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죽는 순간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보험금 수령인을 바꿔야 했는데 못 바꿨다는 거였다.
그다음 든 생각은 가스불을 껐는지 안 껐는지였다. 죽어가는 사람 머릿속에 이런 생각들이 순서대로 들어차는 게 정상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순간의 나는 그랬다. 지극히 사무적으로, 지극히 생활에 밀착한 채로 죽어갔다.
현관문 도어락이 뜯겨 나가는 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이건 도둑이 아니다.
삐빅. 삐비빅. 지지직─
기계음이 몇 번 튀더니 그대로 멈췄다. 도어락이 억지로 뜯겨나가는 소리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뉴스에서 몇 번 봤던 그 이름, 그 수법이었다. 얼마 전 동네 커뮤니티 게시판에도 올라왔던 글이었는데, 그때 나는 스크롤을 대충 내리고 넘겼다. 나랑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남 일은 늘 남 일이었다.
나는 마흔둘이었고, 혼자 살았고, 커튼을 잘 안 치는 버릇이 있었다. 여름엔 답답해서, 겨울엔 그나마 들어오는 볕이 아까워서 그랬다. 그게 화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건 이미 부엌 바닥에 쓰러진 뒤였다.
아프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아팠다. 정확히는 아픈 것보다 억울한 게 먼저 왔다. 살면서 억울한 일은 많았지만 이번 건 그중에서도 급이 달랐다.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것, 설명을 들을 기회조차 없다는 것. 그게 가장 억울했다.
나는 스물다섯에 부모를 잃고 쌍둥이 자매를 대신 키웠다. 그때 내 통장에는 정확히 팔십삼만 원이 있었다. 그걸로 장례를 치르고 남은 돈으로 두 아이의 겨울 교복을 샀다. 스물아홉엔 대학 등록금을 두 번 냈다. 한 번은 큰애, 한 번은 작은애. 같은 해에 등록금 인상이 있었던 게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서른다섯엔 처음으로 내 이름으로 된 전세를 얻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던 날, 부동산 아주머니가 축하한다고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리고 마흔둘, 그 전세방에서 이유도 모르는 남자에게 죽었다.
죽는 데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는 게, 살아온 시간을 통째로 비웃는 것 같았다. 나는 매 순간 이유가 있는 사람으로 살았는데. 누군가를 먹이기 위해, 누군가를 재우기 위해, 누군가의 등록금을 위해. 그런데 죽음은 아무 이유도 없이 왔다. 그게 제일 화가 났다.
의식이 완전히 끊기기 전, 마지막으로 본 건 천장 형광등이었다. 깜빡이는 불빛. 계약할 때 전기세 아끼겠다고 굳이 안 갈았던 그 낡은 등. 다음 달엔 꼭 갈아야지, 라고 생각했던 게 두 달 전이었다.
깜빡, 깜빡.
그다음은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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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을 때 나는 하얀 방 같은 곳에 서 있었다. 방이라고 부르기엔 벽도 바닥도 구분이 안 됐다. 그냥 밝았다. 조명 하나 없는데도 밝았다. 발밑을 내려다봤지만 발이 있는지도 확신이 안 갔다. 신발을 신고 있었는지, 맨발이었는지, 그런 사소한 것들이 갑자기 궁금해졌다.
이상하게 춥지도 덥지도 않았다. 냄새도 없었다. 부엌 바닥의 차가운 타일 감각이 아직 발바닥에 남아있는 것 같았는데, 지금 서 있는 이 바닥은 아무 감촉이 없었다. 그게 오히려 이상했다.
누군가 서류철을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사락. 사락.
종이 넘기는 소리가 이렇게 크게 들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또렷했다.
"음." 목소리가 낮고 부드러웠다. "이건 좀 곤란한데요."
녹색 머리를 단정하게 넘긴 남자가 내 앞에 서류를 펼쳐 보였다. 나이는 짐작이 안 갔다. 삼십 대 같기도 하고 그보다 훨씬 위 같기도 했다. 정장을 입은 것도 아니고 한복을 입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 자체로 단정했다. 얼굴이 낯익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곧 알았다. 아버지였다. 정확히는 아버지를 닮은 누군가였다. 아버지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웃었던 그 표정과 닮아 있었다.
이상하게도 반갑지 않았다. 그저 담담했다.
"뭐가요." 나는 물었다. 목소리가 내 목소리인지 확신이 안 갔다. 성대가 없는데 어떻게 목소리가 나오는 건지, 그런 물리적인 궁금증이 잠깐 스쳤다가 사라졌다.
"한소연 님의 영혼이, 그... 좀 심하게 파손됐습니다." 그는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윤회 시스템에 태울 수 있는 최소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는 상태예요. 쉽게 말하면─"
"버릴 수도 못 버릴 정도로 망가졌다는 거죠." 내가 대신 말했다.
그가 처음으로 나를 쳐다봤다. "...정확하십니다."
그의 표정이 살짝 놀란 듯 보였다. 마치 손님이 계산도 하기 전에 정확한 금액을 미리 말해버린 느낌이었을까.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상황 파악이 빠른 사람.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몰라도, 살면서 늘 그런 식으로 앞서 판단하고 앞서 정리해야 했다.
그렇구나. 나는 죽어서도 문제였다. 살아서도 늘 누군가의 골칫거리였는데, 죽어서까지 그럴 거라곤 생각 못 했다. 나는 손해보험사 콜센터에서 십 년을 일했다. 사람들이 가장 화가 나 있을 때 전화를 받는 일이었다. 사고가 나서 화가 난 사람, 보상이 적어서 화가 난 사람, 그냥 화풀이할 곳이 필요해서 전화한 사람. 그런 사람들을 매일 상대하면서 배운 게 있다면, 상황이 어떻든 침착하게 받아들이는 거였다. 지금 이 상황도 그냥 그런 전화 한 통 같았다. 다만 이번엔 내가 상담원이 아니라 사고 당사자였다.
이상하게도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그 말을 듣는 순간, 뭔가가 스르륵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태어날 필요도 없고, 누군가의 딸이나 언니나 이모로 다시 시작할 필요도 없다는 뜻 아닌가. 끝이 끝이 아니라 그냥 계속 이어지는 게 더 지긋지긋했다. 다시 태어나서 또 누군가를 먹이고 재우고 걱정해야 한다면, 그게 축복인지 벌인지 헷갈렸을 것이다.
"그럼 저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나는 물었다. 담담했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본래대로면 소멸 처리가 맞습니다." 그가 서류를 덮었다. 덮는 소리마저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마침, 자리가 하나 났어요."
"자리요?"
마치 채용 공고를 보는 기분이었다. 결원이 생겨서 급구, 라는 문구가 눈앞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웃긴 상상이었지만 그때는 웃을 기운도 없었다.
"여섯 번째로 멸망을 앞둔 세계가 있습니다." 그는 말을 고르는 듯 잠시 멈췄다. "거기엔 지금 신이 없어요. 다섯 번째 멸망 때 이전 신이 함께 소멸했거든요. 파손된 영혼이라도, 형태를 새로 짜서 그 자리에 앉힐 수는 있습니다."
나는 잠깐 그를 쳐다봤다. "제가 망가진 채로 신 노릇을 한다고요?"
들으면 들을수록 말이 안 되는 조건이었다. 부서진 물건을 새로 고쳐서 쓰는 게 아니라, 부서진 채로 그냥 자리에 앉힌다는 소리 아닌가. 계약서에 하자 있는 물건이라고 명시해놓고 그냥 파는 것과 뭐가 다른가 싶었다.
"망가진 채로가 아니라─" 그가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조각난 상태 그대로, 나눠 쓰는 방식으로요. 조각을 떼어서 다른 존재들에게 나눠주고, 그들이 대신 힘을 씁니다. 본체는 그저... 중심에 있으면 됩니다."
말이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 판단이 안 섰다. 다만 하나는 분명했다. 이건 두 번째 삶이 아니라, 그냥 죽음의 연장선 위에 놓인 다른 형태의 일이었다. 나는 평생 누군가를 먹이고 재우고 걱정하는 일을 해왔다. 신 노릇도 결국 비슷한 일 아닐까 싶었다. 조각을 나눠준다는 게, 결국 밥그릇을 나눠주는 것과 뭐가 다른가. 나는 늘 내 몫을 줄여서 남의 몫을 채웠다. 이번에도 그런 일이라면, 익숙했다.
"위험한가요?" 나는 물었다.
그가 정직하게 대답했다. "예. 여섯 번째 멸망이니까요. 앞선 다섯 번은 다 실패했습니다."
웃음이 나왔다. 실제로 웃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기분이었다. "저 원래도 실패 많이 했어요."
이력서에 쓴다면 경력란이 꽉 찰 정도였다. 실패한 연애, 실패한 저축 계획, 실패한 다이어트, 실패한 인간관계 몇 개. 거기에 실패한 멸망 방지까지 추가되는 것뿐이었다.
"...알고 있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눈을 피했다.
그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이 사람─사자, 신, 뭐라고 부르든─은 내 인생을 다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 오랜 시간, 아무도 몰라줬던 걸 이 존재 하나는 다 지켜본 모양이었다. 그거 하나면 됐다. 나는 됐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던 것들이 있었다. 왜 그렇게 사냐고, 힘들지 않냐고, 누가 너를 챙겨주냐고.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존재는 서류 한 장으로 내 인생 전체를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그게 위로가 되는지 서글픈 건지 잘 구분이 안 됐지만, 적어도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온전히 읽혔다는 느낌이었다.
"할게요." 나는 말했다. "어차피 여기서도 저는 없어질 몸이잖아요."
그가 서류에 뭔가를 적었다. 손끝에서 옅은 빛이 흘렀다.
사각. 사각.
펜 소리가 아니었다. 정확히 뭐로 적는 건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냥 빛이 종이 위에 스며들듯 번지고 있었다.
"이름은 필요하십니까?" 그가 물었다. "현생의 신분은 새로 만들어드립니다."
나는 고민했다. 소연이라는 이름을 계속 갖고 갈 필요는 없었다. 그 이름으로 겪은 일들은 이미 끝났으니까. 한소연. 서른일곱 해 동안 불려온 이름.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었다. 소중하게 자라라는 뜻이었다고 언젠가 들었다. 그런데 정작 소중하게 자란 건 나보다 내가 키운 아이들이었다.
"아무렇게나 지어주세요." 나는 말했다. "이번엔 제가 고를 게 아니니까요."
살면서 내가 고른 게 얼마나 있었나 싶었다. 직장도, 사는 곳도, 심지어 죽는 방식도 내가 고른 게 아니었다. 이번엔 그냥 남이 정해주는 게 편할 것 같았다.
그가 잠깐 웃었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그 웃음이 아버지의 웃음과 겹쳐 보여서, 나는 잠깐 숨을 멈췄다.
"설아. 어떻습니까."
"괜찮네요."
짧고 간결한 이름이었다. 부르기 쉽고, 무겁지 않았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골랐는지도 몰랐다.
빛이 점점 강해졌다. 하얀 방 전체가 하얗게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 발밑에서부터 뭔가가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설명하기 힘든 감각이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한 말이 귓가에 남았다.
"조심하십시오. 조각난 영혼은... 나눠줄 때마다 아플 겁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그때는 알지 못했다. 빛이 눈앞을 완전히 덮었을 때, 나는 그냥 그의 마지막 표정만 기억했다. 웃고 있었지만, 어딘가 미안한 얼굴이었다.
망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그때는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