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박물관 후문에 도착했을 때, 안호의 옷은 먼지와 재로 얼룩져 있었다.
소매 끝이 검게 눌어붙어 있었다.
코끝에는 아직도 매캐한 탄내가 들러붙어 있었다.
셔츠 안쪽, 갈비뼈 아래가 뻐근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 안쪽이 긁히는 느낌이었다.
안호는 뒷문 손잡이를 잡았다.
차가운 금속 감촉이 손바닥에 닿자, 그제야 손끝이 떨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아직도 떨리네.'
문을 밀고 들어섰다.
로비 안쪽은 평소와 다름없이 조용했다.
에어컨 바람이 낮게 깔려 있었고, 대리석 바닥은 반들거렸다.
바깥의 불길과 비명이, 마치 다른 세계의 일처럼 아득했다.
그 낙차가 속을 뒤틀어놓았다.
로비로 들어서자마자 이재원이 달려왔다.
작은 체구에, 목에는 늘 신입 명찰을 걸고 있는 남자였다.
발소리가 급했다.
구두 굽이 대리석 바닥에 부딱, 부딱, 부딱, 세 번 울렸다.
"안호 씨, 얼굴이 왜 그래요."
이재원의 눈이 안호의 얼굴부터 목, 옷자락까지 빠르게 훑었다.
"넘어졌어요."
짧은 대답에, 이재원은 눈썹을 찌푸렸지만 더 묻지 않았다.
대신 목소리를 낮추며 옆으로 붙었다.
체온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웠다.
"관장님 오늘 완전히 폭탄이에요. 도심 그 난리 때문에 관람객이 절반도 안 왔거든요. 그거로 화풀이 시작할 거예요."
안호는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방금 도로에서 사람이 불타 죽었는데, 관람객 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게 비현실적이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걸 보고 온 사람과, 매출표를 걸고 있는 사람이 같은 로비에 서 있었다.
'이 사람은 아무것도 몰라.'
안호는 그 사실이 오히려 부러웠다.
"저 좀 앉아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무릎 뒤가 후들거렸다.
당장이라도 바닥에 주저앉고 싶었다.
"안 돼요. 지금 사무실 앞으로 안 가면 더 크게 터져요."
이재원이 팔을 잡아끌었다.
손끝에 힘이 실려 있었다.
작은 손인데도, 완력이 제법이었다.
안호는 끌려가듯 걸음을 옮겼다.
복도 조명이 하나씩 지나갔다.
관장실 앞 복도에 도착하자, 문 안쪽에서 이미 언성이 오가고 있었다.
누군가의 비명 같은 목소리, 그리고 뒤이어 서류철이 바닥에 떨어지는 듯한 소리.
탁.
안호가 문을 열기 전, 이재원이 낮게 속삭였다.
"저 사람, 진짜 위험해요. 오늘은 특히 더요. 그냥 숙이고 나와요, 알겠죠?"
"경고하는 거예요, 아니면 부탁하는 거예요."
이재원이 잠시 말을 골랐다.
시선이 문고리와 안호의 얼굴 사이를 오갔다.
"둘 다요."
안호는 문을 밀었다.
경첩이 낮게 끼익, 울렸다.
관장 강태호가 책상 뒤에서 서류를 던지고 있었다.
넥타이는 반쯤 풀려 있었고, 이마에 핏줄이 도드라져 있었다.
"이런 날 지각을 해? 지금 이 상황에?"
목소리가 유리창을 흔드는 듯했다.
"밖에 건물이 무너졌습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넌 여기 사람이야, 여기서 월급 받는."
강태호의 목소리가 복도까지 쩌렁쩌렁 울렸다.
안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느꼈다.
조금 전까지, 손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건물 하나를 무너뜨릴 수도 있는 힘이 손끝에 감겨 있었다.
지금은 그 손으로, 이 인간의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웃기지.'
목구멍 안쪽이 뜨끈하게 조여왔다.
말 한마디만 잘못 뱉으면, 이 방 전체가 재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이 남자는 모르고 있었다.
강태호가 서류를 안호 발밑으로 던졌다.
서류 뭉치가 발치에서 파삭, 흩어졌다.
"오늘 야근이야. 특별 전시 준비 안 끝났잖아."
"…네."
짧은 대답과 함께, 안호는 서류를 주워 들었다.
무릎을 굽히며, 종이 한 장 한 장을 다시 모았다.
손등에 아직 남아 있는 화상 자국이, 서류 위로 그림자를 드리웠다.
강태호는 그 자국을 보지 못했다.
보지 못한다는 게, 다행인지 서러운지 알 수 없었다.
관장실을 나오자, 이재원이 복도 구석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다가, 안호가 나오자 몸을 떼며 다가왔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거짓말이었다.
허벅지 안쪽이 아직도 후들거리고 있었다.
이재원이 주위를 살짝 둘러보고, 목소리를 더 낮췄다.
복도 끝, 청소 카트가 서 있는 쪽을 한 번 흘겨본 뒤였다.
"저기, 이거 좀 이상하게 들릴 텐데. 오늘 아까 그 난리, 진짜로 봤어요?"
안호는 잠시 멈췄다.
말할 수 있는 게 어디까지인지 가늠이 안 됐다.
머릿속으로 몇 가지 대답을 굴려보다가, 결국 가장 짧은 걸 골랐다.
"봤어요."
"저도 뉴스로 봤는데, 사람들이 그러더라구요. 그 불타는 사람 근처에서 누가 불을 막았다고. SNS에 영상까지 돌던데."
안호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찍혔나.'
손끝이 다시 떨렸다.
아까와는 다른 종류의 떨림이었다.
이재원은 안호의 표정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안호의 반응 하나하나를 읽어내려는 듯했다.
"그게 안호 씨였어요?"
대답 대신, 안호는 침묵했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그 자체가 대답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 안 해도 알겠네요."
"소문내면 곤란해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경고이자, 애원이었다.
"안 내요. 대신……"
이재원이 잠시 말을 골랐다.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안호를 향했다.
"저도 좀 도와줘요. 저 관장 밑에서 6개월 버텼는데, 이젠 진짜 한계예요. 안호 씨가 뭔가 특별한 힘이 있는 거면, 저한테도 조금은 나눠줄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안호는 미간을 좁혔다.
"나눠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말은 그렇게 나갔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이 스쳤다.
이 힘을 나눠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지긋지긋한 청구서도, 반쪽으로 나눠서 갚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럼 최소한, 저 관장 좀 어떻게 해봐요. 저도 정보는 줄 수 있어요. 관장 스케줄, 약점, 뭐든."
거래.
서로 믿지도 못하는 사이에, 필요에 의해 손을 잡자는 소리였다.
안호는 잠시 이재원의 얼굴을 살폈다.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은, 지친 얼굴이었다.
눈 밑 그늘이 마치 며칠 밤을 새운 사람처럼 짙었다.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얼굴.
같은 건물 안에서, 같은 사람 밑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소모되고 있는 두 얼굴이었다.
"…생각해볼게요."
"빨리 생각해요. 관장 그 인간, 오늘 특히 이상해요. 뭔가 큰 결정을 내릴 것처럼."
그 말을 남기고, 이재원은 서둘러 다른 층으로 사라졌다.
구두 소리가 계단 쪽으로 멀어졌다.
부딱, 부딱, 부딱, 점점 작아지다가, 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끊겼다.
안호는 서류를 든 채 창가로 걸어갔다.
발밑에서 대리석 바닥이 서늘하게 식어 있었다.
유리창 밖으로, 아직도 도심 쪽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멀리서도 그 연기 기둥은 뚜렷했다.
하늘 한쪽을 그대로 물들이고 있었다.
몇 시간 전까지, 저 연기 아래 서 있었다.
사람이 불타는 냄새가, 아직도 코끝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안호는 손등으로 코밑을 문질렀다.
지워지지 않았다.
스마트폰이 다시 진동했다.
주머니 안에서 위이이잉, 짧게 두 번.
[박범수] 야, 너 진짜 대답 좀 해봐.
[박범수] 그 영상 너 맞지? 손에서 불 나오는 거.
안호는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이미 인터넷 어딘가에 떠돌고 있었다.
몇 명이나 봤을까.
몇 명이나 알아챘을까.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멈췄다.
답장을 쓸지, 무시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였다.
엄지 끝이 화면 위에서 몇 번 오르락내리락했지만, 끝내 글자 하나 찍히지 않았다.
창밖 저 멀리서, 두 개의 검은 그림자가 도심 하늘을 가로질러 이동하고 있었다.
빠르게, 소리도 없이.
안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었다.
너무 빠르고, 너무 매끄러웠다.
가슴 속 어딘가에서, 아까와는 다른 종류의 오한이 스며 올라왔다.
'저게 뭐야.'
서류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종이 끝이 손안에서 구겨졌다.
그림자는 순식간에 건물 뒤편으로 사라졌다.
방향은, 정확히 이 박물관 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