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만찬 초대장이 도착한 그날 밤, 저택은 마치 벌집을 쑤셔놓은 것처럼 부산스러운 분위기로 가득 찼다. 하녀들이 복도를 오가며 옷가지를 나르는 소리, 누군가 향유를 데우는 냄새, 그 와중에 윤태호는 거울 앞에 서서 금목걸이 두 개를 겹쳐 걸고도 부족하다는 듯 손목에 팔찌를 하나 더 채우며 연회복을 점검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대기업 회식에 나가기 전 넥타이를 세 번씩 고쳐 매는 부장님을 보는 것 같아서, 나는 속으로 실없이 웃음을 삼켰다.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든 다 똑같구나 싶었다. 계급이 다르고 시대가 다르고 언어가 달라도, 남한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마음은 만국 공통의 진리인 모양이었다.
"강도현, 자네도 이 옷으로 갈아입게. 도시주의 저택에서 허름한 차림을 보이면 곧 웃음거리가 될 테니까." 윤태호의 목소리엔 계산이 짙게 배어 있었다. 상단주라는 자리가 원래 그런 것인지, 그는 숨 쉬는 것조차 이익과 손해를 재는 습관이 든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계산이 결국 나를 향한 배려로도 읽혔기에, 나는 굳이 튕기지 않고 순순히 옷을 받아 걸쳤다. 옷감은 낯설게 뻣뻣했고 목덜미를 스치는 감촉이 이상하게 까슬거려서 마치 처음 입어보는 교복 같은 어색함이 들었지만, 소매 끝과 옷깃에 놓인 자수만큼은 놀랄 만큼 정교했다. 실 한 가닥 한 가닥이 촘촘히 얽혀 새겨진 문양을 보고 있자니, 이 세계 사람들의 손기술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걸 실감했다. 방직기도 없이 이런 걸 손으로 짜냈다면, 이 세계의 장인들은 어쩌면 내가 알던 세계의 명품 브랜드보다 더 무서운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도시주의 저택은 윤태호의 집과는 비교가 안 될 규모였다. 대문을 지나는 순간부터 그 사실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대리석 기둥이 정원을 따라 줄지어 서 있었고, 붉은 등불이 회랑마다 걸려 어둠을 밀어내고 있었으며, 벽마다 새겨진 문양은 금박으로 마감되어 등불에 반사될 때마다 은근히 빛을 흘렸다. 정원의 나무들조차 일정한 간격으로 다듬어져 있어서, 자연스러움보다는 권력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느껴졌다. 이런 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를 수밖에 없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회장 안으로 들어서자 이미 여러 상인과 관료들이 자리해 있었고, 낮은 웃음소리와 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뒤섞여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상석에는 도시주 장병철이, 그 옆에는 그의 아들 장가온이 앉아 있었다. 장병철은 살집이 있는 얼굴에 눈매가 날카로웠고, 사람을 볼 때마다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 같은 눈빛을 흘렸다. 그와 달리 장가온은 창백한 얼굴에 어딘가 초점 없는 눈빛을 가진 사내였는데, 시선이 줄곧 윤서린에게만 고정되어 있는 게 멀리서 봐도 훤히 드러났다. 다른 사람의 잔이 비면 채워주는 시늉조차 하지 않고, 오직 그녀 쪽만 응시하는 그 태도가 나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건 관심이 아니라 소유욕이군.' 나는 속으로 그렇게 규정하며 그의 시선을 마주 응시했다. 눈싸움이라도 하듯 잠깐 시선이 부딪혔지만, 그는 별다른 동요 없이 다시 윤서린에게로 눈을 돌렸다. 참으로 뻔뻔한 인간이었다.
술과 음식이 몇 차례 돌고 분위기가 데워질 즈음, 장가온이 잔을 내려놓으며 좌중을 향해 입을 열었다. "윤 소저, 이 자리에서 청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지만, 그 안에 숨죽인 열기가 배어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젓가락질을 멈췄다. 뭔가 심상찮은 흐름이라는 걸 직감으로 알아챈 거였다. "저와 혼인을 맺어주시겠습니까." 그 한마디가 떨어지자마자 연회장의 소음이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잔을 든 채로 굳어 있는 관료들, 서로 눈치를 살피는 상인들, 그리고 그 침묵의 중심에 놓인 윤서린. 나는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며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정략이라는 게 이렇게 공개적인 방식으로 던져질 수도 있는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회사 회의 자리에서 갑자기 인사이동 발표를 받는 기분이랄까.
윤서린은 침착하게 잔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과분한 청이십니다만, 저는 아직 그런 자리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목소리엔 흔들림이 없었지만, 그 절제 뒤에 숨은 긴장은 옆에 앉은 내가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손끝이 아주 살짝 떨리는 걸 나는 놓치지 않았다. 저 여자도 사람이구나 싶었다. 겉으로는 얼음장 같아 보여도, 이런 자리에서 떨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장가온의 표정이 아주 조금 굳는가 싶더니 이내 웃음으로 덮였는데, 그 웃음이 오히려 더 서늘했다. 입꼬리는 올라갔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아버님께서도 이 혼인을 원하십니다. 선월국과 두 상단의 결속을 위해서요." 그 말속에는 이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압박이 숨어 있었다. 이건 청혼이 아니라 통보에 가까웠다. 그러자 윤태호가 재빨리 나서 상황을 봉합하려 했다. "영광스러운 말씀이나, 아직 딸아이가 어립니다. 시간을 조금만 더 주신다면…" 완곡한 거절이었지만, 도시주 부자의 눈빛에는 이미 실망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장병철은 술잔을 손끝으로 매만지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무겁게 좌중을 짓눌렀다.
나는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괜히 나섰다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 될 게 뻔했으니까. 하지만 속으로는 이 정략의 판이 결코 조용히 끝나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등줄기를 서늘하게 훑고 지나가는 걸 느꼈다. 저런 눈빛으로 사람을 보는 자가, 거절 한 번으로 순순히 물러날 리 없었다. 나는 슬쩍 윤서린의 옆얼굴을 살폈다. 그녀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 입술을 살짝 깨물고 있었다.
연회가 끝나고 저택으로 돌아가는 길, 밤공기는 낮보다 훨씬 서늘했고 마차 바퀴가 자갈길을 구르는 소리만이 정적을 채우고 있었다. 등불 몇 개가 마차 창밖으로 스쳐 지나갈 때마다 짧게 명멸했다. 윤서린은 창밖을 응시한 채 별다른 말이 없었고, 윤태호는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있었는데, 자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마 머릿속으로 손익계산을 하고 있겠지. 나는 그 옆에서 괜히 딴생각을 하며 침묵을 견뎠다. '이런 걸 보면 재벌가 정략결혼 드라마가 딱히 과장이 아니었구나.'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장면을 실제로 목격하고 나니 묘하게 실감이 났다.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던 찰나, 마차가 급작스럽게 멈춰 섰다.
앞쪽에서 마부의 짧은 비명이 들렸다. 그 소리는 단발음으로 끝나버려서 더욱 불길했다. 곧이어 어둠 속에서 검은 옷을 두른 인영들이 마차를 에워싸는 게 창문 틈으로 보였다. 하나, 둘, 셋… 세는 걸 그만두고 싶어질 만큼 숫자가 늘어갔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감각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손끝이 차갑게 식는 게 느껴졌지만, 동시에 머릿속 어딘가에서는 이상하게 침착한 목소리가 들렸다. 놀랄 시간에 몸부터 움직여라, 하는 오래된 습관 같은 목소리였다.
"암살자다!" 윤태호의 다급한 목소리가 마차 안을 울렸다. 그 목소리엔 방금까지의 계산적인 여유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윤서린을 감싸 안으며 몸을 낮췄다. 그녀의 몸이 순간 딱딱하게 굳는 게 느껴졌지만, 이럴 때 설명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그 순간 마차 문이 부서지듯 열리고 칼끝이 어둠을 가르며 안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그 서늘한 빛이 내 옆구리를 스치는 걸 느끼며 짧게 숨을 삼켰다. 옷감이 갈라지는 소리가 났는지, 피부가 갈라지는 소리가 났는지 순간적으로 구별이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