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복귀길은 조용했다.
안이현은 안명희의 어깨를 짚고 걸었다.
발을 뗄 때마다 그녀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새어나왔다.
한서준은 앞장서서 걸으며 계속 통신구를 만지고 있었다.
그의 손끝이 통신구 표면을 두드리는 소리가 정적 속에서 유독 크게 들렸다.
"보고 넣었어. 본부에서 조사팀 나올 거야."
"3대장님이 직접 나오신 것도 이상해요."
내가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3대장님은 초급 구역엔 안 오셔. 뭔가 미리 알고 계셨을 수도 있어."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미리 알고 있었다면, 우리는 미끼였던 걸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속이 뒤틀렸다.
발밑의 돌부리가 유독 신경 쓰였다. 아무 잘못도 없는 돌부리인데 자꾸 걸려 넘어질 것 같았다.
한서준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그도 확신이 없다는 뜻이겠지.
위험지대의 경계선을 넘어서자 공기가 조금 바뀌었다.
습하고 무거운 냄새 대신, 인공적으로 정화된 바람이 코끝을 스쳤다.
그제야 긴장했던 어깨가 조금 풀렸다.
안이현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살아서 돌아왔네."
"당연하죠. 안 살아서 돌아오면 이상하잖아요."
내 대답에 그녀가 픽 웃었다. 웃을 힘이 남아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본부에 도착했을 땐 이미 해가 저물고 있었다.
붉은 빛이 건물 유리창에 부딪혀 부서지는 걸 보며, 나는 오늘 하루가 참 길었다는 생각을 했다.
의무실에서 안이현이 치료를 받는 동안, 나는 복도에 앉아 있었다.
의자는 딱딱했고, 벽에는 소독약 냄새가 배어 있었다.
한서준이 옆에 와 앉았다.
그가 벽에 등을 기대며 다리를 쭉 뻗었다.
"괜찮아?"
"모르겠어요. 아무것도 못 했는데."
"등급도 없는데 뭘 할 수 있었겠어."
그의 말투는 위로였지만, 오히려 그 사실이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는 말. 처음부터 짐이었다는 말.
"등급 없는 애들은 원래 이런 취급 받아요?"
"취급이라기보다는… 그냥 위험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고 보는 거지."
"그럼 저는 왜 입단시킨 거예요?"
한서준이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이 어떤 대답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아마 누군가가 미리 자리를 만들어놨겠지."
그 말에 아저씨가 떠올랐다.
오랫동안 모아둔 입단비, 갑작스러운 재촉, 흔들리던 손.
아저씨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나는 그 질문을 몇 번이나 곱씹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아저씨의 굽은 등만 자꾸 눈앞에 그려졌다.
"근데."
한서준이 화제를 돌리듯 말했다.
"오늘 그 검은 형체, 너 진짜 아무 느낌도 없었어? 등급 발현될 것 같은 그런 느낌."
"없었어요. 그냥 무서웠어요. 그게 다예요."
"그럼 됐어. 무서운 게 정상이야."
그가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그 손길이 생각보다 따뜻해서, 나는 잠깐 말을 잃었다.
통신구가 울렸다.
내 앞으로 배정된 개인 단말기였다.
낯선 번호였다.
받아보니 낮게 갈라진 노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옆집 아저씨였다.
쇠돌이 아저씨와 오랫동안 이웃해 살던 사람.
"도훈아."
"네, 아저씨."
목소리에서 뭔가 잘못됐다는 걸 바로 느꼈다.
평소와 다른 떨림이 있었다.
"쇠돌이 아저씨가… 갑자기 쓰러졌다."
순간 심장이 내려앉았다.
손에 든 통신구가 미끄러질 뻔했다.
"언제요."
"오늘 오후에. 마을 사람이 발견했는데, 의식이 없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가 떨렸다.
방금까지 앉아 있던 딱딱한 의자가 뒤로 넘어가며 큰 소리를 냈다.
"지금 어디 계세요?"
"보건소로 옮겼다. 근데 도훈아, 여기 의료진이 부족해서 제대로 못 봐주고 있어."
전화기 너머로 아저씨의 숨소리 같은 잡음이 섞여 들렸다.
아니, 그건 내 숨소리였다.
한서준이 심상찮은 내 표정을 보고 물었다.
"무슨 일이야?"
"저희 아저씨가… 쓰러지셨대요."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본부 의료팀 쪼금은 움직일 수 있을 텐데, 지금은 안이현 때문에 다 붙잡혀 있어. 미안."
"괜찮아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괜찮지 않았다.
목구멍 안쪽이 뜨거워졌다.
나는 복도 끝으로 걸어가 벽에 등을 기댔다.
차가운 벽의 온도가 등을 타고 스며들었다.
아저씨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흔들리는 손, 갈라진 기침, 그리고 마지막에 지었던 슬픈 웃음.
그때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
자기 몸이 무너지고 있다는 걸.
입단비를 건네던 그날, 아저씨는 유독 말이 많았다.
평소엔 무뚝뚝하던 사람이 별거 아닌 걸 자꾸 되물었다.
밥은 먹었는지, 옷은 챙겼는지, 겨울 오면 뭘 입을 건지.
그게 마지막 인사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숨이 막혔다.
이래도 되는 걸까.
왜 지금 여기 있어야 하지.
의문형 독백만 계속 떠올랐다.
답이 나오지 않았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동안,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드는 감각만 선명했다.
안명희가 다가와 옆에 섰다.
그녀의 발소리는 조용했지만, 존재감은 그렇지 않았다.
"들었어. 힘들겠다."
"괜찮아요."
"안 괜찮아 보이는데."
그녀 말투는 여전히 딱딱했지만, 그 안에 걱정이 섞여 있는 걸 느꼈다.
"저 오늘 등급도 없이 실전 나갔다가 아무것도 못 했잖아요."
"그래서?"
"이대로면 아저씨한테 갈 시간조차 못 만들 것 같아서요."
안명희가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등급 없는 애들이 처음 발현되는 계기가 뭔지 알아?"
"몰라요."
"극한 상황. 목숨 걸린 순간에 발현되는 경우가 많아."
"그럼 저는 왜 아무것도 발현 안 됐어요? 오늘 진짜 죽을 뻔했는데."
"그건 나도 몰라. 사람마다 다르니까."
그녀의 대답은 짧고 무심했지만, 그 뒤에 뭔가 더 있는 것 같았다.
안명희는 잠깐 나를 쳐다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근데 너, 오늘 그 검은 형체 앞에서 도망 안 쳤잖아. 그게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야."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오늘 그 검은 형체 앞에서도, 나는 아무것도 발현하지 못했다.
목숨이 걸려 있었는데도.
그럼 나는 그 정도 위기로는 부족한 걸까.
밤이 깊어졌을 무렵, 한서준이 다시 찾아왔다.
그의 손엔 서류철이 들려 있었다.
"조사팀에서 결과 나왔어. 오늘 3구역에서 나온 그 개체, 등급표에 없는 신종이래."
"신종이요?"
"응. 근데 더 이상한 건, 그런 개체가 최근 다른 구역에서도 몇 번 목격됐다는 거야."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단순 사고가 아니었다.
뭔가 큰 흐름이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서류철 안에는 낯선 도형과 숫자가 적힌 종이들이 겹쳐 있었다.
나는 그걸 곁눈질로 훑었지만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3대장님이 이걸 미리 알고 계셨을까요?"
"몰라. 근데 하나는 확실해."
한서준이 목소리를 낮췄다.
"이거, 우리 연말 시험이랑 관계없는 얘기가 아닐 수도 있어."
"연말 시험이면… 등급 정식으로 매기는 그 시험 말하는 거예요?"
"맞아. 거기서 뭔가 큰 게 터질 수도 있다는 얘기야. 그냥 감이지만."
그의 얼굴에서 평소의 여유가 사라져 있었다.
그게 더 불안했다.
나는 그 말을 곱씹으며 창밖을 바라봤다.
밤하늘 아래, 위험지대의 경계선이 어둡게 뻗어 있었다.
저 너머 어딘가에 아저씨가 누워 있을 마을이 있었다.
등급도 없는 나는 여기서 뭘 할 수 있을까.
아저씨는 지금 어떤 상태일까.
의식이 돌아왔을까.
아니면 아직도 그 침대 위에서 눈을 뜨지 못하고 있을까.
생각할수록 가슴이 답답해졌다.
답이 없는 질문들 속에서, 나는 다음 날의 배치 명령서를 손에 쥐었다.
종이는 아직 잉크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채였다.
종이 위엔 새로운 구역명이 적혀 있었다.
2구역, 정식 선발전 예정지.
그 아래 작은 글자로 붙은 한 줄이 눈에 들어왔다.
"3대장 서하람 관할."
심장이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아저씨의 얼굴과 서하람이라는 낯선 이름이 동시에 머릿속을 헤집었다.
둘 중 무엇도 지금 당장 손닿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저 이 종이 한 장만이, 내일 내가 가야 할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