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혼수 3년째, 나는 영애였다

3화

하윤성이 직접 걸음한 것은 사고 이후 닷새째 되는 날이었다. 소식이 전해진 순간부터 저택 전체가 뒤집혔다. 하녀들은 복도를 뛰어다니며 카펫을 다시 털었고, 정원사는 이미 만개한 꽃들 앞에서 안절부절못했다. 누가 봐도 세자의 방문이 예정된 것치고는 지나칠 정도의 소란이었다. "세자 저하께서 이렇게 직접 오시는 일은 드뭅니다." 세아가 유하의 머리를 다시 매만지며 낮게 속삭였다. "각별한 애정의 표시입니다." 그 말에는 자부심과 안도가 뒤섞여 있었다. 세아에게는 이것이 곧 유하의 위치를 증명하는 사건이었다. 정혼녀가 사고를 당했다고 세자가 친히 발걸음을 옮긴다는 것, 그것도 왕실의 격식을 조금 무시하고서까지. "이 정도로 소란을 피울 일인가요?" 유하가 조심스레 물었다. "당연하지요! 저하께서 이런 걸음을 하신 게 몇 번이나 있었는지 아십니까?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세아의 목소리에는 은근한 흥분이 배어 있었다. 유하는 그 말을 들으며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선유하의 기억 속 하윤성은 언제나 다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 앞에서 웃고, 상냥한 말을 건네고, 어디를 가든 그를 칭찬하는 목소리가 따라다녔다. 그랬는데. 그 다정함의 밑바닥에 무언가 다른 것이 도사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정확히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위화감이었다. 유하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애써 그 감각을 눌러 담았다. *** 하윤성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시선을 떼지 않았다. 훤칠한 키에 반듯한 이목구비, 왕실 특유의 격을 두른 몸짓까지, 겉모습만 보면 소문 그대로 완벽한 세자였다. 방 안에 있던 하녀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고, 세아 역시 서둘러 예를 갖췄다. 유하만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다 살짝 균형을 잃었다. "움직이지 마시오." 하윤성이 성큼 다가와 손을 뻗었다. "아직 몸이 온전치 않을 텐데." 그 손길은 부드러웠다. 조심스럽게 어깨를 받쳐주는 손끝에서 배려가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손이 닿은 순간 유하는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왜 이렇게 낯설지.' "몸은 어떠하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하지만 유하를 훑는 눈빛에는 여유보다 확인하려는 조바심이 먼저 읽혔다. 마치 무언가 잃어버리지 않았는지 물건을 점검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괜찮습니다." 유하가 짧게 답했다. 하윤성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대가 무사해서 다행이오." 말과 표정이 어딘가 어긋나 있었다. 웃고 있는 입과 웃지 않는 눈이 따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유하는 그 어긋남을 감지했지만, 아직 이 세계의 규칙을 다 알지 못했으므로 섣부른 판단을 눌러 담았다. 선유하로 살아온 시간이 아직 며칠에 불과했다. 이 사람이 원래 이런 표정을 짓는 사람인지, 아니면 지금 이 순간만 이상한 건지 구별할 방법이 없었다. "세아는 나가 있게." 하윤성이 말했다. 명령이라기보다는 부드러운 권유처럼 들렸지만, 거절할 수 있는 성질의 말은 아니었다. 세아와 하녀들이 빠르게 방을 빠져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 방 안에 둘만 남자 하윤성의 태도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여전히 부드러운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 담긴 온도는 조금 전과 달랐다. "이야기는 들었소. 마차가 뒤집혔고, 그대의 호위무사가 그대를 구했다지." "네." 유하가 짧게 답했다. "운이 좋았소." 그 말을 끝으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유하는 그 침묵이 불편해서 무언가라도 채우고 싶었다. 그래서 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러지 않는 게 나았을 질문이었다. "준서는... 그 호위무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순간 하윤성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아주 짧았지만 분명한 변화였다. 미소가 사라진 게 아니라, 미소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채 그 안의 온기만 빠져나간 것 같았다. "그자가 왜 궁금하오?" 그의 목소리에서 부드러움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유하는 순간 말을 고르느라 잠시 머뭇거렸다. "저를 구하다 다쳤으니 걱정이 되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유하가 담담히 답했다. "당연하지 않소." 하윤성이 한 발짝 다가섰다. 그 걸음이 좁힌 거리만큼 방 안 공기가 무거워졌다. "그대는 나의 정혼자요. 한낱 호위무사의 안위를 이토록 신경 쓰는 것이, 나에게는 그리 좋게 들리지 않는군." 낮게 깔린 음성이 방 안 공기를 순식간에 얼렸다. 유하는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침대에 걸려 그럴 수도 없었다. 하윤성의 얼굴이 지나칠 정도로 가까워졌다. '이건... 질투가 아니라 소유욕이야.' 그 순간 유하는 그가 소문처럼 관대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마차 사고보다 지금 이 순간이 더 위험하게 느껴졌다. 하윤성의 눈동자는 유하의 얼굴을 훑고 있었다. 그 시선에는 애정이라 부를 만한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 앞서는 것은 확인하고 통제하려는 의지였다. 물건의 소유권을 재확인하는 사람의 눈빛이었다. "제가... 실언을 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유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것이 최선이라 판단했다. *** 하윤성은 곧 다시 표정을 풀며 다정한 척 웃었다. 방금 전의 냉기가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지고, 다시 소문 속의 상냥한 세자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전환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유하는 오히려 더 불안해졌다. "몸조리 잘하시오. 필요한 게 있으면 무엇이든 말하고." 하윤성이 손을 들어 유하의 뺨을 가볍게 스치듯 어루만졌다. 손끝은 여전히 따뜻했다. 유하는 그 손길에 미소로 답했다. 웃는 게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였다. 하윤성이 몸을 돌려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방을 나서기 전, 문고리에 손을 얹은 채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 뒤돌아보지 않은 채 던진 한마디는 유하의 뇌리에 오래 남았다. "그자가 깨어나든 아니든, 그대와는 상관없는 일이오. 잊지 마시오." 목소리에는 조금 전의 다정함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오직 명령만이 담겨 있었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유하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자신도 모르게 참고 있던 숨이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세아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방 안의 공기가 아직 가시지 않은 걸 느꼈는지, 표정이 조심스러웠다. "저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신 겁니까?" 세아가 물었다. 유하는 대답하지 못했다. 세아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소유욕이라고 말하면 세아는 그것을 애정의 다른 이름으로 해석할 것이었다. 이 저택 안에서는 그런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소문 속의 하윤성과, 방금 마주한 하윤성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리고 준서가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제는 단순한 걱정거리가 아니라 훨씬 더 위태로운 무언가로 유하의 머릿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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