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같은 조라니. 이거 운명 아니냐?"
한서준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나는 그 손을 슬쩍 피했다.
"운명이라기엔 너무 갑작스러운데요."
"뭐, 그런가."
그가 낄낄 웃었다.
예전에 내가 그 집 마당 청소를 해줄 때도 저렇게 웃던 얼굴이었다.
그때는 저 웃음 뒤에 뭐가 있는지 신경 쓸 여유도 없었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하고, 돈 받고, 돌아가는 게 전부였으니까.
달라진 건 없었다.
여전히 낄낄 웃고, 여전히 별생각 없어 보이는 얼굴.
다만 지금은 서로 같은 조라는 것.
동등한 위치라는 것.
그게 낯설었다.
마당 쓸던 놈이랑 어깨 나란히 하고 사냥터를 나간다니.
세상 참 이상하게 돌아간다.
정문 안으로 들어서자 넓은 훈련장이 펼쳐졌다.
돌바닥에 그려진 문양들이 은은하게 빛을 냈다.
벽마다 걸린 등급표에는 숫자와 이름들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그 아래 명단을 확인하는 사람들의 줄이 길었다.
다들 표정이 진지했다.
여기서는 등급이 곧 신분이라는 걸, 줄 서 있는 얼굴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여기가 안명희, 여기가 안이현."
한서준이 손짓하며 소개했다.
여자 쪽이 먼저 나를 훑어봤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값을 매기듯 시선이 지나갔다.
표정에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강도훈. 등급 미배정?"
그녀 목소리는 딱딱했다.
건조하다 못해 사무적이었다.
"아직 안 나왔어요."
"이상하네."
안명희가 고개를 갸웃했다.
짧게 자른 머리카락이 살짝 흔들렸다.
"보통 입단 전에 등급이 나오는데."
"저는 좀 급하게 들어와서요."
말끝이 흐려졌다.
정확히 어떻게 들어왔는지, 나조차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으니까.
그녀는 더 캐묻지 않았다.
대신 시선을 거뒀다.
관심 없다는 뜻이었다.
편했다.
안이현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옆에서 팔짱을 낀 채 나를 살피던 눈빛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한서준 밑에서 일했다던 애 맞지."
"네."
"소문 들었어. 힘든 일 하면서도 늘 웃고 다닌다고."
그 말에 웃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웃긴 소문인지, 조롱인지 구분이 안 됐다.
이 바닥에서 웃는 얼굴은 약점으로 보이기 십상이었다.
"웃을 일이 별로 없었는데요."
내 대답에 안이현이 피식 웃었다.
"그건 맘에 드네."
솔직한 게 마음에 든다는 뜻인지, 웃음기 없는 게 마음에 든다는 뜻인지는 알 수 없었다.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한서준이 팔짱을 끼며 끼어들었다.
"어쨌든 우리 넷이 한 조야. 앞으로 사냥터 나갈 때 같이 움직인다."
"사냥터요?"
"응. 오늘 오후에 첫 실전 배치 있어. 몰랐어?"
몰랐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입단 절차 어딘가에서 설명이 있었을 텐데, 나는 그 서류들을 제대로 읽을 시간도 없이 도장을 찍었다.
속이 뒤틀렸다.
준비도 없이 실전이라니.
"긴장하지 마."
한서준이 씩 웃었다.
"나 2급이야. 명희는 3급 직전. 이현이도 중급이고. 우리가 있으니까 괜찮아."
말은 편하게 하는데, 그 편함이 오히려 더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셋은 저마다 등급이 있었다.
나만 없었다.
숫자로 매겨지지 않은 사람이 이 조에서 뭘 할 수 있을지, 나 자신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나는 슬쩍 물었다.
"저는 등급이 없는데, 괜찮을까요?"
안명희가 대답했다.
"등급 없는 애들 원래 많아. 첫 실전 나가서 발현되는 경우도 있고."
"발현이 안 되면요?"
"그럼 죽는 거지."
그녀 말투가 너무 태연해서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실소였다.
"그거 되게 무섭게 말하네요."
"사실이니까."
그녀는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그 눈빛이 오히려 신뢰가 갔다.
적어도 거짓 위로는 안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었으니까.
한서준이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끼어들었다.
"야, 그런 말 하지 마. 도훈이 쫄잖아."
"쫄았으면 안 왔겠지."
안명희가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속으로 인정했다.
그 말이 맞았다.
선택할 처지가 아니었으니까.
여기 아니면 갈 곳도 없었고.
조 편성이 끝나고 우리는 훈련장 한쪽으로 이동했다.
장비 창고는 훈련장 구석, 철문 하나로 막힌 좁은 공간이었다.
안에는 온갖 무기와 방어구가 벽을 따라 걸려 있었는데, 상태가 좋은 것부터 나쁜 것까지 등급별로 나뉘어 있는 게 한눈에 보였다.
앞쪽 진열대일수록 광이 나고 뒤쪽일수록 낡았다.
나는 가장 낡은 외투와 조잡한 단검 하나를 받았다.
담당 직원이 내 명찰을 확인하고는 별다른 말 없이 그것들을 던져줬다.
단검 손잡이가 이미 갈라져 있었다.
이걸로 뭘 상대하라는 건지 감이 안 왔다.
한서준은 나를 보더니 슬쩍 손을 내밀었다.
"이거 받아."
작은 지갑이었다.
가죽이 낡았지만 만듦새는 괜찮았다.
"뭔데요."
"용돈. 장비 살 때 써."
"괜찮아요, 안 받아도."
"받아. 예전에 너 부려먹은 값이라고 생각해."
그의 말투는 가벼웠지만 눈빛은 아니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지갑을 받았다.
안에 든 액수가 생각보다 컸다.
지폐 몇 장이 아니라 제법 두툼한 뭉치였다.
"많이 받네요."
"연말 시험 상위권 유지하려면 팀원 전력이 좋아야 하거든."
결국 자기 이익이라는 소리였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솔직했으니까.
나는 지갑을 외투 안쪽에 넣었다.
낡은 단검보다 이 지갑이 더 든든하게 느껴졌다.
씁쓸한 일이었다.
오후가 되자 배치 명령이 내려왔다.
스피커에서 낮고 기계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일급 후보조, 3구역 사냥터로 이동하십시오."
목소리는 몇 번이나 같은 문장을 반복했다.
다른 조들도 저마다 짐을 챙기며 이동을 시작했다.
훈련장 전체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안이현이 먼저 걸음을 옮겼다.
"긴장 풀어. 3구역은 초급 지역이야. 흔한 잡짐승 몇 마리 상대하는 게 다야."
그 말이 위로가 됐어야 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저씨의 흔들리던 손이 계속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 손이 왜 떨렸는지, 나는 아직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경계선을 넘는 순간, 공기가 바뀌었다.
습하고 무거운 냄새.
풀이 아니라 흙과 피가 섞인 냄새.
나는 처음으로 위험지대의 공기를 들이마셨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목구멍 안쪽이 미묘하게 조여드는 느낌이었다.
"여기가."
"응, 보호지구 밖."
한서준이 대답하며 앞장섰다.
그의 걸음걸이가 훈련장 안에서와는 확실히 달랐다.
가볍던 몸짓이 사라지고, 발끝이 조심스럽게 땅을 짚었다.
숲 사이로 좁은 길이 나 있었다.
나무들은 훈련장 벽 안에서 본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였다.
가지가 뒤틀리고, 잎이 검은빛을 띠었다.
그 길 끝에서, 나뭇가지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일반적인 바람 소리가 아니었다.
낮고, 규칙적이고, 뭔가 의도가 담긴 움직임이었다.
뭔가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