쇠는 서린 자신과 유모만이 지니고 있었다. "어디서 발견됐다는 겁니까." 서린이 물었다. 이번에는 떨림보다 의문이 앞섰다. "그대의 문갑, 옷가지 아래에서." 무사가 짧게 답했다. "숨기려 한 흔적이 역력했다더군." "저는 그 병을 본 적조차 없습니다." "본 적이 없다는 말은 이미 여러 번 들었다." 무사가 냉소했다. "그러니 재판정에서 하란 말이다." "누군가 저를... 모함하는 겁니다." 서린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이번에는 억눌러지지 않았다. 누가, 언제, 어떻게 그 물건을 문갑 안에 넣었는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유모조차 이 사실을 몰랐을 것이었다. "그런 말은 재판정에서 하시오." 무사가 손짓하자 병졸들이 그녀를 끌어당겼다. 잠옷 자락이 문지방에 걸려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그 소리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아버님을 뵙게 해주십시오. 최소한 아버님께는..." "허락되지 않았다." 무사가 말을 잘랐다. 단호했다. 재고의 여지조차 없는 어조였다. 서린은 그대로 방 밖으로 끌려나갔다. 새벽 공기가 살갗을 찔렀다. 맨발에 닿는 돌바닥의 냉기가 온몸을 타고 올라왔다. 잠옷 한 장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한기였다. '침착해야 한다. 침착해야 한다.' 서린은 속으로 되뇌었다. 하지만 되뇌는 것과 실제로 침착해지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 정원을 지나며 서린은 저 멀리 불이 켜진 아버지의 서재를 보았다. 창문 안쪽으로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이헌 공작이었다. 불빛 속에서 아버지의 그림자는 서재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듯했다. 이 새벽에 이미 일어나 있다는 것은, 무언가를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버님!" 서린이 소리쳤지만, 병졸의 손이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손바닥에서 옅은 가죽 냄새가 났다.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조용히 해라." 무사의 목소리는 냉랭했다. "공작저 안에서 소란을 피우는 것은 그대에게도 좋을 것이 없다." 서린은 저항을 멈췄다. 저항할수록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늘 말했었다. '힘없는 저항은 스스로를 더 다치게 할 뿐이다. 때를 기다려야 한다.' 어릴 적, 상단의 경쟁 가문이 부당한 트집을 잡아왔을 때도 아버지는 같은 말을 했었다. 그때 서린은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대들었다가, 오히려 상대에게 꼬투리를 하나 더 쥐어준 적이 있었다. 그 기억이 지금 다시 떠올랐다. 그 말을 지금 되새기는 것이 씁쓸했다. 병졸들의 손에 이끌려 정원을 지나는 동안, 서린의 시선은 계속 서재의 창문에 머물렀다. 그림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딸이 끌려가는 것을 알면서도 나오지 않는 것처럼. '설마 아버님도...' 그 생각을 서린은 서둘러 지웠다. 지금은 의심을 늘릴 때가 아니었다. 마차에 태워지는 동안, 서린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대체 누가 그 병을 내 처소에 두었나.' 독약을 아는 자, 그것을 심을 수 있는 자, 그리고 그것으로 서린을 파멸시키고 싶어 할 자. 그 세 가지를 모두 만족하는 인물이 누구인지, 그녀는 아직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머릿속으로 얼굴들을 하나씩 떠올려 보았다. 상단의 경쟁자들, 궁 안의 정적들, 심지어 가까이 지내던 이들까지도. 그러나 그중 누구도 공작저의 깊은 곳까지 손을 뻗을 수 있을 만큼 대담하지는 않았다. '왕실 사람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 생각이 들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마차 문이 닫혔다. 덜컹- 바퀴가 돌기 시작했다. 궁정의 지하 감옥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마차 안은 좁고 어두웠다. 맞은편에 앉은 병졸 하나가 서린을 힐끔거렸다. 동정도 아니고 경멸도 아닌, 그저 흥미로운 구경거리를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저들에게는 나도 그저 지나가는 죄인 하나일 뿐이겠지.' 서린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피할 이유가 없었다. 서린은 창살 없는 작은 창으로 새벽하늘을 바라보았다. 별 하나가 유난히 밝게 빛났다. 그 별을 보며 서린은 문득 지난밤을 떠올렸다. 평범한 밤이었다. 장부를 정리하고, 유모와 짧게 이야기를 나누고, 잠들기 전 창밖을 잠시 바라본 것이 전부였다. 그 평범한 밤과 지금의 이 새벽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서린은 도무지 이어 붙일 수 없었다. '주헌 전하는 알고 계실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들자마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왕태자와 얼마 전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짧았지만 다정했던 말들, 서로를 향한 미묘한 신뢰의 눈빛. 그것이 모두 거짓이었을 리는 없다고, 서린은 믿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알면서도 침묵했다면, 그것은 또 다른 종류의 배신이었다. 마차는 계속 달렸다. 새벽의 궁정 거리를 지나, 지하로 향하는 어두운 통로로 접어들었다. 바퀴 소리가 점점 더 낮게, 더 무겁게 울렸다. 서린은 두 손을 모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손끝이 차가웠다. '누구든, 반드시 밝혀낸다.' 그것만이 지금 그녀가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다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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