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며칠 후, 라도 항구에 낯선 배 한 척이 정박했다는 소식이 저택까지 전해졌다. 돛대에 새겨진 문양이 낯익다며 하인들이 수군거렸지만, 이태오는 별일 아니겠거니 하며 서류 정리를 계속했다. 항구 도시라는 게 그런 법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름 모를 상선이 드나들고, 그중 몇은 이유 없이 오래 머물다 사라지기도 하니까. 그는 잉크가 마르기를 기다리며 창밖을 잠깐 내다보았을 뿐, 곧 다시 서류에 눈을 돌렸다.
유하린은 달랐다. 그녀는 그날 오전 내내 정원을 서성이며, 왠지 모를 불안이 목덜미를 스치는 것을 느꼈다. 정확히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마치 오래전에 앓았던 병의 재발을 예감하듯, 뒷목이 서늘하고 손끝이 차가워지는 감각이었다. '괜한 걱정이겠지.' 그녀는 그렇게 되뇌며 화단의 잡초를 뽑았지만, 손가락은 자꾸만 허공을 향했다.
그 예감은 오래가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 정오가 지나자마자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마차가 저택 앞에 요란하게 멈춰 섰다. 말발굽 소리가 자갈길을 두드리는 소리에 서아가 창문으로 달려가 내다보았고, 그 안에서 내린 사람은 수도의 왕궁 소속 관리였다. 검은 정복 위에 왕가의 문장을 새긴 견장을 단 그는, 걸음걸이부터가 이곳 사람들과 달랐다. 마치 자신이 밟는 땅 전부가 자신의 소유물인 것처럼 느긋하고 오만한 걸음이었다.
"라도 백작을 뵙고자 왔습니다." 관리는 딱딱한 어조로 인사를 대신했는데, 그의 시선이 곧 응접실 한켠에 앉아 있던 유하린에게로 향했다. 순간 그의 눈빛이 미묘하게 변했다. 마치 오래 찾아 헤매던 물건을 우연히 발견한 사람의 눈빛처럼, 반가움과 경멸이 뒤섞인 이상한 빛이었다.
"유하린 영애께서도 여기 계셨군요."
유하린의 어깨가 미세하게 굳었다. 이곳에서만큼은 잊고 지낼 수 있었던 이름이, 낯선 이의 입을 통해 다시 그녀를 붙잡았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으며, 손바닥에 식은땀이 배어났다. 그녀는 애써 표정을 가다듬으려 했지만, 입술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까지는 감출 수 없었다.
"용건이 무엇입니까." 이태오가 그녀를 감싸듯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고 무거웠는데, 마치 유하린과 관리 사이에 벽을 세우려는 듯한 자세였다.
관리는 서류를 꺼내며 사무적으로 말했다. "왕태자궁에서 라도 백작가의 세금 감사를 명하셨습니다. 최근 몇 달간의 재정 기록을 모두 제출하셔야 합니다."
"세금 감사라니,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이태오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긴장이 섞였다. 그는 서류를 받아 든 손에 힘을 주었는데, 종이 끝이 살짝 구겨지는 것을 그 자신도 눈치채지 못했다.
"글쎠요. 다만……." 관리는 유하린을 힐끗 보며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그 웃음이라는 것이, 웃음이라 부르기엔 지나치게 차가웠다. "국고를 빼돌린 전력이 있는 인물을 거처에 들인 백작가에 대해서, 왕태자궁이 관심을 갖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그 말에 유하린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누명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말 한마디가 여전히 자신을 옭아매는 사슬처럼 느껴졌다. 억울함과 두려움이 동시에 목구멍을 틀어막아,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만큼 두 손을 꽉 움켜쥔 채, 시선을 애써 바닥에 고정했다.
"그건 근거 없는 소문일 뿐입니다." 이태오가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그의 어조는 물러섬이 없었지만, 관리는 대꾸 없이 서류를 탁자 위에 탁, 소리 나게 내려놓고는 예를 갖춰 인사한 뒤 마차에 올랐다. 마차가 다시 자갈길을 두드리며 멀어지는 소리가, 유독 오래도록 응접실 안에 남아 울리는 듯했다.
관리가 떠난 후, 응접실에는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벽시계의 초침 소리만이 유난히 크게 들렸다. 유하린은 두 손을 무릎 위에서 꽉 움켜쥔 채 시선을 바닥에 고정하고 있었는데, 오래전에 잠재웠다고 믿었던 두려움이 다시 스멀스멀 목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잊었다고 생각한 그 밤—궁정 회계실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오던 그 밤의 냉기가, 지금 이 순간에도 그대로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저 때문에……. 백작님과 영지에 피해가 갈 것 같습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말을 내뱉는 것조차 힘겨웠다.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이태오가 그녀 앞에 무릎을 꿇듯 마주 앉으며 말했다. 그의 눈이 그녀의 시선을 붙잡으려 애썼다. "당신이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저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유하린이 고개를 들며 처음으로 눈물이 맺힌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는 마치 안개가 낀 숲처럼 흐릿했지만, 그 안에 담긴 절망만은 선명했다. "저는 어디를 가도 그 낙인에서 벗어날 수 없나 봐요. 이곳이라면 다를 줄 알았는데……."
이태오는 그녀의 눈물을 보며 잠시 말을 잃었는데, 가슴 한구석이 아릴 정도로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그는 무언가 말을 하려 입을 열었지만,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녀를 안심시킬 말을 찾고 싶었으나, 지금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이 위로가 될 수 있을지 스스로도 확신이 없었다. 그저 그녀의 떨리는 두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조심스레 얹었을 뿐이었다.
"제가 반드시 해결하겠습니다." 그가 겨우 뱉은 말은 짧았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날 밤, 저택은 유독 조용했다. 서아마저 방에서 나오지 않았고, 창밖의 파도 소리만이 적막을 채웠다. 부엌에서도 평소 같으면 늦게까지 들려오던 그릇 소리 하나 없었다. 마치 저택 전체가 숨을 죽이고 다음에 닥칠 일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유하린은 방 안에서 홀로 창밖을 바라보며, 이 평화가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었다. 파도는 여전히 규칙적으로 밀려오고 밀려나갔지만, 그 소리조차 이제는 위협처럼 들렸다. 언젠가는 저 파도가 이 저택의 담벼락까지 삼켜버릴 것 같은, 근거 없는 공포가 자꾸만 그녀의 마음을 짓눌렀다.
복도 끝, 이태오의 방문 아래로 여전히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가 밤늦도록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유하린은 알지 못했다. 다만 그 서류 뭉치 속에 적힌 '왕태자궁 지시'라는 글자가, 앞으로 닥칠 더 큰 파도의 전조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바람이 창문을 흔들었다. 어딘가에서 작은 유리창 하나가 삐걱, 소리를 내며 흔들렸고, 유하린은 그 소리에 소스라치듯 몸을 떨었다.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녀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