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병실의 불빛은 항상 같은 밝기로 켜져 있었다. 새벽이나 낮이나 다르지 않았다. 창밖으로 해가 뜨고 지는 것과는 상관없이, 그 방은 늘 같은 온도와 같은 밝기를 유지했다. 병원이라는 공간 자체가 시간을 지워버리는 것 같았다.
그 밑에서 이도현은 삼 년째 눈을 감고 있었다.
기계음이 규칙적으로 방 안을 채웠다. 삐, 삐, 삐. 심박을 알리는 소리와 산소포화도를 알리는 숫자, 그리고 인공호흡기가 공기를 밀어 넣는 소리까지. 숨을 쉬고 있다는 증거였고, 그게 전부였다. 그 이상의 무언가를 기대하기엔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 있었다.
강은서는 매일 같은 시간에 병실 문을 열었다. 오후 세 시. 병원 회진이 끝나고 병실이 가장 조용해지는 시간이었다. 손에는 늘 같은 브랜드의 캔커피가 들려 있었다. 마시지도 않으면서 습관처럼 사 왔다. 편의점 냉장고 앞에서 그녀는 매번 같은 자리에서 같은 캔을 꺼냈다. 왜 그러는지는 그녀도 몰랐다.
"오늘도 왔어." 그녀가 말했다. 대답이 돌아올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매번 인사를 건넸다.
침대 옆 협탁에는 그녀가 가져다 놓은 캔커피들이 줄지어 쌓여 있었다. 유통기한이 지난 것들도 섞여 있었다. 그걸 치울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그녀는 새 캔을 그 옆에 또 세워 두었다.
어딘가 깊은 곳에서, 이도현은 소리를 듣는 것 같기도 했다. 목소리 같은 것이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멀어졌다. 형체도 색깔도 없는 감각이었다. 빛도 아니고 어둠도 아닌, 그저 존재만 하는 무언가의 층위였다. '누구지.' 물음조차 완성되지 못한 채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대답을 찾으려 할 때마다 감각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는 삼 년 전 택시 사고로 그렇게 되었다. 신호를 무시한 트럭과의 충돌이었다고, 나중에 은서는 들었다. 그날 이후로 단 한 번도 눈을 뜨지 않았다.
***
정미란은 아들의 손을 놓지 않았지만, 은서를 바라보는 눈빛은 매번 조금씩 달라졌다. 처음에는 고마움이었고, 그다음은 안타까움이었고, 요즘은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것이었다.
"은서야." 그녀가 조심스럽게 불렀다. "이제 그만 너도 살아야지."
"어머니." 은서가 짧게 되받았다. 더 말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정미란은 그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삼 년 동안 같은 말을 반복해 온 사람들끼리는 어느 순간부터 침묵이 더 편해지는 법이었다. 그녀는 대신 아들의 손등을 쓸었다. 손가락 마디마디, 뼈의 감촉을 확인하듯이.
은서는 대학을 졸업한 뒤 취업을 준비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 그 뒤로는 이력서 한 장 제대로 써 본 적이 없었다. 친구들은 처음엔 이해해 주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연락이 뜸해졌다. "너도 이제 정리해야 하지 않겠어."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다가 다시는 연락을 하지 않았다.
이도현이 잠든 뒤로 그녀의 하루는 병실을 중심으로 돌았다. 아침에 일어나 병실에 갔다가,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다시 잠드는 것. 그것이 삼 년째 반복되는 그녀의 전부였다. 가끔은 그 반복 속에서 자신이 살아 있는 건지, 그저 관성으로 움직이는 건지 헷갈리기도 했다.
그리고 이 반복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
그날 밤, 은서는 유난히 어지러움을 느꼈다. 병실을 나서다 계단 앞에서 순간적으로 시야가 흔들렸다. 형광등 불빛이 여러 겹으로 겹쳐 보였고, 귀에서는 이명 같은 소리가 울렸다.
'왜 이러지.' 손으로 벽을 짚었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세상이 기울었고, 소리가 멀어졌다. 계단의 손잡이가 손끝에서 미끄러지는 느낌이 났다.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지만, 그것도 확실치 않았다.
'조금만 앉아 있으면 나아지겠지.' 그런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었다. 시야가 완전히 검게 변했다.
그다음 순간, 은서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
덜컹거리는 진동이 몸을 흔들고 있었다. 낯선 냄새였다. 나무와 가죽, 그리고 흙먼지가 섞인 냄새.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와는 전혀 다른, 살아 있는 것들의 냄새였다.
유하는 눈을 떴다. 마차 안이었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은 서울 어디에도 없는 것들이었다. 돌길, 낮은 초가지붕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이국적인 성벽까지. 하늘은 유독 맑았고, 구름조차 낯설게 흘러가고 있었다.
'이게 무슨.'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마차가 크게 흔들렸다. 바퀴 하나가 무언가에 걸렸는지, 몸이 옆으로 확 쏠렸다. 창밖에서 말이 크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누군가 외쳤다. 젊은 남자였다. 검을 찬 차림새로 보아 호위무사인 듯했다.
남자는 순식간에 유하의 몸을 감싸며 자신의 등으로 충격을 받아냈다. 마차가 뒤집혔고, 나무가 쪼개지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파편이 튀어 오르고, 흙먼지가 안개처럼 시야를 가렸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유하에게는 영원처럼 느껴졌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사이, 유하는 남자의 이름이 준서라는 것을 어렴풋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준서 님이 위험합니다!"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다. 뒤이어 여러 명의 발소리가 우르르 달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유하는 통증보다 먼저 낯선 감각에 압도되었다. 이 몸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손가락 마디, 머리카락의 질감, 그리고 몸을 움직이는 방식까지 전부 달랐다. 손을 들어 얼굴을 만져 보려 했지만, 손끝의 감각조차 익숙하지 않아서 얼굴 위치조차 짚어내지 못했다.
'나는 은서인데.' 그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그녀를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유하 아가씨, 정신이 드십니까!"
낯선 이름이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목소리에는 다급함과 존대가 섞여 있었다. 도대체 이 몸의 주인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그 억양 하나로도 짐작이 갔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를 구한 남자는 피투성이가 된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유하는, 아니 은서는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눈앞의 낯선 풍경과 낯선 이름과 낯선 육체 사이에서, 그녀가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