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나흘째, 이건우가 가져온 잔에서 냄새가 달랐다.
처음 사흘은 그래도 견딜 만했다. 첫째 날은 쓴맛이 강한 탕약 수준, 둘째 날은 위가 뒤틀리는 정도, 셋째 날은 다리가 후들거려서 걷기 힘든 정도였다. 매번 죽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눈을 뜨면 다음 날이 왔다. 그래서 오늘도 그런 날들 중 하나일 거라고, 어쩌면 조금 더 힘든 날일 거라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잔을 받아 드는 순간부터 코끝을 찌르는 냄새가 이전과 완전히 달랐다. 알싸하고 비릿한, 흙 냄새 같기도 하고 쇠 냄새 같기도 한 그 냄새를 맡자마자 위장이 먼저 반응했다. 마시기도 전에 속이 뒤집히는 기분이었다.
【판정: 독미나리 추출물 + 부자 혼합, 독성 6등급】
숫자를 본 순간 뒷목이 서늘해졌다.
어제까지는 견딜 만한 수준이었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해독 가능 범위를 초과했습니다.]
처음 듣는 경고였다.
···이거 마시면 진짜 죽는다는 소리네.
지금까지 이 시스템이 나한테 이런 식으로 경고한 적이 없었다. 대충 참으라거나, 견딜 만하다거나, 그런 무책임한 소리만 늘어놓던 놈이 갑자기 정색하고 초과라는 단어를 쓴다. 이게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다른 방식으로 알려주는 게 아니라, 그냥 대놓고 못 막는다고 선언하는 거였다.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렀다. 이강철이 상석에 앉아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눈빛에 호기심 같은 게 스쳤다. 실험을 관찰하는 눈이었다.
그 눈빛이 낯설지 않다는 게 더 소름 끼쳤다. 사흘 내내 저 자리에서 저런 눈으로 나를 봤다. 내가 죽든 살든, 데이터가 되는 순간만 기다리는 눈.
"아버지."
용기를 내서 입을 열었다.
"이 정도 농도는, 견디는 게 아니라 그냥 죽는 걸 확인하는 것 같습니다."
이강철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의외로 담담한 인정이었다. 그게 더 무서웠다.
···차라리 화를 내라. 아니라고 우기든가.
그런데 저 사람은 그냥 사실을 사실대로 받아들이는 얼굴이었다. 그게 훨씬 소름 끼쳤다. 화를 내는 사람은 적어도 뭔가 감정이 있다는 뜻인데, 저건 그냥 실험 노트를 확인하는 표정이었다.
"그럼 왜···"
"우리 가문의 훈을 아느냐."
이강철이 처음으로 길게 말을 이었다.
"죽음은 무가치하다. 그러나 그 죽음이 남기는 데이터는 의료의 양식이 된다. 나는 삼십 년간 죽어가는 자들을 관찰해 새로운 처치법을 만들었다. 내 아들이라 해서 예외는 아니다."
···이 사람 완전히 미쳤구나.
삼십 년이라는 숫자가 유독 귀에 걸렸다. 삼십 년간 이런 짓을 반복했다는 거잖아. 그 삼십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저 자리에서 잔을 비웠을까. 그 생각을 하니 등줄기가 더 서늘해졌다.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겉으로는 고개를 숙였다.
"···가르침을 새기겠습니다."
"좋다. 그렇다면 오늘도 견뎌보아라."
이건우가 잔을 내 앞에 놓았다. 그의 손이 살짝 떨리는 게 보였다.
[이건우가 이 명령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반대한다고 해서 거부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었다. 그도 알고 있었다.
이건우의 눈이 잠깐 나와 마주쳤다가 곧바로 아래로 떨어졌다. 그 짧은 순간, 그의 눈에 담긴 게 뭔지 알 것 같았다. 미안함이었다.
나는 재빨리 머릿속을 굴렸다. 매실이나 감초로는 이 등급을 못 막는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감별: 알칼리성 재가 흡수를 크게 저해합니다.]
재. 벽난로 재?
홀 한쪽에 벽난로가 있었다. 재를 손으로 집어먹는 건 미친 짓이지만, 지금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였다.
시야 한쪽 구석에서 벽난로의 잔불이 은은하게 타고 있었다. 저택은 늘 서늘한데 저 벽난로 하나가 홀의 온기를 다 책임지고 있었다. 그 앞에 쌓인 회백색 재가 눈에 들어왔다. 저게 지금 내 목숨줄이라는 게 웃겼다.
"저기, 손이 떨려서 자세를 좀 잡아야겠습니다."
일부러 몸을 비틀며 벽난로 쪽으로 다가섰다. 감찰관이 눈을 가늘게 뜨고 지켜봤다. 그 감찰관은 아까부터 서류판을 옆구리에 끼고 서 있었는데, 표정 하나 없이 나를 관찰하는 게 이강철보다 더 사람 같지 않았다.
손끝에 재를 살짝 묻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입가를 훔치는 척하며 재를 삼켰다. 쓰고 텁텁했다.
목구멍을 넘어가는 순간 숯가루 같은 게 이빨 사이에 낀 느낌이 들었다. 삼키고 나서도 입안이 온통 흙맛이었다. 이걸로 되는 건가, 확신은 없었다. 그냥 시스템이 말해준 정보에 목숨을 걸었다.
"이제 됐습니다."
다시 자리에 앉아 잔을 들었다. 손이 진짜로 떨렸다. 이번엔 연기가 아니었다.
"드십시오."
이건우의 목소리가 낮았다.
잔을 비웠다. 목이 타는 듯했다. 위가 뒤집혔다.
액체가 목을 타고 넘어가는 순간부터 느낌이 이상했다. 어제까지는 그냥 쓰고 아팠는데, 오늘은 목구멍부터 불이 붙는 것 같았다. 삼키자마자 침샘이 바짝 말라붙었고, 심장이 이상하게 빨리 뛰기 시작했다.
철퍽.
앞으로 쓰러졌다. 시야가 흔들렸다.
【해독 진행: 18%】
···18퍼센트라니, 이건 진짜 죽는 거 아닌가.
의식이 아득해지는 와중에도 머릿속으로 계산을 멈추지 않았다. 재로 흡수를 늦췄어도 이 정도 독성이면 시간을 좀 더 벌어야 했다. 몇 퍼센트가 더 필요한지, 어느 정도까지 버텨야 위험선을 넘는지 아무 정보도 없었다.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건 하나였다.
"공자님!"
누군가 나를 안아 일으켰다. 이건우였다. 그의 손이 내 등을 세게 두드렸다.
"뱉어내십시오. 억지로라도!"
존댓말인데 목소리가 갈라졌다. 처음 보는 동요였다. 사흘 내내 담담하게 잔을 나르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손이 완전히 떨리고 있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손가락을 목구멍 깊이 밀어 넣었다. 헛구역질이 나왔다. 위 속의 것들이 올라왔다.
토했다. 바닥이 붉게 물들었다.
붉은색을 보고서야 이게 진짜 위험한 상황이라는 게 실감났다. 지금까지는 그냥 아프고 힘든 정도였는데, 이번엔 몸이 알아서 경고를 보내는 느낌이었다.
이강철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그의 눈에 순수한 흥미가 담겨 있었다.
"흥미롭군. 위 배출 반사가 이렇게 정확한 타이밍에 일어난 경우는 처음이다."
···지금 사람이 다 죽어가는데 관찰이나 하고 있냐.
분노가 치밀었지만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신음뿐이었다. 저 사람 눈에는 지금 내 앞에서 죽어가는 게 아들이 아니라 그냥 흥미로운 실험 개체인 모양이었다. 삼십 년간 저런 눈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봤을까, 다시 그 생각이 떠올랐다.
감찰관이 서류에 뭔가를 급하게 적고 있었다. 펜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감찰관이 당신을 새로운 등급으로 재분류하고 있습니다.]
···등급 매기지 말고 사람 살려요.
의식이 다시 흐려졌다. 눈앞이 검은 커튼으로 덮이는 것처럼 점점 좁아졌다. 마지막으로 들린 건 이건우의 목소리였다.
"의원을 불러야 합니다!"
"의원은 필요 없다. 자연 회복 여부를 지켜본다."
이강철의 대답이 차가웠다.
"아버지!"
이건우가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이건 죽입니다. 벌이 아니라 살인입니다!"
"살인이라는 건 없다. 실험이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이건우가 뭐라고 더 소리치는 것 같았는데, 그 말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몸이 점점 무거워지고, 손끝부터 감각이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이상하게도 무섭지가 않았다. 그냥 온몸이 나른했다. 어쩌면 이게 죽음이 오는 방식인가 싶은 생각이 스쳤다.
나는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처음으로 그 목소리가 감정을 담아 말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존댓말이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하게 들렸다. 지금까지 저 목소리가 이런 톤으로 말한 적이 없었다. 늘 사무적이고 건조하게 정보만 던지던 목소리가, 지금은 애원하듯 흔들리고 있었다.
···너까지 왜 그래.
의식의 끝자락에서 그 생각만 남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