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체육관 천장에서 조명 프레임이 떨어진 건 정말이지 순식간의 일이었다. 능력측정 수업 중 낙하 장치 점검이 있다는 안내 방송을 아침 조회 시간에 분명히 들었지만, 나는 그 말을 흘려들으며 그저 오늘 체육복 세탁이나 제때 됐으려나 하는 생각이나 하고 있었지, 설마 그 낡은 고정쇠가 하필 내가 서 있는 매트 바로 위에서 풀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위쪽에서 삐걱, 하는 미세한 소리가 들렸을 때 옆줄에 서 있던 친구가 먼저 위를 올려다보며 "어?" 하고 짧게 소리를 냈고, 나는 그 반응에 이끌리듯 고개를 젖혀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시야를 가득 채운 건 회색 프레임의 뒷면이었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머리로 판단할 틈도 없이 두 팔이 저절로 얼굴 앞으로 솟구쳐 올랐고, 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그저 살아야 한다는 본능 하나에 몸을 맡겼다. 쿠웅, 하는 둔중한 소리와 함께 팔뚝에 엄청난 무게가 얹히는 걸 느꼈는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 예상했던 통증은 오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아플 틈조차 없었다는 게 맞을 것이다. 팔의 피부가 마치 누군가 스위치를 눌러버린 것처럼 순간적으로 딱딱하게 굳어버렸고, 나는 그 낯선 감촉이 팔뚝에 돌덩이를 통째로 붙여놓은 것 같다고 생각하며 조심스레 눈을 떴다.
"한도현! 괜찮아?!" 체육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입에 문 채로 달려오며 소리쳤지만, 나는 그 목소리가 마치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아득하게 들릴 만큼 다른 감각에 완전히 압도당해 있었다. 팔뚝을 뒤덮은 회색빛 표면, 그 위로 미끄러져 떨어지는 조명 프레임의 잔해 조각들, 나는 그것을 내려다보며 숨을 몰아쉬었고, 손끝이 저릿하게 떨려오는 걸 느끼면서도 도무지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게 뭐지.
그 의문이 채 정리되기도 전에 머릿속에서 뭔가가 터지듯 밀려들었다. 마치 오랫동안 잠겨 있던 방문이 한꺼번에 열어젖혀지는 듯한 감각이었고, 나는 그 급류 같은 흐름 앞에서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
그건 기억이었다. 정확히는 내 것이 아닌 것 같으면서도 분명 내 것인 기억, 대한민국이 능력자 사회로 재편된 지 오십 년이 넘었다는 사실, 화랑영웅학교라는 국내 최고 히어로 양성 기관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모든 걸 내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낯선 확신까지. 나는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은 채로 관자놀이를 짓누르며 신음을 삼켰다.
…이게 다 뭐야.
체육관 조명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고 아이들의 웅성거림은 점점 커져갔지만, 나는 그 소음 속에서 홀로 전혀 다른 시간을 살고 있었다. 전생이라는 단어가 떠오른 건 그로부터 몇 초 뒤였는데, 나는 그 단어가 너무도 터무니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전생이라니, 무슨 판타지 소설도 아니고.
하지만 뒤이어 밀려드는 장면들은 그 헛웃음을 순식간에 지워버릴 만큼 생생했다. 좁은 자취방에서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며 밤을 새우던 어느 삼십대 남자의 모습,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며 회사와 집을 오가던 지친 얼굴, 퇴근길 지하철 손잡이를 잡은 채 스마트폰으로 웹소설을 읽던 손가락의 감촉까지, 그 모든 것이 마치 어제 겪은 일처럼 되살아났다.
'히어로 사회, 대한민국.' 그 제목을 떠올린 순간 나는 숨이 턱 막혔다.
내가 그 삼십대 남자로서 마지막으로 읽고 있었던 웹소설의 제목이었다. 능력자들이 사회 구조를 재편한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화랑영웅학교에 입학하려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주인공의 성장과 라이벌들의 경쟁, 그리고 그 세계관의 자잘한 설정들까지 하나하나 떠오르는데, 그 세계가, 그 인물들이, 지금 내가 발 딛고 선 이 세계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겹쳐지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짓눌렀다.
이게 정말 그 소설 속이라고?
"한도현, 정말 안 다쳤어?!" 선생님이 다가와 내 어깨를 세게 흔들며 재차 물었을 때에야 나는 겨우 정신을 붙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에 몰려든 아이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조차 제대로 인지할 여유가 없었다. 팔의 경화는 어느새 스르륵 풀려 원래의 살빛으로 돌아와 있었고, 나는 그 매끈해진 피부를 내려다보며 손을 천천히 말아쥐었다.
경화. 그게 내 능력의 이름이었다.
신체 표면을 순간적으로 단단하게 만드는, 원작 속에서는 그리 인상적이지 않은 방어형 능력으로 분류되던 것. 각성자 중 흔한 계열에 속하며 화려한 공격 능력에 밀려 늘 주목받지 못하던 유형. 나는 그 사실을 이미 세세하게 알고 있었다는 게 소름 끼치도록 낯설었고, 동시에 그 낯섦이 진짜라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체육관을 나와 복도를 걷는 내내 심장이 도무지 진정되질 않았다. 벽에 손을 짚고 잠시 숨을 고르는데,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머릿속이 뒤엉켜 있었다. 열다섯 살 한도현. 화랑영웅학교 입시를 앞둔 중학교 삼학년. 그리고 그 이름을, 나는 분명 어느 소설 속 조연 명단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럴 리가.
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 생각을 애써 밀어냈지만, 한 번 떠오른 의심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해지는 것 같아 나는 손톱으로 손바닥을 꾹 눌러보기까지 했다. 만약 내가 정말 그 소설 속으로 들어온 거라면, 그리고 그 소설 속에서 내 이름을 가진 인물이 존재했다면, 그 인물의 결말이 무엇이었는지도 어렴풋이 기억 속에 남아 있을 터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그 기억의 파편들을 하나씩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화랑영웅학교 입시 장면, 응시자들의 이름이 나열되던 화면, 순위표에 오른 얼굴들, 그리고 그 명단 어딘가에 분명히 있었던, 특별할 것 없이 지나가는 조연으로서의 내 이름. 주인공의 동급생이었나, 아니면 그저 배경처럼 스쳐 지나가는 학생 중 하나였나, 기억은 마치 안개 속에 잠긴 것처럼 뚜렷하게 잡히지 않았다.
버스가 신호에 걸려 멈춰 서는 순간 나는 창에 이마를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심장이 다시 쿵쾅거리기 시작했고, 손끝이 차갑게 식어가는 게 느껴졌다. 옆자리에 앉은 낯선 승객의 대화 소리도, 창밖에서 들려오는 경적 소리도 모두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설마, 하는 물음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그 답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아서, 아니, 어쩌면 알고 싶지 않아서 애써 눈을 뜨지 않았다.
만약 정말로 조연이었다면. 그것도 이야기 초반에 잠깐 등장했다가 별다른 비중 없이 사라지는 그런 인물이었다면.
그 뒤의 기억이, 도무지 떠오르질 않았다.