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북천으로 가는 여정은 예상보다 길었다.
닷새째 되던 날, 마차는 험한 산길로 들어섰고, 서지안은 창밖으로 낯선 풍경이 펼쳐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남쪽의 평온한 초록빛과는 전혀 다른, 회색 바위와 눈 덮인 봉우리들이 이어지는 풍경이었다.
바람은 갈수록 차가워졌고, 마차 바퀴가 돌부리에 걸릴 때마다 몸이 크게 흔들렸다. 서지안은 무릎 위에 덮은 담요를 다시 여몄다. 남쪽에서 가져온 옷들은 이 추위 앞에서 무용지물이었다.
"이제 북천의 경계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현우가 창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영지는 이 산맥을 넘으면 나옵니다. 척박하지만, 그만큼 아름다운 곳입니다."
서지안은 그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이현우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애정이 그 두려움을 조금씩 누르고 있었다.
"추우십니까?"
이현우가 담요를 여미는 그녀의 손짓을 보고 물었다.
"조금."
"곧 화로가 있는 초소에 도착할 것입니다. 오늘은 그곳에서 밤을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산속에서요?"
"산맥을 넘기 전에는 마을이 없습니다. 불편하시겠지만 하룻밤만 참아 주십시오."
서지안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서 있지 못할 만큼 바람이 거센 능선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구나.' 그녀는 이현우의 옆얼굴을 슬쩍 보며 생각했다.
***
그날 저녁, 마차가 산속의 작은 초소에 머물게 되었을 때, 이현우의 부관이 급히 그에게 다가와 무언가를 보고했다.
"변경백님, 수도에서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부관의 얼굴은 평소와 다르게 굳어 있었다. 말을 몰고 온 듯 이마에 땀이 배어 있었고, 눈치를 보듯 서지안 쪽을 한번 흘긋거렸다가 이현우에게 서신을 내밀었다.
이현우는 서신을 받아 읽었다. 그의 표정이 점점 굳어 갔다. 손끝이 종이를 쥔 채로 미세하게 굳는 것이 보였다.
"무슨 내용입니까?"
서지안이 조심스레 물었다. 이현우는 잠시 대답을 미루다가, 이내 서신을 접으며 답했다.
"별일 아닙니다."
그러나 그 대답은 명백한 거짓이었다. 서지안은 그의 표정에서 그것을 읽을 수 있었지만, 더 묻지는 않았다. '아직은 나에게 말하지 못할 일인가 보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시선을 거두었다.
초소 안은 좁고 어두웠다. 화로 하나가 겨우 온기를 만들고 있었고, 병사들이 오가는 소리가 벽 너머로 들려왔다. 서지안은 그 낯선 소리들 속에서도 이현우의 표정만이 자꾸 신경에 걸렸다. 평소라면 그녀를 향해 짓던 옅은 웃음조차 사라진 얼굴이었다.
***
그날 밤, 이현우는 홀로 초소 밖으로 나와 서신을 다시 펼쳤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서신 끝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등을 돌려 바람을 막으며 다시 글자를 읽었다.
서신의 내용은 짧았다. 강도윤이 이번 근신형 결정에 대해 다시 논의를 열려 한다는 것, 그리고 몇몇 선제후들이 이현우의 이번 개입을 정치적 도전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생각보다 빠르구나.'
이현우는 서신을 다시 접으며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빛도 없이 캄캄한 하늘이었다. 그가 감당해야 할 것이 그저 서지안을 지켜주는 데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짙어지고 있었다.
'서지안 영애를 데려온 것만으로도 이렇게 말이 나오는데, 앞으로는.'
그는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당장 답이 나올 문제가 아니었다. 서신을 품속에 집어넣고, 그는 다시 초소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서지안에게는 이 무게를 나눠줄 수 없었다. 아직은.
***
다음 날, 마차는 마침내 산맥을 넘어 북천의 영지로 들어섰다.
멀리서부터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거대한 성벽과 그 너머로 펼쳐진 마을의 풍경이었다. 척박하다는 말과 달리, 그 안에는 사람들의 활기가 가득했다. 시장에서는 상인들이 목청을 높이고 있었고, 아이들이 골목을 뛰어다니며 소리를 질렀다.
서지안은 창문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남쪽의 화려함과는 다른, 투박하지만 생기 넘치는 풍경이었다. '이곳이 앞으로 내가 살 곳이구나.' 낯설면서도 묘하게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었다.
성문 앞에는 한 소녀가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고 있었다. 열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밝은 표정의 소녀였다.
"오빠!"
소녀가 마차를 향해 손을 흔들며 뛰어왔다. 이서아였다.
"드디어 오셨네요!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세요?"
이서아는 마차 문이 열리기도 전에 창문에 매달려 안을 들여다보았다. 발끝을 세우고 창틀에 매달리는 그 모습이 위태로워 보일 정도였다. 그러다 서지안을 발견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어머, 이분이 서지안 언니예요?"
"그렇다."
이현우가 짧게 대답했다.
"드디어! 오빠가 매일 편지에 언니 이야기만 쓰길래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서아."
이현우가 낮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지만, 이서아는 개의치 않고 서지안의 손을 덥석 잡았다. 작은 손이었지만 힘은 제법 셌다.
"언니, 저 이서아예요! 이제 우리 같이 살 거니까 편하게 지내요."
서지안은 그 밝은 기세에 조금 당황하면서도, 오랜만에 마음이 조금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낯선 땅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온전한 환대였다.
"잘 부탁해, 서아."
"근데 언니, 오빠가 편지에 뭐라고 썼는지 알아요? 아니, 이건 나중에 말해줄게요."
이서아가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눈꼬리가 이현우와 똑 닮은 모양으로 휘었다. 이현우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서아, 그런 말은 하지 않아도 된다."
"왜요? 사실인데."
"서아."
이번에는 목소리가 조금 더 낮아졌다. 이서아는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삐죽였지만, 더 밀어붙이지는 않았다.
서지안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의아함을 느꼈다. '편지에 뭐라고 썼다는 거지.' 그러나 이현우는 더 이상 그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도록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지안 영애가 피곤할 것이다."
"아, 맞다. 언니 힘드시겠다. 오는 길 험했죠? 얼른 들어가요!"
이서아가 서지안의 손을 잡고 성문 안쪽으로 이끌었다. 서지안은 그 손에 이끌려 걸으면서도, 자꾸만 이현우의 옆얼굴을 곁눈질했다. 그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앞을 보고 있었지만, 서지안은 그 얼굴 아래 감춰진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이제는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세 사람은 성문을 지나 영지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그날 밤, 서지안은 낮에 들었던 이서아의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편지에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많이 썼다는 것인지, 왜 이현우는 그토록 서둘러 그 화제를 막으려 했는지. 그리고 그보다 더 마음에 걸리는 것은, 산속 초소에서 이현우가 감추었던 그 서신의 내용이었다.
창밖으로 낯선 북쪽의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서지안은 자리에 눕고서도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다. 이 조용한 성벽 너머, 수도에서는 벌써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자꾸만 그녀의 잠을 밀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