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전하, 저는 이제 용입니다

3화

재판정은 냉기로 가득했다. 대현국의 법정은 왕실 직속의 재판관이 주재했고, 그 위로 왕과 왕태자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높은 천장 아래 늘어선 기둥마다 대현국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으나, 서린의 눈에는 그것조차 낯설게 보였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그녀가 자유롭게 드나들던 궁의 일부였다. 서린은 죄인의 자리에 무릎을 꿇린 채 앉아 있었다. 손목에는 밧줄이 감겨 있었고, 며칠 동안 씻지 못한 몸에서는 냉기가 배어 나왔다. 옷자락은 흙과 핏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감옥의 벽에 등을 기대고 잠을 청했던 밤들이 몸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이곳에 서는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서린은 속으로 되뇌었다. 무릎이 차가운 바닥에 닿을 때마다 그 생각이 더욱 선명해졌다. 재판정을 가득 채운 대신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꽂혔다. 몇몇은 동정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대부분은 이미 결론이 난 사안을 지켜보는 듯한 무심함을 띠고 있었다. "증인, 강소이는 앞으로 나오라." 재판관의 목소리가 정적을 갈랐다. 서린의 시선이 흔들렸다. '소이가... 증인이라고?'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는 것 같았다. 5년을 함께 지낸 벗의 이름이 이런 자리에서 불릴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강소이가 재판정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복숭아빛 머리카락이 등 뒤로 흘러내렸다. 걸음걸이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는데, 서린은 그 미소가 이토록 낯설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저 미소를... 나는 몇 번이나 보았던가.' 서린은 생각했다. 꽃놀이를 갈 때도, 밤늦게 처소에서 수다를 떨 때도 소이는 저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때의 미소와 지금의 미소는 같은 얼굴에서 나왔음에도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소이야." 서린이 낮게 불렀다. "제발, 진실을 말해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사흘간 제대로 물을 마시지 못한 탓이었다. 강소이는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재판관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 뒷모습이 서린에게는 벽처럼 느껴졌다. "증인은 사건 당일 무엇을 보았는가." 재판관이 물었다. "서린 공녀가... 검은 유리병을 문갑에 숨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강소이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또렷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재판정 안이 순간 소란스러워졌다. 대신들 사이에서 낮은 탄식과 수군거림이 오갔다. "거짓말이야!" 서린이 몸을 일으키려다 병졸의 손에 다시 눌려 앉혀졌다. 어깨를 짓누르는 손의 힘이 뼈에까지 전해졌다. "소이야, 왜 이런 거짓을..." "저는 본 대로 말할 뿐입니다." 강소이가 서린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 안에는 미안함 같은 것은 조금도 담겨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 눈빛에는 서린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냉정함이 서려 있었다. 마치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하듯. '이 아이가 5년을 함께한 친우였다.' 서린은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어릴 적 함께 꽃놀이를 다니고, 밤새 수다를 떨던 그 아이가.'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 하나를 나눠 쓰고 걷던 기억, 열이 올랐을 때 밤새 이마를 짚어주었던 손길, 그 모든 순간이 지금 이 자리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강소이는 그때의 그녀가 아니었다. "저는 이의를 제기하겠습니다." 서린이 목소리를 높였다. "제 처소에 그 누구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습니다. 소이가 어떻게 그것을 보았다는 겁니까? 제 처소를 지키는 시녀들의 증언은 어디 있습니까!" "공녀는 발언권이 없다." 재판관이 손을 저었다. 그 손짓은 파리를 쫓는 듯 가벼웠다. "제가 피고입니다! 최소한의 항변조차 허용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불필요하다." 재판관의 대답은 짧고 무자비했다. 서린은 그 말속에서 이미 결론이 내려져 있음을 깨달았다. 이 재판정은 진실을 찾는 곳이 아니었다. 죄를 확정하기 위한 형식일 뿐이었다. 서린의 시선이 왕좌 옆의 자리로 향했다. 주헌이 그곳에 앉아 있었다. 5년을 함께한 그가, 자신이 목숨을 위협받는 이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린은 그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지난 시간들을 떠올렸다. 함께 궁 안을 걷던 밤, 그가 무심한 듯 건네주었던 겉옷, 처음 만났던 날의 어색한 인사까지도. "전하." 서린이 그를 불렀다. "전하께서는 저를 아십니다. 제가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목소리가 떨렸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흐트러지지 않으려 애썼던 마음이, 그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무너지려 했다. 주헌이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웃었다. 입꼬리가 올라가는, 냉소에 가까운 웃음이었다. "5년을 함께 보냈다고 사람을 다 아는 것은 아니오."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마치 남의 일을 이야기하듯. 서린의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이 사람이... 정말 내가 알던 그 사람인가.' 그의 눈빛에는 예전의 온기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처음 궁에 들어왔을 때, 낯설어하는 서린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주었던 그 사람과 지금의 그는 같은 사람이라 믿기 어려웠다. 재판정 안의 대신들이 그 광경을 지켜보며 낮게 속삭였다. 몇몇은 고개를 저었고, 몇몇은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으나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왕태자가 이미 거리를 둔 이상, 이 자리에서 그녀를 변호할 자는 없었다. +++ "본 재판은 증거와 증언에 근거하여 결론을 내린다." 재판관이 선고를 시작했다. "피고 이서린은 왕태자 암살 미수의 죄를 저질렀음이 명백하다." 서린은 그 말을 들으며 아무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슬픔도, 분노도, 두려움도. 모든 것이 한꺼번에 밀려와서 오히려 무감각해진 것 같았다. 귀에 들리는 재판관의 목소리가 마치 물속에서 울리는 것처럼 멀게 느껴졌다. "형은 참형으로 정한다. 사흘 뒤, 왕궁 앞 형장에서 집행할 것이다." 사흘. 서린이 살아있을 수 있는 시간이 그렇게 정해졌다. 재판정 안에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 속에서 서린은 문득 어릴 적 아버지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사람은 죽음 앞에서 진짜 얼굴을 보인다. 그때 흔들리지 않는 자가 진짜 강한 자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그 말을 붙잡고 있었다. 병졸이 그녀를 일으켜 세울 때, 서린은 마지막으로 주헌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미 시선을 돌린 채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마치 그녀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서린은 그 옆얼굴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더는 바라볼 이유가 없었다. 강소이는 재판정을 나서며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사람의 걸음걸이였다. 서린은 끌려나가며 그 뒷모습을 보았다. 복숭아빛 머리카락이 흔들리는 것을 보며, 그녀는 속으로 되뇌었다. '너는 얻는 것이 있었겠지.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대가가 자신의 목숨이라는 사실이, 서린의 마음속에 깊은 균열을 남겼다. 지하 감옥으로 돌아가는 길, 서린의 눈에서는 이미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재판정에 들어서기 전까지 흘렸던 눈물이, 이제는 마를 만큼 말라 있었다. 복도를 지날 때마다 축축한 돌벽에서 스며 나오는 냉기가 발끝을 타고 올라왔다. 철창이 열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병졸이 그녀를 감방 안으로 밀어 넣었다. 쇠사슬이 다시 채워지는 소리가 감옥 안에 울려 퍼졌다. 철컹- 서린은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았다. 등을 벽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 남은 것은 오직 하나의 감정뿐이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감방의 작은 창으로 희미한 달빛이 스며들었다. 서린은 그 빛을 바라보며 남은 사흘을 헤아렸다. 살아온 스무 해가 이 사흘로 끝난다는 것이, 그녀는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 시간이 멈추는 것은 아니었다. 형장에 세워질 그날까지, 하루하루가 무섭게 다가오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서린의 눈동자가 서서히 빛을 띠기 시작했다. 절망 끝에서 피어난 그 빛은, 아직 그녀 자신도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어떤 결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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