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단 한 번의 소환

2화

그날 밤, 섬은 조용했다. 조용한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낮 동안 그렇게 소란스러웠던 마을이었다. 아이들의 손바닥에 문양이 새겨지던 순간, 어른들의 낮은 탄식과 놀란 숨소리, 종이 울리던 소리까지. 그 모든 것이 지나간 뒤에는 무거운 정적만 남았다. 바람도 잦아들었다. 개 짖는 소리도 없었다. 파도 소리마저 평소보다 낮게 깔려 있었다. 도원은 잠들지 못했다. 이불 속에서 몸을 뒤척였다. 눈을 감으면 낮의 장면들이 다시 떠올랐다. 손바닥이 타오르던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쏟아지던 순간. 눈을 뜨면 어둠뿐이었다. 손바닥의 탑 문양은 낮보다 옅어졌지만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만지면 미열이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 손바닥 안에 작은 불씨를 넣어둔 것 같았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그저 살아 있다는 느낌이었다. 도원은 손을 몇 번이나 쥐었다 펴보았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문양은 그대로였고, 미열도 그대로였다. 요아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도 오지 않았다. 밤이 깊어져도 오지 않았다. 요아의 집 쪽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평소라면 이 시간쯤 요아가 창문을 두드리며 도원을 부를 시간이었다. 오늘은 그 소리가 없었다. 도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요아의 집 창문은 어두웠다. 불빛 하나 없었다. 어디로 간 걸까. 왜 아무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는 걸까.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도, 잠자리에 들라고 말할 때도, 요아에 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었다. 마치 그런 아이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촌장의 집 앞엔 등이 켜져 있었고, 안에서는 낮은 대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도원은 결국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났다. 맨발로 방을 나섰다. 마루가 차가웠다. 그 차가움이 오히려 정신을 깨웠다. 창가에 붙어 섰다. 촌장의 집은 도원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바람이 잦아든 밤이라 소리가 더 잘 들렸다. 도원은 그 소리를 들으려 애썼다. 숨을 죽이고, 발끝을 세우고, 귀를 창틀에 바짝 붙였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몇 개뿐이었다. "…예정보다 빨랐다…" "…아직 어린데…" "…신께서 원하신 대로…"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다. 촌장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다른 어른들의 목소리가 섞여 들어왔다. 누군가는 한숨을 쉬었고, 누군가는 낮게 신음했다. 도원은 그 문장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예정보다 빨랐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신께서 원하신 대로'라는 것이 요아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몸은 이해하고 있었다. 배 속 어딘가가 뒤틀리는 감각이었다. 명치 아래, 위장 근처, 알 수 없는 곳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조여드는 느낌. 도원은 그 감각의 이름을 몰랐다. 다만 그것이 좋은 신호가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히 알았다. 그때, 바다가 소리를 냈다. 평소의 파도 소리가 아니었다. 더 낮고, 더 길었다. 마치 아주 큰 짐승이 숨을 들이쉬는 소리 같았다. 도원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손끝이 저절로 차가워졌다. 소리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들이쉬고. 멈추고. 다시 들이쉬고. 마치 무언가가 서서히 몸을 일으키며 숨을 고르는 소리였다. 도원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절벽 아래 바다가 검게 일렁이고 있었다. 달빛 아래에서도 그 검음은 짙었다. 보통의 밤바다는 은빛으로 반짝이는 부분이 있었다. 오늘 밤은 아니었다.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그림자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위로, 파도가 아니라 무언가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처음엔 그저 물이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내 그 부풀어 오름에 형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둥글고, 매끄럽고, 검은 등 같은 것이 수면 아래에서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도원의 손끝이 다시 저려왔다. 이번엔 두려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손바닥의 미열도 함께 짙어지고 있었다. 우연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종소리가 울렸다. 위험을 알리는 종이었다. 크고, 급하고,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종소리였다. 도원은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몸이 먼저 반응했다. 창틀을 붙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집 밖으로 나왔다. 문 열리는 소리, 맨발로 뛰는 소리, 아이들이 우는 소리. 어른들의 목소리가 뒤섞였다. "해일이다!" "아이들을 높은 곳으로!" "불을 켜! 불을 밝혀!" 도원도 밖으로 뛰어나갔다. 신발을 신을 겨를도 없었다. 맨발에 흙과 자갈이 닿는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다. 차갑고 거칠었다. 마을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람들이 언덕 쪽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등불을 든 이도 있었고, 아이를 안고 뛰는 이도 있었다. 어둠 속에서 그림자들이 서로 부딪치며 흔들렸다. 남성이 반대편 집에서 튀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남성의 팔뚝은 벌써 평소보다 두 배는 부풀어 있었다. 낮에 각성한 능력이 벌써 발현된 모양이었다. 근육이 옷을 뚫을 듯 팽팽하게 부풀어 있었고, 힘줄이 밖으로 도드라져 있었다. "도원!" 남성이 소리쳤다. "이쪽으로! 언덕으로 올라가!" 목소리에는 힘이 넘쳤다. 두려움보다는 오히려 흥분 같은 것이 섞여 있었다. 방금 얻은 힘을 시험해보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도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뛰었다. 하지만 발이 이상하게 무거웠다. 마치 발목에 무언가 걸린 것 같았다. 아무리 다리를 움직여도 속도가 나지 않았다. 손바닥의 문양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었다. 이번엔 미열이 아니었다. 확실한 열감이었다. 도원은 뛰면서도 손을 자꾸 내려다보았다. 아직 붉게 빛나지는 않았지만, 안에서부터 뭔가가 서서히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바다가 다시 숨을 들이쉬었다. 이번엔 소리가 더 컸다. 마을 전체가 그 소리에 흔들리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검은 물결이 절벽 아래에서 부풀어 올랐다. 마치 거대한 등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듯했다. 처음엔 작은 언덕처럼 보였던 것이 점점 커졌다. 물이 그 형체를 따라 미끄러지듯 흘러내렸다.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파도가 아니라, 살아있는 무언가였다. "저게 뭐야." 누군가 소리쳤다. "신의 사자다!" 다른 누군가가 외쳤다. "도망쳐! 다들 도망쳐!" 도원은 걸음을 멈췄다. 발이 저절로 멈췄다. 뛰던 다리가 그 자리에서 굳어버린 것처럼. 주변 사람들이 도원을 스쳐 지나가며 언덕으로 뛰어올라갔다. 그 흐름 속에서 도원만 홀로 멈춰 서 있었다. 그 순간, 손바닥이 타는 듯 뜨거워졌다. 참을 수 없이. 도원은 손을 펼쳤다. 탑 문양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처음 보는 빛이었다. 별빛도, 촛불도 아니었다. 안에서부터 새어 나오는 빛이었다. 빛은 손금을 따라 번지듯 퍼져나갔다. 손바닥 전체가 붉게 물들었다가, 다시 문양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마치 그 안에 작은 심장이 뛰고 있는 것처럼. "저기 좀 봐!" 아이 하나가 도원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사람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도원에게 쏠렸다. 뛰던 발걸음들이 멈췄다. 등불이 흔들렸다. 수십 개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도원의 손바닥을 향했다. 도원은 겁이 났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시선이 쏟아지는 만큼 몸이 굳어갔다.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몸이 먼저 움직였다. 손을 바다 쪽으로 뻗었다. 이유는 몰랐다. 그저 그렇게 해야 한다는 감각이 있었다. 누군가 손을 뒤에서 잡아 끄는 것처럼, 혹은 손 자체가 스스로 방향을 정한 것처럼. 웅— 울림이 커졌다. 손끝에서 시작된 진동이 팔을 타고 어깨까지 퍼졌다. 무언가가 손끝 밖으로 밀려나가려 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인지, 도원 자신도 알지 못했다. 진동은 점점 강해졌다. 뼈가 울리는 느낌이었다. 도원은 이를 악물었다. 손을 거두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마치 손이 이미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순간, 검은 물결이 방향을 틀었다. 거대한 그림자가 흔들렸다. 마치 무언가에 놀란 듯, 물속으로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파도가 낮아졌다. 검은 등의 형체가 물 밑으로 사라지고, 표면은 다시 평평해졌다. 바다가 다시 조용해졌다. 마을은 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등불의 불꽃이 흔들리는 소리만 들렸다. 몇몇 사람들은 여전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고, 몇몇은 도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였어, 방금." 남성이 도원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부풀어 오른 팔은 아직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 팔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는 것을, 남성 자신도 알고 있는 눈치였다. "몰라." 도원이 대답했다. 손끝이 아직 떨리고 있었다. 떨림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하나가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떨리는 것 같았다. "네가 한 거야?" "모른다니까." 남성은 도원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붉은 빛은 이미 사그라들었지만 탑 문양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 문양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남성의 표정이 조금씩 변했다. "그거, 문양이 이상하게 생겼네." 남성이 말했다. "내 거하고 다르게." 남성이 자기 팔을 들어 보였다. 팔뚝에는 굵은 선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힘줄을 따라 번개처럼 뻗은 선이었다. 문양은 여전히 미약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건 힘 커지는 거야." 남성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방금도 느꼈어. 한 시간 정도는 이렇게 있을 수 있어." 도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남성의 자랑을 들을 만한 여유가 없었다. 손바닥 안쪽에 여전히 뜨거운 것이 남아 있었다. 마치 무언가가 그 안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다음을 기다리며 웅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도원 쪽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쟤가 막은 거야?" "저 문양은 뭐지?" "신의 사자를 물리쳤다고?" 도원은 그 시선들이 부담스러웠다. 몸을 조금 움츠렸다. 촌장이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다가왔다. 지팡이를 짚은 걸음이 평소보다 빨랐다. 그의 눈은 도원의 손바닥에 오래 머물렀다. 오랫동안, 마치 그 문양의 모양을 하나하나 새기듯 바라보았다. "괜찮으냐." 촌장이 물었다. "네." 도원이 대답했다. "그런데 저게 뭐였는지 모르겠어요. 뭘 한 건지도." 촌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도원의 어깨를 짧게 짚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도원은 그 떨림을 느꼈다. 노인의 손이 떨리는 이유가 두려움 때문인지, 다른 무엇 때문인지 그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떨림에는 분명 무게가 있었다. 단순한 놀라움이라기엔 너무 깊었다. 주변의 다른 어른들도 촌장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마치 촌장의 말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오늘은 쉬어라." 촌장이 말했다.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 그 말투는 평소와 달랐다. 조금 더 조심스럽고, 조금 더 무거웠다. 도원은 그 차이를 느꼈지만,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도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하나둘 흩어지기 시작했다. 몇몇은 여전히 뒤를 돌아보며 도원을 살폈다. 남성은 아직 자기 팔을 만지며 신기해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발밑의 자갈이 그대로 느껴졌고, 밤공기는 아까보다 더 차가웠다. 마을은 다시 조용해졌지만, 그 조용함은 처음의 조용함과는 다른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손바닥의 탑 문양은 계속 미열을 품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가 그 안에서 숨을 쉬고 있는 것처럼. 도원은 몇 번이나 손을 쥐었다 폈다. 그 열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방으로 돌아온 뒤에도 도원은 한동안 잠들지 못했다. 창밖으로 바다는 다시 평온해 보였다. 하지만 그 평온함이 진짜인지, 그저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요아는, 여전히 어디에도 없었다. 도원은 어둠 속에서 요아의 창문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불이 꺼져 있었다. 그 어둠이 이상하게도 오늘 본 검은 바다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것 같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이 그 안에 웅크리고 있는 것 같은. 도원은 손바닥을 가슴에 가만히 얹었다. 미열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마치 그 안에서 무언가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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