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지하 감옥의 벽은 차가웠다.
서린은 그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손목의 밧줄은 좀 더 굵은 쇠사슬로 바뀌었고, 발목에도 족쇄가 채워졌다. 쇳덩이가 살갗에 닿을 때마다 서늘한 기운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남은 시간은 이틀이었다.
감옥 안은 빛이 거의 들지 않았다. 작은 창살 틈으로 새어 드는 빛줄기만이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었다. 그 빛이 옅어지면 밤이었고, 다시 밝아지면 낮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서린은 며칠이 지났는지 셀 수 있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서린은 생각했다. 힘도 없고, 무기도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는 이곳에서.
하지만 생각을 멈추지는 않았다. 생각을 멈추는 순간, 정말로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같았다.
독약이 어떻게 서린의 처소에 있었는지, 강소이가 왜 거짓 증언을 했는지, 주헌이 왜 그렇게 냉정했는지—이 세 가지 물음이 밤새 그녀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강소이는 서린과 동문수학한 사이였다. 함께 자수를 배우고, 함께 시를 읊었던 벗이었다. 그런 그녀가 재판정에서 서린을 똑바로 바라보며 거짓을 말했다. 눈빛 한 번 흔들리지 않았다.
'그 눈빛은 거짓말을 하는 자의 것이 아니었다.' 서린은 그렇게 생각했다. '오히려 누군가에게 지시받은 자의 눈이었다.'
주헌은 어떠했나. 정자에서 마주 앉아 술잔을 나누던 그 사내가, 재판정에서는 마치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하듯 서린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는 온기가 없었다.
'설마 그날의 다정함마저 거짓이었을까.' 서린은 그 생각을 곧바로 지웠다. 지금은 의심할 여유조차 사치였다.
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하나의 확신은 점차 뚜렷해졌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누군가 계획한 일이다.'
계획이라면, 목적이 있을 것이다. 목적이 있다면, 그 끝에는 누군가의 이득이 있을 것이다. 서린은 그 이득의 주인이 누구인지 짚어보려 했으나, 머릿속은 좁은 감옥만큼이나 캄캄했다.
+++
다음 날, 감옥의 문이 열렸다.
철컹— 하는 소리가 복도를 타고 울렸다.
간수가 아니었다. 낯익은 시비였다. 어릴 적부터 서린을 모셨던 이였다.
"공녀님..." 시비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연아, 어떻게 여기까지." 서린이 놀라 물었다.
"뇌물을 좀 썼습니다. 시간이 얼마 없어요." 연이 서둘러 품에서 작은 종이를 꺼냈다.
연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간수의 눈을 피해 여기까지 오는 동안 얼마나 조심했을지, 서린은 짐작할 수 있었다. 예천 공작가의 시비라 해도, 왕실의 죄인을 만나러 오는 일은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괜찮은 것이니. 붙잡히면 너도..." 서린이 걸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공녀님을 두고 저 혼자 무사할 생각은 없습니다." 연이 단호하게 답했다. 그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이게 뭐지?"
"공작님께서 보내신 서신입니다."
서린은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펼쳤다.
아버지의 필체였다. 언제나 곧고 단정했던 그 필체가, 지금은 조금 흐트러져 있었다. 급히 쓴 흔적이었다.
『네가 저지르지 않았음을 안다. 최선을 다하겠다. 조금만 견디어라.』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결코 짧지 않았다.
서린은 어릴 적 아버지의 말을 떠올렸다.
"서린아, 사람이 궁지에 몰렸을 때 진짜 얼굴이 드러난다. 그러니 너는 언제나 궁지에 몰렸을 때조차 네가 누구인지 잊지 말아야 한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훈계라 여겼다. 지금은 그 한 마디가 뼈에 새겨진 것처럼 선명했다.
"아버님은 지금 어디 계시니." 서린이 물었다.
"왕궁으로 들어가셨습니다. 폐하를 뵈러 가신다고..."
"혼자 가셨느냐."
"가신들 몇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하지만..." 연은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무엇이니." 서린이 다그쳤다.
"왕태자 전하께서 이미 손을 써두셨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조정의 대신들 태반이 입을 다물고 있다고..."
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다 됐습니다. 저는 이만..." 연이 황급히 자리를 떴다.
연의 뒷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서린은 창살을 붙잡은 손을 놓지 못했다.
서린은 손에 쥔 서신을 다시 읽었다. 몇 번을 읽어도 문장은 늘어나지 않았지만, 읽을수록 그 안의 마음은 더 크게 느껴졌다.
'아버님이 나설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예천 공작가는 대현국 최고 귀족 5가 중 하나였다. 대대로 왕실을 보필해왔고, 그 공을 인정받아 지금의 위세를 쌓았다. 그 위세라면, 진실을 밝힐 힘이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동시에, 재판정에서 보았던 왕태자의 냉소가 떠올랐다.
재판정의 그 순간이 다시 눈앞에 그려졌다. 왕태자는 서린을 향해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표정으로 죄를 물었고, 그 곁의 신하들은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침묵했다. 누구도 서린을 위해 입을 열지 않았다.
'그 위세로도 안 되는 것이 있다면 어떻게 할까.'
서린은 그 생각을 억지로 밀어냈다. 지금은 희망을 붙잡아야 할 때였다.
+++
밤이 되어, 서린은 좁은 감옥 안에서 벽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5년의 시간들이 다시 떠올랐다. 주헌과 정자에서 나눈 대화들, 매화 향이 스며들던 밤들, 아버지의 근심 어린 얼굴.
정자에서의 그 밤이 특히 선명했다. 주헌은 술잔을 기울이며 말했었다.
"서린 소저, 이 길이 순탄치 않을 것을 압니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피할 생각은 없습니다." 서린은 그렇게 답했었다.
주헌은 그 대답에 옅게 웃었다. 그 웃음이 진심이었는지, 지금 다시 떠올려보아도 확신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얼굴도 겹쳐 떠올랐다. 언젠가 아버지는 서린을 불러 조용히 말한 적이 있었다.
"네가 걸어갈 길이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예천 공작가의 이름을 짊어진다는 것은, 그만큼의 짐을 지는 것이다."
'그때 아버지는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 서린은 생각했다. '내가 걸어갈 길이 순탄하지 않을 거라던 그 말.'
그 말을 들었을 때 서린은 그저 각오를 다지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지금 와서 보니, 그것은 경고였는지도 몰랐다.
그녀는 눈을 떴다.
어둠 속에서도 눈빛만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결심이 서 있었다.
'진실을 밝히겠다. 살아서든, 죽어서든.'
힘없는 저항이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죽는 것보다는 나았다. 적어도 자신이 누구인지는 지키고 싶었다.
이서린은 죄인이 아니었다. 그것을, 세상이 모른다 해도, 그녀 자신은 알고 있어야 했다.
설령 온 세상이 그녀를 죄인이라 부른다 해도, 그 한 가지만은 스스로 흔들리지 않아야 했다. 그것이 지금 그녀가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족쇄가 철컹거리는 소리를 내며 그녀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남은 시간은 하루였다.
그 하루 안에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서린은 아직 알지 못했다. 다만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벽 너머로 아주 멀리서 밤 종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가 잦아들 무렵, 서린은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되새겼다.
'포기하지 않는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그 결심이 무색하게, 문밖에서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병졸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발소리는 하나가 아니었다. 여럿이 뒤섞여 복도를 울리며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서린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지.'
아직 이틀의 시간이 남아 있어야 했다. 그런데 이 밤중에, 이렇게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올 이유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