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형벌 셋째 날이 되었다.
같은 홀, 같은 촛불, 다른 독약.
창밖은 아직 어두웠다. 형벌은 항상 이른 새벽에 열렸는데, 그 시간이 가장 정신이 흐릿할 때라서 고르는 건지, 아니면 그냥 이 가문 전통이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매번 눈을 뜨면 몸이 무겁고 속이 텅 빈 느낌부터 들었다.
이건우가 이번엔 짙은 초록빛 액체가 담긴 잔을 들고 왔다.
색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어제의 붉은빛과는 또 달랐다. 진한 쑥색에 가까운, 마치 오래된 이끼를 짓이겨 만든 것 같은 빛깔이었다. 냄새를 맡기도 전에 속이 먼저 뒤틀렸다.
【판정: 초오(草烏) 추출물, 독성 3등급, 신경 마비형】
어제보다 등급은 낮았지만 부작용이 더 무서웠다. 근육이 굳어버리면 숨도 못 쉴 수 있었다.
···등급이 낮다고 안심할 게 아니었다. 오히려 이게 더 무서운 거였다. 어제는 그냥 아프고 끝났는데, 이건 아예 숨줄이 끊길 수 있는 놈이었다.
목이 마비된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상상해봤다. 숨은 쉬고 싶은데 근육이 말을 안 듣는다. 그 상태로 몇 분이나 버틸 수 있을까. 등줄기로 서늘한 게 흘렀다.
[감별: 소량의 산성 물질이 흡수를 저해합니다.]
···산성 물질이라니, 여기 식초라도 있나.
둘러보니 다과 옆에 매실장아찌가 놓여 있었다. 이 가문 사람들은 형벌 자리에 왜 항상 간식을 놓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지푸라기가 됐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사람을 죽이려고 독약을 준비하는 자리에, 정작 다과상은 매일 새로 채워 넣는다. 누가 챙기는 건지, 관례인지, 아니면 그냥 습관인지. 이 집안 사람들 사고방식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목이 마릅니다."
똑같은 수법이었다. 통할까 걱정했는데, 이강철은 이번엔 눈살을 찌푸리며 손을 저었다.
"매번 같은 수작을 부리는군."
···들켰다.
목소리가 어제보다 한결 더 차가웠다. 눈매도 매서웠다. 아버지라는 인간이 자기 자식의 잔재주를 이렇게 정확히 캐치할 줄은 몰랐다. 아니, 정확히는 캐치하기 싫었다.
"물은 없다. 그냥 마셔라."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매실장아찌를 챙길 방법이 없어졌다.
머릿속으로 재빨리 다른 수를 찾았다. 넘어지는 척하며 다과상에 손을 뻗을까, 아니면 갑자기 기침이라도 할까. 그 어느 것도 이강철의 눈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지금 아예 나를 감시하듯 쳐다보고 있었다.
이건우가 잔을 내밀며 나를 봤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시선이 마주친 건 정말 순식간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이상하게 뭔가가 전해졌다. 서두르지 말라는, 방법이 있다는 그런 신호 같은 것.
그가 다과 접시를 살짝 밀어 내 쪽으로 옮겼다. 우연처럼 보이게, 손목만 까딱하는 정도로.
손의 움직임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나조차 처음엔 눈치채지 못할 뻔했다. 그냥 잔을 내려놓으며 팔을 슬쩍 스치는 것처럼, 접시가 몇 센티 밀렸을 뿐이었다. 이강철은 눈치 못 챈 것 같았다.
"공자님, 예를 갖추십시오. 마시기 전에 감사 인사부터."
뜬금없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 말에 시선이 다과 접시로 쏠렸다.
···아, 이거 먹으라는 뜻이구나.
머리가 팽팽 돌았다. 감사 인사와 다과 접시가 무슨 상관인지, 표면적으로는 아무 연결고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건우의 시선이 순간 접시 쪽을 향했다가 다시 나를 봤다. 그 미세한 눈짓 하나로 모든 게 이해됐다.
나는 재빨리 매실장아찌를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최대한 태연하게 말하며 씹었다. 시고 짰다. 눈물이 핑 돌 정도였다.
혀뿌리가 저릴 정도로 신맛이 확 퍼졌다. 소금기도 만만치 않아서 눈물샘이 자동으로 반응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자극이 오히려 고마웠다. 이 정도 자극이면 산성 성분이 충분히 들어갔을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잔을 비웠다.
초록빛 액체는 마시는 순간부터 혀가 얼얼했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갈 때는 아예 감각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삼키고 나니 팔다리 끝이 저릿저릿했다.
이번에도 숨은 붙어 있었다. 근육이 뻣뻣해졌지만 완전히 마비되진 않았다.
손끝이 뻣뻣해서 손가락을 접었다 펴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목도 뻐근했다. 하지만 숨은, 다행히도, 붙어 있었다.
이강철이 자리를 뜬 후, 이건우가 나를 부축했다.
"오늘도 운이 좋으셨습니다."
담담한 말투였지만, 그 손이 나를 잡는 힘은 필요 이상으로 세심했다.
부축하는 손이 팔뚝을 감싸는 방식이 딱 필요한 만큼이었다. 너무 세게 잡으면 뻣뻣해진 근육이 아플 테고, 너무 약하게 잡으면 몸이 휘청거릴 테고. 그 균형을 정확히 아는 것처럼, 아주 익숙한 손길이었다.
"형님."
"예."
"그거, 우연이 아니었죠. 다과 접시 밀어주신 거."
이건우가 잠시 멈췄다가 대답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이건우가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티가 너무 났으니까.
나는 웃음이 나왔다. 아픈 몸으로 웃는 게 이상했는지 이건우가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몸은 아직 뻐근하고 목소리도 제대로 안 나오는데, 웃음이 먼저 나온다는 게 스스로도 이상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저렇게 뻔한 표정으로 뻔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보면 웃음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왜 웃으십니까."
"형님이 저 걱정하시는 것 같아서요."
이건우의 얼굴이 굳었다.
"걱정이 아니라 의무입니다. 집행자는 대상자의 생존율을 최대한 높여야 합니다."
"그런 규칙이 있어요?"
"···없습니다."
말과 행동이 안 맞았다. 하지만 그 어긋남이 오히려 진심처럼 느껴졌다.
없다고 인정하는 그 짧은 침묵이 웃겼다. 규칙이 있다고 우겼으면 오히려 안 믿었을 텐데, 저렇게 순순히 없다고 하니까 더 믿음이 갔다. 사람이 거짓말을 못 하는 것도 병이다 싶었다.
"형님은 왕도 학원에 다니신다고 들었는데, 여기까지 매일 오시는 거예요?"
이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편도 네 시간. 왕복 여덟 시간입니다. 마차로 새벽에 출발해서 형벌 시각에 맞춰 옵니다."
"···그럼 언제 자요?"
"마차 안에서."
대답이 너무 태연해서 헛웃음이 나왔다.
여덟 시간이면 하루의 삼분의 일이다. 그 시간을 다 마차 안에서 흔들리며 보낸다는 건데, 저 사람 표정은 별로 힘들어 보이지도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힘든 걸 힘들다고 표현하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보였다.
"왜 그렇게까지 하세요? 다른 사람을 시켜도 될 텐데."
이건우가 잠시 창밖을 봤다. 왕도로 이어지는 길이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제가 그 자리에 있었을 때, 아무도 물병을 밀어주지 않았습니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무게가 있었다.
그 말을 하는 동안 이건우의 시선은 계속 창밖을 향해 있었다. 마치 그 자리에 정말 있었던 것처럼, 지금도 그 어딘가를 보고 있는 것처럼.
"형님도, 이 자리에 있었어요?"
"열세 살 때 두 달간. 아버지 방식대로 말하면, 견뎌서 증명했습니다."
[이건우의 손목에 오래된 화상 흉터가 있습니다.]
소매 사이로 언뜻 보인 흔적이 있었다. 처음 보는 게 아니었는데, 오늘 처음 그 의미를 알았다.
전에도 몇 번 스치듯 봤던 흔적이었다. 그냥 어릴 때 다친 상처인가 했었다. 그런데 지금 저 말을 듣고 보니, 그 흔적이 다르게 보였다. 열세 살짜리가 매일 독약을 마시면서 남긴 흔적이라니.
"···그래서 지금 저한테 이러시는 거예요?"
이건우가 나를 똑바로 봤다.
"동정이 아닙니다. 그냥, 저는 견디는 방법을 압니다. 그걸 나눠주는 것뿐입니다."
존댓말인데 그 어느 때보다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격식체였다. 하지만 눈빛이 달랐다. 마치 자기 안에 오래 묻어둔 뭔가를 조심스럽게 꺼내 보이는 것 같은, 그런 눈빛이었다.
나는 잠시 아무 말도 못 했다. 전생에서도 이런 식으로, 담담하게 손 내밀어주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
전생을 통틀어도 이런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다들 뭔가를 바라고 손을 내밀거나, 아니면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 이렇게 대가 없이, 그저 자기가 겪었던 걸 나눠주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고맙습니다."
짧게 말했다. 더 길게 말하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목이 뻣뻣해서 말을 길게 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사실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뭔가 더 말하려고 하면 목소리가 갈라질 것 같았다.
이건우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렸다.
"내일은 좀 더 독한 걸 가져오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순간 분위기가 다시 얼어붙었다.
방금까지 있던 온기가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마치 창문을 열어놓은 것처럼, 찬 공기가 훅 들어온 느낌이었다.
"···왜요?"
"아버지께서, 공자님의 회복이 너무 빠르다고 하셨습니다."
[이건우의 목소리가 낮아졌습니다.]
"의심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남기고 이건우는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방 안에는 다시 나 혼자 남았고, 촛불만 조용히 흔들렸다.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노려봤다.
감찰관도 의심하고, 이제 아버지까지 의심한다.
하루하루 견디는 것도 힘든데, 매일 새로운 독이 더 독하게 올라온다면 —
이건 시간이 흐를수록 살아남기 어려워지는 게임이었다.
수학적으로 계산해봐도 답이 안 나왔다. 독성 등급은 계속 올라갈 텐데, 내가 버틸 수 있는 몸의 한계는 그만큼 늘어나지 않는다. 이대로면 언젠가는, 그것도 아마 그리 멀지 않은 날에, 잔을 비우고도 눈을 못 뜨는 날이 올 거다.
좋은 소식이 있다면, 나에겐 이제 이 이상한 목소리가 있다는 것.
나쁜 소식은, 그 목소리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주는 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더 나쁜 소식은, 내일이 오늘보다 훨씬 더 독한 잔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