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밥값도 없는 1급 사냥꾼

1화

새벽 공기가 차가웠다. 판자촌 지붕 틈으로 스며드는 빛이 아직 푸르스름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콧속이 시큰거렸다. "도훈아." 쇠돌이 아저씨 목소리가 문틈으로 들어왔다. 낮고 갈라진 소리였다. 나는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이불을 걷어내자 찬 기운이 발끝부터 타고 올라왔다. 방 안엔 늘 나던 기름 냄새 대신 오래된 종이 냄새가 났다. 익숙하지 않은 냄새였다. 아저씨가 앉은 자리엔 서류 뭉치가 쌓여 있었다. "이게 뭐예요?" "입단증이다." 아저씨는 그 말을 하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백내장으로 흐려진 눈동자가 창밖을 향해 있었다. 저 눈으로 서류를 어떻게 읽었을까. 그런 생각이 잠깐 스쳤다가 사라졌다. "심마대?" 나는 서류를 집어 들었다. 종이 위엔 낯익은 문양이 찍혀 있었다. 정부 문양, 그 아래 붉은 인장. 일급 심마대원 후보 강도훈. 글자를 읽는 순간 속이 뒤틀렸다. "저 아직 등급도 안 나왔는데요." "안 나와도 된다. 오늘 정오까지 도착하면 된대." 아저씨가 기침을 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기침 소리가 방을 채웠다. 나는 그 소리를 못 들은 척했다. 십 년 넘게 들어온 소리였으니까. 언제부턴가 그 기침이 더 길어졌다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왜 이렇게 급해요. 며칠 준비하면 안 돼요?" "안 돼." 아저씨 목소리가 단호했다. 평소와 달랐다. 실없이 웃으며 넘기던 사람이 아니었다. 장바닥에서 나를 주워 키운 사람, 매번 농담으로 눙치던 사람이 이렇게 딱딱하게 말한 적이 없었다. "쇠돌이 아저씨." "가라, 도훈아." 그가 손을 뻗어 내 어깨를 짚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원래 저렇게 손이 얇았나. 원래 저렇게 앙상했나. 손등에 핏줄이 도드라져 있었다. 언제 이렇게 됐지. 의문이 들었지만 물을 새가 없었다. 아저씨가 내 손에 뭔가를 쥐여줬다. 작은 주머니였다. 안에서 동전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입단비다. 모자랄지도 모르니 챙겨둬라." "이거 언제부터 모으신 거예요." "몰라도 돼." 아저씨가 웃었다. 웃는 얼굴인데 이상하게 슬퍼 보였다. 입꼬리는 올라갔는데 눈은 웃지 않는 그런 얼굴. 나는 그 표정을 오래 기억하게 될 거란 걸 그때는 몰랐다. [능독 판정: 미확정] [등급: 미배정] [심마대 배속: 일급 후보] 눈앞에 뜬 문구를 처음 봤을 때가 떠올랐다. 반년 전, 골목에서 처음 능력이 발현됐을 때. 그때도 이런 식으로 흐릿한 문구가 시야에 걸렸다. 뭘 할 수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등록만 되어 있는 상태. 등급이 없다는 건 심마대에서 가장 낮은 취급을 받는다는 뜻이었다. 어중이떠중이, 재능 없는 놈, 그렇게 불릴 자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아저씨는 나를 보낸다. "아저씨, 저 진짜 가도 괜찮은 거예요?" "괜찮아. 안 괜찮으면 애초에 안 보냈다." 말은 그렇게 하는데 목소리 끝이 흔들렸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물으면 대답이 안 나올 것 같았다. 대신 짐을 챙겼다. 낡은 외투 한 벌, 물통 하나, 그리고 그 주머니. 외투 소매가 해져 있었다. 이걸 입고 정문에 서면 사람들이 어떻게 쳐다볼까 잠깐 생각했다가 지웠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문 앞에서 아저씨를 돌아봤다. 그는 여전히 방 안에 앉아 있었다. 손을 흔들지도, 일어나지도 않았다. 그냥 앉아서 나를 보고 있었다. "다녀올게요." "그래." 짧은 대답이었다. 나는 그 짧음이 마음에 걸렸지만 애써 무시했다. 걱정할 시간이 없었다. 정오까지 도착해야 하는데 이미 해가 반쯤 떠 있었다. 문을 닫고 나서는 순간, 안에서 다시 기침 소리가 들렸다. 발이 잠깐 멈췄다. 돌아가서 물어야 하나. 아니, 지금 돌아가면 정오를 못 맞춘다. 나는 걸음을 옮겼다. 보호지구 경계선까지는 걸어서 두 시간이었다. 경계선을 넘으면 그 밖은 위험지대라고 배웠다. 짐승들이 어슬렁대고, 마수라 불리는 것들이 나온다고. 나는 그 경계선을 넘어본 적이 없었다. 심마대 본부가 경계선 바로 앞에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걷는 내내 아저씨 얼굴이 떠올랐다. 흔들리던 손, 기침 소리, 그리고 그 웃음. 뭔가 이상했다. 확신할 순 없지만 분명 이상했다. 걸음을 옮길수록 판자촌 지붕들이 뒤로 멀어졌다. 익숙한 골목, 익숙한 냄새, 익숙한 소리들이 하나씩 사라졌다. 낯선 길로 접어들자 공기 냄새마저 달라졌다. 흙냄새 대신 쇠 냄새가 났다. 경계선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본부 정문이 보였을 땐 이미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낯선 옷을 입은 아이들, 갑옷을 걸친 어른들. 다들 나보다 훨씬 잘 갖춰 입고 있었다. 가죽 갑주, 매끈한 장갑, 등에 멘 무기까지. 나는 낡은 외투를 다시 여몄다. 소매 끝이 손가락에 걸려 부끄러웠다. 정문 앞 게시판에 명단이 붙어 있었다. 사람들이 앞다투어 이름을 찾고 있었다. 누구는 웃고, 누구는 안심하고, 누구는 굳은 얼굴로 돌아섰다. 내 이름을 찾으려 다가가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쳤다. "어, 너." 익숙한 목소리였다. 돌아보니 낯이 익다 못해 눈에 익은 얼굴이 서 있었다. 한서준. 예전에 내가 심부름을 해줬던 그 상류층 도련님이었다. 비싼 옷을 걸치고, 표정엔 여유가 넘쳤다. 저놈이 여기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너도 여기 왔냐?" 그가 웃으며 물었다. 웃음 뒤로 뭔가 심상찮은 기운이 스쳤다. 예전에도 저 웃음을 본 적 있었다. 심부름값을 깎으려 들 때 짓던 그 웃음. 나는 대답 대신 명단을 다시 봤다. 내 이름 옆에 붙은 글자. 일급. 그 아래 조 배정란에 낯선 이름 셋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한서준, 안명희, 안이현. 등 뒤에서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낮게 깔린 웃음이었다. 나만 못 알아듣는 농담을 다들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나는 그제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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