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성문 앞으로 다가갈수록 인파가 짙어졌다. 저잣거리 특유의 비린내와 흙먼지 냄새가 코끝을 스치고, 좌판에서 구워지는 고기 냄새가 그 사이를 파고들었다. 사람들의 어깨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자, 방(榜)을 뜯어낸 자가 그 종이를 손에 쥔 채 거들먹거리며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우량이었다. 뒤로는 대여섯의 소도사들이 그를 에워싸듯 서 있었는데, 하나같이 팔짱을 끼거나 턱을 치켜든 자세로 우리 쪽을 흘겨보고 있었다. 옷깃에 매인 장식용 옥패가 걸음마다 달가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이 의뢰는 저희가 먼저 신청한 것입니다."
나는 최대한 예를 갖추어 말했다. 목소리를 낮추고, 두 손을 모으듯 하며 격을 지켰다. 하지만 사우량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코웃음을 쳤다. 그 시선이 발끝에서 시작해 얼굴까지 천천히 올라오는 동안, 나는 그 눈빛 속에 담긴 노골적인 경멸을 굳이 피하지 않았다.
"신청? 관아의 방에 이름을 써넣기라도 했나 보군. 하나 그 방은 이미 내 손안에 있지 않나."
그가 손에 든 방을 흔들며 비웃자, 뒤에 선 소도사들이 낄낄거리며 따라 웃었다. 웃음소리가 파도처럼 퍼져 나가 주변 상인들까지 힐끗거리게 만들었다.
"청풍문이라 했나. 산속에서 굴러다니던 이름은 들어봤지. 곤궁해서 어린애들까지 내보내는 처지에, 요괴 퇴치는 어디 가당키나 한가."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드는 감각이 선명했지만, 나는 애써 목소리를 낮췄다.
"실력을 겨뤄보면 알 일 아닙니까."
"실력? 하하하!"
사우량이 배를 잡고 웃더니, 손가락으로 하다린을 가리켰다. 그 손가락이 마치 무언가를 조롱하듯 까딱거렸다.
"저 꼬맹이는 뭐, 검이라도 휘두를 줄 아나? 그 나무 상자 안에 든 게 목검이라도 되는 모양이지?"
하다린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나는 곁에서 그 애가 상자를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변하고, 상자를 메고 있던 끈이 어깨를 짓누르며 팽팽해지는 소리까지 들리는 듯했다.
"오라버니, 저 사람 진짜..."
[참아. 여기서 손대면 우리가 지는 거야.]
전음으로 눌러 앉히듯 말했지만, 정작 내 속도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목구멍 안쪽이 뜨거워지고, 관자놀이 근처의 핏줄이 욱신거렸다. 그럼에도 나는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으려 애썼다. 이런 자리에서 흥분한 쪽이 지는 법이다. 스승님이 늘 하시던 말이 떠올랐다. 화는 상대의 무기가 아니라 내 무기여야 한다고.
강현도가 내 뒤에서 낮게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고, 묵진은 그저 조용히 서서 사우량 무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서늘하게 느껴졌다.
그때, 인파를 가르며 관복을 입은 노인 하나가 다가왔다. 백발에 흰 수염을 정갈하게 기른 그 모습에서, 오랜 세월 관직에 있었던 자의 위엄이 느껴졌다. 걸음걸이는 느렸지만 흔들림이 없었고, 그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사람들이 저절로 길을 터주었다.
"태수님이시다!"
누군가의 외침에 주변이 순간 조용해졌다. 좌판의 흥정 소리도,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도 일순간 멎었다. 사우량조차 헛기침을 하며 자세를 고쳤다. 그 뻣뻣한 어깨가 순간 굳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이 무슨 소란인가."
조현택이라 불리는 그 노인은 우리와 사우량을 번갈아 보더니,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눈빛이 날카로웠으나 그 안에는 지친 듯한 그늘도 함께 배어 있었다. 오랜 시간 백성들의 다툼을 중재해 온 자의 눈이었다.
"의뢰를 두고 서로 다투는 것 같은데, 자초지종을 들려주게."
사우량이 재빨리 나서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늘어놓았다. 그의 말은 마치 미리 준비해 둔 것처럼 매끄러웠고, 청풍문이라는 이름을 언급할 때마다 은근히 힘을 빼는 어조로 말했다. 나는 그 뒤를 이어 침착하게 사실을 전했다. 목소리를 떨지 않으려 애썼고, 말끝마다 불필요한 감정을 담지 않으려 노력했다.
조현택은 한참을 듣더니, 턱을 쓸며 낮게 웃었다. 그 웃음에는 어떤 판단이 이미 서 있는 듯한 여유가 배어 있었다.
"두 쪽 다 의뢰를 받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한 모양이군. 그럼 방법은 하나뿐이다."
"방법이라 하시면..."
"실력으로 증명하게. 사흘 뒤, 백하 강가에 나타난다는 요괴를 먼저 퇴치하는 쪽에게 의뢰를 전부 맡기겠네."
사우량의 얼굴에 순간 당황이 스쳤으나, 그는 곧 여유로운 웃음을 되찾았다. 그 짧은 균열을 나는 분명히 보았다. 그가 예상했던 결과와는 다른 방향으로 일이 흘러간 게 틀림없었다.
"좋습니다. 저 어린것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도 태수님의 아량이시겠지요."
그 말속의 비웃음이 선명했지만, 나는 애써 무시했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나중에 하게. 그 요괴, 이미 어부 셋이 목숨을 잃었네.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
조현택의 눈빛이 순간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 짙어진 눈동자 속에서 나는 단순한 경고가 아닌, 그가 직접 목격했거나 전해 들은 무언가의 무게를 읽어냈다.
"게다가 최근 들어 강가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어. 단순한 요괴 소행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그는 말을 흐리며 하늘을 잠시 바라보았다. 저물어가는 해가 그의 흰 수염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 시선이 어딘가 먼 곳을 헤매는 듯하더니,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왔다.
"어쨌든, 사흘의 시간을 주겠네. 그 안에 결과를 보이게."
조현택이 자리를 뜨자, 그를 따르던 수하들도 함께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그 뒷모습이 완전히 멀어지기도 전에, 사우량이 지나가며 낮게 속삭였다.
"흥, 사흘 뒤엔 그 잘난 입방정, 후회하게 될 거다."
그 눈빛에는 단순한 오만이 아닌, 뭔가 다른 계산이 어려 있는 듯했다. 스쳐 지나가는 그의 소매에서 옅게 풍기는 향 냄새가, 어쩐지 강가의 습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그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결국 등을 돌렸다.
그날 밤, 우리는 강현도와 묵진이 잡은 객잔의 방 한켠을 빌려 마주 앉았다. 창호지를 통해 스며드는 등불 빛이 방 안을 은은하게 물들였고, 밖에서는 취객들의 노랫소리와 그릇 부딪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백하 강가의 요괴라... 짐작이 가는 게 있긴 하네."
강현도가 낡은 지도를 펼치며 말했다. 지도 위에는 강줄기가 붓으로 그려져 있었고, 몇몇 지점에는 붉은 점이 표시되어 있었다.
"물속에 서식하며 사람을 홀리는 종류일 걸세. 소문대로라면 강가의 지형을 이용한 진법이 필요하겠어."
"만뢰속영진(萬雷速影陣)을 쓸 생각입니다."
나는 짐 속에서 진법서를 꺼내며 답했다. 낡고 해진 표지, 곳곳이 손때로 반질거리는 그 서책은 스승들이 물려준 유일한 재산이라 해도 좋을 것이었다. 책장을 넘기는 손끝에서 오래된 종이 냄새가 났다.
"들어본 진법이군. 다만 그건 술사 혼자서 펼치기엔 벅찬 진이지 않나."
강현도가 지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그 목소리에는 순수한 우려가 담겨 있었다.
"제겐 다린이 있습니다."
하다린이 그 말에 씩 웃으며 상자를 두드렸다. 나무 상자에서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내가 있잖아. 오라버니가 부적으로 요괴를 몰아넣으면, 내가 확실하게 끝내줄게."
그 자신감 넘치는 얼굴을 보며, 나는 문득 청풍문을 떠날 때의 불안이 조금은 옅어지는 걸 느꼈다. 성문 앞에서 붉어졌던 그 애의 얼굴이, 지금은 전혀 다른 감정으로 물들어 있었다.
묵진이 조용히 나를 바라보다가, 처음으로 나서 말했다. 낮은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는 순수한 흥미가 담겨 있었다.
"이서하 공. 그 만뢰속영진, 저도 한번 보고 싶습니다."
나는 그 시선이 어쩐지 부담스러웠지만, 애써 웃어 보였다.
"사흘 안에 보여드리겠습니다."
강현도가 지도를 접으며 낮게 덧붙였다.
"강가의 지형이 문제일세. 물살이 세고 바닥이 깊은 곳이 많아, 진의 축을 세우기가 쉽지 않을 걸세. 내일 아침 일찍 답사를 가는 게 좋겠어."
"그러죠.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요."
하다린은 그 말을 들으며 상자를 다시 끌어안았다. 그 안에서 무언가 무거운 것이 살짝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 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였다가, 다시 진법서로 시선을 돌렸다. 종이 위에 그려진 복잡한 선들이 등불 빛 아래에서 흐릿하게 흔들렸다.
방 안의 공기는 팽팽했다. 사흘이라는 시간이 짧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었다. 어부 셋이 목숨을 잃었다는 조현택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사우량의 알 수 없는 여유로움도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창밖, 어두워진 거리 저편에서 낯선 인영 하나가 우리가 머무는 객잔을 오래도록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날 밤의 우리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 그림자는 등불 빛이 새어 나오는 창을 향해 시선을 고정한 채,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