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파괴된 영혼의 여신 엄마

5화

며칠 뒤, 도현이 임무를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정확히는 예정 시간보다 반나절이 늦었다. 반나절이면 별일 아닐 수도 있다고, 나는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소연이었을 때도 그랬다. 동생들이 연락이 늦으면 늘 사고보다 먼저 핑계를 찾았다. 버스가 밀렸겠지, 배터리가 나갔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는 데 익숙했다. 이번엔 그 핑계가 통하지 않았다. 유리가 먼저 그 사실을 알아채고 신전으로 달려왔다. 신전 계단을 뛰어오르는 발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렸다. 평소엔 조용하고 정갈한 걸음걸이였는데, 이번엔 달랐다. 끼익. 끼이익. 신전 문이 거칠게 열렸다. "도현이 안 와요." 유리의 목소리가 떨렸다. "신호도 없어요."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몸이 먼저 움직였다. 생각보다 반응이 빨랐다. 소연이었을 때는 이런 순간에 늘 머뭇거렸는데─누군가에게 연락해야 하나,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오지랖이 되는 건 아닐까─지금은 그런 계산이 하나도 끼어들지 않았다. 몸이 먼저 알았다. 이건 오지랖이 아니라 내 일이다. "위치, 알아요?" 나는 물었다. "북쪽 숲입니다." 강이 대답했다. 평소보다 목소리가 낮았다. "거긴 최근에 균열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이에요." "균열이요?" "세계의 틈입니다." 강이 짧게 설명했다. "멸망이 가까워질수록 자주 열립니다. 그 안에서 뭐가 나올지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세계의 틈이라니. 부동산 계약서에 하자보수 조항 하나 빠졌다는 말을 듣는 것도 아니고, 세계 자체에 틈이 생긴다는 소리를 이렇게 사무적으로 하다니. 나는 잠깐 그 낙차에 헛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 틈에서 나온 게 도현을 공격한 거예요?" "확실하진 않습니다." 강이 말했다. "하지만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나는 더 묻지 않고 그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곤 곧 멈췄다. 나는 이 세계에서 이동하는 법조차 몰랐다. 걸어서 간다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지도도 없고, 방향도 몰랐다. 이럴 때 내비게이션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쓸데없는 생각이 스쳤다. "제가 데려다드릴게요." 유리가 손을 내밀었다. 손끝이 차가웠다. 다급함이 손바닥에서도 느껴졌다. 손을 잡는 순간, 시야가 확 뒤틀렸다. 색이 번지듯 뒤섞이고, 발밑의 감각이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숲 한가운데였다. 순간이동이라는 게 이렇게 쉬운 거였나. 편의성 하나는 인정할 만했다. 택시비도 안 들고, 신호도 안 걸리고. 다만 속이 조금 울렸다. 숲은 어두웠다. 나무들이 이상하게 구부러져 있었고, 공기 자체가 무거웠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 안쪽까지 눅눅한 무언가가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새어드는 빛조차 회색빛이었다. 낮인지 밤인지 구분이 안 되는 광량이었다. 저 앞, 나무들 사이 빈터에 도현이 쓰러져 있었다. "도현!" 나는 뛰어갔다. 발밑에서 마른 낙엽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바스락. 바스락. 그 소리마저 이 숲에서는 크게 울렸다. 그의 몸에 상처가 여러 군데 있었다. 팔뚝, 옆구리, 이마. 피가 굳어 검게 변한 자리도 있었고, 아직 축축하게 번지고 있는 자리도 있었다. 검을 쥔 손에는 아직도 힘이 들어가 있었는데, 눈은 감겨 있었다. 숨은 쉬고 있었지만 얕고 불규칙했다. 흡, 흡, 하고 짧게 끊어지는 숨. 빈터 저 안쪽, 검은 형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 모양이었지만 윤곽이 흐릿하고, 눈이 없는 자리에 붉은 빛만 두 개 떠 있었다. 마치 안개로 빚은 사람 형상 같았다. 형태는 있는데 실체는 없는. "저건 뭐예요?" 나는 뒷걸음질 치지 않으려고 애쓰며 물었다. "균열에서 나온 것입니다." 강이 낮게 말했다. "저것들은 이 세계의 슬픔이 뭉쳐서 만들어집니다. 도현이... 저것과 마주쳤던 모양입니다." 슬픔이 뭉쳐서 만들어진다니. 그렇다면 이 세계엔 대체 얼마나 많은 슬픔이 쌓여 있는 걸까. 나는 그 생각을 오래 할 겨를이 없었다. 형체가 천천히 다가왔다. 그 붉은 빛이 도현을 향해 있었다. 마치 뭔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걸음이라기보다는 미끄러지는 움직임이었다. 발이 땅에 닿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 사람 데려가지 마." 도현이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의식이 반쯤 돌아온 모양이었다. "뭐라고?" 나는 그의 곁에 무릎을 꿇었다. 무릎이 축축한 흙에 닿았다. 냉기가 바로 스며들었다. "이건... 그 사람 모습을 하고 있어요." 도현이 눈을 겨우 뜨며 말했다. 시선이 형체를 향해 있었다. 두려움과 그리움이 동시에 서린 눈이었다. 순간 나는 알았다. 저 형체가 도현이 잃었다는 그 사람─사랑했던 여성의 형상을 빌리고 있다는 것을. 슬픔이 뭉쳐 만들어진다는 존재가, 도현의 가장 깊은 상처를 미끼로 삼고 있었다. 잔인하다. 정확히 그 사람만 노려서 그 사람의 가장 아픈 자리를 파고드는 방식이. 사람 마음을 이렇게 정교하게 이용하는 걸 보면, 이 세계의 슬픔이라는 것도 어지간히 계산적이구나 싶었다. 형체가 도현 쪽으로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길게 늘어지는 듯 보였다. 도현이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상처 입은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손이 땅을 짚고 미끄러졌다. "안 돼." 나는 낮게 말했다. 그러곤 도현과 형체 사이로 들어섰다. "설아 님, 위험합니다!" 강이 소리쳤다. 형체의 붉은 눈이 나를 향했다.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다리가 떨렸다. 그래도 물러설 순 없었다. 물러서면 저것이 도현에게 갈 테니까. "도현." 나는 등 뒤로 그를 향해 말했다. "저 사람이 진짜라고 생각해?" 도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게 보였다. 목소리는 안 나오는데 눈물만 흐르는, 그런 상태였다. "진짜가 아니라는 걸 알아도," 나는 형체를 마주 보며 말을 이었다. "보고 싶은 마음은 그대로겠지." 형체가 천천히 형태를 바꿨다. 안개 같던 윤곽이 조금씩 선명해졌다. 사람 모습이 더 또렷해졌다. 젊은 여자였다. 도현보다 조금 나이가 있어 보이는, 부드러운 인상의 얼굴이었다.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내려왔고, 눈매가 온화했다. "도현아." 형체가 말했다. 목소리마저 사람 같았다. 다정하고, 그리운 목소리. 도현의 몸이 떨렸다. 검을 쥔 손끝이 하얗게 변했다. "저 목소리, 진짜예요." 도현이 신음처럼 말했다. "제가... 아는 목소리예요." 나는 그 순간 결심했다. 이대로 두면 도현이 저 형체에게 끌려간다. 몸이든 마음이든, 결국 무너진다. 지금 저 형체가 원하는 건 도현의 검이 아니라 도현의 마음이었다. 그건 검으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조각을 하나 더 줄게." 나는 낮게 말했다. "버텨." "안 됩니다." 도현이 겨우 몸을 일으키며 나를 붙잡았다. "당신 몸이─" 그의 손이 내 손목을 잡았다. 힘이 없는데도 붙잡는 손끝이 절박했다. "버티라고 했어." 나는 그의 손을 뿌리치지 않은 채, 손끝으로 다시 내 안쪽 조각을 건드렸다. 통증이 다시 왔다. 이번엔 처음보다 더 깊었다. 뼈 안쪽까지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그 통증을 삼켰다. 숨이 잠깐 멈췄다가, 억지로 다시 트였다. 빛이 흘러나와 도현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도현의 눈동자가 다시 은빛으로 물들었다. 이번엔 아까보다 짙었다. 그가 검을 다시 굳게 쥐었다. 손가락 마디마다 힘줄이 섰다. "이건... 제가 결정할 일입니다." 그가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형체를 향해 검을 들어 올렸다. "도현아." 형체가 다시 불렀다. 목소리가 애절했다. 그 목소리에 담긴 슬픔은 가짜라고 해도, 듣는 순간 진짜처럼 느껴질 정도로 세밀했다. 도현의 검 끝이 흔들렸다. 한순간, 나는 그가 검을 내릴 거라 생각했다. 숨이 조여왔다. 하지만 그는 대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미안해." 그가 말했다. 형체를 향한 말인지, 아니면 나를 향한 말인지 구분이 안 됐다. "이번엔 놓아줄게." 검이 빛을 뿜으며 형체를 향해 내려갔다. 쐐애액.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짧게 울렸다. 형체가 비명 같은 소리를 내며 흩어졌다. 안개처럼 사방으로 퍼지다가, 곧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 형체의 얼굴이 슬프게 웃는 것처럼 보였다. 원망이 아니라 이해하는 웃음이었다. 형체가 완전히 사라진 뒤, 도현은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검을 놓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어깨가 떨렸다. 숲은 다시 조용해졌다. 아까까지 무겁던 공기가 조금 옅어진 듯했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여전히 이 숲엔 뭔가가 남아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 옆에 다가가 앉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런 순간에 적절한 말이 뭔지, 소연이었을 때도 배운 적이 없었다. 대신 손을 뻗어 그의 등을 조심스레 짚었다. "잘했어." 나는 짧게 말했다. 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어깨를 더 크게 떨었다. 소리 없이 우는 방식이었다. 숨을 참았다가 한 번씩 몰아쉬는 소리만 났다. 나는 그 등을 그냥 계속 짚고 있었다. 위로가 될지는 몰랐지만, 최소한 혼자 두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유리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뭐라고 말을 건네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고 서 있었다. 그 눈치는 나쁘지 않았다. 강도 다가오지 않았다. 대신 주변을 살피며 균열의 흔적을 확인하고 있었다. "이 조각," 도현이 겨우 목소리를 냈다. 손등에 남은 빛을 내려다보며. "제가 받을 자격이 있는 걸까요." "그건 내가 정해." 나는 말했다. "내가 준 거니까." 그가 처음으로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눈이 붉게 부어 있었다. 눈물 자국이 뺨을 타고 말라 있었다. "당신은 왜 이렇게까지 합니까." 그가 물었다. "저를 안 지 며칠도 안 됐는데." 나는 잠깐 대답을 골랐다. 소연이었을 때, 나는 늘 이유를 설명하는 데 서툴렀다. 왜 쌍둥이 동생들을 계속 챙겼는지, 왜 등록금을 두 번이나 냈는지─그건 그냥, 해야 하는 일이었을 뿐이었다. 남들은 오지랖이라 부르고, 나는 그냥 당연한 거라 여겼다. "몰라." 나는 정직하게 말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어." 도현이 다시 고개를 떨궜다. 이번엔 우는 소리가 조금 더 들렸다. 참았던 게 터지는 소리였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그의 등을 계속 짚고 있었다. 몇 분이 그렇게 흘렀다. 숲의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만 간간이 들렸다. 숲은 여전히 어두웠다. 균열이 있던 자리엔 아직 옅은 금이 남아 있었다. 마치 유리에 생긴 실금 같았다. 손으로 만지면 베일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나는 손을 대지 않았다. 강이 그 자리를 살피며 낮게 중얼거렸다. "이 정도 규모의 균열은... 처음 봅니다." 그가 말했다. "멸망이 생각보다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그 말에 유리의 얼굴이 굳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도현의 등을 짚은 손에 힘을 조금 더 줬다. 아직 세 계절이 남았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숲의 균열을 보니, 그 계산이 얼마나 정확한지 의심스러웠다. 계절이라는 단위로 셀 수 있는 시간이 맞긴 한 건지. 그리고 무엇보다, 조각을 나눠줄 때마다 느껴지는 통증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는 게, 나 혼자만 알고 있는 문제로 남아 있었다. 아까 그 통증은 처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로웠다. 다음번엔 어떨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지금은 아무도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다행이라는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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